Re: 1/17 (화) 내포문화숲길 26구간 (인물길 4 )

작성자자성|작성시간23.01.08|조회수61 목록 댓글 0

내포역사인물길 4코스 

4코스 : 결성동헌 - 청룡사 (고산사 기점) - 청룡산 (정충사 기점) - 만해 한용운 생가지 - 김좌진장군 생가지

5코스 : 성삼문 선생 유허지 - 한솔기마을회관 - 최영장군사당 - 성삼문 선생 유허지 (버스로 이동)

             거리 : 13.1 km + 2.3 km

김좌진장군(1889~1930) 생가지

1989년 12월 29일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백야 김좌진이 태어나 성장하던 곳이다. 1991년부터 이곳의 성역화사업이 추진되어 생가지와 문간채·사랑채가 복원되었으며

관리사 및 전시관이 건립되었다.

1889년(고종 26) 선원 김상용의 10대손인 형규(衡奎)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천성이

호방영민하였으며 공부보다는 말타기와 전쟁놀이를 좋아하였다. 15세 때인 1904년에는 노복 30여 명을 모아 놓고

그들 앞에서 종문서를 불태우고 농사를 지어먹고 살 만한 논밭을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용력이 뛰어나 18세 때 이미 호명학교(湖明學校)를 세워 신문학을 교육하기도 하였으며, 가산을 정리하여

학교운영에 충당하였다. 1916년 광복단에 가담하여 격렬한 항일투쟁을 하는 등 훗날 독립운동가로서

민족자주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공산당원 박상실(朴尙實)의 흉탄에 맞아 순절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김좌진 장군의 생가지 근처 백야공원에 장군의 비(충남문화재자료)가 있으며,

보령시 청소면(靑所面) 재정리(才井里)에 김좌진 장군 묘(충남기념물)가 있다.

 

한용운선생생가지

\1989년 12월 29일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991년부터 한용운(韓龍雲:1879~1944)의 생가를 중심으로

주변지역을 사적화하기 위한 복원사업이 시작되었다. 생가인 초가 외에 사당·삼문·관리사·화장실 등을 건립하고

안내판을 설치하였으며, 주변 정비사업을 추진하였다.

 

한용운은 1879년 결성면 성곡리 박철동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청주(淸州), 본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裕天)이다.

14세가 되던 해에 결혼하였으나 결혼한 지 2년이 되던 16세에 돌연 집을 떠나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이후 하산하여 시베리아와 만주 등지를 떠돌다가 27세 되던 1905년 설악산 백담사(百潭寺)에서 연곡(連谷)의 가르침을 받고

정식으로 득도하였다. 계명은 봉완(奉琓), 법호는 용운(龍雲)이다.

 

1919년 3·1운동 때 백용성(白龍城) 등과 함께 불교계 대표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3년형을 선고받고,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 일제 치하의 민족혼을 일깨웠으며, 52세 때 잡지 《불교》를 인수하여 불교의

대중화와개혁에 앞장섰다. 1944년 5월 9일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에서 66세를 일기로 입적,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大韓民國章)이추서되었다. 그의 독립 정신과 문학세계를 기리기 위해 매년 홍성문화원에서

만해제(萬海祭)를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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