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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속으로

작성자恩波 안균세|작성시간23.10.05|조회수170 목록 댓글 0

유례없이 연일 폭우와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긴 여름은 지나고

가을의 중간을 향해 달리는 9월의 끝자락 길목의 추석연휴의 어느 날 청명한 오후,

도망가듯 달아나는 세월의 흐름을 붙잡아 손짓하는 가을의 정취를

느껴보자는 느닷없는 생각이 떠 올라, 편한 복장과 신발에 선글라스를 끼고

고즈넉한 드라이브 코스를 달려 집에서 그리 멀잖은 남한산성을 올랐다.

올라가는 길 3, 4Km에 펼쳐지는 풍광은 차장을 여니, 

가을바람과 함께 나의 시야와 가슴에 안긴다.

시간의 등을 타고 흘러가는 삼라만상의 색깔의 아름다운 변화와

자연의 신비한 모습에 취해 자칫하다가 옆 낭떠러지기로 떨어질 뻔 했다.

 

시간 날 때면 자주 찾았던, 넓은 야외에 나무와 꽃들로 꾸며진 분위기 좋은

커피 전문점 “아라비카”를 오늘은 찾지 않고,

정문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남한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서울시내와 저 멀리 인천까지 내려다 보이며 사람들이 많이 찾는,

병자호란의 치욕의 역사를 안고 있는 수어장대(守禦將臺)로 향했다.

 

성곽을 따라 약2Km를 올라가며

하늘과 구름, 땅과 풀, 바람과 나뭇잎, 나무와 바위,새와 다람쥐, 바람소리와 벌레소리, 

가을냄새와 사람냄새, 서울시내와 뿌연 연기, 고층건물과 한강,

이 모든 것이 눈과 코, 그리고 피부와 가슴에 석양을 타고 스며든다.

 

약간 숨을 몰아 쉬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지난 5월, 봄에 여기에 올랐을 때는 신비한 자연의 오케스트라가 들리더니,

오늘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변해가는 세월의 순환현상이 어김없이 남한산성에도 찾아 왔다.

 

흘러가는 계절을 시야(視野)에 담아 둘러보니,

눈에 들어 오는 남한산성 전체가 서서히가을 병()에 걸려, 변해 가고 있었다

나무도 잎도 풀도, 색깔은 누렇게 되어 가고, 꽃은 마르고, 바람도 약간 차가워지고, 하늘은 높고,

행인의 옷과 표정도 호락 벗어버린 분위기도 아니고, 삼라만상이 온통 변해 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때가 되면 찾아오는 감성과 변화의 “가을 병(病)은,

나에게만 찾아오는 현상이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어김없이 걸리는, 시간의 흐름에서 오는 자연 현상인 모양이다

 

올 봄에는

시야에 들어오는 뭉게구름, 따사한 햇빛, 곳곳에 보이는 봄 꽃, 푸름을 띄는 녹음 보다는, 

자연이 만들어 내는, 여기저기에서 동물들의 아름다운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 소리 등이

어울려 들려오는 대자연의 오케스트라가 귀 전을 울리더니 가슴 심연으로 공명되어 왔다.

 

귀뚜라미의 날개 가장자리에 있는 마찰 편으로 긁어 내는 소리,

여치와 베짱이의 뒷다리 안쪽에 있는 돌기들을 날개 표면에 비벼 만드는 소리,

이들은 모두 이를 테면 첼로나 기타 같은 현악기를 연주하는 셈이다.

 

호흡을 하기 위해 들어 마신 공기를 후두(larynx)로 내밀며 성대를 울려 소리를 내는

포유동물이나 울대(syrinx)를 울려 노래를 하는 새들은 모두 관악기를 부는 것인데

개구리나 맹꽁이 같은 양서류도 폐로 들어 마신 공기를 울음주머니로 밀어내며

후두의 막을 흔들어 소리를 내는 역시 관악기 연주자들이다.

 

매미는 막의 흔들림으로 소리를 낸다는 점은 마찬가지이지만 북처럼 큰 막의 진동으로

소리가 난다는 점에서 관악 보다는 오히려 타악기를 연주한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되면,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가 다 모였으니 일단 오케스트라의 기본 구성은

갖춘 셈인데 피아노가 빠졌다. 이때 딱따구리가 와 주면 되겠는데……

여하튼 그 어느 유명한 음악당에서도 들을 수 없는 오케스트라를,

봄에, 공짜로 남한산성 꼭대기의 소나무 아래에서 벅찬 감동으로 들었다.

또한 아름다운 꽃과 싱그러운 녹색 풀잎과 나무로 꾸며진 음악당은

세상에 제일 유명한 건축설계자라도 도저히 흉내를 낼 수가 없다

 

그런데 가을의 중간을 향해 달리는 길목인 오늘에는

자연이 무언의 큰 음성으로 가르쳐주는 인생에 관한 심오한 가르침이

가슴 심연으로부터 들려온다.

 

     가을하늘이 높을수록, 이 땅에 욕망을 두지 말고, 인생의 높은 이상향을 지니라고….

    

     뭉게구름이 하늘 바람에 떠밀려 산등성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면,

     바람 부는 대로 자연에 순응하여, 자연에 역작용 하느라 힘 빼지 말고 살아 라고….

 

     뺨을 스치며 나뭇잎 떨구며 나무 사이에서 하늘 향해 올라가는 가을바람을 보면,

     어디서 불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어도 세상의 온갖 먼지를 날려 보내고

     떨어져야 할 것은 떨구는 힘의 이치를 말하고…..

 

     곱게 누런 색깔로 물들어가는 나뭇잎을 바라보면,

     봄엔 연녹색을 여름엔 짙푸른 녹색을 자랑하다가

     가을엔 기온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색깔을 변화시키고 단풍으로 옷을 갈아 입어야 하는

     환경과 시간에 순응하는 삶의 자세를 몸 전체로 보이고….

 

     약 한달 후에는, 저 나뭇잎도 땅 위에 뒹구는 낙엽의 신세가 되니,

     이 땅의 자기의 소임을 다하면 미련 없이 모든걸 내려놓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생명의 생성과 소멸의 섭리를 느끼게 한다.

 

인생의 후반부를 달리는 나 자신은, 지금 계절의 어디쯤에 와 있으며,

나의 나뭇잎 색깔은 어느 색깔로 어느 정도 어떻게 물들고 있는가?

 

연인끼리, 부부끼리 손잡고 사랑의 표정으로 다정히 이야기하는 모습과

또는 친구들과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떠들고 왁자지껄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이 땅의 삶의 질곡과 세월의 무게 속에서도 움츠려 들지 않고

옆의 인간들과 교류하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의 살아있는 숨소리로 들린다.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삼라만상의 궤도(軌道)인가?

아니면, 세월의 무게에 허둥대는 인간을 지탱시키려 계절에 따라 변하는, 삶의 궤적(軌跡)인가?

 

오늘 오후 늦은 시간, 가을 풍광을 즐기고 가을정취에 젖어 보려다가,

남한산성의 수어장대를 오르내리는 길에서

흐르는 세월과 환경에 순응하여 모든걸 내려놓고 아옹다옹하지 말고, 

가을하늘 높듯이 가을바람 불듯이 구름 흘러가듯이 단풍 물듯이 낙엽 떨어지듯이

겸손히 묵묵히 살아가라는 자연이 말하는 인생에 관한 심오한 가르침을 가슴에 안고 내려왔다.

 

이것이 “가을 속으로” 걸으며,

 자연법칙과 인생의 의미, 그리고 삶의 묘미를 깨달아 라는 창조주의 뜻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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