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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글방

'산수유'----봄의 옹알이

작성자恩波 안균세|작성시간24.03.11|조회수125 목록 댓글 0

일년을 사람의 일생에 비유한다면, 일년의 시작인 봄을 어린아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가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펴는 걸 '매화'이고,

바로 일어나 앉아 쫑알쫑알하는 옹알이를 '산수유'라 부르고 싶다.

 

3월이 열린 길목에서 생명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났음을 알리는 산수유의

옹알이를 자연이 들었는지, 산과들, 앞마당, 길가에는 피어야 할

모든 만물이 그를 따라 일제히 노릇노릇, 파릇파릇, 발그스레한 옹알이를

해대기 시작한다. 눈을 들어 사면을 둘러보니,

산수유가 앞장서 옹알이를 하며 아장아장 걸어가는

올해의 봄은, 재롱 떠는 아이처럼 사랑스럽고 꼭 안아주고 싶다.

 

봄과 더불어 산수유의 옹알이를 들으며 흘러온 긴 세월 속에,

우리 인간은 산수유나무에 물이 올라 몽우리가 터지기 전,

한 해의 농사의 밭갈이를 서두르는 삶의 지혜를 얻는다.

이때가 땅의 무름 정도가 밭갈이 하기에도 안성맞춤이고

더 늦으면 농사의 철칙인 때를 놓쳐 망치게 된다.

이 맘 때에는 논농사에 필요한 모판을 만들고

한쪽 밭두렁에서는 쌓아둔 퇴비를 뿌리고 감자 고추 등 밭 작물을 심는다.

그러니 산수유의 옹알이는 농부에게는 일년의 모닝콜, 알람인 셈이다.

또한 겨울내 방콕하고 있던 인간들에게는 잠자든 정서와 희망을 깨워

활기 찬 봄을 맞으며 인생을 즐거이 노래하게 한다.

 

산수유의 장관을 보려면

우리나라 최대의 산수유군락지인 전남 구례군으로 가보라.

올해는 산수유의 고장, 전남 구례군이 ‘제 25회 산수유 꽃 축제’를

3월 9~17동안 산수유 관광지와 군락지 마을 일원에서 연다고 한다.

전국 산수유의 67%가 몰려 있다.

그 산수유의 사연은 천 년을 거슬러 올라

삼국시대 중국처녀가 지리산 산골로 시집오면서 가져온 산수유가

이곳에 심어졌다는 아름다운 전설과 동시에 그 당시 첫 시목이

지금 구례군 산동면 개척마을에 보호 종으로 있다.

그곳에 가보면 논두렁마다 산골짜기마다 만발한 산수유

꽃 물결은 그 처녀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보다 커져 구례를 휘덮고 있다.

 

아직 추운지 따뜻한지 어떤지도 모르고

이른 봄 등 떠밀려 나온 ‘산수유’가 세상을 두리번거린다.

부스스 뜬 눈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몰라 꽃눈마저 작다.

어찌 보면 참으로 멍청하다. 매화처럼 겨울바람이 가시지 않은 세상에 가장

먼저 튀어나와 이 세상을 자기가 먼저 품겠다는 당돌함도 산수유에게는 없다.

품세가 자연의 섭리가 그냥 나가라니 마지못해 세상에 나온 듯 어딘가

어설퍼 보이고 큰 욕심도 모르고 나온 뭔가 어수룩하다.

그렇다고 목련처럼 큰 눈방울을 가져 누구 가슴에 눈물을 뚝뚝 떨어지게

만드는 애틋한 서정을 지닐만한 연기파 배우도 아니다.

 

누군가 산수유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산수유는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 핀다. 산수유는 존재로서 중량감도 전혀

없고,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그래서 산수유가 언제 지는지 눈치채는 것마저 어려워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의 존재감은 한마디로 ‘뿌연 존재감’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을 세상살이와 합쳐보면 이런 뜻이 된다.

그는 절대로 누구에게 민폐 끼치는 존재가 아니다. 아니 민폐를 끼치고 싶어도

그런 능력마저 없다. 조용히 왔다가 살며시 사라지는 외할머니 댁 뒤뜰에

잠시 터 잡다 가는 노란 봄볕 같다는 말이다. 그 볕에 할머니는 장독도 열고,

겨우내 묵은 이불도 내다 건다. 쨍 한 햇볕도 아니고 누구의 속을 다 비워낼

시원스런 바람도 아니다. 잠시 그러다 언제 갔는지 모르게 간다.

 

그런데 살면서 언젠가부터 남들이 자주 눈길을 보내지 않는 것에

정이 먼저 가는 건 왜 그런지 모르겠다. 희한한 일이다. 똑똑하지도,

눈물 글썽이게 만드는 순정파도 아닌 산수유에 자꾸 눈길이 간다.

그래서 찾아와 생김새가 개나리와 매우 흡사한 것 같아

그 휘어진 산수유 가지를 붙잡아 보니 속에, 아니 숨은

강단이 전해지는 것이다. 야트막한 담 옆에 살포시 휘어지며 피어나는

개나리와는 다른 강단이 얼음 밑 속으로 풀어헤치는 봄날 강물처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가지를 타고 천천히 흐르고 있지 않은가.

 

오늘날 우리의 삶과 사회는 엄동설한이다.

국내외 정세, 주위의 상황은 전쟁과 극심한 대립, 갈등으로

삭풍이 눈보라를 몰고 엄혹한 겨울로 치닫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따뜻한 생기의 숨소리와 속삭임은커녕, 한파가 곧 몰아칠 것 같고

앞이 보이지 않고 시계(視界) 제로다.

봄의 속삭임은 어디로 가고 갈등과 공격의 편가르기 함성만 들리고

주변을 살펴봐도 언제 봄이 올는지 징조가 없다.

어김없는 창조의 순환질서에 따라 자연엔 봄소식이 들려오는데도

이 사회와 사람들 얼굴과 가슴에는 언제 녹을 줄 알 수도 없는

두꺼운 얼음만 덮여 있다.

 

그러나 세월이 제 아무리 우울하고 숭숭 하다 하드래도

그래도 사랑하는 “영원불변의 사랑”을 약속한 부부 또는 연인, 친구에게

새봄이 열린 3월의 길목이 지나기 전에, 봄을 맞는 축하와 감사의 뜻을 담아

옹알이하는 산수유 꽃과 향기를 선물하여 삶의 행복을 느껴보심이 어떠실는지…..

 

산수유의 꽃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영원불변의 사랑”이란다.

그 꽃말 때문인지, 매년 구례에서는 “영원한 사랑을 찾아서”라는

부제가 달린 산수유축제가 열렸다.

매년 산수유 축제에는 이 사랑의 봄 향기를 맡으려 전국의 상춘객이 몰렸고, 

아직도 구례를 중심으로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산수유 꽃과 열매를 선물하면서 

영원불변의 사랑을 약속하는 풍습이 행해지고 있다.

 

봄에 노랗게 핀 산수유를 들어다 보고 있노라면,

옹알이 소리가 들리면서 노란 첫돌반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과 인간을 향해 뭐라고 옹알이 하며 말문을 여는 첫돌배기처럼,

요즈음 산수유가 자연을 대표해서 봄의 만개(滿開)의 옹알이를 시작한다.

그런 산수유에게 정말 예쁜 노란 반지라도 선물 하고픈 마음이다.

 

아! 이 세상 등 떠밀려 아무것도 모르고 나온 것 같지만

이른 봄에 넘치지도 않은, 모자라지도 않은 가장 적당한 화려함,

가장 적당한 향기, 가장 적당한 봄의 숨결로 그를 이 봄에 살게 하는 건

모두 그 뒤를 따를 화려한 봄 꽃들의 향연을 돋보이게 하고 싶은

그의 속 깊은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 봄을 정말 화려하게 만들기 시작하는 산수유의 크나큰 중량감에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끼며, 별로 말수 없는 산수유의 뿌연 파스텔 빛깔의

봄 길을 마스크를 벗고 걸어본다.

 

(구례 산수유풍경----사진작가인 친구, 夕浦  조병준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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