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창작 글방

‘벗 꽃’ 앞에서 고함을 지르다!

작성자恩波 안균세|작성시간24.04.07|조회수117 목록 댓글 0

꽃 비 우수수 쏟아지고, 파릇파릇 새싹 부르 돋아나고,

하늘하늘 봄바람 옷깃에 스며들고, 싱그러운 풀 내음 가슴에 파고 들고

봄 꽃으로 눈부신, 봄 같지 아니한 더운 날씨의 4월 초순이 흘러가는 길목,

서산에 걸린 일몰이 서서히 찾아온 느지막한 오후,

큰 개울물이 흐르는 집 부근 탄천(炭川)의 변(邊)을

늘 그랬듯이 주머니에 두 손 넣고 어슬렁 어슬렁 산책하였다.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보니,

늘 이곳을 산책할 때와 마찬가지로

서산에 걸린 일몰은 불그스레한 빛이 감돌고,

천변 양 옆 사방에 길게 뻗어 군락을 이룬, 온갖 봄 꽃들은,

금년에 좀 일찍 찾아온 지구고온 현상인 초 여름 같은 더운 기온 탓인지,

왜 그렇게 성질 급하게 흘러가는 세월의 등을 타고 서서히 떠나가며

눈 시리게 아름답던 자태와 유혹의 손길을

시간의 품속에 서서히 감추어 가니,

내 가슴에 눈동자에 피어 오르는 삼라만상은

창조의 멋진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것 같았다.

 

얼마 전만하더라도

매화는 손과 가슴을 열어, 봄의 기지개를 펴고

산수유는 마음껏 입술을 열어, 봄의 옹알이를 옹알거리고

벚 꽃은 힘껏 두 손을 펴서, 봄을 박장대소를 하고

목련은 뭇 인간의 탄성을 끄집어 내듯, 부풀어 오른 가슴과 S라인을 뽐내고

더 문 보이는 진달래는 화려한 신세대 여성의 옷 색깔로, 시선을 모으고

길옆 노란 개나리는 스킨십을 요구하듯, 만져달라고 유혹하고

언덕 위 수양버들은 물오른 처녀의 머리 결같이, 싱그러움을 자랑하고

나무마다 여기저기 하품과 기지개로, 봄기운을 내 품고

뿌리들은 영차 소리치며 힘을 모아, 물을 길러 올리고

갈라진 땅 사이로 풀 씨들이 움트려, 돋아나려 용쓰고

흙 속의 무수한 씨들이 먼저 땅 위로 고개 내밀려, 다투고

봄바람 소리마저 옷깃을 스친다.

이 모든 자연의 소리가,

날로 도타워지는 따스함 속에 조용히 파문을 일으킨다.

 

길가의 봄기운을 타고 한창 멋을 뽐내는 벚 꽃은

그 화려한 흰색 속에 다른 봄 꽃들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고,

노란 개나리도 잎을 띄우느라 파란색이 반 정도 어울러 있다.

걷는 신발 밑에는 뭇 사내의 탄성을 자아냈던

현란한 목련꽃잎이 나둥그러져 있고,

봄바람에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벚 꽃잎은 하필 나의 옷깃에 내려 앉는다.

그런데, 저 멀리 5월을 노래하는 라일락이

벌써 숫처녀의 젖가슴모양 부풀러 오르고 있다.

 

걷는 것조차 미안해,

개울가 벤치에 앉아 눈을 반쯤 감고 심호흡하며 상념의 세계로 빠져드는데,

흐르는 개울물 소리는

세상사의 온갖 무게와 영욕과 풍상을 품고 흘러가듯 귀에 들리고,

저 서산에 걸린 일몰은

인간사의 온갖 질곡과 고난을 안고 넘어가듯 물에 비치고,

사방에 널린 온갖 봄 꽃과 나무 풀들은

변화무상한 상황과 계절의 변화를 이긴 듯 눈에 비친다.

 

그래서, 나는 벌떡 일어나 벚 꽃 앞에 서서 고함을 질렀다

 

“너의 화사함이 네가 잘나서 그런 줄 아느냐?

너의 생명의 몸체인 나무 덕인 줄 알아라!

나무가 잎을 다 떨구고 맨몸이었기에,

지난 겨울 그 많은 눈의 무게를 감당하고 그 차디찬 바람을 이겼기에,

네가 그렇게 화사하게 피어난 줄 알아라”

 

새싹과 꽃을 피우려면, 내려놓고 비워야 하나 보다

삭막하고 깊은 혹한의 겨울이 지나고 어김없이 봄이 오고

꽃이 핀다는 사실이 신비롭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인생사에서도 무슨 새로운 일, 가치 있는 일을 하려면

제 욕심과 생각을 내려놓고 비워야 하나 보다.

 

그런데, 풀밭 한쪽에는 평소 잘 보이지 않던 크로바가

큰 거실평수만큼 자리를 하고 제법 짙은 파란색으로 웅성대고 있어서,

혹시나 행운의 네 잎 크로바를 만날 수 있을까 하여

2~3분여 이리저리 손가락으로 젖히며 보았으나

찾지 못하여 쩝쩝 한 마음으로 돌아서는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까치 서너 마리가

좀 전에 내가 앉았던 벤치에 모여 앉아 까악거리고 있다.

아마 나에게 사랑과 행운의 희소식을 미리 알려 주려고 전령으로 왔나 보다.

기분 좋은 웃음을 저 하늘로 싱긋이 날려 보낸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니,

따사로운 봄기운이 햇빛 있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 오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대지의 기운이란 느낌이 강하게 옷깃 안으로 스며든다.

아마 만물이 하품과 기지개를 내 품는 입김과

땅속 뿌리들이 물을 길러 올리는 영차 소리치는 함성,

그리고 갈라진 땅 사이로 풀 씨들이 움트려 돋아나려고 용씀,

흙 속의 무수한 씨들이 먼저 땅 위로 고개 내밀려 다투는

몸싸움에서 생기는 자연의 생명 에너지가

대지의 열(熱)과 어울려 파문을 일으키며 하늘로 분출하는 모양이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내 손에는 닿지 않지만

여러 걸음 떨어진 뒤 안 길에서

인생이라는 긴 여행의 벗으로 삶의 허덕임에서

바라보는 생명력으로 퉁소가 되어

4월에만 열리는 감성의 심연에서 울리는 창조의 신비이며 섭리이지 않은가

그래서, 고개를 들고 사월의 봄 찬가를 콧노래로 불러 본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