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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 년 만에 찾은 산소] 고령김씨 집의공파

작성자南齋|작성시간15.11.09|조회수26 목록 댓글 0

  [500여 년 만에 찾은 산소] 고령김씨 집의공파



고령김씨 집의공 할아버지 사자문자(士文:3)할아버지께서 1409년에 사헌부장령시에 민무구(閔無咎)형제와 조대임(趙大臨)의 방자함을 직간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받아 유배되시었다가 풀려 사헌부지사와 집의를 지내시고 회양(淮陽:강원도와 함경도 경계) 부사를 지내시다 충주에 기거하시다 고령 고탄에 환고(還故)하셨다.


그의 손자 별(:5)은 충순위 직장(忠順衛直長)을 지내시다 (백형:伯亨:4)에 의해 할아버지가 사시던 충주로 이거하시어 재산을 지키시며 많은 인재를 양성하셨다.

별 할아버지에는 두 아들 언로(彦老), 언국(彦國)과 두 따님이 있었으니 큰 딸은 능성구씨 구지강(具之綱), 둘째 따님은 안동권씨 권형()께 시집가신다.



50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후손들은 충주로 이주하신 할아버지 묘소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충주에 사는 후손들도 족보에 기록된 오동산을 찾아 헤맸다.

2008년도 언젠가 집의공 종손 영환(전 고령김씨 서울종회장)南齋가 충주의 오동산(梧桐山)을 찾아 나선 적이 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물론 충주에 기거하는 후손들도 마찬가지로 찾지를 못하였다.

그런데 어찌 이런 희한한 일이 일어날 수가 있단 말인가?

지난 10일 전(28) 구씨 집안의 구자일이라는 분이 南齋8년 여전에 낸 영환 회장의 아들 재민이 경영하는 치과를 다녀와서 인터넷에 띄운 적이 있는데 재민 원장에게 위에 기술한 3세대의 할아버지 묘소 있는 곳을 안다는 것이다.

숭실대 입구에서 만나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보니 틀림 없어 보인다.

구씨네 가승까지 보이며 설명을 하는데 옆에서 봐도 틀림이 없다.


구자일 저의 산소에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고 옆에 권씨네 산소에는 언국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습니다.

500여년간 한 번도 후손들이 나타나지 않아 무후(无后)인 줄 알았습니다.


자 증조이신 무()자 할아버지의 산소가 합천 포두에 있다해서 여럿이 합천 포두까지 찾아 간적이 있는데 후손들을 아무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고령김씨 대종회 사무실도 알아 보려해도 알 수 없었는데 우연히 며칠전에 인터넷에서 재민 원장의 치과에 다녀온 기사에 집의공파 후손이라해서 전화를 걸게 되어 영환 회장님과 연락이 닿은 것입니다


언젠가 南齋가 스마일 치과를 다녀와서 시설이 좋아 인터넷에 기사를 올린 바 있는데 그 기사를 읽게되어 오늘의 만남이 이루어졌으니 꿈 같은 이야기다.

오늘 비가 온다는데... 오후에 다른 행사장에 가야할 약속이 있는데도 시간을 1시간 당겨서 출발하였다.




        

손자 권세붕 비석(통정대부덕원도호부사)



구씨 가승에 기록된 12世 지강과 高靈金山(좌측은 權山이요 우측은 具씨 山)




左-권씨 산  中 고령김씨 산  右-구씨 산



* 묘터가 퉁수지형(퉁수모양이라하여 역장이 되어 있고,)

* 金鷄抱卵형 또는 蓮花 浮水형 이라 석물을 놓을 수 없는 자리라 함(구씨 산소)



언국(彦國:6世:아우) 묘(墓)는 충주 일월리(日月里) 오동산서록축좌(梧桐山西麓丑坐) 쌍분(雙墳)

권씨 문중에서는 별(潎: 5世)할아버지 산소로 전해 내려와서 그런 줄 알고 7년 전부터 정성껒 관리해 왔슴


(구자일님이 고령김씨 묘소에 있는 비석의 내용을 알기 위해서 탁본을 한 결과 언국(彦國)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후손들을 찾으려고 몇년 전에는 합천 포두까지 찾아 다니는 성의를 보여 왔슴.


무후(无后)라 생각하고 고령김씨 문중을 찾으려고 여러 방법으로 찾아 보았으나 찾을 길이 없었고, 며칠전에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南齋가 올린 재민의 치과 광고에 고령김씨 집의공파 후손이란 것을 알고 재민 원장에게 연락하자 영환 고문께 연결이 되어 오늘에야 500여년 만에 안정된 묘소를 찾기에 이르럼



奉列大夫成均館司藝金彦國之墓

500여 년간 견뎌준 碑銘



준(遵:7世)- 묘상동원(墓上同原)

언로(彦老:6世) 묘(墓)는 충주 오동산서록묘좌(梧桐山西麓卯坐) 합분(合墳)



별(潎: 5世) -구씨 문중 산소에 有 

                 




       

권용근 권씨문중회장은 비무장지대에 계신 윗대 실묘된 선조를 찾기 위해 3년간 다닌 적이 있으며 비무장지대에 출입할 때마다 국방부의 출입허가를 받아 사병의 안내를 받아 지뢰가 없는 지역을 통하여 찾아 다녔으며 그 간 50여발의 지뢰를 터트리면서 찾았다는 이야기이다.

 

[500여년 전 할아버지를 묘소를 지금 찾아 어떻게 할건데...]하는 혹자도 있겠지만 南齋 집안에서도 3~40여년 전 임진란 의병 선봉장 의재(義齋) 김홍한(金弘漢) 장군의 묘를 찾는데 성의 있는 몇 분의 노력으로 찾아내어 선영 묘소에 모신 아름다운 미화가 있기도 하며, 만약 그때 묘소를 찾지 않았다면 경남 양산 일대가 수년 전 공업 단지화 되어 영원히 후손들이 찾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번 한 아찔한 상황을 알고 있어 이번 집의공 후손들의 선대 네 분의 묘소를 찾게 됨은 경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두 분은 능성구씨와 안동권씨 양반집안의 정성으로 50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외손 봉사의 정신으로 깨끗하게 보존 되었으니 이 어찌 감격스럽지 아니한가?

나머지 두 분 역시 도굴은 되었고 잡풀에 덮여 있지만 봉분도 형태가 뚜렷하고 이 곳은 권씨 구씨 사이에 위치한 김씨의 무덤이라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수 없는 묘 터임에 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놀라운 일을 하면서도 당연하다며 보학(譜學)에 깊은 지식이 있는 겸손한 海觀 구자일 선생

 

저야 외후손 도리로 당연한 일이지요

1.權氏산에 계신 곳은 장이라 해서 장의 반대되는 장례법으로 풍수상 지세의 비보로 지금도 그리들 산소를 쓴답니다.

 일예로 이율곡 산소도 사임당 묘소 뒤로 쓰고또 동래정씨 임당공파 左相 정유길 묘역은 모두 도장입니다 동래정씨는 雲梯형 이라 해서 4대에 일곱명의 정승을 배출한 집안이라 회동 정씨로도 널리 알려진 서울의 명문이지요 이조 중기에는 흔히 쓴 장례 풍습으로 알고 있읍니다


2 .金 潎字 산소지형은 지사들에 따라 金鷄抱卵형 또는 蓮花 浮水형 이라 석물을 놓을 수 없는 자리라 합니다 석물을 놓으면 발복을 못하거나 침수되어 가라앉기 때문이랍니다

저의 선영도 그래서 석물을 갖추지 못했읍니다權門회장께서는 퉁소형을 말씀 하시는군요




별의 두째 사위 권형의 묘




   [경 로]  














권씨 문중인-1,  권용근 권씨종친회장, 栗岩 김영환 종손, 김대현, 海觀 구자일(구씨문중 대표) 권씨 문중인- 2. 권씨 문중인- 3



 

配 淑夫人 高靈金氏 祔







奉列大夫成均館司藝金彦國之墓





가선대부내금위장 지강(之)의 신도비



[구씨가승]

12世之綱(지)

무과 가선대부 內禁將 충주 법왕면(法旺面) 오동산(梧桐山)대릉동(大陵洞) 갑좌(甲坐)

 

고령김씨 父忠順衛 () 백형(伯亨) 曾祖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 사문(士文)

外祖********

 










시골길이라 네비가 잘 듣질 않아서 두시간 만에 찾아 온 충주 살미면 후손들

그 동안 충주의 오동산을 찾아 헤맨 효성이 우연찮게 구씨문중의 보학자 덕분에 슆고 곱게 찾을 수 있는 인연이 되었다.

별 할아버지 묘소에 참배

김인섭(20世). 김광석(20世).   김대현(20世). 김일수(20世).  

海觀 구자일(구씨문중 대표), 栗岩 김영환 종손, 권용근 종친회장



언국 할아버지 묘소 참배



잡풀 속에 언로(彦老:6世),  준(遵:7世) 할아버지의 산소가 도굴 당한 체 봉분 형태와 도굴꾼이 파손되어 두고 간 망두석 하나기 누워져 있다.







갑좌에 충순위 김별의 따님인 배 정부인 고령김씨와 함께 잠 드셨다




오동산(梧桐山)



[결어]

500여년 전 별(:5)할아버지가 그의 아버지(백형:伯亨:4)의 명을 받아 충주의 할아버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충주 일월면 오동산(梧桐山) 아래에서 동네 사람들을 교육시키면서 세상 떠나 생활하게 된다.

아들 두 분 언로(彦老:6), 언국(彦國)과 따님 두 분이 계셨는데 큰 따님은 같은 동네에 사는 능성 구씨 집안에, 둘째 따님은 안동 권씨 집안에 결혼하게 된다.

큰 학자 밑에 교육 받은 두 사위가 모두 큰 벼슬(구씨 집안은 신도비까지 세움)을 하게 된다.

 

첫째 사위 구지강(具之綱:조선국 가선대부 내금위장:신도비)

별 할아버지를 구씨 산소에 모시어 지금까지 외손 봉사를 하여 왔다.

두 째 사위 권형(權浻:통정대부 행 사헌부감찰) 역시 큰 벼슬을 하게 되고 권씨 묘소 옆에 붙은 처남인 언국과 언로, 그리고 언로의 아들 준()의 묘를 쓰게 된다.

()의 후손들이 어떻게 충주 살미면으로 이주했는지?는 알길이 없고 지금까지 후손들이 선조 묘소를 찾지 못하였다.

 

다만 알 수 있는 사실은 대학자이신 별께서 동네 자녀들을 훌륭히 교육시켜 두 사위 역시 큰 벼슬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며, 훌륭한 인물이 된 두 사위가 스승(장인)의 은혜를 갚기 위해 고령김씨의 삼대 후손들을 고히 모셔 왔다는 사실이다.

 

외손 봉사가 미덕으로 이루어 오든 시대라 능성 구씨 문중에서는 할아버지의 장인 묘소라 잘 모셔왔고, 안동 권씨 집안에서도 언국의 묘소가 권형의 장인 산소라 착각하여(세월에 銘石이 잘 보이지 않아) 7년 전 후손들이 없어서 사토를 하고, 봉분을 높이고 잔디를 입혀, 제대로 묘소를 관리하여 왔다.

 

보학에 조예가 깊은 海觀 구자일씨가 고령김씨 집의공 후손들을 찾아 주기 위해 백방으로 동분서주 자기 조상일 마냥 뛰어 다니든 중 옆에 있는 권씨 문중의 언국(권씨들이 별의 묘소라 믿고 있는) 묘비를 탁본하게 되고, 별의 둘째 아들이란 것을 국립중앙도서관까지 찾아가서 확인하게 되자 장이라 그 아래 두 개의 무덤이 언노와 그의 아들 준()의 무덤이 틀림없다고 확신되어 꼭 후손들을 찾아야 겠다는 일념에서도 건강에 조금 문제가 있음에도 연락이 되어 마침내 그 빛을 밝휘하게 된 것이다.

 


***  

본래 충주군의 法旺面3개로 本里 .日月里 .社倉里.이며일월리에 속한 마을이 康衢 . 只所. 中垈 .水谷 .高峯 .堤內 .宮堤. 九龍 .竹葉 .泗溪. 山直. 등 으로 광무10(1906) 9월 지방행정 개편으로 음성군에 편입되었고이때 충주의 13개 면을 음성에 편입시켜 음성현에서 군으로 승격 되었음

충북 음성군 구계리 (저수지 쪽은 쌍봉리)



현재 충북 음성군 금왕읍 구계리 산 ??? 번지

구씨 선영 동편으로는 쌍봉리 具門의 집성지 이기도 함

음성으로 편입시 법왕면과 금목면을 병합하여 금왕면으로 명칭이 변경 되였고금왕읍으로 승격 됨



海觀 구자일, 집의공 종손 栗岩 김영환, 권용근 권씨 문중회장

오늘을 있게 한 고마운 두 분을 다시 소개드리며

두 문중에 관계되신 모든 분들께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

(별 할아버지 묘소 앞에서)




다음 네비에 묘소를 찾을 수 있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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