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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아리랑의 발자취 제 2 막

작성자南齋|작성시간16.02.03|조회수8 목록 댓글 0

   예천아리랑의 발자취 제 2 막  



제 2

제 1







(해설)

때는 1817515일 상리면 용두리 야목 마을의 가난한 농가에 한 사내 아이가 태어 났으니~

성은 도씨요 이름은 시복이라 천품이 고매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효의 화신으로 추앙받고 있으니

 

 

      




아낙1: ~이 삼강댁 아인가~

아악2: ~ 아지매요 어데 갔다 오니껴?

아낙1: 아 올이~ 예천 장이라 자 갔다 오네

아악2: 뭐 좀 났디껴?

아악1: 하도 추워 가 별것도 없데~

         두 아낙이 대화를 주고 받으며 무대 센타에 올 무렵 무대 반대 편에서

         행색이 남루한 거지 등장

 



 

아악2: (거지 향해 손짓하며)

        아 - 아지매요 저~기 문딘지 걸밴지 또 하나 오니더~


아악1: 어이구 쯧쯧~ 지난 절개도 걸뱅이들이 마이 얼어 죽었다 카드이만 또 송장 치를세~


아낙3: (추워서 양손을 비비면서)

          아이고~ 추운데 얼른 가시더

          두 아낙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 무대 중앙에서 거지와 만나게 된다.


아낙3: 거지한테 부딪칠까 두려워 피하고 피하는데

          거지는 굶주림과 추위에 지친 듯 심하게 떨면서 비틀거린다

          거지를 피해가는 아낙과 부딪친다.



아낙3: (기겁을 하면서 거지를 밀어 내는데 거지는 쓰러지고..

           앙칼지고 독기서린 어조로) 

          보이소!! 멀건 대낮에 왜 사람을 치고 댕기니껴

          에~이 더라라 더라 못살세~~~  (양손으로 치마를 털어 내면서 화풀이를 하는데)


아낙1: (쓰러진 거지를 힐끔 살피며 돌아서 가려다 말고 거지에게 거리를 가까이 하며

           쓰러진 거지를 보고 깜짝 놀란다)

          으윽 손바닥을 치면서

          아이고~~~ 이게 누군가 상리 야목 마을에 사는 시복이 아인가~~~






아낙3: (가던 걸음 멈추고) ! 뭐라 캣니껴? 시복이라꼬~(시복에게 달려가)

 

아낙1: 그래~ 시복이 맞다 카~

아낙3: 맞네~ 시복이 맞아~ 저거 아버지 소갈병 고칠라고 수박 찾아 댕긴다 카드이

         그 소문이 맞네~ 맞아 (혀를 다시며 미안해서 쩔쩔 맨다)

아낙1: (신음하는 시복이를 일으키며) 이보시더~ 정신 좀 차리소

         우리 집에 가서 뜨신 물이라도 한 사발 마시거러 가시더~

          (아낙의 부축을 받으며 여전히 아낙1. 2도 심하게 떠는데)




아낙2: (풍산 뜰을 향해서 손짓하며)

         저기 풍산 뜰을 댕기다 보이께로 수박 덤불이고 호박 담불이고 다 말

         비틀어졌는데 이 엄동설한에 수박이 어대 있다고 이카니껴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얼른 가시더~





시복이: ~!? ...? 풍산 ..?!

          (시복은 두 아낙의 말을 뿌리치고 실성한 사람처럼 풍산 뜰로 달려간다)

아낙1: 보소~ 보소~ 아니고 어예꼬~

아낙2: 아지매요~ 그냥 가시더~



         두 아낙은 무대에서 사라지고 한편 도시복은 무대 저편에 길게 깔려진 호박 덩굴

          맨 끝에서 기대에 찬 모습으로 덩굴을 헤치며 수박을 찾는다







시복: 수박... 수박... 수박...

         광기어린 괴성을 지를 때 울다가 넝쿨을 뿌리며 쓰러질 때

         서서히 눈을 뜬다. 오른 발에 걸리는 무게감 아주 작은 수박 한 개를 찾는다


         수 수박이다~~~ 수박!

           (자신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면서 꿈이 아님을 확인한다.)



         ~ 꿈이 아니다... 진짜다 진짜...!






         수박을 들고 상수 쪽에서  이보시더 사람들요 이거 수박 맞니껴~?

       아부지요~ 수박 찾았니더~~

     



   도시복 군무


도효자의 효성이요 지성이면 감천, 한겨울에 수박이요 여름 홍시

13절까지 (활의 고장 본향이요 우리의 유산 명궁사의 정신일도 세계를 향해)





바쁘신 일정에도 참석하신 이한성 국회의원을 소개하다



 

(해설) 이렇게 해서 과거와 현대의 시간을 흘러서 벌써 마무리 해야 할 시간입니다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고, 여기 오신 모든 분들의 건강과 만사형통을 기원하며 특히 예천아리랑이 잡음 없이 예천의 문화콘텐츠 사업으로 전 세계를 향해 끝없이 쭉쭉 뻗어 나가길 기원하는 뜻을 담아 장경자, 황재영, 김태수 비나리를 바치겠습니다.

[노랫가락-청춘가]

 





















예천아리랑은 이제 거대한 문화적 가치를 가지고 우리 옆에 와 있습니다.

예천아리랑이 자리를 잡는 것을 기원드리면서 비나리를 바치겠습니다.

 

[통일 비나리] 



































 

축사

 

반갑습니다.

오늘 장경자 선생님이 '예천아리랑의 발자취.라는 주제로 이렇게 예천에 여러가지 토속적인 소제로 창극으로 담아서 발표회를 가졌습니다. 장경자 선생이 제가 알기로는 용문면 반송리인가 산골이 고향인데 이렇게 명창이 나와서 반송리에 장경자 선생님의 생가를 짓지 않을가? 싶어요 

 

전국에서 오신 국악인들 많이 계시지요~ 다 장경자선생님 덕분에 전국적으로 알려진 국악인 여러분들을 예천 땅에서 뵙게 되어서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또 지역에서도 여러 어르신들이 장경자 선생님의 활동을 걱정하고 성원하기위해서 허정도 대회장님과 정기융 문화원장님 김은수 ***김원석 위원님과 특히 우리 김성일 산막회장님과 **문경에서 장병철 위원님까지 많이 오시고 교육장 세분도 오시고 저 뒤에 장찬주 하우스라고 영상박물관을 지으신 우리 용문의 *** 대단히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젊으실 때에 관직에서 크게 예천을 빛내시다가 퇴임 후에 세계적으로 영상활동을 하시면서 많은 공훈을 쌓고 자료를 수집해서 그 수 많은 자료를  자비로 집을 지어 그기다 잘 수집을 해 두었습니다 아마 용문가시면 감상하시게 될겁니다마는 이렇게 오늘 후원자 중에서 예천군과 문화원과 초당기념관이 함께 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모처럼 오늘 이 추운 날씨에 함께 해 주신 여러분들께 깊히 감사드리면서 장경자선생님과 예천 국악인 중심으로 예천아리랑이 이렇게 발굴되고 전국에 잘 알려지기를 기원드리겠습니다

 

문경이 또 문경아리랑으로 아리랑의 본산지를 하기 위해서 엄청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기서 활동하는 걸 보면은 아리랑 노래가 전국에 2만수가 넘고 그것을 가사로 형성한 것이 만 육십순 가? 됩니다. 그것을 전부 붓글씨로 쓰서 지금 잘 배접을 해 가지고 보기좋게 병풍처럼 책도 만들고 잘 모셔났습니다 그 중에 예천아리랑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 예천아리랑도 그만큼 서민성이 풍부한 좋은 대중성을 지닌 것으로 잘 보전하고 이렇게 전국적으로 알려 주셔야 겠습니다

여러분 활동에 동참해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녹음:18)








청 춘 가 (굿거리 장단)

이팔은 청춘에 소년 몸되어서 문명의 학문을 닦아를 봅시다

청춘홍안(靑春紅顔)을 네 자랑 말어라 덧없는 세월에 백발이 되노라

무정세월아 가지를 말어라 장안의 호걸이 다늙어 가노나

요지일월(堯之日月)은 순지건곤(舜之乾坤)이요 태평성대(太平聖代)가 여기로 구나

역발산 기개세 항우에 장사라도 우미인 이별에 장사가 있느냐

눈속에 푸른 솔은 장부기상이요 학두루미 울고가니 절세명승이라

여울에 바둑돌 부디치희고요 이내몸 시달여 백발이되노나

천금을 주어도 세월은 못사네못사는 세월을 허송을말어라

 














얼마나 욕심이 많으신지 핀 마이크를 하고서도 제 것까지 뺏어 가셨어요

지금 저의 나이가 70입니다. 그렇게 않보이죠? 제가 국악을 한 20여년 하다 보니까 젊어졌어요. 필링이 와요 필링이 와, 그래서 여러분께서도 국악을 특히나 예천아리랑을 예천에서 부르시면 오십견은 병도 아닙니다. 또 관절염도 병도 아닙니다.

앞으로도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대통령께서 강조하셨던 문화융성 그리고 창조의 벨트를 바로 치고 나가시는 그러한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천 아리랑은 우리 고장의 아낙네들이 힘든 농사일과 고된 시집살이의 일상생활을 하면서 고달프고 피곤할 때에 즐거움과 서러운 한을 콧소리로 흥얼거리던 소리를 며느리나 딸에게로 전해오면서 부르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17세에 호명 직산에서 통명으로 출가를 해온 현재 92세인 양옥교할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일곱 살 때부터 훗날 올케가 된 동네언니와 나물을 캐면서 부르기도 하였고 어린동생을 등에 업고 소리를 배우기도 하였으며 소리를 잘 하시는 작은 오빠의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기도 하였다합니다.

 

예천아리랑은 원래 통명리에서 20여리 떨어진 예천군 호명면 직산리(속칭 피실마을)일대에서 불리어진 노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양옥교 할머니는 신혼시절에 남편을 일본에 징용으로 보냈는데 헤어진 남편과의 사랑과 자신의 어려운 삶의 역정을 노래를 통해 해소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노랫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예천아리랑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 그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중요무형문화재 통명농요기능 보유자인 이상휴가 젊은 시절 농사일을 하면서 틈틈이 불러오던 가사를 정리하여 불러오면서 일반인들에게 서서히 소개되었습니다.

 

2008년 예천아리랑이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갈 즈음 김수남 군수의 예천아리랑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이 예천아리랑 보존 전승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누가나 따라 부르기 쉽게 악보를 채보하고  예천아리랑의 CD음반을 제작하는 등 예천아리랑을 새롭게 체계화하고 널리 보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는 예천 문화원에서 예천아리랑 강좌를 열어 명창 장경자 선생의 지도하에 약 30여명의 교육생이 배출 되었으며 예천아리랑 창극공연과 예천아리랑 전국경진대회를 개최하는 등 각종 행사에 예천아리랑을 공연을 하는 등 전승 보급 활동에 열과 정성을 쏟고 있고 군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후렴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얼씨구나 잘 넘어가네






장찬주 회장, 이한성 국회의원, 장경자 예천아리랑보존회 이사장, 정희융 예천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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