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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연안이씨 대종회 학술토론회

작성자南齋|작성시간16.05.05|조회수70 목록 댓글 0

연안이씨 대종회 학술토론회

선초 연안이씨의 좌절과 발전

2016.5.3. 14:00~17:00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




 

 

연안이씨 대종회가 개최하는 학술대회가 상공회의소 국제관에서 53일 개최되었다.

우리나라 문중소종파중에서 유일하게 여자를 조상으로 모신 연안이씨 숙부인파

 

연안이씨는 문과급제자를 250 명이나 배출한 명문대성이다.연안이씨가 태종의 부마간택 거절사건으로 문중이 패문하게 됐을 때 단양이씨 16대손 할머니가 연안이씨에 시집을 가서 자손 31녀를 잘 키워 오늘날의 명문 연안이씨가 되었다

 

 










회장: 이용준


사회: 이용탁




연안이씨의 연원과 갈래

발표: 이성무 (전국사편찬위원장, 학술원 부회장)

 





이성무위원장이 병환 중이라 그의 수재자인 김학수 박사가 대신 발표하다.










이영무 회장의 발표에서 나오는 이귀산 부인 고령김씨에 대해서 알아보고 가기로 한다 고령김씨는 시조공(始祖公) 남득(南得:남쪽에서 얻은 귀한 신하)의 사명(賜名)을 받은 당시 익대공신으로 의성김씨에서 고령을 식읍(食邑)으로 봉 받아 시조공이 되셨으니 당대 최고 명문집안이다. 그의 귀한 외동 따님(11녀)이시다.


24면에 나오는 이귀산의 부인 고령김씨에 대해서 알아보고 가자

고령김씨 시조공 1남 1녀이신 할머니의 고령김씨 임오보에 기록을 올린다.



1762 壬午譜




1995년 족보에는 기록들을 배제한체 1줄로 표기하고 있다.

다음 고령김씨 족보에는 시조공의 따님이니 기록을 다시 넣어야 될걸로 사료된다.



이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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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李貴山
영어음역Lee Gwisan
이칭/별칭흥서,괴은
분야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인물/문무 관인
지역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서리
시대조선/조선 전기
집필자변은숙

    [상세정보]

조선 전기의 문신.

이귀산(李貴山)[?~1424]은 형 이귀령(李貴齡)과 함께 태조가 임금이 되기 전의 친구였으나 태조 대에는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하고 주로 태종 대에 활동하였다. 각 도의 관찰사를 역임하면서 지방 행정을 담당하여 국초의 창업 기틀을 잡는 데 공헌하였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흥서(興瑞), 호는 괴은(槐隱, 塊隱). 증조부는 대호군(大護軍) 이승안(李承顔), 조부는 상호군(上護軍) 이정공(李靖恭)이다. 아버지는 증좌의정(贈左議政) 이원발(李元發)이며, 어머니는 성천김씨(成川金氏)로 중랑장(中郞將) 김남보(金南寶)의 딸이다. 부인은 고양부원군(高陽府院君) 김남득(金南得)의 딸이고, 사이에 아들 이속(李續)을 두었다. 좌의정 이귀령의 동생이다.

태조 때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1410년(태종 10) 한성윤(漢城尹)으로 천추절(千秋節)을 축하하기 위하여 명나라에 다녀왔다. 1411년(태종 11) 전라도관찰사로서 다음과 같은 상소를 올렸다.

“무릇 상고(商賈)들은 농업을 일삼지 않고 본 역(本役)을 도피하고 있으니, 그들 가운데 경외관(京外官)의 노인(路引: 장사하던 사람에게 내주던 여행권)이 없는 자는 모두 그 재화를 몰수하고, 고발하여 체포하게 한 자는 저화(楮貨) 50장을 상 주게 되면, 놀고먹는 무리가 없어질 것입니다”라고 하여 장사꾼들 중에 노인이 없는 자는 모두 그 재화를 몰수하게 하니 그대로 시행되었다.

1412년(태종 12) 의정부에서 조선(漕船)을 침몰케 한 일로 전라도관찰사인 이귀산의 죄를 청하였지만, 큰바람으로 인한 일임을 들어 거론하지 않게 하였다. 또한 같은 해 사헌부에서 찬성사(贊成事) 이천우(李天佑)에게 뇌물을 주었다고 탄핵하니 논하지 말라고 명하였다. 1413년(태종 13) 8월 경성수보도감(京城修補都監)을 설치하고 제조(提調)로 삼았지만 공사를 시작하지는 않았다.

1414년(태종 14) 경상도도관찰사를 제수하였는데, 사헌부에서 합당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상소하여 가지도 않았는데 파직당하였다. 1415년(태종 15) 개성부유후(開城副留侯)에 이어 강원도 도관찰사가 되었다. 만년에 용인 구수동으로 물러나 두 그루의 괴목(槐木)을 심고 스스로 괴은(槐隱)이라 하고, 삿갓 쓰고 밭을 갈며 강가에서 낚시하며 보냈다.

1425년(세종 5) 대사헌 하연(河演)이 “전 관찰사 이귀산의 아내 유씨(柳氏)가 지신사(知申事) 조서로(趙瑞老)와 간통하였으니 국문하기를 청합니다”라고 아뢰니, 국문한 뒤 유씨를 참형에 처하고, 조서로는 영일(迎日)로 귀양 보냈다. 이후 이 사건은 사대부 부녀자들의 간통 사건을 다스리는 전례가 되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서리에 묘소가 있다. 묘갈은 1831년(순조 31) 다시 세워졌으며, 비문은 19세손 가선대부 전 궁내부특진관(嘉善大夫 前 宮內府特進官) 이의덕(李義悳)이 짓고, 17세 방손 통훈대부 전 중추원의관(通訓大夫 前 中樞院議官) 이병욱(李炳勗)이 썼다.


선초 연안이씨의 시련과 극복

발표: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역사학과교수)






박성극,        최성오 회장



뿌리회 이용규 회장,  이관범 전 차관보, 하회 東郊堂 유강하

 



이의익 전 대구시장, 전 국회의원





사림시대 연안이씨 숙부인파의 역할과 역사적 위상

발표: 김학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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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질문 이종억







이의익 전 대구시장


이관희




  


단양이씨 문중대표

 





박성극,  윤형빈 실학페밀리사무처장, 이우형 현강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최성오 삭녕최씨 회장



전주이씨 이관중,  인동 장동수,  경북고 재경 36회  이종근 회장



인동 장동수,  한희숙 숙대 교수


(예천 출신)


이관범 전 차관보, 하회 東郊堂 유강하

 

[회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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