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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산성순국선열 순의 419 주년 제향(식전)-1)

작성자南齋|작성시간16.09.27|조회수16 목록 댓글 0

황석산성순국선열 순의 419 주년 제향(식전)-1)


황암사 가는 길








진주에서 부산교통 조옥환 이사장님 뵙고 330분차를 탄 것 같은데 함양에 도착하니 앞창에 안내판이 바뀌고 4:13분 발이라 붙어 있다.

서울서 내려오면서 많은 비가 왔었는데 요행이 남재가 다닐 시간대에는 비가 거치다 시피해서 우산을 펴지 않고도 다닐 수 있었다.

안의는 버스타고 지난 기억은 있지만 땅을 밟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부근 지방은 도시의 위치도 어느 쪽에 있는지? 잘 분간이 가질 않는데 안의가 거창에서 진주가는 사이에 산청 가기전에 있음을 노선 표지를 보면서 알 수 있다.

 






시원한 황토물을 보면서 전에도 지나면서 언듯 본 듯한 光風樓 사진을 찍어 본다.

忠義의 고장 답게 의병장 노응규(盧應奎, 1861~1907) 의 생가 팻말을 볼 수 있다.









안의에 도착하여 시내버스로 농월정에 닿고 보니 식당도 많아 유원지 같은 생각이 든다.





내일 식사하는 곳이 거창식당(주 한태종)이라 주인장에게 첫 방문지임을 밝히고 황암사의 위치 등을 확인하고 촬영하기로 하고 걸어 올라 갔다.

.


鍾潭書堂(종담서당)엔 문이 닫혀 있어 담 넘어로 사진을 찍었다

정면5칸 측면 칸반의 팔작지붕 기왓집




오른쪽 앞 담장 옆에는 커다란 돌 비석이 거북 등위에 서있다. 

知足堂朴先生神道碑(지족당박선생신도비)로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이 지었다. 

 

重修記(중수기) 

鍾潭書堂(종담서당)先祖(선조) 知足堂(지족당) 先生(선생)講學之所(강학지소)이다. 일찍이 이곳 山水(산수)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시어 여기에 草屋(초옥) 數間(수간)을 얽으시고 性理(성리)講究(강구)하시면서 萬古長碧(만고장벽)()을 보시고 本質(본질)重厚不遷(중후불천)함을 즐거워하시며 晝夜不舍(주야불사)의 물에 ()하사 道林(도림)風流(풍류) 無窮(무궁)하심을 깨달으시어 山水(산수)動務間(동무간)自然(자연)妙理(묘리)探索(탐색)하시었다. 先生(선생)道學(도학)의 높으심과 義理(의리)의 밝으심은 諸賢(제현)講述(강술)該博(해박)하였으니 不肖孫(불초손)이 어찌 다시 贅說(췌설)하겠는가. 數百 (수백 년)이 흐르는 동안에 書堂(서당)이 허물어지고 옛 터전만 남아 荒草(황초)茂盛(무성)한 지가 몇 해였던가. 오직 山光水聲(산광수성)만이 옛날과 같을 뿐이었다. 尋常(심상) 行客(행객)도 다 指點(지점) 臨處(임처)하거든 하물며 後孫(후손)()困夕痛恨(곤석통한)함은 어떠하겠는가. 庚申[세 경신, 西紀(서기) 一八六四年(일팔육사년)] 三月(삼월)曾祖父(증조부) 聲雲公(성운공)께서 重建(중건)하셨는데 그 構造(구조)가 옛날보다 增制(증제)하여 ○○○(동○○○)하고 그 泉石(천석)增輝(증휘)하여 士林(사림)追慕(추모) 修覽(수람)하고 孫禮(손례)()하였더니 (세○)莫甚(막심)하여 옛일이 ○()하여지고 後孫(후손)守護(수호) 不勤(불근)하여 窓戶墻(창호장○)가 다시 ○○(○○)한지라 不肖孫(불초손) () 丁卯[세 정묘, 西紀(서기) 一九八七年(일구팔칠년)] 三月(삼월) () 다시 重修(중수)할 새 親族(친족)獻誠(헌성)○○(조○○) 咸陽郡守(함양군수) 史蹟(사적) 淨化(정화)의 뜻으로 ○(○조)하여 同年(동년) 八月(팔월)竣工(준공)을 보게 되었으니 嗚呼(오호), 이곳의 花林(화림) 泉石(천석)先生(선생)手澤(수택)宛然(완연)하고 構彫(구조)가 멈춰있은즉 後孫(후손)() 어찌 永慕(영모) 守護(수호)치 않겠는가. 大抵(대저) 祠守之難(사수지난)古今共難(고금공난)이라 ○○(이○○)苦心○○(고심○○)平泉之莊(평천지장)을 ○○(○○)치 못하였고 ○晋公(○진공)積德餘蔭(적덕여음)綠野之瑩(녹야지영)()하지 못하였으니 이 嗣守之道(사수지도)는 오직 後孫(후손)誠不誠(성불성)에 달려있는 것이니 우리 後孫(후손)들은 오늘날 이 書堂(서당)重修(중수)能事(능사)라 하지말고 先生(선생)道學義理(도학의리)恒常(항상) 欽慕(흠모)하고 익혀서 代代(대대)繼承(계승)해 내려가면 門戶(문호)蕃盛(번성)勿論(물론)이요 이 書堂(서당)山水(산수)와 함께 永久(영구)()할 것이니 相互(상호) 勉勵(면려)하소서. 不肖孫(불초손) ○○(○○)(불○)하고 猥濫(외람)되게 顚末(전말)大略(대략) 記錄(기록)하나이다. 

丁卯[세 정묘, 西紀(서기) 一九八七年(일구팔칠년)] 八月(팔월)  () 

十五 (십오 대) 嗣孫(사손) 海昌(해창) 敬識(경지) 

 

 

  

鍾潭書堂上樑文(종담서당상량문)

 崇禎五庚申黃梅節仁州張錫英謹撰(숭정오경신황매절인주장석영 근찬)

 

 

[출처] 함양산책[15] 농월정 앞 종담서당 |작성자 열린누리



그렇게 세차게 내리던 비도 거쳐 있어 병풍 같은 높은 산을 따라 촉촉한 길을 걸어니 상쾌하다.


옛 농월정










농월정(弄月亭) 달을 보고 놀아야 좋을 것 같은데 오늘 내일 폭우 경보가 내렸으니 농원정의 진미는 보지 못할 듯


[군 자료]


농월정은 넓은 반석위 하나의 큰 계곡을 형성하고 너럭바위를 지천에 거느린 아름다운곳이다.

 농월정을 두고 달을 희롱한다며 많은 묵객과 풍류객이 노닐던 곳으로 화림계곡의 최고절정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 선조때 예조참판을 지낸 지족당 박명부 선생이 조정에서 물러난 후 농월정을 찾아 글씨를 남기니

 "지족당이 지팡이를 짚고 노닐던 곳"이란 "지족당장구지소知足堂杖之所"글씨가 월연암에 새기면서 정자를

만들었지만 20031006일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타 버려 새로 신축한 건물이다.

박명부는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밀양이며 호는 지족당, 별칭은 자 여승이다.

정한강의 문인으로 1950(선조23)문과에 급제 후 예조참의 감사를 지내며,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진주싸움에서 분전, 장렬히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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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길이 이 산봉우리 저편으로 펴 지고 나니 슬슬해 진 면계 표식

 




































의총 앞 石器에 장마비로 정화수가 가득 담겨져 있다.



안지랑이가 피어 오르고



함양 7경 덕유운해를 보도다


농월정 부근에는 모텔이 없다.

민박집을 찾으니 하루 잠자는데  6만원이란다.

아깝지 아니한가?

사진 촬영 동안 거친비가 숙소에 드니 또 다시 세찬 폭우가 쏟아진다.

황석산성에서 419년 전 싸우시다 전사하신 구국공신들의 넋을 기려 하늘도 슬픔의 눈물을 내린다.



[9.18. 식전 모습]





밤 새 나리던 비도 아침에는 멎었다. 다시 한 번 농월정을 큰 카메라로 줌으로 당겨 촬영해 보고 파노라마로 찍어 본다.






오늘 행사에 초헌관이신 강석진 의원 반갑게 맞이 하신다.

지난 9월 3일 가조면 취수정 행사 때도 만나 보름 만에 다시 만나니 더욱 반갑다.

이태근 전 고령군수께서 오늘 다른일로 참석 못하셨는데 두 분 만났다면 상당히 반가웠을게다.

11월 5일 웅양면 우두령 의병도대장 김면장군 공원 앞에서 어인 창조마을 축하 공연을 한다고 했더니 국회 사무실로 연락해 주면 일정이 바쁘시면 축전이라도 보내 시겠단다.

국회의원을 2주만에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남재에겐 행운인 것 같다.


오일창 전 함안교육장께서 반갑게 인사를 하시고 일찍온 분 들에게 근조표를 달아주신다

강석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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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이조판서 행안음현감 충열공 곽준  / 황석산성 순국선열  /

증이조판서 행함양군수 중의공 조종도



의사 정룡 / 의사 정유문 / 의사 유명개 / 의사 유강

 


증호조정랑 곽이상 / 의사 정대익 / 증호조정랑 곽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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