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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서원지 간반 소개

작성자南齋|작성시간17.08.06|조회수17 목록 댓글 0

  덕천서원지 간반 소개   


2017. 7. 26. 11:00






 

0 이 책은 남명선생을 향사하고 있는 덕천서원 용암서원 신산서원 등 세 서원의 역사적 변천과정과 그 내용을 최대한 수습하여 정리하고자 기획되었다. 덕천서원지』 『용암서원지』 『신산서원지세 권을 한 질로 묶었다. 이렇게 함으로서 세 서원의 전체적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도 있고 동시에 각각의 서원지는 단행본으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숭덕사(崇德祠)/ 남명선생 위패(정면) 수우당 선생 위패(동편)



경의당(敬義堂)                /              진덕재(進德齋) 동재

덕천서원 현판은 모정(慕亭) 배대유(裵大維)가 썼고,      현판은 고봉(古蓬) 최승락(崔承洛)이 썼다

경의당 현판은 약헌(約軒)하용제(河龍濟)가 썼다.




수업재(修業齋) 서재 / 전사청(典祀廳)

            

현판은 고봉(古蓬) 최승락(崔承洛)이 썼다




내삼문(內三門) 시정문(時靜文) 외삼문(外三門)




관리사(管理舍) (고직사庫直舍) / 주방 및 샤워실




세심정(洗心亭)                  /             욕천시비(浴川詩碑)

현판은 중천(中天) 김충렬(金忠烈) 고려대학교 교수가 썼다.

글씨는 우현(于玄) 민성수(閔性洙)가 썼다.

 





0 덕천서원의 경우는 서원의 역사를 기록한 덕천서원지가 소략하지만 남아 있어 그 대체적인 연혁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용암서원과 신산서원은 훼철 이후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서원이 보유하고 있던 자료들이 모두 분실되어 남은 것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덕천서원의 연혁은 부분적으로 보충하여 정리하였지만 용암서원과 신산서원의 연혁은 여러 가지 자료들을 열람하여 처음부터 새로 정리하였다.


0 덕천서원에는 수우당 최영경 선생이 종향되어 있고, 신산서원에는 송계 신계성 선생이 병향되어 있지만 용암서원은 남명 선생만 제향되어 있다. 따라서 덕천서원지에서는 수우당 선생의 생애 자료와 관련한 기록들을 포함시켰고, 신산서원지에는 송계 선생의 생애 자료와 관련된 기록을 포함시켰다.


0 덕천서원 주변에는 산천재를 비롯하여 남명 선생 묘소와 여재싷 및 세심정 등의 사적지와 남명기념관과 한국선비문화연구원 그리고 덕문정 등과 같은 남명 선생 관련 기념사업 건물들도 산재하고 있다. 따라서 덕천서원지에는 이러한 사적지와 기념물 등과 관련한 내용들도 모두 포함하였다. 용암서원은 세 차례 위치를 바꾸어 건립되었는데, 현재의 서원은 뇌룡정 옆에 복원 되었다. 그 주변에는 남명 선생께서 탄생한 생가지(남명 선생의 외가)가 복원되어 있으므로, 용암서원지에는 뇌룡정과 생가지에 대한 내용도 포함하였다.

신산서원은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가 1999년도에 산해정만 복원하여 신산서원으로 중건하였으므로, 현재의 신산서원 강당이 바로 산해정이었다. 그러므로 신산서원지에는 산해정의 모든 자료들도 포함하였다.



0 덕천서원지는 연혁을 먼저 수록하되 현재 서원에 걸려 있지 않은 기문류 등도 수습하여 여기에 포함시켰다. 이어서 봉안문 축문 향례 의절 등을 실었다. 그 뒤에 남명선생의 유향편을 두어 선생이 남긴 자료 등을 실었다. 그 뒤에 덕천서원의 자료편을 두어 덕천서원이 소장하고 있는 원임록과 원생록 사우연원록 등에 기록된 명단을 정리하여 수록하고, 청무소축에 대해 소개하고 대표적 청무소 한 편을 번역하여 실었다. 그리고 각종 현판들을 수록하고, 세심정까지 포함하였다. 그 뒤애 남명선생편을 두어 행장 묘갈명 묘지명 신도비명 교지 사제문 연보 등을 수록하였다. 이어서 수우당 선생편에는 제남명선생문 행장 묘갈명 묘지명 신도비명 사제문 덕천서원 배향 고문 등을 포함하였다. 그 뒤에 산천재편을 수록하여 각종 주요 문서와 향례홀기 등을 실었다. 이어서 여재실과 덕문정 관련 글을 실고, 남명기념관과 한국선비문화연구원의 연혁과 주요 사업을 수록하였다. 그리고 부록으로 남명학 관련 기관들의 연혁과 주요사업실적을 수록하고, 그 동안의 각종 기념사업 실적을 나열하였다. 따라서 덕천서원지는 그 분량이 다른 서원지에 비해 상당히 방대하다.


 

 

0 용암서원지는 연혁을 먼저 수록하고, 이어서 남명 선생편을 두어 남명 선생의 유향과 선생의 생애 자료와 관련한 글들을 묶었다. 이어서 용암서원에 게시된 각종 현판의 글들을 싣고, ‘뇌룡정편을 그 뒤에 두어 관련 내용들을 수록하였다. 이어서 남명 선생 생가지사진을 싣고 간단히 설명을 붙였으며, 그 뒤에 을묘사직서(인명 단성소)를 수록하여 그 내용을 알 수 있게 하였다. ’부록으로는 남명학의 선양경과남명 선생 선양회 연혁을 실었다.



0 신산서원지는 연혁을 먼저 수습하여 수록하되 현재 게시되어 있지 않은 기문류의 글들도 수습하여 포함하였다. 그 뒤에 남명선생편을 두어 남명 선생의 유향 및 선생의 생애자료와 관련된 기록들을 묶었다. 이어서 송계 선생편을 두어 송계 선생 관련 각종 기록들을 정리하였다. 그 뒤에 신산서원편을 두어 신산서원과 관련한 각종 현판들을 수록하고, 이어 산해정편을 두어 산해정과 관련된 모든 현판들을 실었다. ‘부록으로는 남명학의 선양경과를 실었다.


0 각 항목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각 장마다 따로 개요를 붙여 구체적인 설명을 하였다.


0 사적지들에 붙어 있는 현판의 수록순서는 지어진 연기가 있는 경우는 연도가 앞서는 것부터 하였으며, 같은 일에 대한 기록에 대해서는 상량문, 기문, 원운의 순서로 하였다.


0 모든 한문으로 된 글들은 번역을 붙였으며,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고자 번역문을 먼저 싣고, 필요한 경우에는 원문과 대조해 볼 수 있도록 원문을 바로 이어 수록하였다.


0 번역은 원문의 문맥에 따르는 것을 가장 우선으로 하면서, 모두 한글로 번역하고 이해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한자는 괄호로 묶어 표시 하였다.


0 원문의 작자들은 한결같이 당대의 명유(名儒)들로서 문장에 매우 어려운 구절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러한 구절들은 가급적 각주를 달아서 이해를 돕도록 하였고, 글의 작자에 대해서는 각주를 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고, 글 속에 나타나는 인물들에 대해서도 가능한 범위 안에서 각주를 달았다.


0 번역에 있어 상량문, , 등은 원문이 지니는 운율을 최대한 살려 번역하였으므로, 읽을 때 운문체의 음율로 읽으면 그 맛이 더욱 드러나게 하였다.


김경수(덕천서원지 역은이)  조승섭(남명기념관장) 김낙진(진주대학교수)


김경수(덕천서원지 역은이)  선비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0 책의 일차적인 편집과 설명문은 김경수가 담당하였고, 이에 대해 허권수 감수위원 및 이성규, 노재성, 박병련, 최석기, 이상필, 김낙진. 김학수 등 7명의 검토위원이 교정과 윤문을 맡았다.

0 이 책에 실린 한문 원문은 몇가지를 제외하고는 이창호李昌浩 씨가 모두 번역하였으며 최종 교정은 김경수와 같이 맡았다.


0 책의 편찬에 있어 자료의 전산작업과 각주를 다는 작업에 구자익 박사와 구진성 박사의 도움이 있었다.

0 책 끝에 수록한 편찬위원회의 명단은 세 서원지의 공동편찬위원회로 이해하면 된다

 

박갑로(간반 고유제 사진 제공 )  조구호(남명학연구원 사무국장)  진성(책발간 기여 박사)


 진성(책발간 기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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