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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巨人 舜齋 어르신

작성자南齋|작성시간17.10.30|조회수7 목록 댓글 0

작은 巨人 舜齋 어르신  


 

 





 

 

 

각박한 세상이다

살다보면 입만 갖고 사는 인간이 참 많다

그러나 이렇게 훈훈한 이야기가 있어 살맛나는 세상인가 보다

 

세상에 이런 일이~’ 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를 올려본다.

사람은 한 번 태어나 죽기 마련이다.

아직도 한참은 사회 활동을 하셔야할 작은 巨人이야기를 하려 한다.

위의 글을 읽어 본다면

舜齋公은 향년 92세로 세상을 떠나셨지만, 활동력은 60이셨다.

임진왜란 의병장 제우당(悌友堂박경전(朴慶傳선생 후손으로 평소에 임진왜란의 再照明을 위해 힘을 많이 쓰셨다.

(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에 6년전 가입하시고 4년전 임란공신충의선양회에도 가입하셔서 충남 보령 호국사에 임란 공신 선조님들의 위패도 봉안하셨다.

 

오래된 임란공신충의선양회가 활발하지 못하자 적극적으로 법인화 할 것을 권하셨고 春岡 송재훈 회장께서 발 벗고 열심히 뛰셨다.

위중한 병실 생활에도 이를 감추시고 자금을 지원하셨는데...

 

법인 승인이 6 20일 떨어지고舜齋 어른께서는 이틀 뒤에 운명하셨다.

春岡 회장께서는 殯所를 찾지 못했다.

차마 빈손으로 靈前에 뵐 수가 없으셔서 집에서 나오셔서 弔花만 보내셨단다.

26일 법인등록증을 받아 보신 春岡 송회장님는 목이 메셨다.

 

며칠 만 더 사셨어도 이 반가운 소식을 알고 저 세상으로 가셨을 텐데...

오늘 늦었으나 묘소에서라도 고유를 해야 한다며 舜齋 어른의 長男이신 박형상 교수와 몇몇이 약속을 하여 舜齋어르신께서 잠들어 계시는 갑산공원묘원을 찾았다.









20여분 일찍와서 입구에서 기다리며 舜齋 어르신의 선행 이야기를 나누는데 머리 위 전주 위에서 까마귀가 그렇게도 울어댄다.

마치 늦게 온 우리 일행을 꾸짓는 저승사자 같은 느낌을 갖었다.

 

앞의 뾰쪽한 산이 오늘 따라 위압감을 준다












告由祝

 

檀紀 4350丁酉 8庚戌朔 23壬申 임란공신충의선양회 회장 송재훈은 감히 고하옵나이다.

密城朴公 舜齋 淳字 一字公 英靈께서는 기뻐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께서는 언제나 國祚不安하여 바다건너 倭賊壬辰年 이 땅을 侵略하여

宮闕擄掠하고 國王義州까지 蒙塵케 함으로 民生塗炭에 빠지고 儒林

各地로 흐터질 때 모든 國民奮發하고 義兵雲集하여 목숨을 바쳐 國運

回生시키기 위해 家族故鄕을 버리신 428위의 高貴英靈은 물론 12000

명의 護國功臣 英靈立祠配享(입사배향)하여 國家保護아래 慰勞(위로)

드릴 수 있는 기틀인 法人設立生前에 이룩하고자 늘 苦心 하셨습니다.

이에 늦었지만 法人設立完了하여 國家登記하였음을 하오며

앞으로 國威宣揚은 물론 國力增進에 온 後孫들이 매진 할 수 있도록 顯忠設壇

(현충설단) 位牌奉安(위패봉안) 龕室(감실)勝戰塔(승전탑)등을 한 자리에

顯忠公園設立 하는 일에 至誠으로 盡力하여 祭壇享祀(제단향사)는 물론

모든 顯彰事業(현창사업)官民이 함께 과 같이 할 것을 아뢰오니 께서는

모든 시름 떨치시고 永眠(영면)하시기 바라옵니다





병석에서도 귀찮아 하시지 않고 약속을 지키신 작은 巨人 舜齋 박순일 께서의 아무도 하지 못하는 아름다운 약속은 훗날 (사단법인) 임란공신충의선양회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어 선양회 발전 뿐 아니라 나라를 구한 수많은 임란 의병들의 顯彰에도 크게 기여하리라 믿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더 오래 이승에서 선양회를 도와 주셨으면 하는 생각이였습니다만 故人冥福을 진심으로 빌어 마지 않습니다.





明山 양원석 부회장, 雲谷 박규상 이사, 박형상 교수,

春岡 송재훈 회장, 황규민 사무총장, 사진: 南齋











강촌에살고싶네.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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