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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먹는다 할 만큼 귀한 토종 ‘돼지찰벼’

작성자안초공|작성시간23.11.15|조회수31 목록 댓글 0

몰래 먹는다 할 만큼 귀한 토종 ‘돼지찰벼’

추수를 보름여 앞둔 논산 들녘에 다녀왔다.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른 가을 들녘인데, 논두렁을 경계로 벼가 익어가는 모습이 각양각색이다. 키가 껑충하게 자란 것이 있는가 하면, 이삭이 거뭇한 것도 있다. 벼를 비롯해 토종 작물만 100여 종 가까이 재배한다는 충남 논산 더불어농원의 논밭 풍경이다. 그 가운데 오늘의 주인공은 토종 돼지찰벼다. 

 

돼지찰벼

돼지찰벼라니, 한 번 들으면 안 잊힐 재미난 이름이다. 무엇이 이 찰벼에 돼지라는 이름이 붙게 했을까. 여러 자료에는 키가 크고 적갈색을 띤 돼지찰벼의 이삭이 익어가는 모양새가 마치 붉은 돼지의 등을 보는 듯해 붙여졌다고 기록돼 있다. 이 말이 참말이라면 옛 농부들은 정말 해학을 아는 멋쟁이들이 아닌가 싶은데, 충남 논산에서 돼지찰벼 농사를 짓는 더불어농원 권태옥 씨(58)는 그뿐이 아니라며 이름에 얽힌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돼지찰벼 종자가 한 가지가 아니고, 80개 정도 돼요. 요즘 사람들은 돼지라고 하면 살찌고 못생긴 것을 떠올리지만 옛날에는 돼지를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 사람들이 아주 좋아했어요. 그러니까 어느 지역에서고 맛이 좋다 하는 찰벼에 다 돼지찰이라고 이름 붙인 거예요.” 이 말을 뒷받침하듯 돼지찰벼는 민요와 농요에 숱한 흔적을 남겼다. ‘혼자 먹었다 돼지찰(괴산군 민요)’ ‘혼자 먹자 돼지찰(청주 무가의 고사덕담)’ 혼자 먹어라 돼지찰베(음성군 고사소리) 등 유독 혼자 먹는다는 표현이 많다. 돼지찰벼가 몰래 혼자 먹고 싶을 만큼 맛있고, 여럿이 나눠 먹기는 어려운 귀한 찹쌀이라는 걸 빗댄 표현이다.

[풀과 벌레가 살아 있는 생태계에서 재배] 돼지찰벼가 자라는 권씨의 논 바로 옆에 보급종이자 공공비축미 매입 품종인 <삼광벼>가 자라고 있어 돼지찰벼의 특징을 비교해볼 수 있었다. 돼지찰벼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벼보다 불그스레하고, 까락은 거의 없다. 낟알은 적게 달리고, 쌀알은 작고 동글하다.

권씨에게 돼지찰벼는 익숙한 종자다. 시댁에서 대대로 농사지어온 품종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많은 농가에서 그러했듯 권씨도 한때 농사짓기 편한 개량종을 재배했다. 그러다가 뒤늦게 토종 종자가 정말 귀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집에 남은 씨앗이 없었다. 수소문해 충북 옥천에서 돼지찰벼 씨앗을 얻었고, 그 씨앗으로 다시 돼지찰벼 농사를 짓고 있다.

더불어농원에서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돼지찰벼를 재배한다. 풀도 있고 벌레도 있는 살아 있는 생태계에서 자란 작물이 건강한 먹거리가 아니겠냐고 말하는 권씨는 이른 봄 쟁기로 논을 갈며 논농사 준비를 시작한다. 6월 중 모내기를 하기까지 논을 경운하고, 소독한 종자로 직접 모를 기른다. 모내기를 한 논에는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우렁이를 방사한다.

보통 사람들은 농사의 시작이 봄이라고 생각하지만 농부에게 진짜 농사의 시작은 여름이에요. 같은 밭에 심은 한 종자라도 크는 게 다 다릅니다. 그중 특별히 잘 크는 애들이 있어요. 그걸 잘 봐둬야 합니다. 걔가 다시 종자가 되는 거예요.

권씨는 한여름에 웃거름을 주고 필요할 경우 방제하며 돼지찰벼를 돌보는 동안 그해에 농사가 가장 잘된 영역을 잘 표시해둔다. 그래야 수확할 때 선별해 씨앗으로 남겨둘 수 있다 [특유의 차진 식감, 유과·인절미 만들 때 최고] 돼지찰벼는 맛도 좋지만 무엇보다 찰기가 일품인 품종이다. 특히 유과와 인절미를 만들 때 돼지찰벼의 진가가 드러난다. 권씨는 인절미를 만드는 방식으로 돼지찰벼 특유의 찰기를 설명했다.

“요즘 떡방앗간에 인절미를 맡기면 찹쌀을 가루 내서 찌거든요. 그런데 이 돼지찰벼는 가루를 내서는 인절미를 못 만들어요. 어느 정도는 굳어야 자르고 모양도 잡는데, 이건 사흘이고 나흘이고 굳지를 않아요. 그래서 돼지찰벼는 옛날에 해 먹던 대로 밥알을 쪄서 절구에 찧는 방식으로 인절미를 만듭니다.” 더불어농원에서 재배하는 돼지찰벼는 해마다 조금씩 늘고 줄기는 하지만 3000㎡(약 1000평), 생산량으로는 2t 규모다. 수확 후에는 직접 도정한다. 여느 토종 종자의 상황이 그러하듯 돼지찰벼 역시 수매가 되지 않다 보니 판로는 제한적이다. 더불어농원에서 직접 판매하고, 온라인으로는 여성농민생산자협동조합 ‘언니네텃밭’에서 더불어농원의 돼지찰벼를 구매할 수 있다.

권씨는 토종 농산물 직불제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하는 한편, 자체적으로 돼지찰벼를 대중화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2020년에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즈’를 통해 돼지찰벼와 버들벼를 선보였고, 2021년에는 토종 곡물을 브랜딩하고 있는 충남 공주의 ‘곡물집’과 협업해 버들벼, 흑갱, 그리고 자광도와 돼지찰벼 혼합으로 3종의 라이스칩을 생산했다. 토종 농사를 한다고 하면 다들 고맙다고 인사하지만 아직은 딱 거기까지, 고마움이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니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먹을 것 없으면 무슨 재미냐 되묻는 토종 농부] 지난 10월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는 농업유전자원 4만여 점을 백두대간 글로벌시드볼트에 영구 저장 했다고 발표했다. 재난 또는 재해 같은 위험에 대비하고자, 농업의 발전을 위한 연구를 위해서도 이와 같은 종자 보존은 필요하지만 이것이 종자 보존의 최선책은 아니다. 종자를 잘 보존하는 최고의 방법은 농부가 계속해서씨앗을 심는 거예요. 그래야 종자도 이 땅과 달라진 기후에 적응하지요. 또 우리가 농사를 지어서 이 작물이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맛도 보고 해야지 닿지도 않는곳에 보관만 해서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까요. 돼지찰벼가 맛의방주에 등재될 수 있었던 데에도 수년에 걸친 권씨의 노력이 있었다. 그는 지역의 여성 농민과 함께 토종 종자를 수집하는 일에도 열심이다. 더불어농원 한쪽에는 토종 씨앗도서관을 만들었다.수익을 남길 수 없어도 종자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금씩이라도 농사를 지어야 한다. 수확량 좋고, 수매도잘되는 품목에 비해 토종 종자를 유기농법으로 재배하는 데는 몇 곱절의 노동력이 필요하다. 누가 알아준다고 그리 힘들게 농사를 짓느냐고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럴 때마다 권씨는 힘들어도 토종 농사가 재밌고 좋아요. 이게 딱 내 취향이라니까요라고 대꾸한다.

우리 어렸을 때 이런 얘기가 있었어요. 미래에는 끼니때마다 알약 하나만 먹으면 된다고. 나는 그렇게는 못살아. 먹는 재미없이 무슨 재미로 살까 싶어요. 다양하게 골고루 먹어야 좋은 거지.

봄에 씨앗 뿌리고, 여름에 잘 키워 가을에 수확하고, 겨울 동안 갈무리해서 다시 봄에 씨앗 뿌리는 게 농부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권씨는 앞으로도 씨앗을 지키는 농사, 농부가 주인이 되는 농사를 짓고 싶다고 말했다.

출처 농민신문 글 서진영 사진 남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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