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강론

성주간 화요일 -메시아의 면모

작성자본당신부|작성시간24.03.26|조회수25 목록 댓글 2

더 밝게 더 기쁘게

 

오늘 독서는 이사야서에 나오는 주님의 종 둘째노래입니다. 어제 월요일에 첫째노래, 오늘 둘째노래에 이어서 내일 셋째 노래, 그리고 성 목요일은 주님 만찬미사로 성체성사가 제정된 날이니까 건너뛰고 성 금요일에 마지막으로 주님의 종 넷째노래가 나옵니다.

 

이렇게 성주간 평일에 이사야서에 나오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 중에 핵심인 주님의 종 노래가 연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전례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는 모습이기도 하고 우리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도록 믿음을 촉구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이사야가 제시한 메시아에 대한 이미지는 예수님 때에 살고 있었던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메시아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예언자들이 그렇게 숱하게 예언을 해 왔는데 왜 달라졌을까요? 자기들의 욕심과 허영, 자기만의 희망을 바래왔기 때문입니다. 보편적 가치의 실현, 보편적 구원으로서의 메시아가 아니라 세속적 욕심을 채워주는 이로서 메시아상을 덧붙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세속적 때를 묻히면서 메시아상은 더렵혀졌고, 그래서 해방자, 다스리고 통치하는 새로운 왕으로서의 면모를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언자들의 모습은 물론 이들이 외쳤던 메시아에 대한 모습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제대로 된 대접은 받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내일 독서말씀이지요. 주님의 종 셋째노래를 통해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우리가 성주간 복음으로, 특별히 수난복음을 들을 때마다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리된 것이다.”라는 구절을 참 많이 듣습니다. 이미 숱하게 많은 성경의 예언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가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완성됩니다. 여기서 완성은 채운다라는 의미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수난을 받게 되면서 말씀은 그 빈자리가 채워지고 이루어지고 완성됩니다.

 

오늘 복음은 유다의 배신과 베드로의 배반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엊그제 주일에 제가 쿼바디스 도미네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라고 묻는 베드로의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람이 그리 죄를 짓도록 운명 지워진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손을 내미시는 주님의 섭리와 용서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보편적 구원과 보편적 용서와 자비로 말씀을 완성하시는 메시아의 면모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김상민미카엘 | 작성시간 24.03.26 사람이 그리 죄를 짓도록 운명 지워진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손을 내미시는 주님의 섭리와 용서를 보아야 함을... 아멘...
  • 작성자신혜원 글라라 | 작성시간 24.03.28 나만의 욕심.
    나만의 성취.
    나만을위하여.
    그러나 주님.
    이제는
    보편적임을 위해~
    여럿을위해~
    모두를 위해~
    시선을 넓혀주소서.아멘.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