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강론

부활 제4주일 -목자가 양을 알듯...

작성자본당신부|작성시간24.04.20|조회수21 목록 댓글 4

더 밝게 더 기쁘게

 

지금 김종수 아우구스티노 교구장 주교님께서 예전 신학교 교수 신부님으로 계실 때에 개강 피정을 지도하셨는데, 그때 피정 강의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착한 삯꾼도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오늘 복음을 들을 때면 항상 이 피정 강의가 생각납니다.

 

모든 사제가 예수님과 닮은 착한 목자를 지향하고 있지만, 오늘 복음의 첫구절처럼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을 일이 없기 때문에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그 닮은 꼴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물론 착한 목자의 마음가짐으로 살려고 많은 사제가 노력합니다. 제가 볼 때는 착한 목자로 나아갈 방향성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내가 어디서 왔는가그 출신 성분을 자주 되새기는 사제가 착한 목자로 남을 확률이 높습니다.

 

삯꾼과 목자는 그 출신 성분부터가 다릅니다. 삯꾼은 삯을 받고 양을 치는 사람이고 목자는 자기 양이라서 양을 칩니다. 평소에는 별 차이가 안보입니다. 하지만 이리가 오는 위급한 때에 행동양식이 달라집니다. 삯꾼은 달아나 버립니다. 착한 삯꾼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습니다. 평소에는 나쁜 목자처럼 보여도 위급한 때에 양들을 위할 줄 아는 사람이 목자입니다. 자기 양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저에게 착한 삯꾼이 될래, 아니면 나쁜 목자가 될래?” 두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 저는 나쁜 목자가 되겠습니다. 그만큼 출신, 뿌리에 대한 자각이 양들에 대해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사제가 이럴진대, 하물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마음이야 오죽하시겠습니까... 목자가 자기 양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이유는 첫째 자기 양이기 때문이고, 둘째 양들을 알고 양들도 목자를 아는 그런 유대관계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목자가 양을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는 까닭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자기계시를 하시는 데 있어서 특이하게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을 계시하신 것처럼 에고 에이미(나는 나다)”라는 용어를 7번 씁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착한목자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참 포도나무다오늘 복음을 원어로 읽어보면 에고 에이미 호 포이멘”(나는 나다 목자라 부르는)입니다.

 

성부의 자기계시처럼 성자께서도 당신을 계시하시면서 아버지와 아들이 아주 긴밀한 유대관계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착한 목자는 이 양이 내 양이고 내가 그 양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목숨을 바친다고 합니다. 저는 주님께서 나의 목자이심을 드러내놓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모른 채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아시는 만큼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날 위해 목숨 바치시는 그 사랑만큼은 알아두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김상민미카엘 작성시간 24.04.21 날 위해 목숨 바치시는 그 시리도록 아픈 사랑만큼은... 아멘...
  • 작성자김순정 유체칠리아 작성시간 24.04.21 아멘~!
  • 작성자박은비 리나 작성시간 24.04.21 아멘 :)
  • 작성자신혜원 글라라 작성시간 24.04.22 어이쿠~나는 삯꾼의 신앙을 하고있었네요.
    목자의 마음을 배우게 하소서.아멘.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