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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별로 보는 펠레의 축구인생

작성자AC 밀란|작성시간18.06.22|조회수2,673 목록 댓글 31




15세 [1956년]

- 56년 6월 정식 프로계약

- 56년 9월 7일 데뷔전을 치루었고,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한다. (팀은 7-1로 승)




16세 [1957년]

- 57년 7월 7일 브라질 대표팀으로 발탁되어 첫 경기를 치루었고, 데뷔전 데뷔골을 성공시켰다.

- 57시즌 브라질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득점왕을 차지했고, 공식 통산 38경기 41골을 기록했다




17세 [1958년]

- 58년 브라질 월드컵에 발탁되었고, 1958년 6월 15일 소련을 상대로 월드컵에서 데뷔전을 치룬다.

- 이후 8강 웨일즈전에서 결승골, 4강 프랑스전에서 해트트릭, 결승 스웨덴전에서 2골을 넣으며 브라질을 월드컵 정상에 세운다.

- 그 대회 최우수 영플레이어, 실버볼, 실버부트, 베스트11을 수상했고, 월드컵 결승전 역대 최연소 출전, 결승전 최연소 골, 최연소 헤트트릭 등의 수 많은 기록들을 작성한다.




18세 [1959년]

- 통산 3번째 파울리스타 리그 득점왕의 자리에 올랐으며, 59년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해 MVP, 득점왕을 차지한다.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

- 1959년 비공식 통산 83경기에 출장해 100골을 넣었다.

- 일부에서는 비공식으로 127골을 넣었다고 이야기한다.




19세 [1960년]

- 펠레는 15세부터 19세까지 공식 기록 160경기 193골, 비공식 기록 278경기 298골을 기록했다. 참고로 국가대표는 제외

- 1960년 19세의 나이에 파울리스타 리그 득점왕 4연패에 성공했고, 팀은 통산 2번째 파울리스타 리그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




20세 [1961년]

- 공식 통산 38경기 62골을 기록했으며, 비공식 통산 74경기 110골을 기록한다

- 펠레는 브라질 세리에A 트로피를 처음 따냈으며, 세리에 득점왕, 파울리스타 리그 득점왕을 따낸다.

- 비공식 시즌 110골을 기록

- 펠레에 반한 유럽의 많은 명문들이 펠레의 영입을 위해 산토스에 제의하나 브라질 정부는 펠레를 브라질 국보로 선언한다.




21세 [1962년]

- 21세의 나이에 2번째 월드컵에서 우승하다.

- 또한 팀은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는데, 남미의 챔피언스리그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과 더불어 브라질 세리에, 파울리스타 리그, 인터컨티넨탈컵 등 총 5관왕을 달성한다.

- 펠레의 활약에 힘입은 산토스는 1962년 축구 역사상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한 팀으로 기록되다

(리그 + FA컵 + 대륙 대항전)-(대륙 대항전 : 유럽 챔피언스 리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등)

- 인터컨티넨탈컵에서 에우제비우의 벤피카를 완전히 박살 내놓다.

1차전은 3-2, 2차전은 2-5로 산토스가 통합 8-4로 승리

에우제비우는 1골에 그쳤고, 펠레는 1차전 2골, 2차전 3골로 통합 5골을 넣었다.




22세 [1963년]

- 전대회 우승팀의 자격으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 참가한다.

4강에서 가린샤가 버티던 보타포구를 만났는데, 1-2차전 통합 5-1로 산토스가 완승한다.

펠레는 1차전 1골, 2차전 3골로 총 4골을 넣었다.

결승에서 보카 주니어스와 붙게 되었고, 펠레의 산토스는 5-3으로 보카 주니어스에게 승리한다.

- 같은 해 1963 인터컨티넨탈에 참가했는데, 당시 상대는 유럽 챔피언이던 AC밀란이였다.

체사레 말디니, 호세 알타피니, 지안니 리베라,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등이 버티던 밀란을 상대로 1차전에서 2골을 넣었다.

그러나 팀은 4-2로 패배

- 2차전에서는 지오반니 트라파토니에게 완벽히 차단당하면서 아쉬운 활약을 남겼으나 팀은 4-2로 승리

3차전에서 산토스가 최종 승자가 되며 통산 2번째 인터컨티넨탈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

- 22세의 나이에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다.




23세 [1964년]

- 프로 데뷔 9년차

- 공식 기록 : 302경기 398골, 비공식 기록 : 503경기 598골

- 통산 8번째 파울리스타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57, 58, 59, 60, 61, 62, 63, 64 8연패

- 또한 통산 3번째 브라질 세리에 득점왕을 차지했다.




24세 [1965년]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8골을 기록, 통산 첫번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을 차지했다.

공식 기록 48경기 64골, 비공식 기록 66경기 97골




25세 [1966년]

- 1966년 펠레 인생 최악의 월드컵

- 펠레는 1차전 불가리아전에서 1골을 넣으나 2차전에서 부상당했고, 3차전 부상인채로 출전하나 포르투갈의 수비수 모라이스의

미친 태클로 엄청난 부상을 입게 된다. 후에 펠레는 이때 당한 태클이 자신 인생 최악의 태클이라며 이야기했다.

-  25세의 나이에 영국 여왕으로부터 훈장을 받다.




26세 [1967년]

- 브라질 국대에서 57골, 클럽에서 통산 401경기 503골을 기록

- 펠레가 나이지리아에서 친선전을 가지다.

당시 나이지리아는 내전중이였는데, 펠레의 친선전을 위해 48시간동안 휴전했다.




27세 [1968년]

- 상대의 거친 플레이에 큰 부상을 여러번 당한 펠레에게 예전같은 모습을 찾기 힘들어지다.

- 펠레의 아쉬운 모습은 계속되었고, 기록은 공식 38경기 28골, 비공식 73경기 55골로 초라(?)했다.

- 펠레는 통산 6번째 브라질 세리에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000호골 기념 우표)

(1000호골 당시)

28세 [1969년]

- 909경기에 나서 1000골을 넣다.

- 1000호골을 취재하기 위해 무려 1500명이 넘는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브라질에 출동했다. 1000호골 당시 관중은 무려 17만명

- 브라질 정부는 오스트리아의 프린츠 바인더, 브라질의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에 이어 역사상 3번째 1000호골의 주인공이라고 발표했다.

- 1000호골을 기념하기 위해 브라질 우정당국에서는 우편을 2백만장 발행했으며, 브라질 정부에서 공휴일로 선포했다.



(1000호골 당시)






29세 [1970년]

- 선데이 타임지에서 70년 브라질이 월드컵에서 우승하자 다음날 신문 헤드라인에 이렇게 작성했다.

How Do You Spell Pele? : G-O-D

- 축구의 왕, 축구 황제를 넘어 신으로 불리게 되다.

- 통산 3번째 월드컵에서 우승했으며, 월드컵 베스트11에 선정되었고, 월드컵 골든볼을 수상했다.

70년 월드컵에서 6경기 4골 7도움을 기록했다.




30세 [1971년]

- 약 14년간의 브라질 국가대표 생활을 끝내고, 브라질 국가대표에서 은퇴하다

펠레 인생 부진의 시기였으며, 당시 비공식 기록은 72경기 29골이였다.

- 공식 기록은 40경기 9골

- 펠레는 자신의 커리어 중 유일하게 10골 이상 득점하지 못한 때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첫 데뷔 시즌인 1956년도와 30세가 되던 1971년이였다.

- 프랑스 스포츠 아카데미에서 초대 수상자가 되다.

- 같은 해 프랑스 레드 훈장을 받다.




31세 [1972년]

- 31세의 나이에 공식 통산 580경기 603골을 기록했다.

- 비공식 기록은 1010경기 1017골




32세 [1973년]

- 공식 49경기 30골, 비공식 66경기 52골을 기록

- 첫 번째 올해의 남아메리카 축구왕에 선정되었고, 통산 11번째 파울리스타 리그 득점왕의 자리에 오르다.




33세 [1974년]

- 브라질 리그 마지막 시즌

- 공식 기록 656경기 643골, 비공식 기록 1115경기 1088골





34세 [1975년]

- 미국 축구리그 부흥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다

- 펠레를 보기 위해 미국의 관중이 늘기 시작했고, 펠레 등장이후 무려 80% 이상의 평균 관중이 상승했다.




35세 [1976년]

- 미국 리그에서 2시즌동안 65경기 41골을 기록





(앤디 워홀의 펠레 그림)

36세 [1977년]

- 미국 리그 공식통산 43경기 27골을 기록, 비공식 통산 107경기 64골을 기록했다.

- 그리고 1977년을 끝으로 펠레는 현역에서 은퇴한다.

- 현대 미술의 아이콘인 앤디 워홀이 펠레의 초상화를 그리다.




39세 [1980년]

- 아타리 2600 비디오 게임에서 펠레를 만들다.




40세 [1981년]

- 프랑스 르퀴프지에 의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선정 되었다.




43세 [1984년]

- FIFA에서 명예 훈장을 주다.




48세 [1989년]

- 북한에서 펠레 우표를 발행




51세 [1992년]

- 유엔 환경대사로 공식 임명 되었다.




52세 [1993년]

- 미국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입성




53세 [1994년]

- FIFA 선정 월드컵 올타임팀




56세 [1997년]

- 대영제국에서 2등급 작위를 수여했고, 역사상 모든 스포츠스타들 중에서 가장 높은 작위를 받은 사람이 되었다.




57세 [1998년]

- 20세기 최우수 팀에 선정되다.




58세 [1999년]

- UNICEF 선정 20세기 최고의 선수

- 로이터 통신 선정 20세기 최고의 선수

- IOC 선정 20세기 최고의 스포츠스타

- FIFA 선정 20세기 최고의 선수

- IFFHS 선정 20세기 최고의 선수

- IFFHS 선정 20세기 최고의 남미 선수

- 프랑스 풋볼지 선정 20세기 최고의 선수

- 세계 스포츠 어워드 20세기 최고의 스포츠인 11인

- 타임지 선정 20세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100인

등등에 선정되다.




59세 [2000년]

- 넬슨 만델라가 '넬슨 만델라상'을 수여하다.




63세 [2004년]

- FIFA에서 100주년 기념 FIFA 센테니얼 상을 수여하다.




64세 [2005년]

- BBC에서 펠레에게 평생 공로상을 받다.




71세 [2012년]

- 골든 풋 선정 역대 최고의 레전드로 선정

- 영국 애딘버러 대학에서는 애딘버러 대학 명예 학위를 수여하다.

이유는 '인류의 환경에 대한 기여 및 위대한 스포츠 업적'




(기네스에 오른 펠레)

72세 [2013년]

- 월드사커지 선정 역대 베스트11에 선정

- 통산 1363경기 1283골이라는 대기록이 기네스북에 등재되다.




74세 [2015년]

- 프랑스 르퀴프지 선정 역대 최고의 남미 선수로 선정되다.




75세 [2016년]

- 국제 올림픽 위원회인 IOC로부터 훈장을 받다.




77세 [2018년]

- 잉글랜드 FWA에서 펠레에게 공로상을 받다.

(1980년대부터 매년 뽑기 시작한 공로상으로 펠레는 FWA 공로상 역사상 유일하게 잉글랜드 리그에서 뛴 적이 없는 선수이다.)





"제 이름은 로널드 레이건, 미합중국의 대통령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본인이 누구인지 밝힐 필요가 없습니다.

펠레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 로널드 레이건 [前 미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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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아카로아 작성시간 18.06.22 17세에 월드컵 해트트릭
    이걸로 펠마 원톱논쟁은 끝나는거 아닌가
  • 작성자신짱구 작성시간 18.06.22 원탑
  • 작성자Neymar Jr 작성시간 18.06.23 와,,,
  • 작성자타디스 작성시간 19.02.27 메시 시대에 살면서 메시도 범접할 수 없다고 느꼈지만 이렇게 보니까 펠레야말로 진정한 신이네요
  • 작성자에이스 작성시간 20.03.16 이렇게보니 ㅎㄷㄷ하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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