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여 향적봉 곤돌라를 타실 거면

작성자쟈갸나왔쪄|작성시간23.12.20|조회수370 목록 댓글 3

 

 

그저 매년 때가 되면 당연히 내리는 눈이 뭔 대단한 구경거리라고... 하루 시간 내어 고단한 산행보다는 편한 관광을 즐기고 싶은 바람이 있어 곤돌라를 타고 편히 오르라 했지만 나처럼 생각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붐비는 통에 곤돌라 입구는 보지도 못한 체 그러나 다른 방법도 없고 해서 하염없이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8인승 곤돌라는 끊임없이 왕복하며 사람들을 정상으로 끌어 올려 주고 있었지만 행렬은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었다. 답답하고 지루한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었음에도 그럼에도 그 못난 기대감에 숨을 몰아가며 참았다.

 

행렬은 그 진행이 더디고 또 더디었지만 마침내 곤돌라 입구가 보였고 그 앞에 질서 없이 뭉쳐진 엄청난 군중이 있었다. 아! 선진국 대한민국. 행렬의 진행이 그렇게 더디었던 이유가 위대한 대한민국의 뼈에 새겨진 질서 의식 때문이었다.

 

우선은 행렬을 따르는 일반인들의 무질서. 그들은 앞과 뒤로 그들을 새치기해 오는 사람들을 자신들이 강력하게 막기는커녕 ‘착한’ 사람이 되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허락해 주었다. 뒤로 물러나며 사진 찍는 척하다 행렬로 들어오는 새치기들... 줄을 서다가 누군가의 부름으로 행렬에서 나와 사라지는 사람들... 줄을 선 사람들이 모두 예약된 시간이 한 두 시간 지난 후였지만 혹시 뒷돈을 두둑이 받은 것이 아닐까 의심케 하는 한 관리자가 계속 행렬에 나타나 뭐라 하니 그때마다 십 수 명이 그들 따라 입구로 직행했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가도 행렬은 그대로 멈추었고 마침내 최악의 빌런이 나타나기 까지 그 수없이 새치기를 유도한 직원의 갑질은 견딜 수 있었다.

 

산악회 대장 쯤 되어 보이는 키가 큰 노인 한 분이 산악회 깃발을 들고 입구로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그 뒤로 수 십 명이 달라붙었다. 관리인들은 본척만척했고 그들은 몸싸움을 하며 행렬로 무더기로 끼어들었다. 그들의 집단 새치기로 행렬은 오히려 수 십 미터 뒤로 밀렸다.

 

아 하! 대한민국!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다는 둥...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다는 둥...

 

엄청난 인파가 몰려 하산 곤돌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하고 설천봉에 올라 늦은 식사를 하고 서둘러 하산 곤돌라 줄에 섰다. 식사만 했을 뿐인데 이미 시간은 오후 2시를 넘고 있었다. 다행히 행렬은 산악회 버스를 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시간적 여유 있어 보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믿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내가 착각한 것이 있었다. 국뽕이 차오른다! 아! 대한민국의 질서의식...

 

3시간을 남기고 느긋하게 줄을 섰을 때 우리는 설천봉 계단 데크 끝에 있었고 앞에는 많아야 200여 명이 줄을 서고 계셨다. 30분 정도면 기다리면 하산할 텐데 버스 주차장에 내려가서 커피나 먹고 사진이나 찍으면서 아쉬움을 달래야지... 그러게 누가 주말에 곤돌라를 타냐고? 내 잘못이지 뭐...

 

예상대로 30여분도 안 되어 행렬의 중간 즈음에 서서 곤돌라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3시 언저리가 되자 덕유산의 똥바람이 군기를 잡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질서 있게 행진하는 황제 펭귄들처럼 새끼를 품에 안고 발을 동동 구르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거의 다 왔다. 조금만 참자. 입구가 코앞이다. 그때였다. 알 수 없는 안내방송이 켜지더니 줄을 선 사람들이 동요한다. 방송의 요지는 장사진 행렬이 길어지니 입구 근처에서 s 자 형으로 대형을 바꾸라는 것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대열은 무너지고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 질서란 말은 원래 존재하지도 않는 이데올로기다. 가장 질서가 필요할 때 질서는 단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다. 질서 있게 대피한 적이 있었나? 그랬다면 질서를 생각할 겨를이 있었을 뿐... '질서'란 단어는 누군가 양보하여 나를 편하도록 하려는...  질서가 필요하다고 호도하여  그들의 '착한' 양보를 끌어내어 아주 편하게 산 자들을 기리는 말이기 때문이다. 

 

설천봉 카페에서 혹은 화장실에서 여기저기에서 향적봉 올라간 가족을 기다리며 추위를 피하고 있던 사람들이 급박함을 느낀 것이다. 어? 하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네? 내 가족이 이 긴 줄 끝에서 추위를 견디며 기다려야 한다고? 미리 줄의 한 자리를 맡아 있다가 나중에 가족들을 부를 요량이었을 것이다. 수 십 명 아니 셀 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줄로 막무가내 끼어들었다. 그들도 다만 줄을 안 섰을 뿐 먼저 기다리긴 했다고 말이다.

 

질서의 끝은 비극의 탄생. 입구 앞에서 입구 컷을 당했고 더 기가 막힌 일은 내 앞의 장사진 일렬이 s자로 바뀌었지만 난 그대로 장사진 내 자리 그 자리였고 갑자기 등장한 군중들이 까맣게 내 앞에서 웅성이고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았어. 충분해. 충분하지 않았다.  안도감은 그때까지 였다. 내 앞의 군중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무려 서 너 명을 의미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아들아! 여기! 그 가족들은 자리를 맡아 준 부모에게 안겼고 아무런 새치기의 의심 없이 서로의 안부를 챙기고 있었다.

 

재난의 위기엔 반드시 이기주의가 있었다. 후퇴하는 행주나래에서 서로 죽이는 군인들...가까이는 이태원 참사...두 뺨을 찢는 날카로운 바람을 참고 기다리며 마주하게 되는 추악한 인간들의 이기심...선자령의 그날처럼 재난영화 한 장면이 되어가면서 느긋한 마음은 불안해져 갔다. 날이 어두워 갈수록 입구는 줄을 서지 않은 채 가족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득 찼다. 그들이 행렬의 뒷자리에 줄을 서기엔 너무 춥고 너무 길었기에 누가 뭐라 하든 어떻게 하든 나부터 살자 나도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무질서 그들을 탓하고 싶지 않다. 질서는 개인에게 부탁하는 요구사항이 아니다. 개인들이 그런 판단을 하지 않도록 미연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난 이빨이 덜덜 거리며 생명의 위기를 느끼고 있었고 내 뒤의 70노인은 모자도 없이 얼굴은 동사 직전의 꺼멓고 퉁퉁 부어 있었다. 그 옆의 키가 작은 할머니는 여름 모자를 쓰고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제발! 곤돌라 관리인들은 방송만 하지 말고 좀 나와. 어린이나 노약자들 위급한 분들 먼저 태우라고... 좀! 제발... 그렇게 울부짖었지만 곤돌라 관리인들 모두 건물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겐 이런 고통들이 저임금의 일상 가운데 어느 너무 추운 날 기억의 편린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서 재난사고에는 책임자들을 찾기 어려운 것이다.

 

   하산 때에도 새치기 산악회 대장처럼 기억에 남는 빌런이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40대 아빠였다. 어, 아빠는 곤돌라 입구에 있어. 그리로 와. 잠시 후 아들로 보이는 중학생 정도 되는 아이가 정색하며 아빠에게 말한다. 아빠, 우리 뒤에서 줄 서고 있었어. 쉿! 조용... 아빠는 아들의 입을 막으며 모두가 듣도록 큰 소리로 자신은 떳떳하게(새치기도 안 하고 날로?) 줄을 서고 있었는데 어디 갔다가 왜 이제 오냐고 되려 호통을 쳤다. 판단정지...이런 위기의 상황에 가장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를 지켜보던 할머니 한 분이 나직이 말씀하셨다. “질서는 개뿔. 개나 줘. 자식교육은 이렇게 해야 효도를 한다고...그래? 그렇다면 그럼에도 질서를 지켜야 한다고 배운 아들에게 아버지는 어떻게 기억될까?

 

   곤돌라 안의 풍경들.  배낭이며 스틱이며 누가 봐도 등산객들인데 수 십 명씩 무리로 옆문으로 뒷문으로 들어와  집단 새치기를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안은 더 난장판이었다. 단속해야 할 직원들이 모두 우두커니 방임하고 있는 가운데 그들은  구조대로 혹은 구급대원들로 표변되어 우리에게 그리 통지되더니 그 중 한 사람이 입가에 만족한 듯 옅은 미소를 나에게 보낸다.  "ㅎ ㅎ 이거지..." 곤돌라를 함께 탄 일행들은 베트남어를 쓰는 20대 젊은 여성들이었다. 모두 여름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얼굴은 고새 폭삭 아주 늙어 보였다.  그녀들은 베트남어로 서로에게 말하고 있었는데 감히 내가 짐작하지면  "트라 뚜 한쿠악 무온 남(대한민국 질서 만세)"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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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뿌시럭 | 작성시간 23.12.21 동감합니다
    공항이나 중국처럼 50~100m쯤 난간을 만들어 끼어들수없도록 ~
  • 작성자착한세상 | 작성시간 24.01.29 어제2024년 1월 28일 덕유산 곤도라 3시간 줄 서서 겨우 올라갔는데 줄 서서 기다리는 내내 부산 우리산악회 대부분이 60중.후반으로 보이는 똘아이 할배,할매들이 뒤에 바짝 붙어서 번갈아 가면서 배낭을 치는데 20여회에 걸쳐 사정도 하고 항의도 해 봤지만 세시간 동안 예의없이 바착 붙어서 계속되는 방낭을 쳐서 견디기 참 힘들었다
    세시간 기다림보다 무려한 부산 똘아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에휴 덕유산은 다시 안갈듯 ㅠㅠ
  • 작성자착한세상 | 작성시간 24.01.29 끼어들기 역시 어제(1월 28일) 곤돈라 기다리는 중에 60대 중반 할매들 10여명이 앞쪽에 일행이 있다며 우루루 끼어들기 하는데 배낭에 리본이 걸려 있는데 부산 우리산악회였다.
    우리나라 산악회 전체 얼굴에 먹칠하는 새치기, 끼어들기를 눈앞에서 보며 한 숨이 나왔다.
    여기저기서 성토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이 망아지들은 개의치 않았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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