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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대외무역에 큰 힘을 기울이지 않은 이유.

작성자Khrome| 작성시간22.12.12| 조회수628|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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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잠수리벌레 작성시간22.12.12 역사의 교훈을 단지 그들이 멍청해서 그들이 책임감이 없어서라고 생각하고 끝내는건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없긴하죠. 자세한 이유를 궁금해 할수록 "아 그들이 나보다 더 똑똑햇음에도 그러한 선택을 할수밖에 없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때가 많습니다. 나라면 그때 어떤 선택을 해야햇는가 고민해보면 답이 안나오는 경우가 많죠
  • 답댓글 작성자 Khrom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2.12.12 사학에서 역사학적 사고력을 기르게끔 하는 이유죠.
  • 작성자 Jung de Hessen 작성시간22.12.12 100년 뒤에는 우리도 미래인에게 바보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기술과 능력이 있지만 잘 활용하지 못했다고...

    역사를 대할 때는 언제나 겸손을 깔고 가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들어가야 하죠.
  • 작성자 자유로운자 작성시간22.12.12 아....
  • 작성자 인생의별빛 작성시간22.12.12 빅토리아3만 해도 알 수 있듯이, 최소 50년 이상 특정 국가와 시장을 공유하다가 느닷없이 독립당해버리면, 그 후폭풍은 전지전능한 유저가 잡고 있는 나라라도 한참을 고민해야 하는 꼴이 나죠.
    무기공장 지어봤자 적자만 나고 해서, 그냥 종주국 군수산업에 의존하고 필요최소한만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 강제독립당해서 병영 물품들 싸그리 품귀현상 떴는데 외적이 쳐들어와서 온 국토가 '황폐도 50%'당해버리면?
    그렇게 5년만 시간 낭비해도, 모든 것에 진절머리 나버린 유저는 철저한 자급자족 경제를 추구하며 무역량 최소화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어느 순간 내 시장에 빨대 꽂고 물품 빨아가는 외세가 전부 잠재적 경쟁자로 보이기 시작하겠죠.

    청나라가 빨아가는 조공액이 마음에 안 들어서 자발적으로 독립전쟁 하는 조선 유저만 해도 그럴진대,
    대원제국의 헤게모니가 붕괴하고 고려의 기존 체제도 총체적으로 붕괴해서 사실상의 아나키 상태를 반세기 가량 경험한 여말선초 지식인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 국제분업화는 나라 ㅈ되는 지름길이구나. 중국에게 과의존하면 중국이 기침만 해도 우리가 독감에 걸리는 꼴이 나겠구나. 철저한 관치 통제경제가 답이구나."
  • 답댓글 작성자 Khrom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2.12.12 심지어 당시 고려는 원나라가 쓰던 교초를 썼는데, 교초가 터지면서 고려 경제 역시..
  • 답댓글 작성자 인생의별빛 작성시간22.12.12 Khrome 한국 포함한 전세계가 지금 달러화 기반 경제로 굴러가고 있는데, 이런 달러 헤게모니가 공중폭발하면 무슨 꼴이 날지에 대한 끔찍한 상상도 같이 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은본위제에서 금본위제로 넘어가거나, 금본위제 일시정지 또는 재개 또는 영구 중단(닉슨 쇼크) 수준만 해도 경제에 미치는 여파가 어마어마하고 정권이 두세 번씩 바뀌는 일이 허다했는데, 아니 그냥 단순한 화폐개혁 하나만 가지고도 벌벌 떨어서 한국이 진작 했어야 할 디노미네이션도 여태껏 못하고 있는 마당에, 하물며 '중세의 종말'이나 다름없는 원명교체라는 대재앙을 과소평가하면 정말 큰일날 일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Khrom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2.12.12 인생의별빛 여말선초, 원말명초는 조선 건국의 정당성과 정통성, 자기가 살아가고 일하는 나라의 뿌리를 알기 위해서라도 사대부들에게 필수적인 교양이었어야할 내용이었을듯 싶은데, 당연히 그 시기를 공부하면서 얼마나 큰 사건이었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모를 리가 없겠죠. 그렇기 때문에 그 대안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받아들였을테고요. 해보고 잘못되면 말지 정도가 아니라 체제 자체의 종말을 고려해야했던 일이었으니까요.
  • 답댓글 작성자 인생의별빛 작성시간22.12.12 Khrome 원명교체기와 명청교체기에 대한 현대 한국인의 이해의 심도와, 민족주의 사관에 따라 국민공통교육과정에서 열심히 배운 청일 간 헤게모니 전환 과정에 대한 현대 한국인의 이해의 심도 차이를 비교해보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차이가 나죠.
    이는 좀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명청교체기에는 주전론을 바보 취급하고 주화론을 띄워주면서, 나아가 광해군식 중?립 외교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시야를 보이지만, 정작 일본제국의 급부상기에는 친일파=민족반역자 등식을 거침없이 내세우는 실태와도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습니다만) 조선이 원명교체기에 대한 역사적 경험에 몰입되어 청일교체기에 실수한 것과, 한국이 청일교체기에 대한 역사적 경험에 상당히 몰입되어 있는 것 간에 어떤 차이가 있으며, 과연 조선보다 한국이 더 나은 결말을 보여줄 수 있는가? 하면 저는 답하기 정말 어렵습니다. 조선의 체제정당성을 보장하는 이념을 한 단어로 축약하자면 '주자학'이라고 할 수 있듯, 한국의 체제정당성을 보장하는 이념을 축약하면 '민족주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흥미롭게도 남북한, 그리고 남한의 좌우파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단어죠.
  • 작성자 ACrookedMan 작성시간22.12.12 사학 공부할 때 자주 지적받는 태도 중 하나가 저런 식(최초 트윗의 인용트윗)으로 역사적 사실을 단순한 개인(들)의 심리적 문제로 치부하는 일이죠. 하다못해 심성조차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게 하는 구조·기제가 분명 있는데 말입니다. 조선 세종 연간의 화폐 도입건만 보더라도, 심지어 좀 더 영향력 있는 개인이나 소수가 용을 쓴다고 해도 그 구조를 의도대로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요.
  • 답댓글 작성자 Khrom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2.12.12 사회학적 상상력과 탈정치화 개념이 그런 태도를 설명할 수 있죠. 탈정치화의 경우 정치 이념적인 사유가 포함될 수 있다면, 정치 이념적 이유가 아닌 경우 대부분은 그냥 지식이 얕고 사고 훈련이 덜 된 경우, 주로 어린아이들 수준의 현상에 대한 설명이 그런 식이죠. XXX가 무언가를 해야했던 이유는 그냥 그 사람이 욕심이 많고 나빠서로 해석, 정리하는 것처럼.
  • 작성자 커넬 샌더스 작성시간22.12.12 우리야 결과를 아니까 그렇지 명과 청 중에서 청이 이길줄 누가 알았겠냐고 ㅋㅋㅋㅋㅋ
  • 답댓글 작성자 인생의별빛 작성시간22.12.12 아 만주족은 자력으로 산해관 돌파해본 적이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
  • 답댓글 작성자 데미르 작성시간22.12.12 인생의별빛 ??? : 너 나랑 일 좀 하자.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 Rhox 작성시간22.12.12 결국은 Robin Markwica와 뱅글뱅글.
  • 작성자 EUNSEL 작성시간22.12.12 조선의 무역 비중이 적은건 명나라와 청나라가 쇄국했기 때문이죠.

    반대로 삼국-통일신라-고려시기 무역이 활발하던건

    당시 중원제국들과 당, 송, 원이 개방적이었기 때문
  • 작성자 大明宮 작성시간22.12.12 조선이 교역을 하지 않은 것처럼 말하는데. 조선은 명,청-조선-일본의 삼각 무역으로 부를 많이 축척한 국가임. 국가 세금이 당시 일본에 비해서 상당히 낮았고 명청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었고 , 인삼, 면직물, 광물, 문필구, 가죽, 비단, 도자기의 무역에 반듯이 조선을 거처야 했다는 것이며.. 청말엔 중국의 아편의 중독으로 인삼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아 순조,헌종,철종조때 조세의 50%를 상업세로 거뒀다는 것은 안 유명하죠..
  • 답댓글 작성자 Rhox 작성시간22.12.12 모자 무역 같은 미봉책 정책 까는 글 몇 개 보이긴 하더군여.
  • 작성자 데미르 작성시간22.12.12 저런 원인들이야 충분히 이해하고 건국세력들이 충분히 인지를 했죠. 다만 이후 태종-세종조에 나오는 수조권 문제, 조선 특유의 작은정부 지향 등이 맞물려 전성기부터 군사력 쇠퇴 징후가 엿보였고 세종대왕이야 문제점 짚어서 화폐도입까지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근본적인 개선에 실패하며 이후 역사가 쭈욱 꼬이는 결과가 나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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