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総督府嘱託が語る「人狩り」|史実にアクセス/「徴用工」問題を考えるために (note.com)
징용의 경우, 납득 할 수 있었던 것은, 꽤나 예정 수에 달 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군 이나 면 등의 조선인 서기계에 끌
려 온 인간 사냥대가, 심야나 새벽에 돌연, 남자가 있는 집에 침입 에서 습격 한다. 어떨 때는 밭에서 일 하고 있을
때, 트럭을 몰고 가서 아무렇지 않게 농민들을 태워서, 거기에서 집단을 편성 하여, 홋카이도나 큐슈의 탄광에 보낸
다. 이런 거친 사람 사냥 작전은, 말단 관리가 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만행을 알고 선 못 본척 하거나, 아니면 아 무런
조치를 안 하고 일을 진행 시킨 일본 총독의 교활한 의지가 작용 했다는 것도 사실 이다. 이런 징용이 큰 실책 이라
고 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생지옥 같은 문어방에 가둬 놓고, 뼈와 살만 보일 정도 까지 노동을 했고, 조선인 노동자가 그 명맥이 끊기에 되면,
그 유골을 조잡한 작은 포대기로 고향에 보낸다. 현관문에 툭 하고 던져 버리는 포대기 이지만, 뼈가 흐트러 지는 광
경을 난 눈으로 본 적이 있다. 인간을 인간 답게 하지 않았던 일본인에 대해, 조선인이 집요한 증오를 받는 다고 하
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해설
전전 부터 활약 해 왔던 져널리스트로, 육군 대장으로 복무 했던 우가키 카즈시게의 홍보 역 같은 일도 해 왔던 카마다 사와이치로
의 회상.
우가키는 1931년~ 1936년에 조선 총독으로 부임 했으며, 카마다는, 우가키 총독의 조선 통치를 평화적인 경제 발전 이라고 인정
하여, 전후에 이르기 까지도 평가를 이어 갔다. 실제로는 우가키 시대도 조선 민중의 생활이 나아지지 않았고, 조선인을 위한 경제
개발을 하지도 않았으며, 카마다의 인식은 자기 멋대로 했을 정도로 허술 하기 짝이 없었다. 다만, 그런 카마다 라도, 우가키 총독
이후에 실시 되었던 극단적인 동화 정책과 전시 동원은 아무래도 심하다고 생각 했다고 한다.
전시기의 카마다는 조선 총독부 촉탁의 신분을 가져서, 일본 본토의 사업소 에게 동원 된 조선인의 위문단의 활동 에도 관여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동원의 실태는, 잘 아는 입장 이었다. 위의 회상 에도 나 오고 있는 밭을 갈 고 있는 조선인을 트럭에 태 우는 사
람 사냥을 했다고 하는 얘기는, 다른 사료 에도 근거가 있다. 조선인의 유골을 하찮게 다 루고, 되 돌려 보냈다고 하는 얘기도, 당
시의 기업 관계자가 조선인을 어떤 존재로 보고 있었는 지 잘 나타난 귀중한 증언이다.
다만, "이런 거친 사람 사냥 작전은, (조선인의) 말단 관리가 했었 던 것" 이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변명 이다. 정책을 결정
하여, 동원 인수를 지역 으로 나 누어서 채 웠던 상층부와 중견의 관료들(즉 일본인) 이야 말로 가장 문책을 받아야 하며, 그 명령
을 받고 현장 에서 실행범을 맡았던 말단 관료 들의 탓으로 해야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도 특히 면장의 조선인의 책임
이 있는 것 처럼 얘기 하는 것은 큰 착각 이다.
게다가, 면장의 조선인이 모두, 폭력 적으로 사람을 모으는 것을 적극 적으로 하지도 않은 것도 적어 뒀다. 되려, 면장의 근무대가
협력적이지 않았다고 하는 것을 나타 내는 사료도 있다. 같은 면의 친구 이거나, 그 형제, 친척 까지 동원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경우에는 주저 하는 것은 당연 한 것이다. 전쟁 말기 에서는, 면장의 조선인 관리가 자신의 면의 젊은이 들을 몰래 산으로 숨겨서
동원 기피에 도움을 준 사건을 일으 키고 있다.
징용공 문제를 다 루는 블로그 같아서 올립니다.. 관련 트위터도 운영 되고 있는 모양 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