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댓글

뒤로

히틀러의 관심을 받았던 동아시아인

작성자자유로운자| 작성시간23.08.17| 조회수0| 댓글 14

댓글 리스트

  • 작성자 ACrookedMan 작성시간23.08.17 중화민국 패배의 결과물이 중화인민공화국인 것을 생각해보면 글쎄요.. 뭐 한국의 경제성장에 관해서야 좀 더 매력적인 경쟁투자처로 보일 중화민국보다는 공산권이라 그런 거 없었던 중공이 낫기는 했겠습니다만, 나라가 분단된 채 중국의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꼭 좋은 면만 있었는지는 모르겠네요.

    더불어 독일과는 나치 집권 이전부터 교류한 터라 그게 제2차 세계대전 참전 때까지 이어진 거라서요. 독재적인 면은 이미 쑨원 때 혁명전략에서도 군정-훈정-헌정으로 이어지는 구조라 그 씨앗이 들어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본인이 다른 혁명가들한테 "충성"을 요구하기도 했고.
  • 답댓글 작성자 자유로운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8.17 그런 뒷얘기가 있었군요.. 감사힙니다..
  • 작성자 E.E.샤츠슈나이더 작성시간23.08.17 국민당이 국공내전의 최종 승자가 되었다면 한국전쟁도 아예 일어나지 않거나 “김성주의 난” 정도가 되었을 거고, 아마도 한국은 중화민국의 스피어에 들어갔을 것 같습니다. 독중관계 문제 이전에 임정의 정통성을 둘러싼 미중의 알력이라거나, 종전 이후 진행되던 국민당 정권과 소련의 관계회복 및 그에 큰 영향을 받게 될 한반도의 정치상황이라거나… 아주 껄끄러운 일이 많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뭐 그래도 3년동안 나라 절딴내가며 전쟁 벌이는 것보다는 100배 낫다고 봅니다만…
  • 답댓글 작성자 자유로운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8.17 그렇긴 하죠 ㅎㅎㅎ
  • 작성자 soublaki 작성시간23.08.17 장남인 장징궈는 소련 유학 가서 사회주의쪽이었는데 참 ㅋㅋ;;
  • 답댓글 작성자 자유로운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8.17 그랬군요...
  • 작성자 리히티 작성시간23.08.17 나치 이전 바이마르 시기부터 관계의 연장선상입니다;;
    장개석의 우파적 성향과는 별개로요.

    1차 대전 이후의 독일은 국제왕따라 같은 왕따였던 소련과도 외교하고 일제에 눌려지내던 중화민국과도 외교했던거라 보시면 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 자유로운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8.17 그렇군요.. 감사 합니다
  • 작성자 A.E.I.O.U 작성시간23.08.17 중국 (국민당)과 독일의 협력 관계는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열강 국가들이 본격 줄서기를 시전하는 가운데(?) 독일이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악화되고 1938년 이후 지원도 끊어졌기에 국공내전이 국민당의 승리로 끝났어도 독일과의 관계 문제가 특별히 대두되진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자유로운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8.17 그렇군요.. 추축국이 된 독일이었으니.... 그럴만 합니다
  • 작성자 931117 작성시간23.08.17 지금의 중공과 가상의 중화민국중 어느쪽이 우리에게 더 나은 선택지였냐인데...

    개인적으론 중공만큼 맛갔을것 같지는 않았을것 같아서...
  • 답댓글 작성자 자유로운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8.17 그렇긴 하죠 사실
  • 작성자 young026 작성시간23.08.18 장위국은 사실 대계도 아들이라는 설이 유력하죠.
  • 답댓글 작성자 자유로운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8.18 그렇군요...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
카카오 이모티콘
사용할 수 있는 카페앱에서
댓글을 작성하시겠습니까?
이동시 작성중인 내용은 유지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