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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ome의 도서관

[판타지]마법사식 고자되기.

작성자Khrome|작성시간22.03.03|조회수160 목록 댓글 1

유리 멩겔누는 거리를 걷다 평생 번 은화 한 닢을 자신에게 바치며 자신의 다리에 생긴 병을 고쳐줄 것을 요구하는 거지를 보았다.

 

유리는 무슨 인상을 받았는지, 잠시 그를 내려다보았다. 비루하고 남루한 차림과 행색에 비굴하고 두려움이 그대로 드러나는 인상의 노인이었다. 치아도 몇 개 없었고, 머리도 듬성듬성한 그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애원하듯이, 굴종하는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다 감히 마주하기 어려운지 고개를 조아렸다.

 

그의 앙상한 다리는 이미 곪았고 썩어 있어 뼈가 드러난 부분조차 있을 정도였고 근육은 물론 힘줄도 제기능을 하지 못해 보였다.

 

유리는 잠시 그를 내려다보다 은화를 받아들고 위대한 마나의 신비를 움직여 그의 다리를 회복시켜주었다. 여느 마법사들이라면 고작 그 돈을 받고, 아니. 금화를 상자째로 내어주어도 함부로 하지 않을 행위였다. 마법이란 세계의 진리를 파악하기 위한 원대한 학문이자 존재론적 한계를 뛰어넘는 우주적 기적이었다.

 

유리는 노인의 감사를 대수롭지 않게 무시하고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그는 의자에 앉아 고민에 빠졌다.

 

 

어째서 인간이란 팔고八苦를 겪어야 하며 오욕칠정五慾七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왜 인간은 칠죄종Septem peccata capitales에 휘둘리는가? 마법사란 응당 자신의 욕망을 다루고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여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해야 한다. 완벽하게 이성적일 수는 없겠지만, 이성의 화신이자 현신 그 자체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세계에 존재해야 한다.

 

 

보기 때문에 욕심이 나고 들리기 때문에 명예에 집착하며, 맛을 느끼기에 식을 탐한다. 졸음을 이기지 못해 나태해지고 성을 탐하여 타락한다. 기쁨에 지나쳐 일을 그르치고 분노하여 파괴한다. 슬프기에 포기하고 락하여 절제를 잊는다. 사랑하기에 맹목적이고, 미워하기에 해하려 한다. 욕망하기에 욕망한다.

 

모든 이들이 마법사처럼 이성적이고 합리적일 수 없다. 마법사 자신조차 욕망과 교만에서 벗어날 수가 없거늘, 하물며 범인들이야 어떠할까.

 

유리는 생각했다. 욕망에 어디에서 오고,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숙고하여 고민했고, 고민한 결과를 이끌어냈다.

 

욕망은 육신에서 나온다. 육신의 틀에서 벗어나야지만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육신이 없기에 육신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정신의 고통은 물리적 불충족에서 유래한다. 살아있기에 필요한 것이 생기지만, 필요한 것이 없을 때 괴롭지 않은 법이다. 배고프지 않은 이가 굶주림에 고통받지 않고 일이 없는 자의 나태는 휴식이다.

 

그렇다. 오욕과 칠정은 육신에서 나오고, 여덟 고통 역시 육신의 존재에서 기원한다.

 

따라서 인간이 육신의 한계를 초월하고, 육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존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유리는 연구에 착수했다. 그가 만들어낸 것은 강령술. 죽음 이후에도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공부.

 

***

 

한 나라에 세 명 있으면 많이 있다는 마법사들 수백 명이 한 장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제레미안 유고님."

 

"17년만이군요. 칼레스 임마난투."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마법사들의 회합과 정기적으로 열리는 회담이 있다. 100년은 하나의 시대가 변하는 가장 직관적인 지표이고 역사가 변화하는 단위이다. 마법사가 아닌 이상 살아 있는 사람은 60년을 살기 어렵고, 80년을 살면 장수하는 것이다. 40년을 살아도 충분하게 살아가는 것이 현재의 인간사이다.

 

"소문 들으셨습니까? 유리 멩겔누가 무언가 이상한 걸 창안했다고 합니다."

 

"멩겔누가? 그 친구만큼 이성적인 사람이 없을텐데, 뭔가 의미 있는 활동이겠지요."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만.. 그가 만들었다는 것이.."

 

회담이 시작되었다. 회담은 짧게는 1주일, 길게는 수 개월 동안 이어지며 인류의 방향과 발전, 세계 정세 및 마법사들의 연구를 공유하는 일정이 동반된다.

 

-다들 안녕하신가, 친애하는 마법사들이여.

 

마나를 올려 묘사된 목소리가 마법사들의 귓가를 울렸다. 제레미안 유고는 고개를 돌려 익숙하지만 묘한 방식으로 안부를 묻는 자를 바라보았다.

 

-제레미안! 총명한 눈빛은 여전하군. 하지만 그런 것보다 더 좋은 게 있는데 말이야.

 

공중에 떠서 움직이는 새하얀 인골이었다.

 

"....유리? 유리 멩겔누?"

 

-그렇다네, 마나의 친우여. 자네의 오랜 지기, 유리 멩겔누일세.

 

.

.

.

 

새하얀 인골이 단상에서 수많은 마법사들의 기기묘묘한 눈빛을 받으며 자신의 연구 성과를 설명했다.

 

-따라서, 육체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인간적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이성적인 행위일세. 생각해보시게, 우리가 인간적 욕구와 욕망에 휘둘려야 하는가? 그것들이 나름의 발전성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는 바이네만, 그런 것에 기댄 성취는 순수하지 못하고 과잉에 부족할 뿐 언제들 그렇게 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네.

 

새하얀 손가락 뼈를 휘두르며 말하는 그의 모습은 마법사치고는 미치광이처럼 보였지만 자유로워 보였다.

 

-하물며 마법사조차 그러한 한계에 갇혀 있음은 자명하지 않은가. 베레피아 허큘라노스의 예를 떠올려보시게, 친애하는 마법사 여러분. 그는 지식을 얻기 위해 수십 만명의 무고한 영혼들을 재료로 삼았다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마법사가 욕망과 감정에 휘둘리면 더욱 큰 재앙이 벌어질 것이고 그렇기에 스스로를 통제하고 억제하는 고통을 받아야 하네. 어떻게든 고통은 우리에게 찾아온다네.

 

그럼에도 여전히 미친 소리처럼 들리는 것은 육신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바라보는 정서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나를 보시게, 나에게 어떤 고통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나는 육신을 초월하고 육신에서 기인하는 모든 종류의 고통과 한계에서 벗어났다네. 따라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완벽한 존재가 되었지. 우리가 바라마지 않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지. 그렇기에 나는 모든 마법사들이, 그리고 모든 인간들이 육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네. 바로 나처럼.

 

좌중이 조용해졌다. 감탄해서가 아니라, 워낙 당혹스러워서.

 

"어.. 그러니까, 그.. 환관들 성욕에 휘둘리지 말라고 거세하는 거랑 비슷한 방식 아닌가?"

 

-거 더럽게 기분 나쁜 표현이군.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으니 뭐라하진 않겠네. 애초에 마법사들은 스스로의 성욕 역시도 통제하지 않는가?

 

"인간적인 한계에서 벗어났는데 왜 기분이 나쁘죠?"

 

-한계에서 벗어났기에 자유로워졌기 때문이지 돌대가리년아. 문맥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구나. 공부 좀 더 하고 와라.

 

젊은 여성 마법사가 기분 나쁘다는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다해도 영 보기 안 좋은 거 같소만.. 게다가 모두 다 똑같은 인골의 형상이라면 어떻게 알아볼 수 있겠소?"

 

-두개골에 장식을 하든가 구멍을 뚫든가 이마뼈에 이름이라도 새겨놓으면 되는 일 아니오? 그리고 그런 미적 감각 또한 인간적인 감각이오. 모두 나처럼 생겼다면 이게 미적 기준이 될 것이지.

 

"음.. 별로 같은데."

 

-당신 마법 연구가 더 별로요. 세상에, 벌을 조종해서 꿀을 모으는 마법이라니. 그냥 양봉업자들이 하는 거랑 다를 게 없잖소. 그냥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모아오는데 그걸 마법까지 써서 수동으로 모아오다니. 내는 논문마다 다른 사람 거 따라하기나 하고 상상력 부족한 티 좀 내지 마시오.

 

"해골이 된 거랑 성격 나빠진 거랑 무슨 상관 있소?"

 

-당신 머리카락 빠진..

 

"자, 자. 그만. 이성적인 사람들끼리 그만합시다. 일단 시간 다 됐으니 이만 내려오십시오, 유리 멩겔누. 발표 잘 들었구요. 다음 마법사.."

 

 

인간의 육신을 벗어난 만큼 미쳐버렸다는 평을 듣긴 하지만 그의 주장에 나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이들이 스스로 유리의 마법을 통해 육신을 버리고 욕망과 고통, 수명의 한계에서 벗어났으며, 그런 그들 중 왕궁 마법사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유리의 사상과 주장이 귀족 사회는 물론 민간 사회에서 퍼져나가게 됐는데..

 

.

.

.

 

"육신을 버려라! 한계를 초월하자!"

 

-인간은 더욱 높은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라!

 

네크로멘시 학파, 혹은.. 네크로멘스 교라 하여, 마법적 관점에서는 학파이지만 민간에서는 이것을 종교적 교리로 삼는 집단이 등장했다. 그들은 단체로 육신을 벗고 자신의 뼈에 영혼을 유착시켜 인간적 욕구와 한계,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들의 포교는 보기에 좋지 않지만 해골이 된 신도들과 마법사들은 의외로 높은 만족도를 보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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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_Arondite_ | 작성시간 22.03.03 ㅋㅋㅋㅋㅋ 네크로맨시를 거세랑 연관시키다닠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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