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Khrome의 도서관

[현대판타지]암월검문 복수기. (52)

작성자Khrome|작성시간22.03.25|조회수38 목록 댓글 1

의외로 놈이 알고 있는 정보는 많았다. 이북에선 고려그룹이 꽉 잡고 있어서 절대적 권위의 질서가 확립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고려그룹이 만든 이미지 메이킹일 뿐 실제로는 상당히 많은 크고 작은 조직들 난잡하게 얽혀 있고, 자기들끼리 경쟁하는 지저분한 생태계에 가깝다. 남쪽에서 발생하는 사파간의 충돌이나 정사간의 갈등, 사사로운 범죄 역시 이북에서도 심심찮게 발생하지만, 의외로 크거나 구설수에 오를만한 사건은 적다.

고려그룹이 일정 이상 사건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관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 역시 고려그룹의 필요성을 알게 모르게 인식시켜 눈엣가시임에도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다.

놈은 자기 조직이 관리하는 곳, 자기가 연락하는 곳, 어떻게 듣게 된, 다소 신뢰는 떨어지는 다른 조직의 사업장, 브로커 접선 장소, 접선 방법까지도 나불댔다. 놈이 미적거릴 때면 용태가 평소라면 전혀 무기처럼 보이지 않을 만년필을 역수로 들고 놈의 목덜미에 댄 채 살기를 쏘아붙히거나 아예 어금니 몇개 빠질 정도로 후려갈기며 정보를 얻어냈다.

그렇게 얻어낸 정보 중 핵심은 이것이다.

“커흐윽.. 그.. 그게.. 끕.. 읍.. 허억.. 허억.. 저도.. 콜록.. 사람 빼돌리는 일까지 할 정도로 짬이 있는 건 아니라.. 쿨럭.. 쿨럭..!!”

데이비드는 피 묻은 주먹을 들어올렸고, 용태는 녀석의 승모근에 구멍 하나를 더 뚫어줄 생각이었다.

“아.. 아, 잠시.. 저.. 그.. 쓰읍.. 몇가지, 몇가지 들은 건 있습니다. 얼마전 제 선배가.. 남쪽에서 올라온 어떤 애송이를, 애송.. 콜록, 콜록.. 애송이를 임플란트 전문가에게, 허억.. 허어.. 데려다준 적 있습니다. 눈깔이랑.. 하여간 몇군데 고쳤다고 하는데요. 그.. 그러니까.. 저번 술자리에서 들었습니다. 항구 쪽으로 데려갔다고.. 그 뒤로는 모릅니다. 항구로 데려갔다는 게 진짜, 콜록.. 진짜로 데려갔다는 건지, 암호 같은 건지도 모르겠고.. 어디로 갔는지도, 흐으.. 모르.. 모릅니다.. 쓰으읍..”

피 섞인 침을 뱉지 못해 삼키는 녀석에게 데이비드는 몇가지를 더 묻고는 경고와 함께 턱주가리를 날려서 기절시켰다. 내력을 담아쳤기 때문에 턱뼈가 부서졌지만 고통은 깨어났을 때의 일이고 데이비드와 용태는 놈에게서 얻어낸 정보를 활용해야 했다.

손의 피를 닦고 밖으로 나온 둘은 적당히 떨어진 곳으로 갔다.

“음.. 제가 잘 몰라서 그런데, 원래 이렇게 많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겁니까?”

브로커 주제에 아는 게 많다. 여러 조직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경쟁과 협력, 충돌과 동맹이 이해관계에 따라 빠르게 개변하는 곳인지라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런 것 치고는 아는 게 많다는 인상은 떨칠 수가 없었다.

“이게 함정이라고 생각하나?”

“모든 걸 함정으로 생각하는 게 조심성 있는 태도겠지만, 모든 걸 함정이라고 생각하는 게 저들의 의도라면 우리가 휘둘리고 있는 거 아닐까요?…”

말이 끝날 때 쯤 자신감이 줄어들었지만 그의 말에도 경청할 부분은 있었다. 실제로 고려그룹은 어떤 상황에서도 이익을 봤고, 미 정부의 여러 정보부서들은 각지에서 고려그룹의 간첩으로 추정되는 이들을 적발하거나 추방하곤 한다. 물론 때로는 몰래 죽이거나 확보하기도 하고.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심증만 남길 뿐 구체적인 증거를 남기지 않아 밑바닥 끄나풀이라 하더라도 꼼꼼하게 증거를 없애면서 일하는 마피아를 상대하는 것 같다고 할 지경이다. 그리고 고려그룹의 정보원들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고려그룹의 회장쯤이나 알겠지.

그런 이유로 고려그룹을 상대할 때는, 심지어 상대하는지도 모를 때조차 그들의 개입이나 간섭을 염두해야한다. 자기들이 건드리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건드리는 경우가 사파조직을 건드리기 껄끄러운 이유이기도 하니.

“어디까지 진짜인지 알 수조차 없어. 우리 정보실에서 언급한 바 없는 정보들도 꽤 있을 정도야.”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떤 애송이가 수술을 받고 해외로 떴다. 여러 정보 중 자기가 찾는 바와 맞아 떨어지는 정보다. 만약 그 애송이가 죽은, 혹은 죽은 줄 알았던 채명설이라면. 그리고 그가 한국을 떠났다면 찾기 어려울 것이다. 최소한, 당장은 불가능할 것이다.

“…일단 위에 보고하고, 잠잠히 있어야겠군.”

“숙소로 가죠.”

“아니,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안전이 확실하게 확보되지 않았다면 같은 장소를 계속 쓰는 것보단 이리저리 옮기는 것이 안전한 편이다.

***

등산객으로 위장한 인원이 태원의 팀에게 접근했다. 무해하고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들로 등산을 즐길만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곳은 시민들이 가끔 운동 삼아 오르는 게 아니라면 오르기 좋은 곳인 아니었다.

“아이고, 의료진입니다. 상처 좀 볼까요?”

신속하게 부상을 훑어보면서도 여유로운 말투로 진정시키고는 바로 성훈의 목에 조치를 들어갔다. 야전의술이기에 다소 위험하지만 어중간한 조치보다는 나을 것이다.

정부 소속 요원들이 성훈과 다른 팀원들의 상처를 살폈고 그에게도 다가왔지만 태원은 사양하고 규언에게 다가갔다. 내력으로 얇은 방음벽을 쳐서 목소리를 들리지 않게 한 뒤 그는 이렇게 물었다.

“혹시 저흴 지켜보고 있었습니까?”

“시야에 들어오긴 했습니다만, 단지 보였을 뿐이지 딱히 지켜본 건 아닙니다.”

“여기 오신 목적은..?”

평양에 왜 왔고, 어째서 남아 있었는지.

“아실텐데요?”

규언은 오히려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듯 반문했다. 당연한 것이, 태원은 이미 보안팀에서도 채명설의 수색에 나섰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최근의 실패들이 그룹에 실망을 줬다는 건 압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에 나서야 하는 건 뭐라고 해도 집행팀이 맞아요. 감찰국은 그룹 내 감시와 제재를 전담하는 조직이고 보안팀은 그걸 물리적으로 집행하는 곳입니다. 회장님과 독대한 사람의 정체를 아시는 겁니까? 누구이길래 보안팀이 나서는 겁니까?”

설령 안다고 해도 부서간의 경쟁이라는 이해관계 때문에, 대외적으로는 기밀유지를 위해 말할 이유는 없지만 규언 또한 아는 바는 많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그 또한 범인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다. 팀장께 공유받은 채명설이라는 이름 정도만. 이 역시 보안팀장님의 기색을 고려하면 집행팀장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해도 이런 이해관계를 대놓고 말할 이유 역시 없다. 

“뭔가 착각하고 계시군요. 보안팀이 나선 이유는 집행팀의 역량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거라는 언질 때문입니다. 보안을 이유로 현장 대원간의 정보 공유는 어렵겠지만 이런 식으로 공조하고 있는 거죠.”

뭔가 알기 때문이 아니라 필요하기 때문에 나섰다는 말. 그러나 태원은 그의 의중을 알기 어려웠다.

“일단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도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혼자 오신 겁니까?”

규언의 시종일관 미묘하게 딱딱한 태도로 답했다.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같이 행동할 여력도 없고요.”

그가 목을 다친 성훈 쪽을 바라보고 다시 말했다.

“일단 내려가시죠. 부상자는 요원들이 챙길 겁니다. 하지만 이 지역에 오래 있지는 마십시오. 정부나 그룹 내 비밀 안가 역시 누군가의 수중에 있는 정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는 그 역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태원은 그의 태도가 썩 불편했지만 도움을 받은 이상, 그리고 무공의 차이를 현격히 목도한 이상 그런 태도를 지적할 수는 없었다.

‘젠장.. 너무 흔들리고 있어. 너무 멍청한 소리들만 했고.. 데이비드 팀장님이라면 이러지 않았을텐데.’

책임져줄 사람이 있다는 건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한다는 뜻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건 그만큼 많은 책임과 부담을 지는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돈과 힘을 부여받는다. 김태원은 그걸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나? 데이비드 리의 옆에서 많은 걸 보고 겪었지만, 여전히 준비되지 않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는 이러한 것을 어떻게 견뎠을까? 왜 난 그처럼 할 수 없지?

“그릇의 차이려나…”

힘없이 뇌까린 태원의 혼잣말은 차라리 허무했다.

“내려가시죠, 팀장님.”

어느새 다가온 성우가 그를 챙겼다. 고개를 끄덕이고 괜찮은 듯이 말했다. 성우는 그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산에서 내려갔다. 다소간의 소동이 있었음에도 산 아래에서 그걸 눈치챈 사람은 없는듯 했다. 성훈은 시현과 함께 요원을 따라갔고, 규언 역시 간단한 목례로 인사를 대신한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제 어쩌죠?”

태원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팀원들을 돌아봤다.

“일단 위쪽에 보고하고, 잠깐 쉬자고.”

“예.”

***

영혁수 대외지원부장은 현재 본사와 남쪽 지역에 남은 팀원을 제외하면 이북으로 작전나간 팀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번 건은 안영직 정보전략실장이 전담하여 지휘하고 있는데, 본래라면 이에 대해 항의할 수도 있고 조금 힘 좀 쓰면 거부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정보실장에게 지휘권을 넘기는데 동의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보안팀이 나섰다는 소식을 미리 건네듣고 정보실과 비서실의 알력다툼으로 읽고는 둘의 경쟁으로만 남겨놓고 본인은 관망할 생각이었다.

그런 영 부장의 의중을 읽었기 때문에 안영직 정보실장 역시 그를 존중해줬다. 그러나 이제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심각한 부상? 정부 요원에 의해 치료를 받아?”

그가 지휘하는 집행팀의 팀원 중 하나가 척주벽을 만나 치명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척주벽이라니.. 전 세계에 수배되는 범죄자가 왜 평양에.. 설마 고려그룹의 수작인가? 벌써 움직임이 읽혔을 줄이야.. 그나저나 곤란하게 됐군. 팀원이 다친 것도 그렇지만 보안팀과 정부 요원에게 도움 받게 되었으니. 이걸 어떻게 갚아줘야할지.’

약간의 고민 결과, 그는 방금 전 데이비드에게서 올라온 보고에서 얻어낸 정보 전체를 감찰국에 보냈고, 일부를 국정원에 보냈다.

“30분 뒤 차후 대책에 대해 회의 있을 예정이니 그동안 분석팀는 초벌 분석해놓고, 대응팀이 계획 작성하도록. 아, 그리고.. 정성훈 대원은 먼저 복귀시키는 게 좋겠군.”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_Arondite_ | 작성시간 22.03.25 흐흐흐...고려그룹과 정파연맹의 대결이군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