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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ome의 도서관

[판타지]무한한 생명의 과잉.

작성자Khrome|작성시간22.05.15|조회수99 목록 댓글 2

"신이시여! 내게 무한한 생명력을 주십시오!"

 

어느 한 남자가 소원을 빌었고, 이루어졌다.

 

처음 그는 자신이 결코 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몸에 난 상처도 곧바로 아물었고, 새로 생기는 상처 역시 곧바로 사라졌다. 남자는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졌음을 깨닫고 황홀함을 느끼며 도끼로 자신의 팔을 내리 찍었다. 끔찍한 고통이었지만 곧이어 잘린 부분부터 새롭게 재생되는 자신의 팔을 보며 환희에 찼다.

 

"나는 이제 죽지 않으리라. 나에겐 무한한 생명력이 있다. 나는 영생을 살리라."

 

그것은 진실로 사실이었다.

 

 

진실로 그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자는 자신의 몸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속은 더부룩하고, 좋지 않았다. 처음에는 체했을 것이라 여겼다. 어찌되었든 이 세상에서 자신을 죽일 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신은 아주 작은 부분이 남더라도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지나자 그는 자신의 귀 뒤쪽 머리가 부풀었음을 깨달았다. 마치 부은 것처럼.

 

며칠이 지나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혹은 얼굴 절반을 뒤덮었다. 그리고 1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얼굴 전체를 뒤덮었고 30분이 지나지 않아 상체 전체를 차지했다.

 

"이건 옳지 않아. 이건 뭔가 이상해."

 

그의 입이 온전히 움직일 수 있었다면 할 수 있었던 말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성대와 기도까지 혹이 부풀어서 발음을커녕 말도 할 수 없었고, 사실 숨도 쉴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저주받을, 그래. 저주받을 생명력은 그에게 결코 죽음을 선사하지 않았다.

 

상체를 뒤덮은 혹은 5분도 지나지 않아서 온몸을 뒤덮었고, 그는 흡사 거대한 혹덩어리로 보였다. 가장 끔찍한 역병과 질병에 감염된 살덩어리처럼 말이다.

 

 

하루가 지나자 그는 이미 집채만큼 커졌다. 1주일이 지나자 마을 하나를 뒤덮고 조금 남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처음 사람들은 점점 더 거대해지는 그것을 구경하러 왔다. 왕국에서는 그 거대한 살덩어리를 조사하기 위해 조사관을 파견했다. 이미 마을 서너개만큼의 크기였을 때는 그것에서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면 큰 문제 없었다.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야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살덩어리는 점점 성장이 빨라지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이 진을 치고 있던 조사관의 캠프를 뭉게버렸다. 그들은 살덩어리의 성장 속도를 제대로 계산하지 못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거대한 살덩어리는 인근 도시 외벽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1시간이 채 되지 않은 시간만에 도시 전체를 짓눌러버렸다.

 

 

이젠 거대한 산맥처럼 보이는 그것은 보이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대지를 뒤덮어갔다. 왕국은 이미 예전에 비상을 선포하고 백성들을 이주시켰으며, 왕국의 군대를 동원하여 그것을 파괴하거나 없애려고 수차례 시도했다. 교황이 보낸 추기경들의 기도와 제의 역시도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었다.

 

 

한달만에 왕국은 멸망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덩어리나 세상이 잠길 정도의 물이 아니라 무한히 성장하는 거대한 살덩어리에 의해.

 

 

 

 

 

1년만에 행성의 지표 절반은 거대한 살덩어리로 뒤덮혔다.

 

 

 

 

3개월만에 행성의 모든 표면은 거대한 살덩어리에 파묻히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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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붙이를 원하오. 도끼나 칼 같은 거 말이오."

 

"쇠붙이는 비싸. 손톱만한 것조차도 주먹만한 돌과 거래해야할 정도라고."

 

젊은이와 중년의 남자가 흥정하고 있었다. 그들의 주변에는 십수 명씩 나뉘어진 무리가 그 둘을 둘러싸고 지켜보고 있었다. 공통적인 것은 여자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대신 내 여동생을 주겠소."

 

"그 정도로도 모자라. 먹고 사는 게 부족한 게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한 도구가 문제니까."

 

젊은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듯이 다른 여자를 제시했다.

 

"내 누나 두명을 주겠소."

 

그러나 중년 남자는 한숨을 쉬며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거기에 다른 물건 하나만 더 얹어줘야해. 우리에게도 도끼는 아주 귀중한 물건이야. 내 할아버지 때부터 써왔던 물건이고."

 

젊은이는 중년남자가 아까워하는 것을 이해했지만 동시에 마음이 물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당신네 무리에는 도끼와 손칼 하나가 더 있잖소. 이미 다 알고 찾아온 것이오. 우리는 쓰던 톱이 완전히 삭아버렸소. 조금 힘을 주면 바스러질 정도로. 부탁이오. 여기, 내 남동생은 어떻소? 아직 어리지만 곧 성장하면 남자 하나 정도의 일은 할 수 있을 것이오."

 

10살이나 채 될까 싶은 아이였고 무섭고 섭섭하다는 듯이 떠밀려 앞으로 나왔다. 중년 남자는 조금 살피더니 한숨을 푹 쉬며 뒤쪽에 손짓했다.

 

다른 남자가 가져온 것은 낡고 녹슬었으며 아주 오래된듯한 손도끼였다. 손잡이는 나무가 아니라 누군가의 허벅지뼈로 보였다.

 

"절대 피가 묻지 않도록 하고 물로 씻어내고 꼭, 꼭 깨끗하게 닦아놔야 하네. 조금도 남아서는 안 되. 이 이상 녹이 슬면 안 되니까. 마찬가지라 다른 녹슨 물건과 닿게 하지도 말고.."

 

중년 남자는 아주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듯 어떻게 다루고 취급해야할지 누누히 알렸다. 그러는 사이에 매물로 나온 여자들과 남자들은 상대쪽 무리로 이동했다. 몇몇 남자들은 이미 그 여자들의 몸을 훑거나 조금씩 건드리기도 했다. 자식을 낳기 위해선 여자가 필수이지만 근친은 위험하다는 걸 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집단들은 다른 집단을 공격하여 여자들을 빼앗아 간다. 모든 집단은 살면서, 혹은 죽기전까지 몇번씩 당하는 일이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대화나 좀 나누지."

 

"그러지요."

 

"요즘 주변 부족에 대한 약탈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다는 걸 아는가?"

 

"압니다. 그 때문에 우리도 멀리 이동해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중년 남자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아직 20대가 되지 않은 듯한 인상의 젊은이에게 당부했다.

 

"어쩌면 그게 답일 수도 있지. 하지만 어쩌면 아닐 수도 있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중년 남자는 바닥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 할아버지의 아버지 시절에는 바닥이 이런 살덩이가 아니라 흙과 돌이라는 것으로 이루어져있다고 했네. 온 세상이 말이야."

 

"예? 흙과 돌이요? 그런 귀한 것이 어찌 온 세상을 이룹니까?"

 

젊은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반응했다. 마치 옛 세상 사람들이 온 세상이 금과 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세상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실이야. 심지어 땅보다 더 넓은 바다라는 것도 있다고 했지. 바다는 물로 이루어진 거대하고 넓은 곳을 말하네."

 

"그건 거짓말이 분명합니다. 지금도 작은 웅덩이 하나 때문에 수십명이 죽고 또 죽이는데 그런 곳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분명히 있네. 아니, 있었다고 하지.. 하여간 내가 말하려던 것은 그게 아닐세."

 

젊은이는 질문하지 않고 들었다.

 

"방금 거래한 그 도끼는 내 할아버지에 아버지 시절 거대한 살덩어리 위로 기어올라오거나 바다라는 것 위에 있던 덕에 바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살덩이 위로 서게 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것들이야. 아주 오래된 물건이라는 거지."

 

바다 위에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상상할 수 없었지만 그는 그저 잠자코 들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삭고 망가져서 없어져가고 있네. 내 선조 또한 바다 위에 배라는 것 위에 있던 한 사람 중 하나였고 말이야. 내 젊은 시절에는 나무라는 것도 있었지만 지금은 쓸모없는 그 조각만을 귀한 보물처럼 가지고 있을 뿐이야. 그저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이제 구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귀한 쓸모없는 것을."

 

"..."

 

중년 남자는 도끼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 그런 물건들은 아예 자취를 갖추게 될 거야. 어디 굴을 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숨길 수도 없지 않은가. 그저 배고프면 바닥에 칼집을 내어, 아니. 물어 뜯어  고기를 구하고 아물기 전 흘러나오는 피로 목을 축이는 거지. 출산한지 얼마 안 된 여자가 있다면 젖을 모아둘 수도 있고 가끔 하늘에서 내리는 물을 받아마실 수도 있어. 남의 것을 빼앗을 수도 있고 빼앗길 수도 있겠지."

 

젊은이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러나 중년 남자는 그저 계속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뼈와 털을 제외하면 쓸 수 있는 물건이 없어질 것이야. 나무는 썩어 사라질 거고 돌은 깨어져 조각날 것이며 날붙이는 녹슬고 삭아 가루가 될 거야. 우린 도구를 만들기 위해 사람을 죽일 거고, 그걸로 도구를 만들기 위해 고생할 것이네. 이 거대한 살덩어리 세상 위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라곤 무한한 고기와 피, 그리고 높게 솟은 털 뿐이지. 그것만으로 살아갈 순 없어. 지금처럼은 더더욱 살 수 없어."

 

이제는 암울한 눈빛을 한 중년 남자가 이렇게 말했다.

 

"난 정말 두려워. 내 선조께 들었던 세상은 멋지고 아름다웠지. 이제는 흉측하고 절망스러울 뿐이야. 우리가 모든 도구를 잃어버리게 되면 어떻게 살게 될까?"

 

"...."

 

중년 남자는 잠시 자신의 기분에 젖어 있다가 깊고 깊은 한숨을 내쉬고 첨언했다.

 

"어딜 가든 비슷할 거라는 이야기일세. 사람이 부족한 세상이지만 물자는 더 부족하고, 남의 것을 빼앗는 방법 외엔 그 어떤 방법도 없지. 어쩌면 이게 인간들의 마지막 거래가 될지 모를 일이야."

 

그리곤 이렇게 덧붙혔다.

 

"이 주변 싸움을 더욱 심할 수도 있지. 이곳은 배꼽에 가까운 곳이니까. 그곳에는 가끔 물이 고이잖나. 뭐, 내가 할 말은 이게 달세. 자네가 해줄 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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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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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ACrookedMan | 작성시간 22.05.15 무한한 생명력=암세포

    완벽한 크툴루식 해결법..

    아니 그보다 에너지 공급이 없어도 된다니 언젠가는 엄청 뜨거운 우주가 되는 건가..?
  • 작성자통장 | 작성시간 22.05.16 나무 없는거 보니 조만간 산소부족으로 죽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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