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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ome의 도서관

[현대판타지]암월검문 복수기. (64)

작성자Khrome|작성시간22.06.25|조회수40 목록 댓글 1

강도 높은 심문과 추궁은 밤새 이어졌다. 그리고 2시간 뒤 다시 부를 거라는 통보 역시도 받았다. 고작 2시간밖에 잘 수 없는 예조프는 피곤함과 스트레스로 그저 허탈할 뿐이었다. 알람을 맞춰놓고 자신의 방에서 군복채로 쓰러져 누운 그는 6시간 뒤에 일어났다.

“헉!”

감찰관 일행의 부름에 늦은 것인가? 황급히 뛰쳐나간 그는 동료인 빅타르를 문앞에서 마주쳤다. 자신을 찾아오는 것임을 직감했지만 그 직감은 그의 위기감을 누그러뜨리기도 했다.

“아, 예조프. 진정하게, 감찰관은 돌아갔어.”

“돌아갔다고?”

의아하면서도 뭔가 잡히는 게 있었다. 빅타르는 그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어줬다.

“어, 누가 힘 좀 쓴 모양이야. 갑자기 감찰관 일행에게 복귀 명령이 떨어졌다더군. 덕분에 인솔했던 병사가 꽤 고역이었다나… 하여간 잘 된 일이지.”

“하아..”

“좀 더 자두지? 1시간 정도는 더 누워 있어도 문제 없을 거야. 대대장, 연대장도 뭔가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널 찾지도 않더군.”


잠시 생각한 예조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분위기를 좀 파악해봐야겠어. 그보다, 그놈들은 어떻게 됐지?”

“영창은 갈 예정이지. 근데 아랫도리 사정은 아니야. 듣기로는 횡령으로 영창보낼 의중인 거 같은데.”

성범죄는 영창이 아니라 교도소가 맞고, 교도소를 간다면 성범죄 발생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윗선에선 그걸 원하지 않았다.

‘윗선에서 포섭된 인물이 힘을 쓴 건가? 그쪽은 우리를 알지만 우린 그쪽을 모른다니.. 별로 좋은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어디서 힘을 쓴 건지는 들어봤나?”

“정확히는 모르겠어. 우리쪽에서 들을 수 있는 건 한정적이니까. 근데 분위기만 봤을 땐 꽤 높은 게 아닐까 싶더군.”

“흐음..”

***

“잘 처리했습니다. 메이저 언론에서 이 건을 가지고 물어뜯을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수고하게.

“예, 그럼..”

국방부장관은 허공을 톡 치며 전화를 껐다. 화상은 아니었고 음성으로만, 그것도 지향성 통화였다보니 주변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알만한 사람은 없었다. 물론 그 주변에 아무도 없었지만.

음성의 주인이 내린 지시는 군 내에서 발생하는 논란을 최소화하고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 그걸 위해서 군 내외에서 발생한 범죄 및 논란에 대한 조사와 책임추궁의 중단을 요구했다. 그 때문에 국방부장관은 자신의 직권을 통해 모든 군 법무관, 감찰관, 조사관, 헌병에게 사소한 것을 제외한 사건에 대한 조사, 감찰 중단과 복귀 명령을 내렸다.

최근 언론에서 군에 대한 비판이 커지기 때문에 비판여론 형성을 막기 위함이었는데, 그 또한 자신이 알고 있는 인맥을 동원하여 메이저 언론에게 이에 대해 거론하지 말 것을 요구했고, 그에 따른 대가 역시도 지불해야했다.

그러나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이것이었다. 바실리는 일리야 막시모프를 차기 정권의 대통령으로 낙점지었고, 그는 군에 대한 비판과 개혁을 주장했다. 그렇다면 그들과 합세하여 군에 대한 여론전을 실시하는 것이 온당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함의하는가? 자신을 지켜주기 위해? 아니면 자신보고 물러날 것을 은유하는 것인가? 다른 장관이 오면 그때부터 공격적으로 여론전을 수행하기 위해? 아니면 군 내에서 발생한 사건 중 건드리지 말아야할 일이 있거나.

불리한 상황에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었고, 국방부장관은 그렇지 않았기에 그 자리까지 올라온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불리한 시나리오를 떠올리고 그 중 몇가지를 채택했다. 그는 자기 부하를 통해 군 내 사건사고, 논란에 대한 자료를 보고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바실리가 죽으라고 하면 죽어야겠지만, 그 나름대로의 살길은 마련해놓기 위해서였다.

***

그들의 노력이 무색하게 국내여론은 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져갔다. 메이저 언론들은 이에 대해 일제히 입을 다물고 지방 언론사나 인터넷 언론, 개인 언론인 등은 관련 이슈를 캐기 바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흘렙의 민스크 타임이었다.

몇 주, 아니. 며칠만에 기존 평균 시청자수의 3배~5배, 가장 많을 때는 6.7배라는 기록을 세우자 모든 팀원들은 흘렙을 신의 사자 쯤으로 바라보았다. 흘렙은 그들의 시선에 극히 만족을 느꼈지만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다는 쿨한 태도를 보였다. 평소와 별로 다를 바는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오만함. 물론 주변 사람들에겐 자신감으로 보일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여기 대본입니다, 미스터 흘렙.”

“꽤 분량이 많군.”

막 담배에 불을 붙히고 한 모금 내뿜는 그의 모습은 과거 미국의 전설적인 언론인의 이미지를 연상케 했다. 그가 자주 입는 약간 낡은 듯한 정장 역시도 그런 분위기를 한껏 끌어냈다. 대외적으로는 자신의 정신을 표현한다고 흘리고 다니지만 실상은 고급 수트를 사기엔 재정적으로 대단한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중간한 가격의 수트가 아닌 미화로 5000달러 이상의 수트는 입어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실제로 그의 생각이 그에 대한 비판자들이 벼르고 있을만한 사안이기는 했다. 그러니 차라리 이미지로 만드는 것이 유익했다.

“여기저기서 제보가 많이 들어옵니다. 전역자나 현직 군인, 부사관이나 심지어 장교들에게서도 나오는 이야기죠. 적절한.. 원하시는 데로 골라서 보도하시면 됩니다.”

“꼭 허락하는 말투군.”

“아.. 죄, 죄송합니다, 미스터 흘렙.”

자그마한 권력의 우월감을 느낀 흘렙은 속으로 씨익 웃으며 별 거 아닌 것처럼 말했다.

“농담일세.”

부하 직원은 그의 여유로움에 동경 비스무리한 느낌을 받으며 물러났다.

‘확실히 많군.’

병사들간의 부조리, 부사관끼리의 부정, 장교들의 부패 등등.. 그는 사건의 중요성이나 군 내부의 구조적 문제, 혹은 사회적 반향과 무관하게 가장 자극적이고 자신의 의도를 투영해낼 수 있는 것 위주로 대본을 고르기 시작했다. 성범죄 보도로 이목을 집중 받았으니 하나 더 터뜨리는 게 좋겠지. 그런 생각으로 계급의 위계를 이용한 동성 성범죄건과 부사관이 장교와 작당하여 탄약을 빼돌려 판매한 의혹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단어와 문장 몇개를 수정한 뒤 담당자에게 건네줬고 그는 편집자에게 건네 프롬프트에 글을 옮겼다.

흘렙은 담배를 끄고 데스크에 앉아 프로듀서가 불러주는 카운트를 따라 방송을 시작했다.

“우리 군대에는 강간범을 만드는 과정이라도 있습니까? 아니면 군대에 강간범들이 입대하는 것입니까. 충격적인 소식을 하나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

점심을 먹고난 뒤 조직원들을 훈련시키기 전 레프와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래도 여기서 훈련받은 녀석들은 무당의 늙은이에게 보이지 않는 게 좋겠군.”

레프는 고개를 살짝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바로 이해했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명설은 그의 저런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추가적인 설명이 없어도 알아서 이해하는 것. 아마 바실리가 그를 아끼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들 국가나 인력 수준에서 나올 수 없는 실력자(물론 그들 눈에는 그리 대단찮지도 않을 것이지만)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면 의심스러울테니까.

“그나저나.. 음, 아니다.”

명설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느낌으로 며칠 전부터 의구심을 가졌던 것을 물어보려다 그냥 마음을 바꿨다. 별 의미가 있을 것도 아니고 그럴만한 사이 역시도 아닌데다 그렇게 깊게 연관될 것도 아니었으니.

“뭐지?”

“별 거 아니다.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겠지.”

레프는 그를 약간 기이하게 쳐다봤지만 무심하게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별 거 아니면 물어봐도 된다.”

흠.. 하는 소리를 낸 명설은 그냥 물어보기로 했다.

“걸음이 무거워졌더군.”

“아, 그거. 몰라도 된다.”

그럴 거면 왜 물어보라고 했냐.

.
.
.

조직원 훈련을 마친 명설은 얼마간 대통령궁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기에 보고는 레프를 통해 전달하기로 했고 오늘이 무당의 노인이 오는 그날이기에 이대로 퇴근하기로 했다. 어차피 오늘은 딱히 별다른 일정이 없었기도 했고 그런 이유로 시내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그 꼬맹이, 여전히 있나 모르겠군.’

그가 벌린 폭력 사건에서 고려 그룹은 재밌게도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단지 보고를 받아들였을 뿐 고려 그룹에서는 그에게 정보값만 챙겨주었고 그걸로 끝이었다. 무언가를 시키거나 추궁하거나 벌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경호원과 함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단지 미친 말 클럽을 장악한 조직만 달라졌을 뿐.

이미 한번 와본 곳이고 그 또한 수준 높은 무인이었기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그녀가 있는 장소까지 도착했다.

“오랜만이라고 해야하나?”

“히익!”

휙!

그가 기척을 내자 그녀는 깜짝 놀랐고 그녀의 호위는 단검을 던지려다 그의 모습을 보고 몸을 멈췄다. 꽤 당황스러운 기색이었으나 금방 표정을 굳히고 그녀의 근처에 가서 섰다.

“경계할 필요 없다. 그럴 능력도 안 되고.”

그는 꽤 불만스러운 눈치였지만 전투력의 차이를 무시할 정도로 현실감각이 없진 않았다.

“뭐야? 여긴 왜 왔어?”

“그냥 전해줄 이야기가 있어서지.”

명설은 그녀에게 당분간 마단을 판매하는 것을 중단할 것, 잠시 어딘가로 피해있을 것을 조언했다. 무당에서 사람이 오는데, 꽤 수준 높은 늙은이라고. 마단과 관련된 것이 그의 눈에 띄면 어떻게든 반응이 올 거라면서.

“안 돼. 그런 지시나 허락 받은 적 없어.”

“흠, 내 지위에서도?”

“네가 어떤 지위인데?”

그러게?

“위험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 정도 자율성은 있을 거 같은데.”

그녀는 말 없이 자신의 호위 아저씨를 쳐다보았고 그는 잠시 숙고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명령은 지엄한 것이다.

명설에게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가 보낸 전음을 들은 그녀는 안 된대. 라는 짧은 말로만 대답할 뿐이었다.

“쩝, 그럼 뭐 별 수 있나. 재수없게 들키면 내 이야기는 하지 말고.”

“그럼 오질 말던가..”

퉁명스럽게 불만을 표한 그녀에게 명설은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것도 그렇군.”

그리곤 원래 없었던 것처럼 떠났다.

“에잉.. 괜히 재수 없게 그런 말을 해서는.”

퉁퉁.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녀는 작은 창을 열고 상대를 확인한 뒤 목소리 변조기를 킨 뒤 응대했다.

-원하는 순도는?

***

흘렙이 신랄하게 군과 정권을 비판하는 방송을 하고 성범죄자놈 때문에 연대책임을 명목으로 예조프의 중대는 이런저런 훈련을 받으며 고생하며 잠이 든 시각, 무당에서 한 노인이 비행기에서 내렸다.

공식적으로는 대통령실 직원 중 하나인 레프가 그를 맞이했고, 그를 호텔에 데려다 놓았다. 그리고 다음날, 한주창 진인은 대통령궁에 입성했다. 아직 대통령 대행으로 활동하는 국방부장관이 그를 맞이했으며, 그다지 살가운 태도는 아니었다.

“경찰과 경호원 명단입니다. 확인해보시죠.”

약 200여명에 달하는 이들에 대한 명단이었다. 물론 그 중 1/3에 못 미치는 인원은 바실리의 조직원이었다. 명설에게 배움 받는 이들과 다르게 그들은 따로 무공을 배우지 않았다. 그저 개인적으로 인터넷 등을 통해 배운 기초 무공 정도.

“아, 됐습니다. 굳이 하나하나 알 필요는 없죠.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이는 이들만 알아두면 됩니다.”

그의 시원시원한 태도를 보며 대통령 대리인 장관은 일이 좀 더 쉬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저 친구가 안내해줄 겁니다. 이미 인원들 대기 중이니 오늘 바로 교육해주셨으면 좋겠군요.”

“물론이죠. 기간은 한달 정도면 될 겁니다.”

국방부장관은 살짝 놀라며 말했다.

“한달만에 초심자를 3급까지 키울 수 있습니까?”

한 진인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띄우며 답했다.

“저라면, 가능합니다.”

그 미소는 살짝 독해 보였다. 모르긴 몰라도 꽤나 고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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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_Arondite_ | 작성시간 22.06.25 예씨나 흘씨나 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철저하게 바씨의 이익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겠군요. 목숨까지 바치면서...레프는 뭐 장비 하나 끼웠나 보네요. 무당 노인네랑 채씨는 언제 붙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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