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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ome의 도서관

[판타지]네크로멘서에게 하는 의뢰.

작성자Khrome|작성시간22.10.08|조회수83 목록 댓글 0

네크로멘서는 시체를 다루는 자들이고 죽음을 기만한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기피하고 거부한다. 그들이 악의 세력이나 부도덕한 지성으로 매도되는 것은 그것이 크게 틀리지만은 않은 까닭일 것이다.

 

하지만 네크로멘시란 그저 죽음을 다루는 공부일 뿐이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그 개인의 결정이 아닌가.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네크로멘서님.."

 

"네, 한달 내로 올게요."

 

 

전쟁이 발생했다. 사실, 대단한 전쟁도 아니다. 그저 영주간의 갈등이 물리적으로 발생한 것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싸운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수백명끼리의 수준 낮은 충돌이었다. 죽고 다친 사람은 수십명. 규모에 비해 꽤 많이 죽은 편이다.

 

 

네크로멘서 소년은 산길을 넘었고 야영을 했다. 사령술사는 어딜가나 천대받고 거부받는 게 일상적인지라 혼자만의 여행이 특별히 불편하지는 않다. 외로움을 느낄 것도 없고. 간혹 들려오는 늑대 울음소리와 같은 산짐승의 관심을 끌 수는 있는 법이라지만 네크로멘시는 산 자들의 본능적인 거부감을 주기 때문에 그것이 공격성으로 바뀌지 않을 정도로 불쾌감을 주면 알아서 떨어져 나간다.

 

 

"으르르릉..."

 

그럼에도 떨쳐지지 않는, 용감하거나 만용적인 녀석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고, 불쾌감을 없애기 위해 그 원인을 제거하는 건 짐승이나 인간이나 다를 바 없다.

 

그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고.

 

"예나쉬 옴 메란 스메나쉬."

 

불길한 울림을 일으키는 주문을 외우자 죽음의 기운이 주변에 퍼져나갔다. 닿는 것만으로도 생명력이 깍여나가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정신에 공황을 일으키는 저주받을 힘이었다.

 

늑대들은 제각기 울음소리를 흘리며 저 멀리 도망가버렸다. 사기에 닿은 우두머리는 며칠 동안은 골골댈 것이고 기운을 느낀 녀석들도 상당한 우울감과 예민함에 신경이 날카로워질 것이다. ...그 탓에 우두머리가 죽을 수도 있고 말이다.

 

나직하게 한숨을 쉰 네크로멘서 소년은 주변에 저주 받은 물건들을 세워놓고 잠을 청하기로 했다. 가까이 오면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끼며 멀어질 것이고, 그걸 이겨내고 가까이 온다면 저주받을 것이다.

 

 

아침해를 보며 일어난 네크로멘서 소년은 어제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을 느끼고 발길을 재촉했다. 

 

소년은 주변에 크고 작은 죽음을 느낀다. 그것은 네크로멘시를 공부한 이후로 조금씩, 이제는 꽤 익숙하게 느끼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주변에 얼마나 많은 죽음이 발생하는지 알지 못한다. 숲과 바다는 생명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만큼 죽음 또한 잦다. 아름다운 꽃밭에서도 크고 작은 죽음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들의 죽음, 말라 죽어가는 꽃과 나무, 풀들. 썩어가는 열매들. 사냥 당한 작은 짐승들, 가끔은 더 큰 동물들. 어쩌면 사고 당하거나 살해 당한 사람까지도.

 

네크로멘서들은 이것들에 익숙해져야하지만 이것들 때문에 미치게 된다. 아무리 미친놈이라 하더라도 죽음을 곁에 두고 사는 이들이 제정신으로 남을 리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그렇지 않은 이들은 정신이 단단하기 때문이 아니라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또한 위대한 자연의 순환이며 그렇기에 아름답다고.

 

 

보름간 움직인 네크로멘서 소년은 마침내 전투가 있었던 평원을 발견했다. 사람이 오지 않는 멀고 좁은 평원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시신은 정리되지 않았다. 이들은 자연에 의해 장례를 치뤘다. 이제 소년이 해야할 것은 그 중 한 사람을 찾아 사람에 의해 장례를 치루게 돕는 것이다.

 

"어디.. 이 사람은 아니고.. 이 사람은 대퇴골이 없네. 늑대가 물어갔으려나.."

 

말라 비틀어진 시체들 사이를 익숙하게 걸으며 시신의 기운을 느꼈다. 그 사람의 옷차림이나 썩고 말아비틀어진 얼굴을 찾아보기도 하지만 초상화조차 없는 농민들의 얼굴을 설명만 듣고 알아보긴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그 사람이 평소 자주 쓰던 물건에 담긴 기운으로 찾는다.

 

의뢰주가 건네준 물건은 그가 자주 쓰던 괭이. 등에 진 괭이를 손에 들고 다른 손에 든 기다란 지팡이로 시신을 건드려본다. 

 

운이 좋았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찾던 시체를 찾았으니.

 

"퀘베스케 에넨 크라우마 윤 게레."

 

소년이 주문을 외우자 시체가 들썩 거리기 시작했다.

 

끄드득.. 뚝, 뚜두둑..

 

말라 비틀어진 근육과 인대, 움직이지 않은지 보름이 넘은 관절들이 억지로 움직여지기 시작했다. 인간이라면 그 자체로 고통을 느꼈을테지만 이미 죽은 사람이다. 죽은 사람은 고통을 모른다.

 

썩은 옷가지가 떨어지고 시체가 일어났다. 성대 또한 썩었고 폐 역시 말라버렸으니 목소리를 낼리 만무하지만 어쩐지 신음하는 느낌이 든다. 소년은 시신에 기운을 불어넣으며 근육을 부풀리고 피부에 창백한 생기를 복돋았다. 어차피 가짜이지만, 의뢰인들은 처참한 가족의 모습을 보기보단 조금이라도 온전한 몸뚱이에 더 안도를 느낀다. 그리고 그편이 그 또한 덜 욕을 먹는다.

 

"이제 돌아갑시다."

 

소년은 뒤돌아 평원을 벗어났고, 조금은 사람 꼴을 한 시신이 그를 따랐다.

 

보름 정도 걸렸다. 어차피 시체는 지칠 줄 모르고 쉴 줄 모른다. 단지 고려해야할 것은 관절의 내구성. 모든 물체는 닳기 마련이고 쉬지 않는 시체라 하더라도 마모되어 부서진다. 시체의 관절을 확인한 소년은 별 문제 없을 걸 확인하고 의뢰인의 문을 두드렸다.

 

"아.. 아아..."

 

죽어서 돌아온 남편은 초췌하고 처참했지만 돌아왔다. 무섭고 끔찍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안도가 된다. 이제 그를 안식에 들게 할테니까.

 

차갑고 딱딱한 남편의 시체를 부여잡고 그것이 무섭고 징그러워 또 한번 몸서리 치면서도 안심하고 안도했다. 슬프지만 한편으론 기쁘기도 하다.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오진 못하겠지만, 죽어서라도 돌아와 장례를 치룰 수 있다면 산 사람의 도리는 다 하는 것 아니겠는가. 또한 이는 산 자의 마음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죽어서 돌아오지 않는 가족이란 언제나 마음의 짐이 되니.

 

"장례는 남들 모르게 치루십시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럼."

 

그녀가 이 일을 떠벌리거나 누군가에게 들킨다면 마녀로 취급되어 죽을 수도 있고 네크로멘서와 결탁했다며 재판을 받을 수도 있다. 네크로멘시로 일어난 시신은 불경하다며 다시 모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년은 자기가 해야할 일을 다 했고, 소임을 다했으니 남은 건 당사자의 몫이다.

 

가끔 네크로멘서 소년은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 일인지 생각한다. 분명 유족들을 위한 일이지만 그탓에 손가락질 받고 재판에 휘말리는 경우도 있다. 괜한 일이었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감사하고 안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장례를 치룬다는 건 산 사람들을 위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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