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Khrome의 도서관

[현대판타지]암월검문 복수기. (76)

작성자Khrome|작성시간22.10.19|조회수27 목록 댓글 5

전투란 수많은 요소가 작용하는 사건이다. 아주 작은 운이나 우연에 의해 승패가 갈리기도 하고, 삶과 죽음이 갈리기도 한다. 이길 수 없는 상대를 이길 수도 있고, 질 수 없는 상대에게 패하기도 한다. 단지 그런 경우가 많지 않을 뿐이고 격차가 클수록 더더욱 그럴 뿐이다.

그럼에도 명설은 무당의 장로를 죽였다. 그보다 못해도 한 단계 위에 있는 고수였다. 실제로 명설은 전투에서 그를 압도하지 못했다. 단지 맞먹은 순간들이 있었을 뿐이지 분명히 그가 밀렸다. 무슨 어려운 전술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기술을 사용한 것도 아니다. 나이와 정파의 성향답지 않게 장비와 기술에 능숙한 면이 있었고 무기도 없는 맨몸에 가진 장비 역시 최소한이었다는 운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단지 그는 기본에 충실했다. 검격의 안쪽, 휘두르기 어려운 간격 내에서 자신의 공격을 쏟아붓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다양한 패턴과 변주를 활용했으며, 허초와 실초를 능수능란하게 썼다. 허초를 막지 못할 때 그것은 즉각 실초가 되어 그의 몸을 두들겼다.

안과 밖을 공격하며 방어조차도 혼란스럽게 했고 중간 중간 박치기, 눈이나 얼굴에 바람불기 등 사파들이나 할 법한 잡기술까지 사용했다. 그의 경험은 명설의 경험과 비교할 수 없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전투법은 감히 그가 범접할 수준이 아니었다.

명설이 한주창 진인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말도 안 되는 기적, 치사한 반식, 비대칭전력인 검강 덕분이었다. 그것도 가장 필요할 때, 만에 하나 피하거나 대응할 가능성을 주지 않은 순간에 발생한 공격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때 명설은 전투와 검강을 통해 얻어낸 것이 있었다. 깨달음이라고 하면 깨달음이겠지만, 동시에 한계라면 한계였다.


검강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아주 강력한 조커 카드가 될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검강이 있기 때문에 그는 죽을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졌다. 검강에 당할 것을 염려한 적이 그와 과감하게 싸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무인에게 치명적일 것이다. 특히 높은 경지에 있을 수록. 절정.. 기껏해야 9급까지는 여러 비무, 대련, 훈련, 익힌 무공, 교육, 개인의 노력과 자질에 따라서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일이더라도.

하지만 그 이상은 당연히 그 이상이 필요하다. 초절정까지도 아니다. 절정에서도 수준 차이는 있고, 이는 7급부터 11등급까지의 구분의 근거이다. 따라서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선 그만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래전 중국에 무림이 있었고, 조선이 멸망하기 전까지 그것을 생사투를 통해 얻는 깨달음이라고 규정했지만, 현대에 와서 무공이란 특정한 가치 체계로도 해석된다.

즉, 무공과 무공의 싸움이란 가치관의 물리적 충돌이고, 같은 수준에서 누군가의 승리는 그 가치관의 고도화이자 승리이기도 하다. 내 가치관이 더욱 세상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라고.

이러한 학설은 무학계에서도 수많은 비판과 반박이 존재하는 여러 학설 중 하나일 뿐이지만 무학의 근본을 연구하는 학자, 무인들에게 이러한 학설들은 그들의 무공처럼 우열보다는 입맛에 맞고 자신에게 맞는 것을 취사선택하는 것에 가까운 문화가 존재한다. 즉, 내가 믿는 것은 나에게 맞기 때문에 이걸 지지하지만, 다른 이들의 학설이 틀렸다고까진 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이는 무엇이 정답이라고 하거나 어떠한 가치관, 어떠한 무공이 객관적 진리를 말하지 않는 근거이기도 하다. 가령 마공을 익힌 이나, 사파의 거두는 정파의 무공이 담는 가치체계 내에서는 결코 존립할 수 없고 성취할 수 없는 행동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이 익힌 무공의 가치체계 내에서는 존립하고 성취할 수 있다.

가령, 모든 인간은 탐욕스럽기에 무언가를 빼앗는 것은 자연스럽고, 단지 더 강한 이들이 더 많이 가질 뿐이며, 이것에 제한은 없다는 가치는 정파의 무공이 담는 가치체계에서는 있을 수 없다. 그러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애초에 정파의 무공을 익힐 수조차 없고, 억지로 익힌다 하여도 주화입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한 가치관을 가진 이가 익힌다면 대성할 수도 있다.

무공이 가치관을 만들기도 하고, 그러한 가치관을 가진 이가 무공을 익힐 수도 있고, 비슷한 가치관을 지닌 이가 무공을 익히며 그 무공의 가치체계에 맞게 교정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물론 여러 반론도 있다. 무공의 가치체계는 단지 요식적인 철학이고 검기를 일으키는 무공의 핵심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파악하기란 극도로 어려워 그것만 따로 추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검기가 반드시 어떠한 철학을 가져야만 생기는 것이 아니고, 무공엔 가치체계를 만드는 철학적인 내용과 실제 실용적인 전투와 관계된 부분이 따로 구분될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한다.

실제 몇몇 무공들은 철학적인 면이 없이 무학적인 개념과 설명만 가지고 검기에 도달할 수 있는 것들 역시 존재한다. 전통 있는 문파나 그룹은 그러한 해석을 거부하고 그러한 관점 하의 내부 연구를 단속하기도 하며, 그들의 무공이 외부로 유출되지도 않기 때문에 검증하기 어려울 뿐이다.


그러한 관점들을 근거로 말하자면, 그는 가치관의 충돌을 겪어서 승리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실제로 그의 무공이 담는 가치체계가 타인의 것보다 더 세상을 잘 설명하는, 진리에 더 다가갔기에 더 강력할 수밖에 없는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더 뛰어난 무기를 통해 억지로 만들어낸 기술적 우위를 통해서 이겼기 때문에 자기 철학의 우월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이는 그의 검강이 진짜 검강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도 간접증명된다. 그가 실제 검강을 자기 능력만으로 뽑아낼 수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가 느끼듯, 결코 엉성하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명설은 이번 전투를 통해, 그리고 검강의 사용을 통해 그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다. 그럼에도 그는 그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가 싸워야할 적들이 결코 만만한 이들이 아닌데, 자신의 목적을 포기할 정도로 도전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후우우…”

많은 생각들이 오갔고, 자신의 무공과 타인의 무공, 전투에 대해서도 생각하며 운기조식을 끝낸 명설은 자신의 몸상태가 꽤 괜찮아졌다는 걸 깨달았다. 조금 힘 쓰면 다시 끊어지긴 하겠지만 인대는 대충 붙었고 몸 안팍의 피해는 상당히 호전되었다. 적지 않은 부분들이 깔끔하게.

“이제 끝난 거야?”

“얼마나 지났지?’

“몰라, 한 6시간?”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명설은 운기조식을 끝냈으면서도 자리에 앉아 있었다. 괜히 일어나기 싫은, 단지 관성이다.

“밥은 좀 먹었나?”

명설의 말에 대답 대신 침대에 폭 하고 눕는 소리가 들렸다.

“한국인 맞긴 맞나보네, 밥부터 이야기하는 거 보면.”

“대충 아무거나 챙겨 먹어라. 며칠 동안 나가지 말고 여기서 지내고. 그룹에서도 알지 모르겠지만 일단 보고는 하겠는데, 며칠 내로 사람 보내겠지.”

당연히 그럴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럴거야. 마태아는 귀하니까.”

명설은 이제 슬쩍 몸을 돌려 그녀를 돌아봤다. 아직 이름도 모르는 그녀를.

“마약을 만들어야 해서?”

“정확히는 마단이지. 고려그룹에 마인이 많은 건 맞지만 사실 마공을 중점으로 하는 그룹은 아니야. 그렇지만 마공만한 게 없고 마태아는 순도 높은 마단을 만들어주니까.”

“왜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지?”

그가 들을 권한 없는 이야기이다. 들을 이유도 없고. 물론 듣고 싶었지만.

“네가 물어봤으니까?”

“…”

“농담이고, 보고 확신했어. 그 사람 정파 쪽 고수지? 보통 고수는 아닌 거 같고, 장로 쯤 되나? 그런 사람을 죽였다면 귀하게 쓰이겠지. 그런 사람이랑 알아둬서 나쁠 건 없어.”

“내가 어떻게 도와줄 줄 알고?”

그녀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세워 명설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 깊은 곳에는 멀쩡하게 미친 광기가 숨어 있었다. 모든 면에서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떤 미쳐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제정신으로 침착할 수 있고 어떤 미친 짓도 합리적이고 냉정하게,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광기였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는 알고?”

“권력은 아닌 거 같고.”

“조용히 사는 거야. 나 어렸을 때 마태아라는 이유로 너무 고생했거든. 그러니까, 좀 많이 복잡하게 살았다 이거야. 그래서 힘 좀 쓰는 높으신 분들이랑 알아두고 뒤 좀 봐달라고 하려고. 나 좀 편하게 조용하게 살 수 있게. 해줄거야?”

“글쎄, 그건 네 인생이지 내 알 바는 아니잖나?”

그녀가 슬쩍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귀한 물건 제공해주는 몇 없는 사람은 어디서든 환영받아. 내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을 지도 모르지.”

“그렇게 오래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상관 없어. 난 어디까지나 떡밥을 던지는 거니까. 잘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내 손해는 아닐 걸? 말마따라 서른도 못 되고 죽을 수도 있는 법이니까.”

명설은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뭘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말로만 들으면 뭔가 알고 있는 거 같은데, 그럴 근거가 없다.

“그냥 말만 그렇게 하는 거군.”

“키킥. 이렇게 말하면 항상 잘 통하던데.”

삐비빅. 삐비빅.

안가에 설치된 장치로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명설은 일어나 메시지를 받았다.

“뭐래?”

“돌아오라는군.”

“다시 올 거야?”

명설은 어깨를 굴리고 몸상태를 다시 확인하며 뒷모습으로 답했다.

“아니.”

***

전투가 길어지면서 피아구분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중대원들 역시 탐탁찮아 소극적이었지만 자기 동료, 친구, 선후임이 총에 맞고 나자빠지자 점점 증오를 쌓기 시작했다. 아니, 그저 이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분노와 불만을 아무데나 쏟아내야 했고 그걸 상황이, 그리고 자기 중대장이 방향을 제시했을 뿐이다.

“시발새끼가 연락을 받았을텐데..!!”

아직까지도 오지 않았다면 그는 오지 않을 것이다. 배신 당했거나, 다른 이유가 있었겠지만 오지 않았다면 그게 자신들을 속인 것이라 봐도 된다. 그는 부를 때 올 것을 약속했지만 그러지 않았으니까. 다른 중요한 일이 있더라도 지금 자신은 목숨이 걸린 일이다.

그의 지휘와 기습적인 행동들 덕분에 빅타르를 비롯한 청년장교들은 대체로 교전에서 우위를 가져갔다. 일부는 몰래 미리 설치한 폭발물로 일부 중대나 소대를 궤멸시키기도 했고 부대와 작전지를 장악에 가깝게 통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국방부장관은 이러한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명령을 내렸다. 수도 밖 반란군들을 우선적으로 제압하도록. 자기 생일파티나 준비하던 장군과 몇몇 장교들은 심상치 않은 상황에 직접 지휘를 했지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느 부대와 어느 지역을 제압하고 어느 부대를 믿을 수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는 부대들부터 통제하여 가까운 교전지로 보냈고, 수적 우위를 통한 제압을 목표로 각지에 통제 가능한 대대급을 보냈다. 경고 후 전원체포, 저항 시 무조건적인 사살 명령이 떨어졌다.

반란을 시작한 장교들은 이미 손실이 발생한 중대급 병력으로, 숫자는 물론 정보적, 화력적 우위를 지닌 대대급 병력을 상대로 맞이해야만 했다.

-모든 병력은 당장 모든 무장을 해제하고 투항하라. 투항하지 않은 자는 구분 없이 사살하겠다.

이러한 경고와 명령은 반란군에게 큰 심리적 불안을 발생시켰다. 무엇보다 통신이 끊긴 것은 그들에게도 악수로 작용했고, 본대의 대규모 병력의 움직임이 전달되지 않았고 불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서로 합류하기도 어려웠다.

“젠장, 제압한 장교들을 인질로 삼아 후퇴한다. 거기, 너! 체포한 놈들 데리고 뒤로 빠져! 2, 3 소대장! 후방을 지키면서 따라와라!”

“다른 녀석들과 합류해야겠군. 가장 가까운 곳이 이곳에서 5km가 안 되니 차량을 타고 움직이면 10분 내에 충분히 도착해.”

“최후의 한명까지 싸운다! 우리가 수비태세를 굳히면 놈들도.. 컥!”

곳곳에서 제각기 다른 판단들이 있었지만 중대급 병력은 극히 무력하게 궤멸당했고 몇몇은 뒤에서 날아온 총알에 맞아 죽고 투항했다. 개중 몇은 아군과 적군을 섞어놓는 식으로 지원군의 개입과 판단에 혼선을 이루며 시간을 끌었지만 결국 서로서로 피해만 늘린 채 제압, 사살 당하고 말았다.

헤나지는 이미 체포 당했고, 빅타르는 유일하게 중대 병력을 데리고 후퇴하는데 성공했다. 교전이 길어지고 피해가 늘어가기 시작하자마자 과감하게 내린 판단이었다. 그들이 쓸만한 차량을 제외하고 눈에 보이는 모든 차량 바퀴에 총을 갈기고 떠난 참이었다. 그는 드론병에게 주변 정찰을 지시하고 병력들과 함께 이동했다.

빅타르는 휘하의 병력들의 불안과 흥분이 섞인 표정을 보고 자신의 얼굴에 손을 댔다. 지금 자기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몰랐으니까. 그는 자신의 표정이 너무 안 좋다는 걸 깨닫고 손으로 한번 쓸고 얼굴을 고쳐 지었다.

“기다려라, 예조프. 내가 가고 있으니까.”

그의 판단은 예조프에게 합류하는 것이고, 곧바로 대통령궁을 제압하거나 최소한 방어에 힘을 더해줄 생각이었다. 여건이 된다면 우회타격의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심은? 그는 믿을만한, 의지할 수 있는 리더에게 자신의 판단을 의탁하려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그 또한 그 사실을 알았다. 인정하지 않은 것 뿐.

‘일단 예조프와 합류한다. 그럼 전술적 선택지가 늘어날 거야. 머릿수와 화력에서 차이가 나서 그렇지 무능한 놈들을 상대로 대통령궁을 점유한 채 농성하면 가능성이 있어. 방어전이 됐든, 정권 실체에 대한 폭로가 되었든..’

같은 시간.

-준비 완료.

 그가 무능하다 욕하는 고위 장교들은 임시로 복구한 통신선과 공과대학에서 실험 목적으로 날린 큐브샛의 저해상도 영상에 의존하여 대략적인 위치를 산출하고 구글 맵으로 독도한 뒤 도로를 따라 갈 것이기에 이동 예상 지점에 명령을 내렸다.

발사. 라고.

콰쾅!! 쾅!! 꽈과과광!!!

대대 포병대는 탈출하는 병력에 대해 무차별 사격을 개시했다. 그들이 납치해가는 장교진들 역시 폭사했지만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는 문제다. 부패한 군대란 그런 법이니까.

포격이 성공한 이후 본대 지휘부에서 장군 계급의 누군가가 노성을 터뜨렸다.

“빌어먹을! 왜 하필 내 부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냐! 저 새끼들 직속상관들 다 죽어나갈 줄 알아!”

실제로 총살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단, 이미 적지 않은 수가 죽어있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

명설은 쿠데타 현장으로 갔다. 그러나 멀리서 지켜본 그에게 그들을 도울만한 껀덕지는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저 멀리 경찰과 일부 시민들이 합세하여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무장을 단단히 하고 있는 정도. 그러나 군 병력을 막기에는 화력에서 부족하고 일부 경찰 병력이 명령 불복종 후 잠적 내지는 이탈이 발생한 상태였다. 그나마 경찰특공대 병력이 함께 방어선을 형성했다는 점이 유일한 희망일 것이다. 그럼에도 중대 2개급 부대와 싸우기엔 화력이 부족하다.

“아직 남아 있는 시민들 전부 소개시켜! 건물 샅샅이 뒤져보고 시민들 없으면 창문 옆에 붙어! 명령과 동시에 공격해야한다!”

“옥상에 저격수 배치시켜. 너무 가까운 건물로 올라가지 말고 좀 먼 곳으로. 옥상 닫혀 있으면 부수든가 뜯어내든가 알아서 해.”

“드론들은? 제대로 돌고 있나? 놈들의 위치와 이동속도를 파악해서 실시간으로 전달하도록.”

그러나 예조프는 속도전을 선택했고 다소 시민들이 위험해질 수 있는 진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현장에 도착했다.

부우우웅…

트럭 한대. 그러나 그 위에 사람은 없었다.

특공대 지휘관이 무전으로 저격수에게 물었다.

“저격수, 운전자는?”

-없습니다.

“디코이군.”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가능성 있는 유일한 전술이 있다.

“모두 피해!! 폭발한다!!”

저급하더라도 무공을 익혔는지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외쳤다. 그 말을 듣고 얼타는 몇몇 바보들이 있었지만 노련한 이들은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폭탄이 탑재되어 있을 것이다.

부우우웅.. 콰앙!!

최고 속도로 달려오던 트럭이 차량과 급히 징발한 가구로 만들어낸 바이케이드를 덮쳤다. 앞과 뒤를 엇갈리게 배치 했기 때문에 첫 열이 뚫려도 뒷열이 바로 뚫리지는 않았지만 군용 트럭의 튼튼함과 속도는 충분히 대열을 흐뜨러뜨릴 수 있었다. 그렇게 힘으로 밀고 들어간 트럭은 주변 화단에 박고 나서야 멈췄다. 그리고 모두 바닥에 엎드리거나 어떻게든 건물, 다른 화단 등 엄폐물 뒤로 숨었음에도 폭발을 발생하지 않았다.

“…함정인가?”

경찰 총경은 천천히 접근하여 폭발물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모두가 원하지 않았기에 미적거렸고 보다못한 경찰특공대원 한명이 조심스레 다가가 트럭을 확인했다. 폭발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없습니다!”

그 말에 다시 대열을 정비하라는 명령이 즉각 하달되었고, 트럭은 그대로 바리케이드로 활용하게 되었다.

“도대체가.. 잠깐, 놈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저격수, 보이는 거 없나? …저격수? 이봐!”

***

“네놈이 왜 여기 있는거냐.”

“의원님께서 혁명의 핵심은 대통령궁 장악과 마피아의 체포에 있다고 하더군요.”

맞는 말이다. 그의 동료들 역시 힘이 못 되어줘서 아쉬울 뿐 자신들의 목숨 정도는 희생할 각오를 했던 이들이다. 중요한 건 목적. 단 한명만 목적을 달성하면 그들의 승리다.

“우리 힘으로도 뚫을 수 있어.”

“그러시겠죠. 하지만 이미 동료분들이 제압당하고 지휘가 복구되고 있습니다. 곧이어 이곳으로 병력이 밀고 들어올텐데, 경찰과 특공대 병력들이 꽤 모여 있더군요. 바리케이드도 쳐있고.. 그러니 이렇게 합시다.”

명설의 제안은 간단했다. 교전을 피하고 목표에 도달한다. 명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집니다. 그럼 무운을 빌죠.”

예조프가 그를 부르려 했으나 그는 자기 할 말만 하고 보이지도 않게 사라져버렸다. 상황이 영 심상치 않은데 명설의 등장은 그를 더욱 의심과 불안에 빠뜨렸다. 그러나 그는 지금 한시라도 빨리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는 안달나버렸고, 그의 제안과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순간, 그는 수동적인 말로 전락해버렸다. 그럼에도 그는 그 사실을 자각할 수 없었다.

“경로 변경! 이동한다! 내 지시를 따라와라!”

.
.
.

명설은 주변을 정찰하는 저격수와 드론들에 주목했다. 저격수들은 몇분 간격으로 자신의 안전과 상황에 대한 보고를 했고, 그는 내공을 몸에 흘려 그 전파를 도청했다. 무전기 전파 대역을 알고 있었기에 내공으로 몸에 흘려 파장을 맞췄다. 물론 일반적인 신체가 아니라 티타늄 코팅 골격을 통해 가능한 기교이다.

따라서 상황 보고를 마친 저격수에게 몰래 다가가 점혈했고 몸도, 목소리도 나오지 않은 채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드론은 더욱 쉬웠다. 중대에도 대드론대응 병기가 있기 마련이고 재밍을 먹였다고 믿게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물리적으로 카메라가 부숴지는 것을 체크하는 기능은 없기 때문에 카메라를 부수어 시야를 가렸다. 노이즈가 낀 화면은 재밍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실전 매뉴얼에 있어서 재밍이 발생하더라도 추락하지 않는다면 계속 드론을 날리고 주변을 돌게 만든다. 한번이라도, 잠깐이라도 환경 간섭에 의해 재밍에 벗어나게 되는 경우 그 짧은 장면이 제공하는 정보가 어떤 변수로 작동할지 모른다는 관점이었다.

명설은 카메라가 깨진 채 급히 비행하는 드론들을 올려다보고 움직이기로 했다. 바실리가 그를 호출했기 때문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_Arondite_ | 작성시간 22.10.19 흠, 헷갈리네. 혼란상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시계열을 흔들어놓으신 건가... 첫 호출은 예조프고, 나가다가 노인네 만나서 썰리기 직전에 썰고, 회복중에 레프가 콜했는데 응답 못해서 바실리가 연락한 건가?
  • 답댓글 작성자Khrom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10.19 처음 부른 건 그들에겐 갑작스럽긴 해도 예정대로 예조프 쪽 장교가 불렀는데 걍 무시하고 근처에서 상황만 파악하려다 노인네 만나서 썰고 바실리 쪽에서 예조프 애들 대통령궁 근처까지 오는 거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아직 내용에 서술된 건 아니지만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니 말하는 거지만 예조프 도와준 뒤 복귀하라고도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_Arondite_ | 작성시간 22.10.19 Khrome 글쿤요.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정원이네들은 안나오는 거죠?
  • 답댓글 작성자Khrom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10.20 _Arondite_ 나오긴 할 거 같은데 언제 나올지 모르겠네용. 근데 별 비중은 없을듯.
  • 답댓글 작성자_Arondite_ | 작성시간 22.10.20 Khrome ㅋㅋㅋㅋㅋㅋㅋ 중간에 고려그룹한테 저격 안당하면 다행인건가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