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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ome의 도서관

[판타지]그래도 지구는 돈다.

작성자Khrome|작성시간22.10.24|조회수71 목록 댓글 3

"따라서 천체의 움직임을 도식화하여 우주의 법칙을 형상화하며 그것을 통해 물리적 이치를 개변하는 촉매로서 마법진은.."

 

화려하게 장식된 공간의 천장은 신을 올려다보라는듯 높디 높았다. 페리니 주교는 전도유망한 마법사제들에게 마법진의 원리와 구성을 교육하는 중이었다. 멀리서 6m는 되어 보일 법한 높고 옆으로는 좁은 상아색 문이 열리며 신분에 비해 천해 보이는 의복을 입은 사제 한명이 급한 발걸음으로 페리니 주교에게 다가왔다.

 

페리니 주교는 그의 기색을 읽고 수업을 마쳤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요. 마법전서 16권 257페이지부터 읽고 공부하십시오."

 

젊은 사제들은 예의를 표하며 표표히 멀어져갔다.

 

"무슨 일입니까, 미켈로 신부."

 

"피레네의 갈릴레이가 천체 법칙을 새로 썼다 주장했습니다."

 

"으음.."

 

.

.

.

 

마법진은 신께서 정하신 우주만물의 법칙과 원리를 기반으로 그린다. 가장 대표적이고 보편적인 것은 천체의 움직임으로 하는 것. 태양이 이 땅을 중심으로 돌고, 주변 모든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것은 오묘하고도 복잡한 것인지라, 수많은 마법사들은 이러한 천체의 움직임을 연구하고 통달하여서만 온전한 마법진을 그려낼 수 있다.

 

따라서 마법사들과 마법사제들은 어렵고 복잡한 천동설에만 오랫동안 매달려 공부하고, 마법진의 완벽한 이해를 위해 또 많은 시간을 보내며, 마법진을 그리기 위한 재료와 양의 사용을 공부하며, 마지막으로 완벽한 작성을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머리속으로 항상 천체의 움직임을 계산하기에 언제 어느 순간이더라도 천체의 위치를 그럭저럭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는 이들이다.

 

또한 이러한 마법진의 작동은 천동설이 우주의 진리를 증거한다는 간접적인 근거인지라 가톨릭 교회는 천체의 움직임과 그것을 활용하는 마법진을 공부하는 걸 중요시 여긴다.

 

"이걸 보시지요."

 

미켈로 신부는 품에서 꺼낸 양피지를 꺼내어 페리니 주교에게 보여줬다.

 

"이건.. 너무.. 단순하군.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아."

 

천체의 움직임은 복잡하고, 또한 오묘하다. 가장 간단한 것조차 수십가지, 한가지 기능을 위해서 수백개의 도형이 추가가 되는 극단적으로 복잡하고 크기 또한 커질 수밖에 없는 기존의 마법진과 그 원리에 비해서는 어린애 낙서 수준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오히려 너무 드러나 있으니 진리를 공부하는 이들의 사고를 둔하게 하고 생각을 멈추게 할 물건이지요."

 

"흐음..."

 

페리니 대주교는 금세 그것을 읽어 냈고, 원리적으로는.. 아니, 공학적으로 가능할 것임을 알았다. 그러나 그걸을 위해선 한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이건 분명히 작동할만한 물건이군. 하지만 한가지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소. 바로 태양이 지구 주변을 도는 게 아니라, 우리 인간이 살아가고 신께서 지켜보시는 이 땅이 태양 주변을 도는 것으로 말이지."

 

주교는 흥미로운 물건이지만, 앞서의 이유로 무가치한 장난감 정도로 받아들였다. 굳이 따지자면 마법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입문용 자료로 쓸 법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로 말이다.

 

"주교님,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피레네의 갈릴레이는 이것을 통해 마법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자신의 이론을 증명했습니다."

 

페리니 주교는 그말을 흘려들을 수 없었다. 미켈로 신부가 거짓말을 하거나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라면 모를까. 하지만 그럴 이유가 없고 그의 눈은 진실만을 말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군. 그렇다면 바로 증명해봅시다."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들었다는듯 무시하려 하였으나 미켈로 신부가 다른 신부나 주교, 어쩌면 대주교 이상의 인물에게 이러한 이단적 주장을 퍼뜨리고 다니는 것을 걱정하여 귀찮다는 기색을 다소 숨기고 즉석에서 마법진을 그려냈다. 그의 솜씨는 수십년을 마법진만 연구한 고위 마법사제답게 빠르고 정확하며 완벽했다.

 

5분도 되지 않아 완성된 마법진에 페리니 주교는 잠깐 미켈로 신부를 바라본 뒤 그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신성의 힘을 불어넣었다.

 

"자, 보시오. 이런 물건은.."

 

페리니 주교의 말은 더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마법진은 빛을 내며 이 세계의 법칙을 비틀었고 마법진이 목적하는 현상을 발생시켰다.

 

"...."

 

페리니 주교는 말 없이 벌어진 입을 다물 줄도 모르고 방금 발생한 이적을 부정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온전했기에 그럴 수 없었음에 언어로 정리되지 않는 말을 담아 미켈로 수사를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보시다시피 실제 작동합니다. 그 말은 갈릴레이 그 친구가.."

 

"그만. 그만하시오. 일단 이 문제는 내가 교황 성하께 직접 보고해야겠소. 신부께선 이 일과 관련되어 입을 열지 말아야할 것이오."

 

미켈로 신부는 존경의 뜻을 담아 겸허히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페리니 주교는 이러한 법칙의 마법진이 유통, 전파된다면 그 단가와 인건비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계산이 머리 한켠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

.

.

 

두달 뒤, 주교 급 이상이 참석한 회의에서 교황은 직접 질문했다.

 

"원리적으로 가능하고 실증되었다면 그것이 진리의 또 다른 표현형이란 말이오?"

 

페리니 주교가 즉시 답했다.

 

"그렇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만 그의 저서와 편지들을 입수하여 살펴본 결과 이단적인 내용들이 다수 확인되었습니다. 그는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불경한 주장을 공공연히 하였고, 그의 저서 역시 다양한 방면에서 고쳐졌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문제적 지점들이 있습니다."

 

다른 주교가 나서서 말했다.

 

"교황 성하, 성서는 온전히 진리만을 담고 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인간의 실수는 있을 수 있다 하였습니다. 그가 실수를 하였다면 그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잘못된 이론은 실증될 수 없어야 맞습니다. 마법진이 작동했다면 그것에는 그가 주장한 원리가 분명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혹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원리가 담겨 있으니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 먼저일 것입니다."

 

온건파에 속하는 주교다운 말이었지만 강경파와 갈릴레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피레네의 갈릴레이는 워낙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입니다. 게다가 남을 공격하고 나서기 좋아하는 논쟁적인 성향을 고려하면 이 마법진은 이미 사방팔방 공개하여 기존 마법진을 그리는 마법사와 사제들을 공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친분 있는 이에게 마법진의 예시를 넘겼고, 어찌저찌 미켈로 신부에게 넘어오게 되었지요. 그의 주장이 정말 온전하다면 굳이 숨길 이유가 있겠습니까?"

 

몇달간 외유를 나왔다 지난 주에 로마에 도착한 대주교는 그 말에 반박했다.

 

"말했듯이 그의 평판이 나쁜 까닭이지요. 그가 기존 통설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주장을 폈다면 온 유럽의 피해자들이 그를 비판했을 겁니다. 감히 그가 견딜 수 없겠지요."

 

"그렇다면 이 마법진이 말하는 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어떠한 원리가 숨어 있기에 마법이 작동하는 것입니까? 이걸 단지 아직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그렇게 보고 싶은 우리의 의도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갈릴레이의 주장과 논리대로라면 꽤 맞아 떨어지는 일이 아닙니까."

 

회의는 강경파와 온건파, 다른 시각으로는 보수파와 진보파의 대립이 이어졌다. 교황인 우르바노 8세는 갈릴레이와의 친분이 있는 인물이었기에 지나치게 강력하게 물어뜯을 수는 없지만 그럴수록 논리는 정제되기 마련이었다.

 

"그렇다면 공개 토론을 진행합니다. 주관은 교황청이 할 것이고, 갈릴레오를 불러들여 지동설에 대해 논하는 것으로 하지요."

 

교황의 정리에 그들은 그럭저럭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쪽이든 시간을 벌 것이고, 그동안 논리와 근거를 보강하면 된다. 갈릴레이가 정말 틀렸다면 신께서 보우하사 거짓과 우행을 일삼는 쪽에게 마땅한 징벌을 안겨주실 것이리라.

 

그러나 몇몇 강성 보수 추기경과 주교들은 거기에 한가지 더 첨언했다.

 

"갈릴레이의 저서를 읽어본 결과, 이단적인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재판 역시 실시해야 합니다."

 

종교재판 권한은 이단을 판결하는 권한을 지닌 교황청 대표단이 주관한다. 그리고 말을 꺼낸 추기경은 교황 본인이 자신의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강경파를 달래야할 이유가 있었기에 이단심문과 종교재판에 대한 권한을 위임했다. 적절한 명분이 없다면 권리를 가진 추기경을 막을 방법이 없다. 재판은 실시될 것이다.

 

 

.

.

.

 

 

토론회와 재판이 끝났고, 갈릴레이는 결국 실패했다.

 

몇몇 온건하고 온정적인 이들의 노력이 중과부적으로, 교회 측의 강경파와 보수파들의 다양한 공격을 갈릴레이는 충분할 정도로 받아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은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 내에서 논리적이었고 갈릴레이의 분석은 일부 적중하였으나, 적지 않은 부분에서 오류가 있었다. 그는 지구가, 그리고 태양계의 천체들이 태양 주변을 돈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지만, 그 궤도를 완벽한 원이라고 주장한 부분에 있어서 심각한 오류들을 발생시켰다.

 

성직자들은 그것을 집요하게 공격했고 갈릴레이의 주장을 논파하는데 성공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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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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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_Arondite_ | 작성시간 22.10.25 이건 한 3편쯤 써야 할 내용 같은데요 ㅋㅋㅋ
  • 작성자유기체말살시스템 합성체 | 작성시간 22.10.25 이제 저 이단에게 화형을
  • 작성자커넬 샌더스 | 작성시간 22.10.25 엌ㅋㅋㅋㅋㅋ 흥미로운 관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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