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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ome의 도서관

[현대판타지]암월검문 복수기. (91)

작성자Khrome|작성시간23.03.28|조회수36 목록 댓글 1

‘저 정도였나?’

고려그룹의 정예요원들은 전장 바깥에서 싸우는 둘의 전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그들이 제대로 일하지 못했다는 뜻이고 분석관들 역시 그랬다는 것이다. 경중을 따지자면 정보를 수집하는 자들의 책임이 더 크겠지만.

‘죽여야하나?’

위협이 될 것인가?

‘적어도 지금은 어렵겠군.’

암살과 전투는 다르지만 저런 강자를 죽이기 위해선 충분히 강하고 노련한 암살자가 만전의 준비를 다 해야한다.

아주 잠깐의 중단. 그러나 흥분이 가라앉은 것도 아니고, 끝난 것도 아니다. 직후 다시 전투가 재개되었고 멍청하게 한눈 판 바보들이 첫 희생자가 되었다. 점점 진형은 어지러워지며 각 소집단끼리 각가의 판단에 따라 얽히고 설히며 공격과 방어, 이동과 후퇴를 반복하며 서로를 죽고 죽이는 작업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은 드론을 통해 정부에도 중계되고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든 촬영하려는 렉카들을 막기 위해 경찰과 군대가 분주하게 움직였고, 다행스럽게 전장 상황 유출은 최소화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을 지켜보는 정부 관계자들은 선명한 화질로 보고 있었지만 말이다.

“대관절 요즘 시대에 이게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이렇게 수백 수천명이 죽어나가는 꼴을 국민들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인 비난이 발생할 겁니다.”

“아니, 이게 왜 우리 책임이 됩니까? 저들이 지들 멋대로 모여서 칼질하겠다고 나선 것인데. 경찰들도 사람이고 가족이 있으니 눈 돌아간 살인자들 가로막으면 무슨 일 벌어질지 뻔하지 않겠습니까? 정부는 나름대로 할 거 했어요. 저 깡패 같은 놈들이 지금이 수백년전 중원 무림시대인 줄 알고 나대는 게 문제죠.”

“그렇게 책임을 돌린다고 돌아가겠습니까? 전투가 끝나기 직전 바로 병력 보내서 싸그리 잡아다 깜방에 쳐넣어야 합니다. 어떻게든 정부가 마무리 짓는 모양새를 만들어야 정부 책임이 경감이 되죠. 그러고도 정부 욕하는 놈들은 우발적 사태를 정치화 한다고 받아치면 그만입니다. 그나저나 저쪽 단체 중에 좌파들이 꽤 많지 않습니까? 사회불안을 조장하는 뉘앙스로..”

“북한 망한지 언젠데 아직도 좌파 타령입니까!? 언론 동원해서 정부가 개입하려 했지만 무시하고 지들끼리 치고 받았다고 분위기부터 선점합시다. 우리가 시도를 안 한 것도 아니고.”

정확히는 개인적인 회선으로 상황 파악 하던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그건 이미 하고 있습니다. 말 안 듣고 참기자 놀이 하려는 놈들도 있긴 하지만.. 그런 놈들이야 물량으로 덮으면 그만이고 대세에 영향을 주진 못합니다. 그나저나.. 저거 무슨 기술이랍니까? 아니, 저 놈들, 누구랍니까?”

방금 발생한 거대한 파괴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저놈들이요? 저 금발놈은 무당 그룹 집행팀장입니다. 데이비드 리. 얼마전에 얼굴 팔린 그놈이요.”

“쯧, 마스크 좀 괜찮다고 팬덤도 생긴 그놈 말입니까? 나참. 해외에서 사고쳤으면 조용히나 있을 것이지.. 무당 어르신들이 애송이들 통제를 제대로 못하는 모양이죠? 다른 놈은요?”

“저 자는.. 모릅니다. 정보가 거의 없다는군요.”

그 말에 여러 의미가 담긴 얼굴로 말한 사람을 쳐다봤다.

“안 들어온 게 아니라 없다고요? 사파 놈들 보안 수준이 높아봐야 국정원 손바닥 안일텐데?”

“근데 없더구먼요.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어느 순간 딱 나타난 것처럼 갑자기 등장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한 남자가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어흠. 전 이만 먼저 일어나지요.”

“벌써요? 공조가 좀 필요할 거 같은데..”

“그거야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걸 위해 먼저 일어나는 거기도 하고요.”

“아아.. 하기야, 바쁘시겠군요. 그럼 조심히 들어가시고..”

남은 자들은 화면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막 고려 그룹의 정예 요원 하나가 정파 고수들의 협곡에 팔다리가 잘린 채 바닥에 쓰러졌다 각술에 얻어맞고 머리가 터져 죽은 참이었다.

“어이구, 좋은 장면 놓쳤네.”

***

튕겨져나간 둘은 곧바로 자세를 갖추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데이비드는 전장을 뒤로 삼아 그를 바라보았고 명설은 그와 함께 전장을 눈에 담았다. 데이비드는 움직이지 않고 기수식을 취하고 있었기에 명설은 그 의미를 이해했다.

‘뭐, 내가 와?’

전형적인 네가 와. 본래라면 준비하고 기다리는 적을 상대로 냅다 박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서로 부동심이 흔들리는 상황. 어차피 이곳에서 누군가 하나는 죽어야 한다. 혹은 둘 다 죽거나. 검강을 쓸까 생각했지만 이미 준비 중인 상대라면 이 거리에선 피한다. 무엇보다 검강을 쓴다면 그걸 본 이들에게 척살 최우선 목표는 명설이 될 것이다. 명설은 거침없이 쏘아져나가 검을 휘둘렀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데이비드는 쉽게 밀려나갔다. 자세는 무너지지 않았지만 전신을 앞으로 기울린 채 검을 받아낸 자세 그대로 십수m를 뒤로 밀려나갔다. 그리고 검을 튕긴 채 뒤로 뛰어올랐고 그 위치는 전장의 한복판.

그의 개입으로 주변에 있던 이들이 주의하며, 혹은 황급히 피했지만 명설은 데이비드의 수작에 짜증만 날 뿐 머뭇거리지 않고 똑같이 뛰어들었다. 무시할 수 없는 고수의 등장에 주변에 있던 무인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지만 어중간한 녀석들은 피맛에 눈이 돌거나 마공, 혹은 다른 사공으로 이성을 반쯤 놓은 상태로 그들에게 달려들기도 했다.

명설과 데이비드는 체화된 무공을 무의식에 가깝게 펼치고 막고 흘리고 넘겨댔고 그 치열한 공방은 자연스럽게 주변에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죽음의 공간에 뛰어든 눈 뒤집힌 머저리들은 자신을 노리지도 않은, 그저 흘려지고 피해진 검과 검기에 얼굴이 쪼개지고 가슴이 찢기고 복부가 갈리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렇게 사물이 된 그들은 의도적으로 시신을 토막낸 뒤 상대에게 던지거나 미리 상대의 이동방향에 던져놓는 등 실전적인 전술의 도구가 되었다.

그걸 본 정파 인물들은 잔혹함과 교활함에 치를 떨었고 사파 인물들은 그런 지독한 술수에 감탄하며 거리를 벌렸다.


데이비드는 명설의 검술이 결코 자신에 못지 않음을 느꼈다. 정확히는, 너무 절묘할 정도로 정파 무공의 카운터를 연구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단지 그 뿐이라면 시간을 끌수록 자신이 유리해지겠지만 명설의 검술과 무공은 결코 허투루가 아니었다. 하루하루 휘둘러온 검의 역사가 궤적에서 느껴졌고, 검은 내공에 비해 깨끗한 정순함이 느껴졌다. 검을 휘두르는 태는 한번의 궤적에도 여러가지 수가 숨어 있었고 그것은 대응하는 자에게 깊은 고민을 선사한다. 수많은 실전과 목숨을 건 전투를 겪어온 노련함은 자신의 윗줄이었고, 자신이 알지 못하거나 본 적 없는 수법은 사소한 것이라도 철렁이게 하는 위험성이 스며져 있었다.

공간이 생겼다. 명설의 그림자는 영역을 이루지 못하고 자신의 몸안으로 갈무리 했다. 데이비드는 높은 대응 난이도를 가진 명설의 검을 상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자신의 검에 수준 높은 묘리를 담아내야 했다.

데이비드의 검이 태극의 묘리를 담아 휘둘러졌다. 검의 경로는 선을 그렸지만 그 선은 무수한 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지에 비례하는 셀 수 없는 찌르기는 참격처럼 보였지만 그대로 검을 맞대면 안 된다. 점으로 이루어진 선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면의 공격. 명설은 팔로 가슴을 가린 자세로 검을 당겼다 휘둘렀다. 휘둘러진 검은 검은 면을 형성하여 데이비드의 검을 막아냈다.

이어진 명설의 공격은 데이비드를 베며 팔을 위로 하여 올린 검을 한바퀴 돌려 아래에서 위로 베는 검이었다. 그림자가 응축된 묵빛검은 흡의 묘리와 함께 인력을 형성했고, 상대의 검이 맞닿는 순간 자신의 의지대로 흐름을 이끌어갈 것이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태극검공의 핵심 원리를 검으로 구현하여 흡이 만들어내는 인력의 흐름을 그대로 타고 흐르며 검을 엮어냈다. 오히려 흐름을 빼앗기는 것은 명설. 그러나 명설은 기술이 통하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고 과감히 기술을 풀었다. 부딪히는 소리조차 없이 떨어진 검이 서로의 몸안으로 당겨지고 다시 한번 휘둘러졌다.

경으로 속을 찾았다. 데이비드의 검이 허공을 베고 날았다. 강으로 속을 구현했다. 명설의 검이 공기를 찢고 나아갔다. 둘 모두 속검. 그러나 담긴 묘리가 달랐다. 비슷한 경지의 무인들조차 눈조차 한번 깜빡이지 않고 새겨놓을 싸움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이것이 바쁘기 그지 없는 전투 상황이 아니었다면 눈에 실핏줄이 터지더라도 단 한 동작조차 놓치지 않을 것이었다. 수많은 실전을 경험한 무인이 순간순간 사선을 넘나드는 전투 속에서 성장하는 모습은 뭇 검을 들고 무도를 걷는 이들이 누군가는 자괴감을, 누군가는 자극을, 누군가는 동경을 얻을만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모든 전장의 모든 이들은 제각기 목숨이 흔들리는 줄 위에 있었고, 사소한 것이라도 쓸데 없는 것에 정신이 팔린다면 그것을 놓치지 않을 사람들에게 살해당할 것이다. 그렇기에 둘의 전투는 눈을 뗄 수 없을만한 성질이었지만 누구도 제대로 정신을 팔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방금 한 청년이 그들의 전투에 단 0.3초 눈길을 줬다는 이유만으로 뒤통수에 비수가 박혀 죽었다.

명설은 접전 중 엇박자 발차기로 충격파를 형성하여 데이비드의 흐름에 균열을 형성했고 검을 튕겨낸 동시에 옆구리에 권풍을 날렸다. 데이비드는 그것을 피하기 위해 몸을 튕기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가 읽은 수는 다음 공방에서 데이비드가 매우 불리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라리 그것이 나을 뻔 했다. 그가 물러서며 발생한 잠시간의 틈에서, 명설은 검을 뒤로 잡은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주 날카로운 살기와 함께.

명설은 은밀히 검강을 준비해뒀다.

***

전투가 한창일 때, 선계를 본 뜬 듯한 무당 그룹 꼭대기층. 선계를 더 잘 느낄가 하늘에 가깝게 위치한 그곳에서 인세의 연을 끊은 한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은 시각, 지구상 어딘가에 있던 다부진 노인이 순식간에 모습을 갖췄다. 누구도 그가 거기에 있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

바실리는 차량에 누워있다 잠시 깨어나 품속의 오래된 시계를 꺼내어 들었다. 한 때 빛났을 법한 황동빛 줄은 낡고 삭아 역사라는 이름을 쓰고 있어도 어색할 것이 없어보였다. 그가 시침과 분침, 초침에서 무엇을 보는지는 그만이 알 것이다. 심지어 그는 시간을 보는 게 아니라 시계 그 자체를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열었던 시계를 다시 닫아놓고 의자를 세워 창 밖을 공허히 바라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의지와 계획에 따라 움직였고, 죽이고 죽어나갔다. 자신의 목숨이 누군가의 수작에 의해 달아나고 있다는 걸 안다면 그들은 불쾌하게 여길까? 아니면 지금 상황 자체가 중요하다며 그런 것따윈 신경쓰지도 않을까?

누군가의 의지에 휘둘리지 않겠노라 맹세한 바실리는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직도 아버지가 자신에게 무엇을 바랬는지 모르겠다. 지금의 자신이 당신께서 원하던 모습이었을까? 내가 당신의 눈알을 뽑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고통스러워할지언정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뻐하는 기색 역시 느껴본 적이 없다. 아버지의 눈빛은 언제나 읽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 당시,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보고서 당신께선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왔는지 알고 있다고 느껴졌다.

내가 아버지의 의도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강력한 조직을 만들고 이끄는 것. 누구도 자신의 권위에 함부로 도전할 수 없는 암흑가의 거물이 되는 것. 아버지는 강한 사람이었지만 왕은 아니었다. 아니, 왕일지언정 황제는 아니었다. 그렇게 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 확신할 수 없어서.

바실리는 손을 들어 가슴께에 올려서 살짝 눌렀다. 마치 무언가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금 감각했을 때 다소간의 아쉬움일지, 당연함일지를 느낀 그는 여전히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창 밖에서 눈을 땠다. 이제 곧 끝이 온다. 준비는 끝났으니 자신은 어디에 있든 상관 없다. 단지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는 것만 안다.

그때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바실리는 고개만 살짝 돌려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두 사람이 보였다. 모두가 그들을 바라보았지만 바실리는 그것에 어떠한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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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_Arondite_ | 작성시간 23.03.28 오오오, 초절정 둘이 동시에 나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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