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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ome의 도서관

[현대판타지]암월검문 복수기. (完)

작성자Khrome|작성시간23.05.07|조회수50 목록 댓글 4

핵폭탄이 폭발했을 때, 김명일 회장과 유여기 회장은 그것에 놀라지 않았다. 단지 이후의 수습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올 뿐이니까. 그러나 막대한 화기와 방사능을 감당해야 하는 일은 다소 번거로웠다. 그들은 내력을 끌어올리고 무지막지한 화기를 다뤘다. 그것을 응축시키며 버섯구름을 올릴 정도로 거대한 폭발을 삽시간에 소멸시켜버렸다. 그러고서도 모자라 발생하는 충격파를 수십km에 달하는 자연기의 감응력을 이용해 중화시켰고, 폭발을 위해 소모된 산소는 진공을 발생시켰으나, 두 초절정고수는 공간 자체를 섬세하게, 그러나 거대한 파장을 발생시킬 정도로 타격하여 되돌아 오는 폭풍을 조금 센 바람 쯤으로 만들었다.

신격의 바로 직전에 위치한 이들. 인간 개인으로서 인간이 결코 할 수 없는 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초인들. 수km의 화구와 그보다 더 거대한 폭풍을 단 두명의 힘만으로 제압하는 괴이한 힘. 그럼에도 인간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들의 몸은 이미 외부의 요소를 원하는 것만 받아들일 수 있었기에 방사능은 문제 되지 않았다. 방사능 물질과 방사선은 초절정의 육체와 은은히 흐르는 내력의 방어막이 그것을 막으며, 몸안에 들어온 물질 쯤이야 내력을 움직여 원자 단위로 내보낼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몸 내부와 지근거리에 불과할 뿐 지역 내에 뿌려진 방사능 물질을 다루는 것은 허공섭물과 초월적인 컨트롤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지금 이 핵테러 사건이 온전히 그들의 잘못인 것은 아니겠지만 그 자리에 있었고 그들이 표적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책임추궁이 들어올 것이다.

초절정고수의 어마어마한 위력만으로 덮을 수는 없을테니 위상이 아무리 치솟았다한들 일만 복잡해졌을 뿐이다. 힘으로 찍어누를 수야 있겠지만 이 나이 먹은 자들이 그 부작용을 모를까.

둘은 적당히 현장을 수습하고 이동했다. 아직도 싸우고 있는 두 애송이를 향해.

***

“분명 죽었잖아. 어떻게 다시 살아난 거지?”

데이비드의 질문은, 그 본인은 몰랐겠지만 아주 중요한 질문이었다. 두 초절정고수의 살벌한 눈빛에 데이비드는 당황하며 긴장했지만 명설은 전혀 주눅들지 않고 답했다.

“알아서 뭐하게.”

그러나 그 질문에 대답을 듣고 싶었던 이들의 생각은 그의 태도와 조금 달랐다.

“노부는 듣고 싶군. 들려주겠나?”

핵폭발을 제압한 초절정고수가 듣고 싶다고 한다면 누구라도 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 초절정고수가 그 혼자 뿐이랴.

“흠. 지금이 그럴 시간인가.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차나 한잔씩 하면서 천천히 듣자고. 여기로 사람들이 안 올 거 같나?”

“어찌, 자기 혼자 몰래 듣고 살인멸구라고 할 참이오? 내 당신 수법을 모를 나이는 아닐진데.”

김명일은 재밌다는듯 웃으며 답했다.

“낄낄낄.. 노욕이 많아! 게다가 이 자는 그룹 소속인데 내가 내 직원 챙기는 게 뭐가 이상해? 왜, 아까 하던 거 마저 할까? 자네 핏줄이 어디 멀리 가기 전에 빨리 손을 섞어보자고.”

유여기 회장은 훨씬 무겁고 단단한 눈으로 이들을 둘러봤다.

저 멀리서 사람들이 자신들을 찾고 있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자신도 알 것이니 김 회장도 알 것이다. 그가 단순히 기운을 뿜거나 기세를 퍼뜨리는 것만으로도 알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와의 싸움이 재개되면 데이비드의 목숨은 보장할 수 없고 설령 감수한다 쳐도 일전에 봤던 저 젊은이를 확보한다는 보장도 없을 것이다.

“이전에 했던 질문이 잘못되었군. 되었네. 나중에 봅세.”

유여기는 한숨이나 쉬고는 그렇게 말했다. 그가 말하는 나중에 보자는 말은 결코 그냥 하는 말이 아닐 것이다. 저 수준에 도달한 자들의 말은 무엇이든 가벼운 단어가 없다.

“나중 일은 나중으로 두고..”

김명일은 채명설을 허공섭물로 들어올리곤 숲 저 멀리를 바라보았다.

“발칙한 노인네 하나 혼내줘야겠군.”

그 늙은이 옆에 있는 젊은이가 누구인지는 알았으나, 걱정하지는 않았다. 김명일 회장이 마음 먹으면 손짓 한번, 아니. 첫 수가 가볍다면 두번 정도까진 버티겠지만 애초에 그런 일이 구태여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

“어디서 봤더라.. 아, 그 벨라루스 마피아 왕초 아니신가.”

기천의 당당한 말에 바실리는 창문을 내린 차에 팔을 걸치고 고개만 돌려서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실패한 모양이다. 폭발로 솟아오르는 화구는 두개의 점이 되어 소멸했고 사람이 터져 죽을 수도 있을 법한 폭풍이 센 바람 정도가 되었으니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가 없다. 단지 레프의 죽음만이 아쉽지만, 그런 것 역시 이젠 아무래도 좋았다.

“초면인 거 같소만.”

“아, 그렇지. 우린 초면이지. 하지만 나도 나름대로 보고 받고 공유받는 정보들이 있어서 말이야.”

기천은 성큼성큼 걸어와 차량 천장에 팔을 하나 두고 다른 한손은 허리춤에 올리고 구부정한 자세로 그를 내려다봤다.

“저게 당신 작품이지?”

“두 노인들 작품이지.”

“역시 당신이었군.”

기천의 얼굴을 살벌했고, 그런 만큼 농밀한 살기를 뿜었으나 바실리에겐 산들바람이 얼굴을 간지르는듯 변화가 없었다.

“흥, 반응이 없으니 재미 없구만.”

살기는 억눌렀으나 그게 아무렇지 않다는 말은 아니었다.

“당신을 살려서 가져갈지 죽여서 가져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가.”

기천은 허리를 펴고 주변을 슥 둘러보더니.

“하지만 단 둘 뿐인 상황은 언제나 대화하기 좋은 상황이란 말이야. 몇가지 질문을 하겠다. 거기에 순순히 답한다면 최소한 당장은 몸 멀쩡히 데려가주지.”

아주 무서운 말이었으나 바실리는 여전히 남 일인듯 했다.

“고맙군.”

“부활장치에 대해 아는 게 있나?”

바실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모르겠군. 대신 다른 정보를 알려주지.”

기천은 그의 대답에 강렬한 위기감을 느꼈다.

“김명일 회장이 그걸 찾고 있을 거다.”

그순간 바실리의 머리가 터져버렸다.

“…”

얼굴에 튄 피와 뇌조각, 살점을 슥 닦아낸 기천이 먼 곳을 바라보았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채명설이라는 놈이 정보를 흘리기 전 그를 죽여야 했다. 그 정보를 가질 생각도 없었다. 심지어 이건 유 회장님을 위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

기천이 바실리와 만나기 조금 전. 국정원 친구들이 그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들은 이북에서 헤어진 이후 꾸준히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그들은 상부가 자신들에게 불충분하게 제공해준 정보의 빈곳을 채워낼 수 있었다. 부활장치에 대한 루머는 한 때 유명했지만 지금은 기억하는 자들이 거의 없다. 하지만 거의 없다는 건 누군가는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건 통제할 수 없는 음지에서 더 오랫동안 남아 있을 개연성을 의미했다. 물론 음지의 사정 나름인지라 오히려 음지이기 때문에 쉽게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들도 많았지만, 그들이 찾은 부활장치에 대한 루머는 아주 나이든 마약상에게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걸 기반으로 가설을 세우고 사실의 빈 공간을 채워봤다.

“그래서, 그 장윤구.. 아니. 채명설이라는 자가 부활 장치로 부활했을 거라고?”

-그래.

“그런 거 말해줘도 돼?”

-원랜 안 되지. 비밀 보호 조항까지 어겨가면서 말해주는 거야.

“근데 말해주는 이유는?”

-우리 둘만으로는 해결할 수도, 먹기에도 껀이 크거든. 솔직히 위에서는 아직도 감을 제대로 못 잡은 건지, 아직도 채명설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어.

기천이 웃으며 말했다.

“니가 보고를 안 했으니까 모르겠지.”

-어허, 충분한 정보가 모이고 적절히 정리가 되어야 보고서에 올리고 하는 거지.

“정례 보고서는 뭐고 임마.”

-여튼, 그 채명설이라는 놈. 생포해야 한다는 거야. 지금 우리도 가고 있는 중이야. 이것저것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이 많고 곤란한 것들이라 당장 처리해야할 거 몇개만 넘겨야할 필요가 있을 뿐이지.

“흐음.. 일단 알았다. 난 잠시..”

그의 눈에 들어온 차량 하나.

“사람 좀 만나봐야 할 거 같아서.”

***

“이런, 벌써 죽었나? 내 손으로 직접 혼내주려고 했는데.”

기천은 허공에 기척 없이 등장한 한 노인과 젊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노인을 바라보기 전까진 있는 줄도 몰랐는데, 보자마자 어마어마한 기세와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럼에도 그는 주눅들지 않았고, 받아 흘리는 것도 아닌 맞부딪혀 자기 영역을 지켜냈다.

“오, 확실히 재능은 있군.”

그러면서 붙혀보면 재밌을 거 같다는 눈으로 명설을 돌아봤는데, 흠.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기천으로 눈을 옮겼다.

“회장님께서 손을 쓰신 겁니까?”

기천의 말에 명일은 대답했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지금 죽인 건 아니고.”

“금제?”

“아마 본인은 모르겠지만.”

김명일이 바실리에게 금제를 걸 때, 그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좀 더 포괄적인 것. 그 내용은 자신에 관한 정보를 발설하지 않을 것.

“책임소재를 가릴 사람이 죽었으니 그또한 회장님 부담이 되실텐데요.”

“나라고 이눔이 죽을 줄 알았나? 초절정이라고 세상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야. 자네 할애비도 그렇지. 클클클…”

조금 곤란한 이야기였지만 기천은 화제를 바꿨다.

“어차피 멀리서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으셨을 분이 금제 때문에 죽는 걸 막지 못했다는 말을 하셨으니 그렇게 알겠습니다. 따로 할 이야기가 없으시다면..”

“어차피 멀리서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인간이 자네가 친구들과 나누던 대화를 모를 거 같나? 자네가 이 지역에 들어왔을 때부터 난 자네를 지켜보고 있었거든.”

기천이 긴장하며 내력을 끌어올렸다.

“프흐흐.. 쫄기는. 그 친구에게 전해주시게. 이 친구를 보내주긴 어려울 거라고.”

“다시 태어나실 셈입니까?”

목숨을 건 질문이었지만 김명일은 또 한번 크게 웃었다.

“프하하하하하! 내가 아니라고 말해도 안 믿을 거지?”

기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친구를 줄 순 없겠어.”

그러면서 다시 이동하려던 때. 명설이 말했다.

“거래합시다.”

기천과 명일 모두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자신이 왔던 곳을 바라보고 또 한번 말했다.

“거래합시다.”

그러자 유여기 회장과 데이비드 역시 현장에 나타났다. 허공을 접어 걸어온 것처럼.

“받지 않겠네.”

유 회장은 그렇게 답했다. 그가 무엇을 걸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고려그룹 손에 기술과 장비가 모두 넘어갈지 모를텐데요?”

“난 그가 그 장비를 오용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그러기엔 회장님께서도 욕심이 나셨던 것처럼 보였는데요.”

어느새 현기 넘치는 허허로운 눈빛을 한 유 회장은 그것에 동요하지 않았다.

“그랬지. 하지만 그런다고 바뀔 수 있을까. 다시 태어난다고 내 모든 죄를 없던 것으로 할 수 있을까. 이 나이에 이 정도 경지라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있고, 자연스레 통하는 게 있다. 하지만 너무 위험한 기술과 장비인 것도 사실이지.”

명설은 그 허허로운 눈을 욕망이 묻어나오는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 당신 손자.. 데이비드의 목숨을 제게 넘기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제게서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을 겁니다.”

그건 모두에게 하는 말이었다. 설령 초절정고수가 직접 손을 쓴다 하더라도 그는 정보를 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허허.. 저 노인이 핵무기를 사용한 이유는 알 법하네. 그룹의 미래를 없앨 요량이었겠지. 무당그룹 본사를 터뜨린다 한들 내가 살아남았다면 무당의 맥은 끊어진 것이 아니고 내가 죽었다면 무당에 아무리 많은 고수가 있다 하더라도 경쟁할 수 없었겠지.”

무당그룹을 없애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바로 어떠한 외력과 내부적 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초인을 없애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외부의 힘은 무력하고 내부의 혼란은 말 한마디로 간단히 진압된다. 반대로 초절정고수가 없는 무당그룹이라면? 무수한 고수와 시스템이 있기에 당장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혼란을 만들어 흔들 수는 있고, 크고 작은 타격으로 깍아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고려그룹이 작정하고 한다면 상당한 출혈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고수들 위주로 죽거나 실각한다면 무당의 가르침이 얼마나 수월하게 전달될 것인가. 또한 얼마나 많은 도전들을 목도해야 할 것인가. 문파를 지키기 위해 초고수들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했던가. 고작 그 한두 명의 죽음만으로 몰락과 성공이 나뉘던 문파들이 역사에 얼마나 많았던가. 만약 핵테러가 성공적으로 초절정고수를 죽일 수 있었다면 아주 큰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핵으로도 제압하지 못했다는 사실 역시 아주 큰 변화를 만들 것이고.

“그러나 이젠 아니네. 난 내 손자가 죽길 바라지 않아. 이 아이야말로 무당의 미래니까.”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고 죄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안다네. 알아. 그러니.. 이렇게 하지.”

그는 입술을 달짝이더니 이내 전음으로 명설에게 말했다.

-때가 되면 자네 손에 죽어주겠네.

폭탄발언. 그러나 명설에겐 무가치했다.

“그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닙니다.”

그말에 유여기는 드물게 웃음을 흘렸다.

“허허허허… 당돌하군. 과연 무당그룹의 본사를 단신으로 숨어들어올 배짱이 있었나.”

-저 아이는 아무 것도 모르고 한 일일세. 그저 열심히 할 뿐이었던, 악에 받혔던 어린 녀석이었어. 자네 아비의 죽음을 내 죽음으로 갚겠다는 걸세.

명설 역시 전음으로 답했다. 유 회장의 전음이 어떤 내용인진 김 회장 역시 모르겠지만, 명설의 전음 정도는 훔쳐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정도는 감안하기로 했다.

-모른다고 죄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게 정말 죄인가?

-도사의 말장난이라면 피하겠습니다. 전 그걸 죄라고 부를 것이고 그렇게 다룰 겁니다.

-그런가..

협상의 여지는 없어졌다. 그렇다면 이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 자신이 설정한 선을 지키는 것 뿐.

“난 이 아이가 죽게 두지 않을 것이고, 이 아이가 남을 죽이는 것도 원하지 않네.”

자신을 두고 이야기가 오갔음을 직감한 데이비드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런 데이비드의 어깨에 기천이 손을 올렸다.

“내가 죄를 짊어지는 게 두렵진 않지만..”

손자를 지키기 위해선 살인을 천명한 자를 죽이는 게 가장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걸 두고 보지 않을 김명일을 바라보자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래도 늙은이들이 끼어들 일은 아닌 거 같고..”

남은 건 하나.

“젊은이들끼리 해결할 수밖에 없겠군.”

하지만 그게 옳은 일인가? 앞으로 무슨 일들이 벌어질 지 뻔히 알면서.

“이렇게 하세.”

협상에는 조건이 붙는 법.

“내 손자를 3번 죽일 기회를 주겠네. 언제가 됐든, 자네의 검으로 내 손자와 싸울 기회가 생길 것인데, 만약 그 3번의 싸움으로 죽이지 못한다면 복수는 포기하게.”

물론 타인에 의해 그 전에 죽을 수도 있고.

“제가 얻을 것은?”

“부활장치에 대한 모든 외압과 접근에서 보호해주지.”

유여기는 김명일을 바라보았다.

“흠. 난 아쉬울 게 없는데?”

“정말 그렇소?”

유여기의 조건은 부활장치에 관한 것 뿐. 명설의 목숨엔 아무런 조건도 붙히지 않았다.

“낄낄낄.. 교활한 늙은이 아니랄까봐..”

정말 아무 상관 없다면 명설이 죽든 말든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부활장치에 대해 함구하고 건드리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저 꼬맹이가 이 녀석을 죽이지 못하게 하세.”

명일은 유기천에게 턱짓했다. 지금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있을만한 후기지수 중 최강.

“흠.. 좋소.”

그 과정에서 데이비드는 누군가가 살해당할 이유가 되고 명설은 필요하고 할 수 있다면 누구든 죽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걸 알면서 하는 거래이다. 결코 도덕적이지도, 선하지도, 도사답지도 않은 잔혹하고도 비열한 거래.

아마 명설은 고려그룹을 이어받을 것이다. 김명일이 채명설에게 무엇을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초절정고수의 안목이다. 유여기 역시 이 젊은이가 보이는 것보다, 느껴지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걸을 안다. 천기를 읽을 수 있기에. 고개를 들고 하늘을 읽은 유여기는 생각했다.

‘본래라면 평범한 고수가 되었을 젊은이가.. 손자와 얽혀 순리가 뒤틀렸구나..’

내려놓았기에 보이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신선에 조금 더 다가갔던 것일까? 결코 다다를 순 없지만 아주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걸 안다. 그렇기에 보이는 것보다, 느껴지는 것보다 더 큰 존재가 될 것이다. 명설에게서 느껴지는 위화감은 존재감에 비해 뛰어난 경지. 데이비드는 자식의 실수이자 오점이었다. 그 대가로 아들은 죽었고 데이비드는 원치 않게 무당의 품에서 검을 들게 되었다. 아버지에게 버려진 자식. 남편에게 버려진 아내. 어미의 한을 대신 품은 아들. 어째서 그토록 훌륭했던 아들은 데이비드를 낳았는가.

천기가 얽히고 순리가 뒤틀렸다. 그리고 그 끝은…

‘사람이 볼 것이 아니었구나.’

알았을 리가 없다. 의도한 것도 아닌 그저 우연이었을 것이지만, 어쩌면 그 편린은 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들은 손자의 어미를 사랑했을까. 아마 그랬겠지.

선기 어린 눈을 거두고 두 젊은이를 바라본 유여기는 이것으로 끝맺길 바랬다.

“그럼 오늘은 물러납시다.”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훤했기에 김명일은 급격한 귀찮음을 느끼며 돌아가고 싶어졌다. 뭐, 자기 비서한테 다 짬칠 거긴 하지만.. 그럼에도 귀찮아질 일은 꽤 있을 것이다.

“쯧. 대중에게 서는 것도 얼마만인지..”

사실 그런 적 없었으면서.

***

유여기는 수십년만에, 김명일은 사상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나오며 피해 회복과 복구, 사건 진상에 대한 증언을 해야 했다. 물론 국회청문회에서조차 그들에게 함부로 질문하는 깡을 지닌 멍청한 정치인도 없었기에 무난하다못해 초절정고수에게 제압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지만 그 파장은 거대했다.

무당그룹과 고려그룹은 이전과 비교가 안 되는 어마어마한 위상을 얻었고 그만큼 어마어마한 두려움을 사야 했다. 그리고 정사대전 당시 현장에 있던 정사파 인원들에게 이름을 알린 몇몇 고수들 중 가장 윗줄에 꼽힐만한 둘.

데이비드 리와 장윤구라는 이름. 물론 장윤구라는 이름이 가명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었고, 몇개의 가명과 함께 채명설이라는 본명 역시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의 무공이 그림자를 쓴다는 것에서 기인하여 온갖 사람들이 꼬인 결과 그의 뿌리가 암월검문의 채가라는 것이 알려지며 확정되었다.

무당그룹의 데이비드 리와 고려그룹의 채명설.

항간에선 유기천을 더 높게 치는 경우가 있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이들은 서로 직접적인 대결을 제대로 펼친 적이 없기에 누가 더 윗줄이냐는 언쟁에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데이비드와 채명설의 전투에 개입하지도 않았으니 호사가들에게 많은 말들이 나올 떡밥이 되었다.

무당그룹과 고려그룹은 확장과 견제,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였고, 데이비드 리와 채명설은 그 이름이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았다. 현 세대 가장 강한 자들이자 가장 위험한 자들.

약 20 뒤.

“정말 싸우셔야겠습니까?”

박현진 회장비서는 이제 새로운 회장이 될 사내의 등 뒤에서 여쭈었다. 부쩍 늙었지만 그의 통찰과 총기는 오히려 날카로워졌다.

“마지막 기회잖나. 언제까지 미뤄둘 순 없어.”

채명설 부회장은 정작 외투의 버튼을 잠그며 등 뒤로 말을 넘겼다.

“회장님께서 돌아가신지도 꽤 됐습니다. 고려그룹이 당신마저도 잃으면..”

그날 이후 뒷수습, 그 이후 후계에게 넘길 인수인계. 그 뒤론 신분을 감춘 채 그저 유명한 댄서로 활동했다. 유여기 역시 신분을 감춘 채 사람을 속에서 사람을 도우며 사람과 함께 살았다. 그러며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떴으니 남들 모를 합의라도 있었을까. 최소 100살을 넘긴 이들이 은퇴까지 했으니, 어쩌면 위치와 과거를 접고 느껴지는 유대감이라도 있었을지도 모를 일.

“이미 느껴지고 있네. 지금이 아니라면 다음은 없다는 걸.. 아마 그 친구도 그렇게 느끼고 있겠지.”

두번의 싸움이 있었다. 그러나 두번 모두 무승부. 치명적이고 위험한 싸움이었으나 명설을 그를 죽이는데 실패했다. 데이비드는 그를 죽일 수 없다는 패널티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이겠지. 무당이 담은 태극의 묘리는 원래 그런 것이니까.’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며 후발제인에 뜻이 있기에. 그도 알고 있다. 유여기 회장은 자신을 재료로 손자를 강하게 만들 생각이었음을. 그러나 그것은 김명일 회장도, 그리고 자기 자신도 알고 있었다. 자신 역시 강해졌으니까.

“걱정 말게. 내가 진다 하더라도 내가 죽는다는 말은 아니니까.”

단지 죽을 때까지 무당에 검을 휘두를 수 없을 뿐.

…아버지의 복수를 포기해야 할 뿐.

…사실..

이제 정말 그것을 위해 검을 휘두르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많은 것을 풍화시키고, 억지로 불을 피우고 증오에 정신을 태워도.. 시간은 정말 많은 걸 바꾼다.

검이 무뎌지진 않았다. 단지 검을 휘두를 이유를 잃어버릴 뿐. 그렇기에 지금 뿐이다.

그래서 가끔 생각한다. 차라리 내가 그놈 손에 죽더라도 끝까지 덤벼야 했고, 그놈 손에 죽어 무당의 미래를 거세해야 했다고.

후우…

명설은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 속 앙금을 담아서.

“준비나 철저히 해놓도록.”

“…예.”

박현진 회장비서는 그의 등에 허리를 굽히고 연무장을 빠져나왔다. 명설은 오래전 훔친 검을 기반으로 새롭게 만든 암월검을 검집에 꽂기 전에 바라보았다.

빛을 반사하지 않는 묵색검. 수많은 피를 먹었으나,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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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저찌 대충 끝. 계획이나 스토리 같은 거 안 정하고 대충 몇몇 장면만 생각하면서 쓰면서 스토리를 끌어간 거라 되돌아보면 구성이나 캐릭터 역할 등등 개판이긴 하지만, 아무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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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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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통장 | 작성시간 23.05.07 고생하셨습니다. 애독자는 아니지만 글이 시작하긴 쉬워도 완결 내기가 어려운데, 그동안의 근성에 감탄했습니다. 다음 단편도 기대하겠습니다.
  • 작성자_Arondite_ | 작성시간 23.05.07 복수를 못하고 끝나는 복수기라니 이런 세상에! 해피엔딩은 노인네 둘뿐이군요. 데씨랑 채씨중에 누가 더 불쌍한거지 ㅁㄴㅇㄹ
  • 답댓글 작성자Khrom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5.08 누굴 죽일까 싶었는데 그냥 결정 못하겠다 싶어서 열린 결말로 정했습니다. 노인네 둘 다 입신을 목표로 했지만 길을 너무 늦게 깨달은 관계로 어찌해야 할 지 길을 알면서 포기하게 됐다는 점에서 꼭 좋은 건 아닐지도요.
  • 답댓글 작성자_Arondite_ | 작성시간 23.05.08 Khrome 어쨌든 마지막엔 자기들 하고픈대로 살다 간 것 같아서 말이죠.
    하여튼...96화까지 쓰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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