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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ome의 도서관

[SF]게놈 메시지 (3)

작성자Khrome|작성시간23.06.22|조회수44 목록 댓글 1

결국 1차 징계위원회의 결론은 6개월 감봉이라는 임시적 조치였다. 둘 모두. 이는 MIT 내부에서만 발생한 게 아니라 여러 대학들이 함께 엮인 일이기 때문에 내부적 징계에 대해서는 각 대학의 자율이 보장되지만 법적인 처벌로 이어질 경우 고발부터 시작해서 재판까지 이어져야하며, 그러한 필요성이 있다면 하겠지만 각 대학 가담자들이 서로 다른 처벌을 받는다면 공정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아예 어떤 대학에선 재판까지 갔는데 어디에선 묻겠다고 한다면 그 또한 문제일 것이고.

횡령이라고는 하지만 하루 비용을 계산했을 때 약 3100달러 정도로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만 대학 재정에선 충분히 감당 가능하다. 무엇보다 괴짜 학자들끼리 모여서 허황된 짓을 하다 재판까지 간다면 여러 모로 대학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라는 내부적인 계산도 있었고 말이다. 이 부분에서 최대한 입을 턴 것이 바로 맥코이 댄버스 학장이었다.

그러나 1차라는 말에서처럼 2차의 경우 피해를 입은 대학끼리의 긴밀한 논의를 통해 재판까지 갈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든 자기들 선에서 덮을 것인지, 덮는다면 대체로 어느 정도의 선에서 수습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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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

로랑이 자기 사무실인 양 윌로트의 사무실 의자에 앉아 그의 책상에 상체를 얹으며 뚱한 표정으로 턱을 올려 놓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인 거지. 앞으로 대출금 갚을 생각하니 막막하긴 한데, 뭐 별 수 있나. 짤린 것도 아니고. 여기서 이런 걸로 짤리면 후진 곳 말고는 재취업할 구석 없는 거 알지?”

자신의 의자를 빼았겼지만 그 대상이 괴짜 제시카라는 걸 잘 아는 윌로트 배런포드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자기 책상 구석에 걸터 앉아선 후진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말할 때만 양손가락 두개를 두번 접었다 폈다 하는 식으로 강조하며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감봉이 중요한 게 아니야. 결국 대학은 우리가 구성했던 공조 시스템을 그대로 빼먹을 거라고. 나중에 공동연구라도 한다 치면 어디서 많이 본 체계로 돌아갈 걸?”

“그동안 슈퍼컴퓨터 자원을 공유하는데 소극적이었던 것이지 언제고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했지. 당장 자기들 프로젝트에 쓰느라 공조 시스템 만들 여유가 없어서 그렇지.”

그래도 배아픈 건 배아픈 것이었다.

“그래도 좋게 생각하자고. 학장님은 공으로 과를 덮을 수 없다곤 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거야. 자기들 돈 나가고 귀찮을 일 대충이나마 대신 해줬으니 여기서 더 크게 나빠지진 않을 거라고. 사람 일이라는 게 그런 거지.”

로랑은 책상에서 몸을 떼고 배런포드의 의자에 몸을 기댔다. 조금 끼릭 거리는 소리가 오랜 세월, 혹은 내구도에 문제가 생길 만큼의 반복성을 증명했지만 결국 부서지거나 고장 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기에 의자에 누운 채 말했다.

“내가 진짜 짜증나는 게 뭔지 알아? 아니, 알겠지. 분명 우리 연구는 미흡한 부분이나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순 있지만 충분히 증명 가능한 결과를 만들어냈어. 그리고 그건 학술적으로 분명한 의미를 지닌 결론이었고.”

그녀의 입에서 뭔가 더 나올 것 같아서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지만 로랑은 오히려 눈을 반짝였다. 배런포드는 먼저 선수쳐야겠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안 돼. 안 된다고. 우리 아직 징계 중이야.”

그가 책상에서 일어나 그녀를 마주보면서 손가락을 좌우로 움직이며 안 된다는 신호를 줬지만 그딴 건 로랑의 의지 앞에 흔들리는 갈대 수준이었다.

“우리 이거 공개해버리자.”

“야! 내가 방금 안 된다고 했잖아!”

똑똑똑.

“누구세요?”

누군가의 노크에 로랑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보다 장난스럽게 물었다.

“내 사무실이야, 이 녀석아. 누구세요?”

로랑보다 일어나라는 손짓을 하고 물었다. 로랑은 훌쩍 일어나 윌로트의 책상 한 구석에 엉덩이를 올렸다.

“저예요, 교수님.”

귀여운 여학생의 목소리는 조금 조심스럽게도 느껴질 정도로 긴장이 느껴졌다.

“애니! 그.. 아니, 아니다. 들어와.”

배런포드는 로랑을 슬쩍 쳐다봤지만 그녀는 오히려 장난기 머금은 웃음을 걸고 그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그녀가 이 사무실에 있다는 걸 애니도 알고 있으니 뭐 별 수 있나.

문이 열리고 애니 유로스가 문 손잡이를 잡은 채 몸을 반쯤 밀어넣고 말했다.

“아, 로랑 박사님.”

로랑은 귀여운 대학원생의 긴장이 지난번 밀회? 직전에 들켰던 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유로스양.”

애니 유로스는 윌로트를 보고 용무를 전달했다.

“학장님께서 부르세요.”

로랑은 배런포드를 쳐다봤고, 배런포드 역시 그랬다. 그리고 유로스의 말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로랑 박사님도요.”

그들은 서로를 다시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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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버스 학장은 드물 게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그의 몸집이 서있는 것보다 앉아 있는 것에 더 적절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일어나서 손에 든 서류를 들여다 보고 있는 건 희귀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쓰고 있던 안경을 책상에 내려놓고 자리에 앉고는 착석해 있는 그들에게 질문했다.

“여기로 부르기 전.. 32분 전에 이 자료가 인터넷에 올라갔다네.”

로랑과 배런포드는 또 한번 서로를 바라본 뒤 답했다.

“저흰 아닙니다.”

“그렇겠지. 아무리 자네들이 괴짜라도 1차 징계위원회가 끝난 다음날 바로 이런 사고를 칠 정도로 멍청한 건 아니니까.”

배런포드는 자신도 괴짜로 포함되는 것에 억울했지만 모임에 포함된 구성원이라는 점이 자신을 변호할 수 없게 만들었다.

“누가 올렸는지는 확인 안 했네. 사실 하긴 했는데, 우리 대학 구성원이 아니라는 점만 확인하고 무시했기에 기억에 남진 않더군. 누군진 몰라도 그 대학 징계위원회는 머리가 아프거나 일이 편해져서 좋든가 하겠지. 어쨌든, 내가 부른 이유는 이상한 헛짓거리 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고.. 자네들이 어떻게 생각했든, 난 자네들의 상사로서 책임자의 위치에 있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자네들의 징계에 대해 나름대로 힘을 쓰고 있단 말이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기에 개소리처럼 들렸지만 그걸 입에 담을 정도로 멍청한 사람이라면 사회성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거나 아주 대단한 친화력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감봉 6개월에서 징계 내용이 크게 변하지는 않을 거라는 이야길세. 내가 그렇게 힘을 쓸 것이기도 하고.”

물론 다음 연구 프로젝트, 정부 및 기업 연구를 포함해 예산 배당에 있어서도 아주 불리하겠지만.

“감사합니다, 학장님.”

배런포드는 예의상이라도 감사를 표했지만 로랑은 여전히 뚱했다. 그러나 댄버스는 상대의 태도에 무신경할 정도로 뻔뻔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자네들의 연구 말이야.”

로랑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객관적으로 말하지. 연구방법론에서 큰 비판이 있을 거라는 건 예상하지만, 그 부분이 참이라 넘어간다면 연구 결과는 어쩔 수 없이 흥미롭다는 걸세.”

어쩔 수 없이라는 부분은 걸리지만 자신의 연구를 긍정적으로 바라봐주는 건 누구라도 좋을 일이다. 다만 로랑은 댄버스 학장의 저 말이 단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 결과가 영 사이비스러워서 그렇지. 너무 시끄럽게 만들지만 마시게.”

보신을 위한 말들. 결국 책임만큼이나 배려를 해줬으니 시끄럽게 만들지 말고,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거든 자신에게까지 불똥이 튀지 않게 해달라는 이야기였다. 학장의 말 없는 축객령에 눈치껏 밖으로 나간 둘은 학장실 앞에서 기다리는 눈에 띄는 행동 대신 복도 멀리서 기다리던 애니 유로스를 보았다. 그녀는 걱정된다는 태도가 눈에 보일 정도였다.

“어떻게 됐어요?”

“어떻기는.”

애니의 질문에 배런포드는 덤덤히 답했다. 별 건 없었고 앞으로 큰 일은 없을 거라고.


***


업스테인은 자신의 관종병을 새삼 다시 느꼈다.

“흠, 분명 올바른 판단이었을텐데.”

그러나 그가 몸담은 하버드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즉각 열린 그만을 위한 2차 징계위원회는 그에게 4개월간의 감봉을 같은 기간 동안의 무급 근무로 변경하여 명령했다. 징계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은 태도가 표면적인 문제였다.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징계의 핵심은 절차를 무시하고 대학 자원을 유용한 횡령이었기 때문에 그 횡령이 어떤 연구를 위해서였으니 그 연구 결과를 공개해버리는 건 징계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물타기 내지는 유치한 반발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업스테인의 판단은 별로 대단찮은 이유에서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이미 연구 결과에 대해선 공개하자는 사전 합의가 있었고, 플린 업스테인은 그저 징계는 징계고, 연구 대충 끝났으니 공개할 건 공개하자는 것이었다. 물론 논문 수준은 되지 못하고 어디까지나 1차적인 근거와 결론 정도로만 구성된 하나의 보고서 쯤에 더 가까운 물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술 사이트에 그대로 올려버렸으니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어떻게 보였겠는가.

“쯧쯧.. 그러니 좀 튀지 말라고 몇번을 말하나.”

업스테인이 벤치에 앉아서 중얼거릴 때 그 옆에 앉은 건 그를 가르치며 박사 학위까지 인도해준 언어학 교수 하비에르 콘테인이었다.

“학자가 당연히 연구해야 할 것을 연구한 것 뿐인데요, 교수님.”

콘테인은 업스테인의 말을 들으며 이렇게 하는 말만 들으면 정상적인 훌륭한 학자처럼 들리겠거니 생각했다.

“내용은 좀 보셨습니까?”

“전혀. 난 그런 괴짜들 놀이에 어울리기엔 너무 나이 들었지.”

업스테인은 언제나 같은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입에 걸며 말했다.

“학자가 재밌는 연구 주제 파는 게 무슨 놀이랩니까, 원래 일은 노는 것처럼 해야 잘 된대요.”

“그래서 징계까지 받았나? 감봉도 아니고 무급근무라니, 자네가 결혼을 안 해서 망정이지..”

하얀 머리에 하얀 수염, 입가를 가릴 정도로 풍성하게 기른 수염 때문에 그는 아주 진중해보이고 하는 말마다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학부 시절부터 그의 아래에서 수학했던 업스테인은 그저 말을 조금 짓궂게 할 뿐인, 사려깊은 노인네라는 걸 잘 안다. 원래 늙은이 말투가 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도 위로해주기 위해 이렇게 바깥바람 맞고 있으니.

“혹시 모르죠. 이 연구가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작업이 될지.”

“젊은이들 생각은 참 모를 일이구먼.”

콘테인은 품에서 최소 30년은 됐을 담배 파이프를 꺼내 담배를 담고 불을 붙혔다. 업스테인이 담배 연기를 싫어하기에 이제 그만 가보라는 그만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다.

“젊어보신 적 없어요?”

“놀아본 적이 없는 게지. 이만 가보시게. 이 늙은이는 담배 좀 즐기다 들어가지.”

그의 진중함은 그가 살아온 삶의 족적을 그대로 반영한 모습이리라.

업스테인은 자신의 지도 교수를 뒤로 하고 자기 사무실에 막 도착할 무렵 그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여보세요?”

-업스테인 박사님? 아까 올린 자료 봤는데요.

질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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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_Arondite_ | 작성시간 23.06.23 흐흐흐흐흐 불씨는 당겼으니 이제 활활 타오를 차례네요. 불타올라라 인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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