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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ome의 도서관

[SF]잿빛 클로버 (2)

작성자Khrome|작성시간23.10.07|조회수30 목록 댓글 2

탈탈탈탈탈탈탈탈…

한 때 푸른 숲이 존재했던 시절, 그들의 조상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아침에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언제나와 같은 바람소리와 가정용 소형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소리로 아침을 맞이한다. 변화가 없는 삶이란 같은 절차를 거쳐 하루를 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침에 일어난 한스, 에반젤린 남매의 삶도 그와 같다. 에반젤린은 아침에 일어나 비닐을 둘러 만든 하우스와 그 안에서 자라나는 식물들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상한 것이 있는지, 열매가 먹을 만큼은 익었는지, 흙이 얼마나 젖었고 말랐는지, 혹여 쥐의 침입은 없었는지를 말이다.

그러고는 비닐하우스 윗부분을 바깥에서 누르는 막대에 의해 모인 물기들은 그 아래 받쳐놓은 오래된 금속 물컵으로 모였으니 그 양을 확인하고 천 따위에 적셔 몸을 닦거나, 마시거나, 다시 식물의 뿌리에 뿌려주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한스는 마른 수건으로 얼굴을 적당히 닦아내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냉장고에 보관된 쥐고기와 통에 보관된 벌레 몇마리를 익힌 뒤 냉장고에서 물기가 좀 빠져 모양이 망가진 방울토마토 몇개를 꺼내 먹었다. 충분하다고 말하긴 어려운 양이었지만 모두가 그렇게 산다. 먼지와 가스가 세상을 뒤덮은 뒤, 배불리 먹은 사람이 있기는 할까.

집안의 두번째 통로, 흔히 복도라 부르는 구간에서 슈트와 헬멧을 입고 거실로 나왔다. 그가 하는 일은 금속 가공. 물론 산소가 없는 곳에서 불을 쓸 수도 없고 산고 용접기 같은 건 설령 있다고 해도 산소가 목숨줄이나 다름 없는 사회에서 함부로 쓸 수는 없다. 물론 이 마을에 그런 게 있을 리도 만무하지만..

따라서 한스의 금속 가공이란 금속 조각을 갈아내거나 망치로 때려 모양을 잡는 일을 말한다. 이미 잘 만들어진 금속이야 어디에나 있으니 대충 주워오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그렇다고 정말 품질이 좋은 금속은 거의 없는데, 오랜 시간에 의해 마모되거나 삭거나 하는 등 좋은 금속을 구하는 것도 일이다.

한스는 거실에서 어제 하던 작업을 마저 이어서 작업했다. 그가 하는 일은 길고 폭이 손바닥보다 조금 좁은 금속을 갈아내어 마체테를 만드는 일이다. 손잡이 부분을 좁고 길게 깍아내어 모양을 잡는 게 중요하다. 적절한 무게 중심을 찾기 위해서이다. 굳이 이걸 산소를 소모해가며 밖에서 해야 하느냐 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집안에 있어도 산소는 소모된다. 게다가 그럭저럭 청정 지역을 유지해야 하는 집안 공간에 쇳가루가 날리는 것보단 낫다. 소모되는 산소의 양을 계측할 수 있고 그것에 따라 작업 시간을 가늠하거나 계산할 수 있으니 거실에서 작업하는 것이다.

퉁, 퉁, 퉁.

탈탈 거리는 소형 풍력발전기 사이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한스는 거실 한쪽에 놓여져 있는 .38 스페셜탄을 쓰는 리볼버 권총을 하나 들고 문앞에 섰다.

-누구십니까?

-나야! 빅커스!

한스는 문의 미닫이 창문을 열어서 밖을 확인했다. 빅커스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 빅커스는 무언가 담긴 비닐을 들고 있었고 그걸 확인한 한스는 권총을 수트 오른쪽 허벅지에 묶어놓은 권총집에 집어넣고 미닫이 창문을 닫고는 문을 열어줬다.

철컹.

바람소리가 줄어들자 훨씬 이야기하기 좋아졌다.

-지난 주에 맡긴 물건 받으러 왔어.

고개를 끄덕인 한스는 그를 거실의 입구에 세워둔 채 쌓아둔 장비들 중 하나를 꺼내주었다. 그것은 강선을 깍아낸 소총의 총열이었다.

-고맙워, 한스.

그러면서 받은 것은 먼지를 닦아낸 흔적이 역력한 통조림이었다. 키릴 문자와 붉은색 소의 그림. 러시아제 투숀카 고기 통조림이었다. 어디에서 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흔한 건 아니더라도 이 고장 물건이 아닌 물건 중 꽤 자주 보이는 물건이다. 물건을 바꿔 받은 빅커스가 한스에게 말했다.

-이번 달에 사람을 모아 물자를 수색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너도 거기 낄 거냐?

-어디 갈 건지가 중요하지.

빅커스는 공기통의 잔량을 확인하고 문 옆의 선반 위에 앉아서 답했다.

-오래된 벙커.

-오래된 벙커에 뭐가 있는데.

빅커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러나 그의 슈트 때문에 동작에 비해 크게 드러나진 않았다.

-몰라. 오래된 방공호라고 하는데 토제아 아저씨가 입구까지는 확인했다나봐.

-근데 왜 그걸 자기 혼자 안 먹고 사람을 모아서 가자 그래?

한스의 의문은 타당했지만 빅커스 역시 이에 대한 답을 생각해본 모양이다.

-아마 혼자 못 열만한 공간이거나 혼자 먹다 배터질 거 같았나보지. 옛날에 콜베르트 기억나? 외곽 늪지대에서 트럭 발견한 거 혼자 먹으려다 소문나서 루스키 놈들한테 당한 거. 일가족 다 죽고 다 털렸었지.

시기로 따지만 7, 8년 전쯤 발생한 사건이다. 시 외곽의 작은 저수지는 기후 변화에 따라 먼지를 잔뜩 먹은 늪지대가 되어버렸고 그 주변에 있던 고장난 트럭이 늪지대에 파묻혔는데 바로 뒤쪽의 언덕에 가까운 작은 산에 산사태가 발생하며 먼지가 덮힌 늪지대를 밀어냈다. 늪지대를 둘렀던 본래 도로 영역 부분은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아 약해졌고 산사태와 함께 부서지며 저지대로 함께 쏟아져 내렸던 적이 있었다.

애당초 해당 지역은 악취와 비만 오면 늪지대 위를 채운 물이 잦은 범람을 일으켜 본래 사람이 살던 지역까지 물이 쏟아지기도 하는 터라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기에 몰랐는데, 콜베르트라는 자가 그 지역을 탐색하던 중 밖으로 빠져나온 트럭을 발견한 것이다. 아주 더러웠지만 트럭의 문을 열어내자 진흙과 상자와 비닐 등으로 포장되어 있는 여러 물자들을 발견했는데, 대개 전선이나 공구, 볼트와 너트 같은 부품들이었다.

그는 이 사실을 자기 혼자만 알고 가족 몇에게만 알려준 뒤 몇 주에 걸쳐서 숨겨놓거나 옮겨 놓았는데, 멍청하게도 어디서 구했는지 함구하면서 시장에는 툭툭 내놓으니 많은 사람들의 의심을 샀다.

물론 자기가 구한 물건이 어디에서 났는지를 반드시 밝혀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디선가 귀한 물자들을 팔아대니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소문은 동구권 외지인들로 구성된 도적들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한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루스키라 불리는 동구권 강도들에게 변을 당한 것이다. 본래 이런 일이 없도록 공동체끼리 자경대를 구성하여 순찰을 돌거나 침입로를 감시하기도 하며 지역을 도는 상인들의 정보, 극히 드물지만 밀고자나 정보원에 의해 정보를 전달 받으며 방어를 강화하는데, 그 경우는 운이 아주 나쁜 사례라 할 수 있었다.

첫째로, 값비싼 새 물자들을 손에 넣게 된 콜베르트네는 그것을 남에게 빼앗기거나 도둑질 당할까봐 집의 방비는 강화했을 뿐 순찰조의 경로에서 자신의 집을 배제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들은 새로 구입한 무기와 추가 설치한 자물쇠, 쇠창살 등을 믿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공동체 사람들을 불신하면서도 그런 불운이 자신을 찾아올 거라고 믿지도 않았다.

둘째로, 너무 짧은 시간 동안 너무 새것으로 보이는 물건을 너무 많이, 자주 팔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공동체 내부에서만 거래된다면 상관 없겠지만 콜베르트는 공동체 경제의 사정을 잘 알았던 식구였고 원하는 물건 중 귀하고 값비싼 것들은 외부 상인들에게서 주로 구할 수 있었다. 씀씀이나 늘어난 콜베르트네는 외부 상인들에게 반짝이는 깨끗한 공구와 부품들을 팔아치웠고 칼라시니코프 소총 두정과 300여발의 탄약, 그 당시 자주 찾아볼 수 있었던 투숀카 통조림 등 동구권의 상품들을 자주 구매했다.

셋째는 그들 외부 상인들 중 루스키놈들의 끄나풀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외부 상인들에 의해 정보가 흘러나가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 끄나풀은 상당히 싼 가격에 혼자 옮기기 어려운 물건을 그의 집 주변으로 옮겨 주었다. 콜베르트네도 바보는 아니니 자기 집 위치를 외부인에게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그 주변에 있으리라는 것은 눈치챌 수 있었으니 몰래 잠입해온 루스키 단원에 의해 위치가 까발려지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애당초 콜베르트네는 그 당시 몇몇 가족들이 그렇듯이 공동체 중심지와 다소 거리가 떨어진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위험했다.

결국 어느날 새벽 먼지폭풍이 심하게 일던 날 루스키놈들은 무장을 단단히 한 채 콜베르트네 집을 찾아왔고 그들 가족이 맹렬히 분투했지만 네명 뿐인 가정이 스물이 넘는 루스키 강도떼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최소 5명을 죽이긴 했겠지만 나눠먹을 게 줄었다는 즐거움만 줬을 뿐 칼라시니코프 소총과 탄약, 옷가지와 식량을 포함한 대부분의 물자가 싸그리 털린 것이다.

베른하르트 5번가의 공동체 역시 총소리를 듣고 무장한 뒤 모였지만 준비 시간은 어쩔 수 없었고 충분한 인원이 모일 시간 역시 필요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소모되는 시간 동안 그들은 정말 빠르게 일가족을 처리해내고 물건을 빼돌렸다. 사람들이 총을 들고 모였을 때 저 멀리서 트럭을 타고 떠나는 후방 헤드라이트의 불빛만 아련하게 수 초간 보였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떠올리자 한스는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었다.

-뭐, 그렇다면 이해 못할 것도 없긴 하네.

-낄 거야?

-몇명 갈 건데.

빅커스가 다시 한번 공기 잔량을 확인한 뒤 일어났다.

-모르겠는데. 베론 영감이 자리를 모을 거야. 그때 다시 보자고.

그가 밖으로 나가 다시 먼지 바람을 몸으로 받아내자 한스는 문을 닫고 다시 자물쇠를 잠그고 두번 확인했다. 그런 뒤 다시 자리로 돌아가 마체테를 깍고 갈아내기 시작했다. 격자 무늬로 홈이 파인 도구로 손잡이 부분을 벅벅 갈아냈다. 손잡이 부분은 이미 끝이 날카로운 커터형 집게로 끊어냈고 잘 끊어지지 않는 부분은 줄톱으로 잘래냈기 때문에 잘리고 깍이며 튀어나온 부분들을 마감해주고 모양을 잡는 것이다.

그렇게 깍고 갈아낸 손잡이는 사포로 한번 더 갈아준 뒤 드릴 공구로 단단히 고정한 뒤 위 아래에 구멍을 뚫었다. 힘이 많이 드는 일이었지만 오래 걸릴 일은 아니었다. 잠시 깍아낸 철가루와 조각들을 빗자루로 쓸어 한 곳에 모았다. 그런 뒤 손잡이를 구멍에 들어갈만한 기름 먹인 밧줄로 묶었다. 그렇게 여러번 두르고 묶어내어 마감하자 충분히 손에 쥘만한 두께가 되었고 일어나서 휙휙 휘둘러보자 썩 나쁘지 않았다.

사람은 1분에 약 0.24리터의 산소를 소모한다. 체력을 소모하는 노동을 했으니 조금 더 소모되었을 것이니 정확하진 않겠지만 작업용 100L짜리 공기통을 6개를 연결하여 사용하는데, 총 잔량이 66L가 줄어 있었으니 최소 4시간 30분쯤은 일 했을 것이다. 질소와 이산화탄소는 소모되지 않고, 이산화탄소는 오히려 늘어나기에 소모된 양만이 사라진 산소의 양이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완전히 충전하는 건 위험하기에 남는 공간을 조금 남겨놓고 충전을 하고, 항상 사용한 뒤 충전이나 교체를 해놓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현재 남은 잔량은 약 항상 고정적으로 있을 약 75%의 질소 300L, 4시간 30분 동안 생산되었을 이산화탄소 54L. 약 354L가 질소와 이산화탄소이고, 총량의 66L가 줄었다면 꽉 채우지 않는 여유분을 고려하면 약 150~160L가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남은 양은 약 62L. 저번에 쓰고 여유분이 좀 남아 있어 교체하지 않은 공기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1인당 산소 평균 소모량이 1시간에 14,400cc, 약 14.4L라고 가정할 경우 앞으로 4시간 정도나 더 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잠시 허리를 펴고 일어나 몸을 풀어주고는 잠시 고민하다 방안으로 들어갔다.

“공기?”

“어.”

“물도 좀 마시고 해.”

엎드려 책을 읽고 있던 에반젤린이 일어나 건네준 잔을 받아 마시고 고맙다는 말을 전한 한스는 방 한 구석에 있는 100L 짜리 공기통 하나를 번쩍 들어 밖으로 가져갔다. 일전에 그로벨 영감에게 충전 받은 공기통이었는데, 이 공동체에서 순수 산소만으로 공기통을 채울 수 있는 건 그로벨 영감밖에 없다. 제대로 공기를 압축 시킬 장비를 가진 사람도. 다시 슈트를 입은 후 공기통 하나와 바꿔서 연결했다. 그리곤 바꾼 공기통을 방안으로 가져갔다. 일을 마저 끝내면 나머지 3개도 들여올 것이다.

“이거 충전 좀 해둬. 이따 더 교체할 거야. 기록하는 거 잊지 말고.”

충전이래봤자 질소 78L에 산소 21%의 평범한 대기를 담는 것 뿐이라 1시간에 산소 14.4L를 소모하는 사람으로선 100L 짜리조차 2시간을 채 못 쓴다. 압축을 한다쳐도 제대로된 장비가 없다면 기껏해야 2시간을 간신히 버틸 양을 넣는 정도. 그럼에도 생존에 필수불가결하다.

“어.”

에반젤린이 책을 읽으며 대답했다. 손으로는 테이프로 모서리를 감은 작은 칠판 조각과 분필을 들고 할 일을 기록하며 잘 보이는 구석에 두었다. 저렇게 보여도 자기 할 일은 똑바로 하는 녀석이니 굳이 당장 하라고 타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베론 영감이 조만간 사람들을 모을 거래.”

다시 거실로 나가기 전 갑자기 말을 꺼냈다. 에반젤린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왜?”

“무슨 방공호 같은 걸 찾았는데, 털 사람 구하려나봐.”

“위험한 건 아니고?”

한스는 벽에 걸려 있는 AR-15을 바라보았다 다시 에반젤린을 마주했다.

“그런 건 아닐 거야.”

거실로 나온 한스는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이번엔 맞지 않는 플라스틱 부품을 사포로 갈아내어 맞추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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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dear0904 작성시간 23.10.07 탄소 재포집 기술이라도 있다면 이산화탄소도 자원이 될 수 있을만한 암울한 세계관이네요 ㄷㄷ...
  • 답댓글 작성자Khrom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0.07 있어도 거기에 돈 쓰기 싫어하는 사람들이야 많은 법이죠. 규모나 효율이 나오느냐도 문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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