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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ome의 도서관

[SF]잿빛 클로버 (5)

작성자Khrome|작성시간23.10.29|조회수21 목록 댓글 0

-빅커스!

볼커의 외침에 빅커스는 이제 막 몸을 일으키고 반대편, 그들이 들어왔던 통로로 몸을 던졌다. 휘청이면서도 벽에 몸을 대고 친구들을 엄호했다. 한스와 브란트 역시 어지러운 시야로 어떻게든 통로로 들어올 수 있었고, 그 와중에 볼커는 닫힌 문에 총을 점사로 쏘면서 뒤로 움직였다. 문에 등을 기댄 채 막고 있는 헬무트는 풀려가는 다리로 바닥을 밀며 문이 열리는 것을 막고 있었으나 루스키들은 발로 문을 쾅쾅 차대며 억지로 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볼커의 견제 덕에 그들은 좀 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문은 위험한 위치였다.

-뒤로 가!

볼커의 지시는 적절했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것도 그것 밖에 없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젠장!

한스는 끓어오르는 분노와 짜증을 씹으며 통로를 달릴 수밖에 없었다.

타탕!

마지막으로 볼커가 두발을 문쪽에 쏜 뒤 뒤로 빠졌다. 그리고 루스키들은 그 소리를 듣고 문을 세게 찼고, 이미 숨이 끊어진 헬무트는 문과 함께 밀려나갔다. 그들은 헬무트의 머리에 총을 한발 쏜 뒤 뒤쫓았다. 여전히 방탄방패를 앞세운 채였다.

탁탁탁탁탁탁..

네 남자의 발소리와 그들을 뒤쫓는 자들의 발소리가 엉켰다. 볼커는 여전히 무리의 후미를 지켰고, 약 10m 정도의 복도는 전력질주로 10초도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볼커가 뒤를 봐주는 시간 동안 3명의 남자는 모두 복도 너머로 빠지는 것에 성공했고, 마지막으로 볼커가 문을 넘어 오른쪽으로 몸을 던지자마자 총알이 날아왔다. 아주 아슬아슬하게. 그리고 한스와 브란트는 있는 힘껏 문을 닫았다.

따다다다다당.

총알은 금속문을 뚫으며 반대쪽 벽에 탄흔을 남겼다. 타일이 깨지며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유독 요란하게 들렸다. 놈들은 방탄방패를 믿고 거침없이 밀고 오는 중이었고, 그들은 어째서인지 맞은 편, 그들이 들어왔던 곳으로 나가지 않고 있었다.

-시발 뭐야. 이제 어떡하지?

-너무 늦은 거 같은데, 도망갈 수 있겠어?

-우리 등짝에 총알 맞을 걸?

10여m의 복도. 도착까지 몇초 남지도 않았다.

-빅커스, 엄호해줘.

-뭐? 뭐하게!?

-몸으로 밀면 놈들도 뭐 할 수 있는 게 없겠지.

-미쳤어!?

한스는 총에서 손을 놓고 양손을 들었다. 잠기지 않은 문. 뻥!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을 채운 것은 흠집이 난 녹색 방패. 한스는 문이 열리자마자 정면에서 달려들어 몸으로 밀어붙혔다.

쿠당탕.

-으엇!

-뭐야!

루스키들이 러시아어로 뭐라 짓껄였지만 알아듣지 못할 유언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 빅커스와 브란트는 곧장 넘어지며 몸이 드러난 양옆의 두 남자에게 즉각 총을 쏘았고, 넘어져 방패에 깔린 남자는 양손으로 잡고 있었기 때문에 대응할 수 없었다.

-한스!

-끄응..

방패를 내리누르며 일어난 한스는 무기를 잡을 필요도 없었다. 빅커스가 놈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브란트가 치운 방탄 방패 아래의 남자는 누운 채 양손을 머리깨로 올린 상태로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아마 항복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눈치껏 무장을 해제시킨 브란트는 한스와 함께 놈을 잡고 덕트 테이프와 케이블 타이로 양팔을 구속했다. 

-움직여.

한스는 그 남자의 어깨를 밀치며 일행의 가장 앞에 있는 빅커스 뒤쪽에 위치시켰다. 그 뒤로 브란트와 한스, 후미의 볼커가 위치했다.

-빌어먹을. 헬무트가..

-…나중에. 나중에 생각하자.

루스키 남자는 뭐라고 중얼 거렸지만 브란트가 그를 닥치라며 발로 찼다. 그럼에도 덤벼 들려는 모습에 한스는 케이블 커터로 놈의 슈트 목부분에 구멍을 뚫었다. 쉿 하면서 공기가 빠져나가자 당황하며 몸을 비틀었다.

-하, 웃기는군.

-…

브란트는 그를 비웃었고 한스는 무표정하게 내려다봤다. 루스키는 몸을 뒤틀어대며 양손을 풀려 했으나 될 턱이 없었다. 약 15초, 바로 목 아래에서 새어나가는 공기가 충분히 공포를 심어줄 법한 시간이 지나자 한스는 덕트 테이프로 놈의 목에 뚫린 구멍을 막아 주었다.

-루스키 놈들은 옷도 쓰레기 같은 걸 입는군.

안에는 비닐, 겉에는 천 따위로 마감한 것이다. 비닐조차 여러번 덧대거나 테이핑 되어 있으며 겉옷에도 갑옷처럼 금속을 두르거나 테이핑을 두껍게 붙혀 놓았다.

-움직이지 마라. 두번은 없다.

어차피 언어가 통하진 않았으나 바보가 아니라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썩 얌전해진 놈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아, 젠장.

빅커스가 뭔가 떠올렸다는듯 자기 머리를 툭 쳤다.

-왜?

-무전기.

-놈들이 들을 수 있겠군.

한스는 잠시 생각했다 말을 이었다.

-놈들이 밖으로 나온 것도 아니야. 거리도 멀고. 우릴 따라오는 놈들은 더 없었잖아?

그들이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곳에 있던 물자를 생각해보면 몇 없던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됐어. 나중에 심문해보면 되겠지. 베론 영감이 러시아어를 할 줄 아니까.

그리고는 막 밖으로 나왔다. 빅커스가 무전을 하며 글라우버와 브람스를 불렀다.

-글라우버, 브란트. 들리나? 오버.

-잘 들린다. 뭐 좀 소득이 있나? 오버.

빅커스는 잠시 뜸을 들이다 사실대로 말했다.

-헬무트가 죽었다. 그리고 포로 한놈. 오버.

-헬무트가? 씨발.. 놈들인가? 루스키놈들. 오버.

-그래. …오버.

-…지금까진 아무 일도 없었다. 돌아가자. 오버.

그들은 말 없이 합류해 차량에 탑승했다. 공기통을 다시 교체하고 운전은 빅커스가 담당했다.

-고물 똥차..

올 때보다 좀 더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
.
.
.

퍽!

-욱! 블럇!

루스키 포로가 욕을 짓껄였다. 쑤까니, 블럇이니 하는 말은 외국인들도 다 알고 있을 만한 표현이었다.

베론 영감은 손짓했고, 건장한 체격의 중년 남성이 놈의 배를 한번 더 발로 찼다. 쿠당탕. 하며 의자가 뒤로 넘어갔고, 남자는 그 상태로 몽둥이를 들어 루스키의 정강이를 마구잡이로 때렸다.

빡! 빡! 악! 아악!! 니옛, 니옛!

베론 영감은 이제 되었다는듯이 손을 저었고. 남자는 굳이 일으키지 않은 채 놈의 머리맡에 몽둥이를 세우고 서있었다.

-’다시 묻겠다. 루스키. 언제부터 알았고, 누가 알고 있지? 이름을 말해라. 또 몇명이나 모였는지도 말해.‘

흐윽.. 흐으윽..

베론이 중년 남자에게 눈길을 돌리자 루스키는 빠르게 대답했다.

-’하.. 한달!! 한달 조금 안 됐어.. 그리고.. 안드레이 패거리랑.. 또.. 블라소프 패거리랑.. 그리고.. 그리고.. 볼코프, 보로딘! 보로딘 조직도 붙었어. 60명은 넘을 거야, 아니. 80명은 넘겠지. 너흰 상대도 못해. 놈들이 날 찾으러 올 거라고. 당했으니 보복할 거란 말이야.. 너희들은 다 죽었어. 어? 알아? 다 죽은 목숨이라고.. 끄윽…’

베론은 잠시 생각한 뒤 놈의 공기통을 새 것으로 바꿔준 뒤 이렇게 말하고 나갔다.

-’한 시간 뒤 다시 찾아오지. 그때 이야기가 달라져 있는지 확인해보자고.’

-’미친놈아!! 다 말했잖아!!’

베론이 나가고 남자의 비명소리와 둔탁한 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
.
.


“나왔다.”

“무슨 일 없었어?”

한스는 에반의 말에 잠시 말이 없었다. 말하기 어려운 소식이라서가 아니라, 에반은 헬무트와 별 다른 친분이 없었다. 세상이 변한 이후, 안사람과 바깥사람이 극명하게 나뉘었다. 별 다른 이유가 없다면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 가족 구성원들이 있었고, 그들은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걸 했다. 외부 활동은 정해진 사람들이 하기 마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에반젤린은 헬무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고 어떤 사람인지도 알고 있었지만 한번도 마주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이 공동체에 많았다.

그의 모습에 에반젤린은 안 좋은 일이 있었음을 직감했다.

“안 좋은 일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돼.”

“헬무트가 죽었어. 알지? 차량 관리하던.. 여러가지로 하던 일이 많았던 사람인데”

“어떻게?”

에반젤린은 좀 더 조심스럽게 대했지만 그건 헬무트의 죽음을 존중한다기보단 그를 알고 있는 그의 형제를 존중하는 태도였다.

“총에 맞아서. 운이 나빴달까. 자기 의무를 다 하다 죽었지.”

“훌륭한 사람이네.”

“다들 그래.”

에반젤린은 분무기로 식물의 잎에 물을 뿌리고 닦는 것을 반복했다. 조심스러운 태도에서 그녀가 다루는 것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모두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만 그녀만큼 중요한 사람은 없다. 한스는 이 공동체 내에서 상당한 중요한 사람으로 여겨지지만 그것은 그가 하는 금속가공과 수리 일보다 에반젤린을 책임지는 가족이기 때문에 그런 면이 크다.

에반젤린이 키우고 공급하는 식물이 이 공동체는 물론 더 너머의 지역까지도 사람을 살게 하고 있다. 사람은 1분당 0.5리터를 호흡하고, 1시간당 산소를 6리터 요구한다. 그 중 산소는 1분당 240ml를 소모하고 1시간이면 14,400ml(cc)를 소모한다. 스킨답서스는 1시간에 100~150ml를 생산하고, 스파티필룸은 120~180ml를 생산한다. 충분히 많은 식물이 존재한다면, 제한적인 환경 내에서라면 호흡에 문제가 없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에반젤린에 의해 이 공동체는 물론, 다른 지역의 다른 사람들까지 살아갈 수 있는 셈이다.

지식과 기술, 그리고 자원. 세상이 조금 더 거칠어졌을 뿐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한스는 옷을 갈아입고 식사를 했다. 방울 토마토와 물, 어느 버려진 가정집에서 구한 초콜렛 몇개, 고기와 콩이 담긴 통조림 하나. 익힌 달팽이 몇마리. 이런 세상이 되고나서 단백질을 구하는 건 아주 까다로운 일이 되었다. 구할 수 있는 것은 일부 벌레나 옛 시절에 만들어지고 버려진, 혹은 보관된 통조림 같은 유통기한이 긴 물건들. 그리고 정말 드물게 토끼나 쥐 따위를 기르는 사람들에 의해 유통, 공급되는 고기들이 그러하다. 소문 아닌 소문이지만 사람 고기 역시.

한스는 피곤하다며 먼저 자리에 누웠다. 여기서 일을 더 해봐야 좋을 것도 없기에 이불을 덮었다.

탈탈탈탈탈탈탈탈….

집 밖에 설치된 소형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한스의 숨소리, 그리고 먼지를 날려대는 바람소리만 가득한 공간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텅. 텅. 텅.

한스는 아직 잠에 취해 피곤하면서도 이불을 젖히고 몸을 먼저 일으켰다. 텅. 텅. 텅. 또 한번 누군가 두드렸고, 에반젤린이 걸레로 먼지를 닦아내어 준비된 수트를 빠르게 입고 밖으로 나갔다.

텅. 텅. 텅.

퉁. 퉁.

-됐어. 나야. 뭔데.

-베론 영감이 소집했어. 가자.

-아.. 그래.

한스는 눈꼽이 낀 거 같아 조금 불편했지만 이미 헬멧까지 쓴 상태라 비빌 수도 없었다. 다소간의 불쾌함을 느끼며 밖으로 나가자 빅커스가 팔짱을 낀 채 서있었다. 그의 몸 뒤로 AR 소총이 눈에 띄었다.

-총이 필요한 일인가?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럼 왜 무장했는데.

빅커스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믿을 수는 없는 게 세상사다. 물론 그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나야 항상 무장하고 다니지. …라고 하고 싶지만, 하수상한 게 사실이잖아. 우린 루스키 놈들이랑 교전을 벌였고 사람을 죽였어. 언제 보복이 와도 이상할 건 없지. 이건 그 대비라고나 할까. 걱정마. 넌 내가 지켜줄 테니. 네가 날 지켜줄 것처럼.

한스는 잠깐 헬멧의 뒤통수를 문지르다 허벅지의 리볼버가 잘 있는지 확인하고 움직였다.

-그래.. 별 일은 없겠지.

-가자.

이전과 같은 공간. 한스와 빅커스가 자리에 앉았음에도 아직 회의는 시작되지 않았다. 그리고 몇 사람이 더 들어오고난 뒤 베론이 말을 시작했다.

-포로를 심문해서 정보를 얻어냈다. 그보다 먼저, 헬무트가 죽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공지하겠다. 그는 훌륭한 남자였고, 뛰어난 인품과 책임감으로 우리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의 노고를 기리는 의미로 이 회의장 벽에 그의 이름을 새겼다. 21번째 이름이지. 앞으로 이 숫자를 넘기는 일이 없도록 했으면 좋겠다.

사고사나 단순 사망자가 아닌 교전, 혹은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다 죽은 이들은 회의장 벽에 이름이 새겨진다. 수십 년간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이 20명. 이제 헬무트 슐트의 이름으로 21번째가 생겼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이 상실감과 아쉬움은 오래갈 것이었다. 지금처럼 위험한 시기가 아니라면.

-루스키들이 뭉쳤다고 한다. 안드레이 패거리, 블라소프 패거리, 볼코프단에.. 보로딘 조직까지. 거의 50명은 될 법한 놈들이 모인 거지. 원래 다른 사람이 발견한 건데 어쩌다 소문이 났다는군. 그걸 루스키 갱단놈들이 물었는데, 그게 한 둘이 아니었던 거지. 서로 싸우는 대신 내용물을 확인하고 서로 나누자는 협정을 했고 말이야. 헬무트팀이 잡아온 놈에 의하면, 놈과 동료 몇은 다른 출입구를 발견해서 몰래 기어들어와 물자를 빼돌리려고 했던 거지. 그러다 들켜서 다 죽어버린 거고. 아, 놈만 빼고. 그래, 그놈을 제외하면 그 안에 기어들어온 다른 놈들은 다 죽었다는 거지.

지금쯤이면 그 시체들이 발견되어 난리가 났을 거라는 이야기도.

미하일이 손을 들며 물었다.

-놈들이 헬무트를 알까요?

-얼굴을 알아볼 놈들이 있을지 모르지. 적어도 놈들은 아니더라도 헬무트야 차량 수리를 하던 친구였으니 건너건너 찾아보면 이곳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될 거다.

빅커스는 숨을 거칠게 내쉬며 흥분을 드러냈다. 한스 역시 스트레스가 머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왜 교전이 벌어진 겁니까?

평소 헬무트와 친분이 있었던 리하르트가 불만을 머금은 목소리로 물었다. 헬멧에 가려진 그의 눈이 어디를 향했을 지는 뻔했다.

-잘잘못을 따지는 건 나중에 하지. 아니, 내가 하겠네. 일단 당면한 문제가 있다는 것부터 이야기하자고.

베론 영감은 놈을 심문하여 자기들이 발견했다는 통로를 알아냈지만 그걸 놈들도 알고 있을 가능성 역시 언급했다.

-놈들은 헬무트의 시신을 가지고 있지. 시간을 주면 헬무트의 신상을 알아내는 것도 가능할 거고. 그전에 선제적으로 움직이려고 하네만.

-방어전이 아니라요?

-최선의 방어가 공격이라지. 놈들이 혼란스러울 지금이 차라리 적기라고 생각하네. 게다가 놈들 사이에서 내분이 있을 거라고 추측하거든.

어째서 이런 시점에 갑작스러운 공격이 발생했는가? 이들은 왜 이곳에서 물자를 빼돌리려고 했는가? 불안은 다양한 상상을 불러 일으키고, 그것이 위협적일수록 단정적이게 만든다. 가령, 누군가 다른 이들에겐 알리지 않고 외부인을 용병으로 쓰고 있고, 다른 패거리가 뒤통수를 치려다 응징을 당했다던가. 그 누군가가 외부 세력과 왜 결탁을 했고 몰래 빼돌리려는 자들은 어떻게 들어왔는지 등등.

-그럴수록 공동체 방어가 약해집니다. 너무 위험하기도 하고요. 잘못해서 죽거나 다치기라도 하면 피해가 너무 큽니다. 작은 교전조차도 죽을 수 있는 마당에..

-나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야. 그러니 계획이 중요한 거지.

베론 영감이 고개를 돌려 눈짓(잘 보이진 않지만)하자 루스키를 심문하던 덩치 큰 중년 남성이 지도를 꺼내 테이블에 펼쳤다. 모두 몸을 기울여 그것을 바라보자 베론 영감은 작은 막대기를 꺼내 각 지점과 길목을 설명했다. 심문을 믿을 수 있다면 정확한 정보일 것이다.

-우리가 잡아온 놈은 보로딘 조직이다. 천박한 깡패놈들이지. 하지만 인원수는 두번째로 많아. 우리가 죽인 놈들을 빼도 20명 가까이 된다고 하니까 말이야. 놈 말로는 60명에서 80명 된다는데, 아무리 봐도 그 정도까진 아닌 거 같고, 하지만 많긴 할 거야. 거의 40~60명 정도가 맞다고 보자고. 하지만 그런 만큼 세력 구도는 아슬아슬하겠지. 실력과 무관하게 머리수는 매우 중요한 전력이니까.

한 지점을 막대기로 가리킨 뒤 그 지점에서 길목을 척척 긋더니 동그라미 쳐진 지점을 딱. 하고 내리쳤다.

-우린 이 경로로 놈들에게 접근해서 보로딘 조직을 공격한다. 그리고 바로 빠지는 거지.

위험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산소가 사라진 세계에서 위험은 몸을 감싼 1mm 두께 밖에 존재한다. 선공권이 가져오는 기습의 이점은 분명 확실할 것이다. 게다가 자기들끼리 분란이 발생했다면 더더욱. 그럼에도 외부의 적이 명확해진다면 그들은 오히려 결속이 발생할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내부적 균열을 외부의 적으로 봉합할테니.

한스가 물었다.

-언제 시작합니까?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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