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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ome의 도서관

[시대]"늑대가 나타났다!"

작성자Khrome|작성시간23.11.11|조회수91 목록 댓글 0

양치기네 소년 요한은 양을 치다 날이 너무 좋아 풀밭에 누워 팔에 머리를 대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리를 꼬고 아무 풀이나 입에 물고는 까딱대고 있었는데 10대 소년 특유의, 아니. 어쩌면 남정네 특유의 갑작스러운 욕구가 추진력을 가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마을까지 한달음에 달려가 이렇게 외쳤다.

“늑대다!! 늑대가 나타났다!!”

소년의 외침은 언덕을 굽이 돌고 하늘을 괴고 돌아 집집마다 대문을 때리기도 했고, 창문을 넘어 귓가를 두들기기도 했다.

“뭐야!!”

“늑대가 나왔대요!”

“모두 나와! 늑대가 나왔대!!”

언덕은 많고 골은 더 많은 산맥집안들은 평평한 땅을 찾기 어려워 이 언덕 저 언덕에 집을 지어 살고 있기에 이웃이라 할라치면 오르내리막으로 200m씩은 넘게 떨어져 살고 있었지만 중간에 가로막는 것이 없어 평소에도 한눈에 이집 저집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화창한 동네에 살고 있던지라, 사람들은 대문을 박차고 몽둥이니 괭이니, 도끼나 망치 따위를 손에 쥐고 달음박질을 하며 소년 요한의 뒤를 헥헥 대며 따라갔다.

그렇게 양치기 언덕에 도달한 요한는 무릎을 짚고 헥헥 대다 푸프하하! 웃음을 터뜨리고는 사람들을 돌아보고는, “깔깔깔, 거짓말이었어요!” 하고 외쳤다.

사람들은 “에효..” 하거나 “아이고야..” 하며 머리를 짚기도 하고, “에이 이놈아!” 하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하다 “거 녀석..” 하고 입맛을 다시는 어른도, “에이구.. 차라리 다행이다, 다행이야.” 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는 양치기네 요한은 낄낄댔지만 사람들은 녀석에게 꿀밤 한대나 때릴까 하다 기운이 빠져 그냥 툴레툴레 돌아가고는 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은 이내 자기 집으로 돌아가 볼 일을 보곤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요한은 산맥 멀리까지 눈을 날카롭게 둘러보고는, 아무 것도 없다는 걸 깨닫고는 목양견에게 이리저리 명령을 내리기도 하고 양들 사이에서 장군이 된 것마냥 지휘를 하는 시늉을 하기도 하다 픽 하고 쓰러져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양들은 순했고 목양견은 유능했으니 말 잘 듣는 짐승들 사이에서 혼자 연극 배우가 되어봤자 무언의 박수조차 쓸모가 없었다.

그러나 요한는 벌떡 일어나 잠깐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다. “히힛.” 하고 웃으며 언덕을 내달렸다. 목양견은 언제나처럼 충실하게 기운찬 주인 대신 양들을 관리했다.

“늑대다!! 늑대가 나타났다!!”

목소리만큼은 남부럽지 않은 요한의 외침에 또 다시 마을 사람들이 이것저것 손아귀에 쥐고 달려나오니 넓디 넓은 산맥의 언덕 구릉집 사람들이 다 모여 소박한 북적임을 연출했다.

헥헥 거리는 소리 속에서 “얘, 요한야. 그 늑대는 어디에 있는 거냐?” 묻자, 요한은 또 낄낄 웃으며 “거짓말이었어요! 아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요한는 진빠진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며 웃으니 어떤 어른은 이번에야말로 녀석의 머리에 꿀밤을 때리기도 하고 저렇게 웃으니 괜히 기분 좋아 너털웃음을 내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언덕을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이고, 녀석 때문에 괜히 힘만 빠졌군요.”

“그러게 말이에요. 고 녀석 언제 한번 혼구멍을 내줘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러고보니 저번주에 뵈고 오늘 처음 보는군요, 메텔 부인.”

“호호, 그러게요. 요한 녀석 덕분에 귀한 이웃 얼굴을 보네요?”

가기엔 어중간히 멀지만 멀리서도 잘 지내는 게 눈에 보이는 덕에 할 말이 있으면 깃발을 흔들거나 나무토막을 세워서 묻는 전통이 있는 마을 사람들은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어울릴 일이 많지 않다.

워낙 자기 일만 하고 지내는 일상을 보내기에도 부족한 마을 사람들에겐 하루에 두세집 사람과 마주치는 일이 전부였으며 하는 일에 따라 몇몇 집 사람과 어울릴 일이 있을 뿐 수십 가구 사람들이 이토록 모이는 일은 드물 법한 동네였다.

“제르반씨는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아, 며칠 전에 아이가 집안에서 놀다 식기가 망가져 버렸지 뭡니까. 어떻게 떨어뜨렸는지 나무잔에 금이 가버려 물을 담으면 새어버리고 맙니다. 요걸 어떻게 고쳐야할지 모르겠군요.”

“그런 거라면 막스 형님께 부탁해보시죠. 철판으로 꽉 조여보면 될지 또 모를 일이니까요.”

“막스씨라면 자주 이야기는 나눠본 적이 없어 어쩐지 서먹하군요.”

“그런 거라면 저와 함께 가시죠. 이렇게 쇠뿔도 단김에 뽑으랬다고, 시간이 되신다면 오늘 만난 김에 같이 가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렇다면 저야 고맙지요, 제르반씨. 혹시 점심은 드셨습니까? 잔을 가지러 가는 김에 한끼 대접이라도 해드려야겠군요. 아, 물론 막스씨께 드릴 선물도 골라야겠습니다.”

또 한 켠에서는.

“간만에 뵙습니다, 촌장님.”

“아이고.. 이 나이에 이리 뛰어다니니 내가 제명에 못 살겠구만.. 그래, 카를이었지. 농사일은 잘 되어가는가? 올해는 어떠신가.”

“예년처럼 잘 됩니다. 못해도 3개월은 먹고 살 감자를 수확할 수 있겠어요. 순무도 아주 잘 자랐고요.”

“양이 얼마나 되겠는가?”

“순무야 뿌리기만 하면 잘 자라는 녀석들이고.. 재작년에 개간한 경작지에 심은 감자가 아주 잘 자라니 요 몇년 동안은 먹을 것 걱정은 꽤 덜 겁니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 나눠보자고. 어이, 얀! 잠깐 와보게. 자네가 키우는 소들 말이야..”

사람들은 숫제 언덕 중간에 멈춰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자기들끼리 모여 한집으로 몰려가거나 했다. 평소 어울리지 못한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를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 약속도 잡고 어떻게 사는지, 어떤 사정들이 있고 어떤 불편함과 곤란함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이야기했다.

어떨 때는 서먹서먹하게 여겨졌던 이웃이 이 순간에는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이후로도 요한은 몇번씩이나 장난을 치곤 했고 사람들은 요한이 거짓말을 한다는 걸 알면서도 어울려주며 모이곤 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서로 만날 기회를 얻었고 즐거운 대화와 사회적 교류를 했다. 누구네 집에 어떤 일이 있었고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것 같다느니, 누구와 누구와 술자리에서 언쟁이 있었는데 누구 덕에 잘 풀었다느니,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빌렸고 어떤 선물을 받았는지 하는 시덥잖으면서도 귓가를 자극해줄 이야기들 한 뭉치가 이 사람 저 사람 사이를 오가는 것이었다.

이제 요한이 늑대가 나타났다! 외치면 어떤 사람들은 간식 바구니를 들고 달려가질 않나, 저번에 빌려간 물건을 잡고 뛰었고, 좋아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잘 빗어 넘긴 머리를 손바닥으로 누른 채 뛰어가기까지 했다. 그런 모습에 어떤 아낙은 웃음을 흘리고 근엄한 가장은 애써 못 본 채 하는 모습이 더 어색하지 않을 때, 모두 좋게만 돌아가는 걸 좋아하지 않을 법한 사람 한명쯤은 있곤 하는 것이 세상사 이치라면 이치가 아닐까.

“마을 여러분! 모두 들어주시오!”

여느 때처럼 요한의 장난, 이번에는 늑대가 양들을 쳐서 산맥으로 도망 갔다는 거짓말에 몰려온 사람들 앞에 서서 깔깔 웃는 요한을 뒤로 하고 분위기를 잡았다. 요한은 어쩐지 무거워진 분위기에 웃음을 거두고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 보았다. 사내는 요한이 언덕 돌이라고 부르는, 봉우리 끝의 들판에 오르기 직전에 박힌, 앉아서 쉬기엔 양들이 안 보여 애매하고, 돌아가기에 쉬기엔 그럴 필요가 없는 작은 바위 위에 서 있었다.

“모두 요한의 장난에 어울리는 것을 그만 두시오!”

모두 서로를 돌아보았다. 의아하다못해 엄정한 그의 말에 권위를 느끼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의 말이 무시할만한 내용은 아닐 거라는 직감 때문이었다. 어쩐지 불편할 법한 말이기까지 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요한의 장난에 어울리는 것이 얼마나 큰 낭비란 말이오? 모두 자기가 할 일이 있는데 거짓말일 것이 뻔한 장난에 어울려 자기 일을 내팽겨치는 것은 성실한 어른의 표본이라 할 수 없소! 신께서 말씀하시기를,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될 것이라 하였소. 감자를 수확하는 것에 게으르면 산짐승이 그것을 파먹어 저녁을 굶어야 할 것이오, 소를 치는 일에 게으르고 젖 짜는 일에 게으르면 고기와 가죽은 물론 치즈와 우유조차 귀하게 될 것이오!”

그의 말에 뜨끔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새침한 눈빛으로 남편, 아들을 바라보는 여인들도 있었다. 얼마전 멧돼지인지 뭔지 감자밭을 파먹은 흔적에 하루 종일 친해진 이웃과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느라 그랬다는 속사정을 고백하곤 혼이 난 남편이 있었다.

“요한의 거짓말이 반복될 수록 요한의 말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소? 처음 소년의 외침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선의로 소년을 돕고자 했을 것이오. 늑대가 양을 물어가면 그만큼 요한네 집안의 주머니가 가벼워질 것이오, 요한네가 깍고 빚을 양털이 줄어들어 겨울을 나고 이불을 짜기 어려워질 것은 명확관화 했기 때문이오! 그러나 자기 일을 내팽겨칠 정도로 급할 일에 뜀박질한 우리가 본 것이 무엇이오?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웃어재낀 요한이란 소년이 있을 뿐이오! 늑대는커녕 여우 한마리 없었소! 게다가 지금까지 한번도 늑대가 양을 물어간 적도 없었을 것인데, 그의 거짓말을 믿는 자가 얼마나 있소? 이제 진실로 늑대가 나타나 순한 양을 물어간다면 우리는 몽둥이와 괭이를 들고 뛰어올 것이오, 아니면 이웃 줄 빵과 술병을 들고 달려올 것이오? 포악한 늑대의 이빨과 발톱을 쫓아낼 방도가 우리 손에 쥐어져 있을 거란 말이오?”

그의 말에는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었고, 있을 법한 일이기도 했다. 늑대 무리가 많은 사람들을 공격할 일이야 만무하다 쳐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일은 물론이요, 늑대를 몰아내기에 충분한 무기도 없기에 한마리도 제대로 위협하지 못할 것이다. 위협을 느끼지 못한 늑대 무리는 쉬운 사냥터를 기억해둘 터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그의 거짓말에 그만 어울리시오! 정직한 사람의 성실은 자신을 인도하지만, 사기꾼의 비뚤어짐은 자신을 멸망하게 한다고 하였소. 소년 요한이 진실로 남들에게 믿음을 받고 성실히 자신의 책무를 다할 수 있게 하고 싶거든 그의 거짓에 어울리지 않아 그 스스로 거짓을 말하지 않도록 하시고 그가 진실로 늑대가 나왔을 때 그의 경고와 도움에 귀기울이는 것이 성실한 그리스도교인의 책무가 아니겠소?”

사내의 열변에 사람들은 박하게 굴 수 없었다. 어떤 아낙과 청년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였거니와 한스의 외침이 장난이라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설령 언젠가 한번 진짜 늑대가 나타났으면 어떡하지 싶은 날에도 어김없이 그런 일은 없었고 청년들은 청년들끼리, 아낙들은 아낙들끼리,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어울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약속을 잡기도, 식사에 초대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요한은 그날 이후로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적다 하여도 다음 거짓말에는 누구도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요한은 늑대가 나온다면 사람들이 자기 말을 믿어줄지 아닐지 확신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종종 어울렸지만, 이제 점점 그런 일이 줄어들었다. 서로 필요한 것을 빌려주고 식사를 대접 받기도, 어려운 일에 도움을 받는 일도 드물어졌다. 친했던 청년들은 이제 멀리서 인사를 주고 받기만 했고, 어떨 때는 보고도 모른 척 하며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몇 주가 더 지나고 누구네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누가 무엇이 필요하고 누가 빌려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모이는 일이 없어졌다. 그럴 이유도 없었고, 여유도 없었다. 집집마다 거리는 멀었고 광장이라 할 곳도 없었다. 십 수m아래로 내려가고 골따라 수십m를 걸어가 십 수m를 걸어 올라가 이집 저집 문을 두들기기며 어울리기란 어렵고 오래 걸리는 일이 아닌가. 필요가 없으니 갈 이유가 없고 이유가 없으니 모일 일이 생기질 않았다. 힘들어도 도와줄 사람은 없지만 공연히 폐를 끼칠 사람도 없었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조용하고 평화로우며, 화창하고 서먹하지만 아무런 문제도 없었던 그림 같은 시절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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