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Khrome의 도서관

[SF]더 이상 안 좋은 것들을 막을 수 없을 때.

작성자Khrome|작성시간23.12.13|조회수90 목록 댓글 1

환경오염으로 인해 더 이상 지구라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생물적 위협 수준에 도달할 시기에, 복합적이며 고도화되는 사회적 갈등의 통제에 실패한 인류는 더 나은 방식의 생존을 발명했다. 모든 인간의 자아를 특수한 저장 장치에 저장하고 네트워크에 업로드/동기화하여, 각 개인은 각국과 기업에 의해 제작된 환경에 ID로 재창조된 페르소나를 보내 활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단 하나의 네트워크로 세계를 통합하고 단일한 정보로 자아를 유지시키며 접속하는 것을 각자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폐쇄성에서 기인한다. 즉, 애플과 삼성의 갈등과 유사하게 그들의 이익을 위한 환경과 규격을 시장에 제공한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한 이유로 만들어진 구조는, 결코 해킹 당할 수 없는 폐쇄 환경에 개별 자아를 저장하고, 그 자아가 자신의 자아를 본 딴 ID를 만들어 국가 네트워크 환경, 기업에서 제공하는 가상현실 및 웹 서비스 등에 접속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각 서비스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ID를 따로 만들어야 하고, 이러한 ID는 복수가 될 수 있으며 모두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구글의 ID를 쓰며 구글의 서비스를 누리는 사람이 대한민국의 국가 네트워크 환경에서는 다른 이름과 다른 모습, 다른 신분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옛 웹 환경에서 사이트마다 ID가 다르고 닉네임이 다르며, 비밀번호나 활동 양상조차 다른 것과 전혀 차이가 없었다.



한 남자가 어느 건물에 로그인 했다. 남성은 자신의 ID와 비밀번호를 입력한 뒤 자아 적합도를 확인했다. 자아에서 보내는 데이터와 그 데이터의 검증을 끝마치자 남성의 형상이 허공에 형성되었다. 가상현실상에 로그인에 성공한 것이다. 그 건물은 구글의 자회사 중 하나였으며, 그는 해당 회사에 고용된 입장이었다. 그는 이미 접속해 있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살갑게 인사를 건냈고 사람들 역시 웃는 얼굴로 그의 인사를 받아줬다. 남자는 곧 자신의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했다.

사실 그는 자신이 보고 있는 모든 것이 가짜라는 것을 안다. 자기 자신의 육체는 물론 입고 있는 옷도, 건물도, 사무실도 모두 가상현실로 이루어진 가짜라는 것을 안다. 이건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현 시대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육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실은, 모든 존재는 단 한번도 자신의 모습을 본 적도 없고, 세대에 따라 육체를 가지지 않고 데이터 조합에 따라 태어난 사람도 존재한다. 

처음 자아를 네트워크에 업로드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유전 정보 역시 저장했다. 그리고 시뮬레이션상 두 사람의 유전 정보를 수정시키듯 섞고 나온 결과값을 시뮬레이션 한다. 그렇게 정보상으로 사람이 태어나는 것이고, 그러한 인간은 어디까지나 육체 없이 정신, 자아, 혹은 정보로서만 존재한다. 단 한번도 생존해 본 적 없는 생존자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러한 정보의 시뮬레이션에 따라 다음 세대 인간이 태어난다.

그리고 남자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모든 인간이 그렇게 태어난 사람도 아닌, 단순 A.I라는 것을 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굳이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갈등과 분란을 만들 필요 없는 기업이 비밀리에 A.I 코워커들을 형성해 제공하는 기업 서비스 였으며, 이를 비밀로 하는 이유는 실제 현실이라 믿어야 이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눈앞에 보이는 가짜 동료들이 인공지능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유는, 그가 어느 딥 웹의 활동자이고, 다른 ID와 신분을 가진 채 활동하는 사람이며, 보안허점과 비밀들을 다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정신 활동에 의해 생성되는 정보 에너지를 회사에 납품했다. 주어진 문제를 풀고 정해진 작업을 하면서. 그러나 그런 그의 신분은 어디까지나 이곳에서만 존재한다. 그가 어떤 이름과 신분을 가지고 있든, 그것은 한시적으로만 존재하고 필요치 않을 때 즉시 사라진다. 어디까지나 회사의 기록상으로만 존재하는 것며, 실존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퇴근 후 다른 ID로 딥 웹에 접속했다. 이곳에서 그는 다른 사람의 자아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집단에 소속되어 있었다. 수십년, 어쩌면 수백년 넘게 이어진 이 뒷세계의 해커 집단은 단 한번도 기술적으로는 성공한 적이 없다. 극히 어렵고 난해한 락으로 보호되며, 정보적으로는 사실상 접근이 불가능하다. 육체가 존재하지 않고 네트워크나 정보 외의 현실에 물리적으로 개입할 방법 역시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들의 목표는 불가능성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언제든 휴먼 에러는 틈을 만들어준다. 물론 그러한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기술적 제한과 감시 역시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러한 락이 걸리지 않은 세계에서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며, 가능한 모든 가능성과 사고실험을 진행했다. 그들의 수법을 학습하여 더 정확하고 튼튼한 보안을 형성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아주 조심스럽고 비밀스러우며 보수적으로 보안 A.I와 시스템들의 반응과 작동 방식을 학습 및 연구를 했고 마침내 그들은 도전해볼만 하다는 확신을 가졌다.

누군가 총대를 매야 할 일이었다. 만약 이것이 통하지 않는다면 시도하다 걸린 수많은 바보, 혹은 괴짜들과 마찬가지로 접속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웹, VR 월드, 네트워크에 정보가 공유되고, 밴이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자가 총대를 매고 도전하기로 했다. 그는 거의 게임하는 감각으로 해킹에 덤벼들었다.

그는 상대적으로 보안이 약한 공개 네트워크에 접속했고, 가장 먼저 만난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두릅, 하이멜, 콜론, 안녕세타프롤린하세웁살람.”

말이 안 되는 단어의 조합으로 시작된 인사, 여자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주말에는 다소간의 관용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
.
.

해킹은 성공했다. 그 어떤 시도보다도 더 비논리적인 것을 떠나 비현실적인 조합의 단어와 행동양식으로 보안 시스템을 교란하고 로직에 오류를 일으켰다. 단순한 필터링이나 행동 금지 였다면 더 쉬웠을 것이지만 그들은 비용적 차원에서 고비용 고효율 A.I 하나로만 모든 문제를 처리하려던 방식 덕분에 이러한 틈을 만들어낸 것이다. 여자는 그의 엉뚱함과 이상함에 불쾌감보다 흥미를 느꼈다는 점 역시 주효한 요인이었다. 그녀는 그의 이상 행동을 무시하고 떠나지 않고 끈질기에 받아들였다.

결국 그녀는 발설해서는 안 되는 정보들을 대답하기에 이르렀고 그러한 정보의 조합은 즉시 분석되었다. 마침내 남자는 그녀의 계정 정보를 해킹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자아로 접근 가능한 모든 네트워크와 서비스의 계정을 탈취하는데 성공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게 스스로의 뇌를 꺼내어 달라는 요청을 해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아에 대한 정보가 그러하다. 모든 방식의 접근과 해킹은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죽은 사람이 스스로의 뇌를 꺼내어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자아의 기술적 복제라면 어떨까? 그녀에 관한 모든 정보와 계정을 완전히 탈취한다면 그녀의 자아는 완전히 자기 자아 내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정신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정신적 전신마비의 상태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설정한 몸과 목소리, 기록들은 누군가에 의해 조종 당하고 활용 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그녀는 결코, 영원토록 막거나 방해할 수 없다. 되찾을 수 없다.


남자는 여성의 자아에서 비롯된 모든 정보들을 손에 넣는데 성공했다. 이제 그는 그녀의 계정을 이용해 그녀의 직장에도, 그녀의 가족이나 친구, 지인과 만날 수도 있고, 그녀의 ID를 이용해 테러를 저지르거나 본래의 그녀라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터무니 없을 행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 사실을 딥 웹의 동료들에게 알렸고, 그들에게 정말 즐거운 날이었다.


정보 생물체도 잠을 자야 하는가? 답은, 그렇다이다. 본래 잠이란 뇌의 정상적인 기능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뇌가 없는, 아니. 육체가 없는 정보 생물체란 육체의 한계를 벗어났기 때문에 당연히 육체에 제약된 기능과 활동이 가능할 잠재력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기술적으로 실현해준 가상 현실은 인류 가능성의 확장을 불러 일으켰다. 

그럼에도 잠을 자야 하는 이유는, 정신은 육체의 유무와 별개로 체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뇌가 과부화 되지 않기 때문에 물리적 한계는 없지만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복잡한 업무를 무한히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완벽히 인간적인 자아를 가지고 있기에 정신적 한계를 가지고 있어서이며, 물리적 한계에서 벗어남은 정신의 한계를 확장시켰을 뿐 그 한계를 없애버린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즉, 그는 잠을 자기 전 또 다른 신분으로 어느 웹에 접속했다. 웹 환경은 육체를 보유했던 시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게시판이 뜨고 게시글을 공감각적으로, 그리고 3차원적으로 볼 수 있을 뿐이다. 단순 글이라면 그저 글을 읽는 것과 같다. 그러나 사진이나 영상의 경우 직접 그 주변을 맴돌 수도 있고 가까이서 보거나 멀리 떨어져서 볼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그것에 개입하여 변화시킬 수도 있는 체험형 게시글 역시 존재한다.

그 웹 사이트에서 그는 중증 악질 어그로꾼이었고 악플러였다. 그는 자신의 지적능력과 해킹 능력으로 밴을 당하지 않을 선을 정확하게 판별하고 그저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증오할만한 행위를 한다.

[글] 소아X간이 공개적인 스포츠가 되어도 상관 없는 이유. [4889]

.
.
.

HardcorePrinter [00:08]
아 시@발 얘 또 왔네. 얘 진짜 안 짤리냐?

DolDolMan [00:08]
신고 또 했다. 진짜 언제 짤리나 보자.
 ㄴBisk
   얘 진짜 안 짤리더라. 관리자 일 안 함?
   ㄴMolotov
     여기 A.I 관리자인데 기준에만 안 걸리면 절대 안 짤림. 게다가 기준도 자유 보장하려고 ㅈㄴ 낮아서 저 ㅈㄹ 하는 애들 절대 못 잡음.
    ㄴBisk
      ㅈ같네.

[글] 다들 어린애 보면서 꼴리는데 아닌 척 하는 거 역겨움 ㄹㅇ로. [2215]
[글] 다들 자아 어렸을 때 중학교 올라가기 전에 ㅅㅅ 하려고 시도 했다 ㅇㅈ? [1236]
[글] 소아성애 커뮤 ㅈㄴ 많은데 왜 나한테만 ㅈㄹ함? [3991]

그의 자아는 사람들의 관심과 공격에 아주 즐겁게 반응했다. 어차피 그는 소아성애에 별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가 아주 잘 먹힌다는 것은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이러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과 그러한 것을 종용하거나 그러한 컨텐츠를 공유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기에 딱 적당한 선에서 어그로를 끄는 것을 좋아했다. 그의 닉네임은 자주 바뀌었으나 결코 밴을 당하는 경우는 없었고 사람들은 이 남자 때문에 화를 내고 공격적이게 되고 게시판이 엉망이 되는 것에 질려 다른 커뮤니티로 떠나곤 했다.

남자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끔찍하고 잔인한 욕설에도 아무런 부정적 감각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창조해낸 페르소나의 주인이었을 뿐 그 본인 자체가 아니었다. 마치 소설상의 캐릭터가 어떠한 행동을 했고, 사람들이 그것에 극렬한 반응을 하는 것에 불과했따. 도리어 그는 그러한 캐릭터에 반응하는 것을 자신이 아주 잘 만든 캐릭터, 혹은 행위 내지는 사건이라 생각했고, 그들의 공격적인 반응은 그에게 극찬과 가까웠다. 훌륭한 캐릭터와 전개에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처럼 말이다.

작가가, 가수가, 연기자가 자신의 행위를 통해 타인의 감성을 건드리고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내며, 그들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의 편린이 행위로서 배어나올 때 충만한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듯이, 남자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충실한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닉네임은 게시판에 실제 사람인 것처럼 존재하고 있지만, 그러한 닉네임을 가진 사람은 실존하지 않는다. 실존하는 남자에 의해 만들어진 페르소나에 불과하고, 캐릭터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에 영향을 받는 진짜 사람들은 실제로 존재한다.


남자는 다음날 여성의 계정을 이용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딥 웹의 구성원이 결코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십 수명이 넘는 엘리트 해커, 연구자들이 한 여성의 계정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변태적 전능감을 안겨주었다. 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욕구와 쾌락에 여성의 계정을 이용했다. 단순 불특정 다수에 대한 트롤링부터 시작해서 일부 환경에서의 크고 작은 범죄, 가족과 친인척에 충격과 불쾌감을 주기 위한 활동부터 개인의 성적 욕구나 가학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비밀스러운 행위까지.

어떤 이는 그녀의 계정으로 어느 가상현실 환경에 접속한 뒤 알몸으로 변태적인 행위를 반복하게끔 했고 그곳에서 밴 되었다. 그러나 그녀에 관한 사진, 영상, 목격담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그녀에게 무기를 가지게 한 뒤 타인에 대한 살인과 테러를 저지르도록 했다. 실제로 죽는 건 아무도 없다. 그런 식으로 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는 공공활동에 불쾌한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밴 당할 것이다. 단지 그녀를 조종하는 사람의 파악하기 복잡한 트릭으로 발생시킬 수 있는 가장 큰 피해를 입혔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녀의 계정은 블락 처리가 되었고, 피해를 입은 기업과 정부기관은 그녀에게 거대한 소송을 걸었다.

그탓에 그들과 계약된 환경에서 그녀의 계정을 활용할 수 없다는 불만이 나왔지만 그래도 상관 없다. 네트워크는 넓었고, 웹 환경은 국가와 기업이 통제할 수 없이 비대해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환경에는 얼마든지 접근이 가능하다.

어떤 사람은 그녀를 천박한 코미디언으로 만들었고, 어떤 이는 포르노 스타로 만들었으며, 어떤 이는 다른 남성을 꼬셔 연애를 시작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은 동시다발적이었고, 비대한 가상 환경에서조차 화제가 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어떻게 동일인이 동시에 저렇게 많은 활동을 할 수가 있음?]
[저거 해킹 아님? 그거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데]
[뭔 해킹이여, 그게 어떻게 가능함. 불가능한데.]
[근데 어떻게 설명할 거냐고.]
[다 짜고 치는 거지 뭘.]
[진짜 짜고 치는 거 맞음?]
[아 어쩌라고 왜 나한테 물어봐 전문가 불러]
[전문가 등판했습니다. 저거 다 짜고 치는 바이럴입니다.]
[뭘 바이럴하는데]
[그건 바이럴 전문가한테 물어봐야 함 ㅇㅇ]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프닝, 어그로 등등으로 생각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저게 진짜 성공적인 첫 해킹 사례가 아닐까 의심하고 경계했다. 그리고 그건 국가나 기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시대의 국가란 일종의 관리자였다. 명시적인 세금을 걷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정부 스스로가 기업이나 웹 사이트 등을 운영하며 자금을 충당했고, 적극적이고 전략적으로 기술자와 연구자들을 영입했다. 가히 독점을 추구한다는 비판까지 받을 정도로 공격적이었기 때문에 사이버 전쟁이 터질 뻔도 했지만 기업국가화 되는 초대기업과의 협약이 잘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런 사건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다.

과거 국가는 군대와 경찰이라는 이름으로 무력을 독점했지만 모든 이들의 자아가 정보화된 이후 그들은 기술을 독점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이제 기술과 정보는 그 자체로 돈이고 무기였기에 그것을 독점한 세력이 가장 강하며 모든 이들에게 규칙을 강제할 수 있게 되었다. 국가는 자신들이 소유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네트워크, 웹, 가상현실 등에 자신들만의 규칙을 만들었다. 그 서비스를 즐기기 위해선 규칙을 지켜야 하고 그 규칙이란 사실상 법률과 비슷한 기능을 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이 소유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규모만큼이 그들의 영토이자 영지였으며 재산이 되었다. 국민이란 이제 유연한 개별적 객체가 되었으며 대중이란 가변적인 것이었다. 예컨데, 전 세계의 모든 인민이 모든 국가에 소속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며 동시에 여러 국가에 소속되어 있다 어느 국가에도 소속되지 않을 수 있었다. 대중은 전 세계 모든 성격을 통합한 존재였기 때문에 너무 복잡해진 이해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갈등과 분쟁은 극렬해졌다. 그런만큼 이해관계, 사상, 이념 등에 따라 거대 커뮤니티가 대다수의 대중을 포집하는데 성공했지만 거대 커뮤니티가 존재하기 위해, 기능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만들어지고 구성되어야할 규칙에 신물이 나거나 다른 페르소나의 무절제한, 혹은 극히 절제된 분위기를 추구하는 이들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공간으로 떠났다. 다른 공간에서는 불법적이고 강력하게 규제되지만, 어떤 공간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든 공간에서 현실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설령 그러한 규정이 없다 하더라도 규제되는 것은 바로 자아에 대한 해킹, 계정의 강탈 시도였다.

그리고 국가와 초거대기업의 연구자들은 이번 사례에 비상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해당 사례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검토가 있었고, 그들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 큰 문제는,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집단은 육체를 버리고 자아를 정보로 변환시켰을 당시 네트워크 세계 초창기 변화에 따른 규칙을 새삼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모든 갈등과 분쟁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포기한다. 그저 이익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규칙을 특정한 공간의 내부적 원리로서만 강제한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갈등과 분쟁이란 : 가짜뉴스, 정보교란, 사상적 충돌, 이념적 갈등, 역사 수정주의적 주장, 반민주적 활동, 인종차별을 비롯한 반사회적 활동 등 기존 사회에서 문제되었고 범죄시 되었던 모든 것을 포함한다. 이것들은 커뮤니티나 가상공간의 내부적 규칙에 따라 규제되거나 금지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공간 내에서의 일이었고, 그곳 바깥에서는 얼마든지 허용 가능한 공간들이 많으며 이것들은 국가나 기업 따위가 통제할 수 없다.

더불어 애당초 육체가 있던 시절부터 가짜뉴스와 A.I를 이용한 딥페이크 등 기술을 이용한 교란과 범죄에 대한 적절한 통제나 감시, 카운터 기술의 개발이 실패하거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태에 가깝다.

즉, 인류는 악한 의지로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고, 무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엉망진창이 된 미래는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어떠한 행위도 문제되지 않았다. 자아는 하나였으나, 페르소나는 수천개가 될 수 있었다. 어느 공간에서 밴이 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저 다른 공간으로 다른 ID를 만들어 살아가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자아는 그 자체로 검증할 수 없었고, 그에 대한 우회 툴 역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으며, 그것을 막는 것을 또 우회하는 것이 무한히 반복되는 세상 속에서 어떠한 검증도 무용했다.

그렇게 특별한 규정과 절차를 만들지 않는 한 밴 당한 커뮤니티에 새로운 ID를 만들어 무한히 활동하는 것 역시 불가능한 것도 아닌 경우가 많았기에 밴조차 의미가 없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커뮤니티를 찾았고, 불편한 규칙과 부당한 규정은 더 편한 것을 찾는 이들에게 덜 선택되었으니 경쟁에서 불리하게 되었다.

그런 사이클 속에서 기술의 발달은 무절제한 범죄로 잉태되었고, 더 이상 범죄조차 아닌 것이 되었기에 사람들은 거대 집단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철저히 개인일 수밖에 없었다. 그저 모든 공간에 불쾌함과 적절한 만족을 일시간 얻고, 또 다시 불쾌함을 느끼며 떠나고, 또 돌아오는 것을 반복할 뿐이다.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합리나 이성이 아닌, 철저히 필요와 감정이었고 이제 그들을 불쾌하게 했던 기술과 활동들에는 자아를 기반으로 하는 계정의 탈취 역시 포함되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아니, 단 하나뿐이었다. 자아를 격리시키고 계정을 탈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그 누구와의 접촉도 금지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찾을 것이고, 이제 완전히 타자와의 단절된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저 어떤 행위들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시초는,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디아나 작성시간 23.12.13 정독했습니다. SF라고 쓰셨지만 그냥 지금 이야기네요. 잘 읽었습니다. (짝짝)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