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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ome의 도서관

[판타지]금서.

작성자Khrome|작성시간24.02.04|조회수56 목록 댓글 3

금서禁書.

 

그 내용의 위험성을 이유로 누구도 읽지 못하게 금지한 도서를 말한다.

 

세상에는 정해진 규칙과 원칙에 따라 흐르는 법칙이 있고, 그러한 법칙을 특별한 방식으로 특정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능력을 마법이라 칭한다. 그리고 마법사란 그러한 마법을 올바르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마법사란 세상의 법칙을 통달하려는 사람을 말한다. 혹은, 진리라는 별을 찾는 자. 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식이란 언제나 올바른 방법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기 위해서도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니 어떤 마법사들은 지식은 갖추었으되, 지성을 획득하지 못하여 진리를 찾고,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보다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고, 타인을 핍박하며, 권력과 보화를 얻고자 사용하기에 그들이 가진 지식은 세상을 해롭게 하고 타인을 괴롭히는 방법을 찾는 도구로 전락해야만 했다.

 

비루한 자의 악의란 비루한 악행을 저지를 따름이지만 지식을 갖춘 자의 악의는 거대한 악행을 이룰 수 있게 해주니 악한 마법사들이 만든 마법은 너무나도 위험하고 사악했다. 홀로 살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오직 자신만이 존귀하고 누군가는 반드시 불행해야만 한다면 세상이 어찌 되겠는가.

 

그러나 세상엔 악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위협하는 자들도 있었고, 그런 이들이 만든 마법이란 기상천외하고도 위험천만한 것들이니, 마땅히 금서로 지정되어 이 세상 마법사들의 눈에 함부로 띄지 않게 하였고, 누구도 익히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은 마법사의 금서고이며, 가장 방대한 금서고를 가진 곳은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과 경험을 가진 이들이 부임한다는, 마법학교였다.

 

"교수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고문하는 환상 마법을 걸어 진실을 실토하게 만드는 것이 뭐가 나쁘단 말입니까? 실제로 누구도 죽거나 다치는 일이 없고 어디가지나 환상 속에서 공포에 빠지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이건 우리가 배우는 Magnus timor 주문과 뭐가 다릅니까? 막연한 공포라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과 실제 해를 입을 지 모른다는 구체적 형상 때문입니까?"

 

아주 뛰어난 학생이지만 아주 위험한 학생이 될지도 모른다는 평을 듣는 락스 아크름Lax arkrm의 질문에 이번에도 곤란한 얼굴을 하는 교수였다.

 

"아크름군, 기본적으로 고문이라는 것은 인간에 대한 범죄입니다. 우리는 수사를 받을 때 인신과 정신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고 고문이라는 건.."

 

"그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만, 교수님. 제 말 뜻은 그런 게 아닙니다. 실제로 피해를 보는 게 전혀 없는데 어째서 금지 해야만 하느냐는 거지요."

 

아르큼은 뛰어난 학생인만큼 합리적이었지만, 지나치게 합리적이었기에 그것이 도덕에 대한 감수성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먼저, 고문으로 얻어낸 정보가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단다. 고문이 두렵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요구하는데로 답할 수밖에.."

 

"하지만 그건 Perspicua veritas 주문을 쓰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진실을 말할 때까지 반복할 것이고..

 

"하아.. 아르큼군, 지금은 강의 중이니 일단 강의부터 마치고 나중에 답해드리겠습니다. 진행해도 되겠지요?"

 

"...."

 

락스 아르큼은 마법에 대한 뛰어난 이해와 직관, 실력을 갖추었고 그것을 위한 호기심과 지적 욕구, 향상심과 뛰어난 사고력까지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충족시키기란 쉽지 않았다. 교수들은 모두 실력과 경력 어느 하나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마법사였지만 그렇다면 아르큼의 질문에 만족스럽게 답해줄 수 없었다. 아니, 답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아르큼은 그날 저녁, 금서관에 침입했다.

 

어둠 속에서 지팡이를 추켜들고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Secretum liberationis"

 

금서관의 12번째 잠금이 소리 없이 풀렸고. 그보다 더 조용한 발걸음이 입구를 지나쳤다. 이제 마지막 13번째 잠금이 기다려야 했지만, 그는 금서관을 가리라 마음 먹은 그 순간 그것을 풀었다. 마지막 13번째 잠금은 바로 마법사 본인의 양심이었기 때문이다.

 

아르큼은 책장에 빼곡히 차있는 금서들을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모를 표지도 있었고, 사람의 피부 가죽으로 만들었으리라 확신할 수 있을 법한 것도 있었다. 단지 바라보기만 해도 뇌에 찌를 듯한 고통을 주는 책이 있는가 하면, 눈길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매혹적인 것도 있었다.

 

어떤 책은 빌었고, 어떤 책은 협박했으며, 어떤 책은 유혹했고, 어떤 책은 거래하려 했다.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적과 흑.. 백괴저주술 3설.. 인간 지성론.. "

몇몇 책의 제목을 읽으며 책장을 지나갔다. 그리고 그제서야 아르큼은 깨달았다. 어떤 책을 목적으로 찾아왔는지 정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때, 바깥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서관의 12번째 금제마저 풀렸습니다. 비상 사태예요."

 

"부디 마지막 13번째마저 풀리지 않았기를.."

 

이런. 하는 생각과 함께 정신이 든 아르큼은 당장 손에 잡히는 아무 책이나 잡아 뽑고는 뒤를 한번 돌아본 뒤 얼른 몸을 움직였다. 교수들이 들이 닥치기 직전 문옆 기둥 그림자에 숨은 아르큼은 아직 범인이 내부에 있을 거라는 의심을 덕분에 들키지 않고 먼저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마침 오늘이 전투 마법사 교수가 아닌 연구, 행정 분야에 종사했던 교수들이 당직을 서는 날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이리라.

 

그는 슬쩍 손을 들어 금서의 이름을 읽었다.

 

"공산당 선언? 잘 모르겠지만 일단 가져가자.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니야."

 

 

그날 밤을 기점으로, 역사는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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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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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_Arondite_ 작성시간 24.02.05 아닠ㅋㅋㅋㅋㅋ이양반앜ㅋㅋㅋㅋㅋ하필 빼와도 그런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답댓글 작성자Khrom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2.05 공산당 선언 옆에는.. 성경이 있었다고..
  • 작성자커넬 샌더스 작성시간 24.02.06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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