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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ome의 도서관

[SF]잿빛 클로버 (14)

작성자Khrome|작성시간24.05.05|조회수24 목록 댓글 0

-이런 곳이 있었을 줄이야.

-어디든 구석진 곳은 있는 법이지.

망가진 트럭 아래에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아래 맨홀이 있었다. 그 안으로 내려가니 식량과 배터리, 자전거를 개량한 발전기, 공기통들이 여럿 있었다.

-어디보자.. 이건 비었고, 이것도 비었군. 쯧, 다 썼으면 좀 채운 거 가져다놓으라니까..

베론과 미하일은 뮬러에게 3시간 분량의 공기를 나눠서 구입했다. 그 대가는 그들의 모든 물자였다. 즉,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다 쓴 공기통은 물론 총기, 탄약, 간이 의료장비, 손칼과 단검, 브러쉬나 심지어 손톱깎이 같은 소도구까지. 이건 지금 당장 줘야 하는 것들이고 돌아가면 더 많은 걸 지불해주기로 약속햇다. 심지어 그들이 입고 있는 외투까지 줘야 한다. 당장은 아니지만.

-당연하지만 이곳에 대한 정보는 극비일세. 이에 대해서는 값을 매기지 않겠으나 목숨값을 후불로 낼 것이라 생각해야해. 이곳은 나 뿐 아니라 우리 상업지구에서 공동으로 관리하는 곳이야. 그리고 이 공간을 외부인이 아는 건 자네들이 처음이니 새어나간다면 범인은 뻔하지.

-앞으로 이런 곳을 뒤적거려봐야겠구만.

-흐흐.. 우리 신뢰가 있는데 설마 그러할까.

물론 베론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신뢰는 얻기 어려운만큼 잃었을 때 손해가 너무 크다. 이런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것이 신뢰이지만 한번 얻었다면 그걸 잃어버릴 때 아주 비싼 값을 치뤄야 한다.

베론은 피식 웃고 미하일을 바라봤다. 서로 몇시간 넘게 아무 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 일부 수트는 물이나 작은 음식 정도는 수트에 부착된 빨대를 통해 먹거나 마실 수 있지만 그들의 것은 아니었다. 이미 그 역시 전투 후 피로와 체력 손실로 쓰러질 것 같았다.

-이제 어쩔텐가? 놈들이 수색 중일 수도 있어. 우리보다 먼저 움직여서 저격을 시도 중일 수도 있지.

-위험할 수는 있지만, 이곳 지리는 우리가 더 잘 알지 않은가. 시간도 낭비되긴 하지만 구석구석 돌아간다면 못 돌아갈 것도 없긴 하지.

그래도 위험하다는 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베론은 요구했다.

-지금 바로 움직이지.

-바로? 위험하지 않겠나. 충분히 휴식과 준비가 없다면..

베론은 고개를 가로지었다.

-놈들은 오히려 벙커로 돌입했을 거다.

뮬러는 아하, 하고 말을 이었다.

-내부의 우리 동료들을 마저 처리하기 위해서군. 아직 끝마치지 못했다면 루스키 또한.

-그래. 우리는 변수 제거이자 리더쉽을 상실시키기 위한 공격이었지. 다만 우리가 예상보다 많은 병력을 호위로 두는 바람에 기습이 충분히 효율적이지 못했던 거고. 실전 경험과 작전 능력이 그다지 뛰어난 건 아닌 거 같더군. 계획이 더 치밀했다면 우리 중 살아남은 사람은 없을 듯 허이.

베론은 말을 너무 길게 해서 숨을 소모하고 있다는 느낌을 듣고 바로 일어났다.

-총 좀 빌려주게. 바로 돌아가야겠어.

가장 가까운 믿을 수 있는 곳은 헬레네 늪지대의 진흙광부 구역.

-정말 거길 가려고? 그 답답한 놈들에게?

남쪽의 헬레네 늪은 먼지가 세상을 뒤엎을 적 사람들이 물을 빼가기 시작하면서 수량이 크게 줄었고, 이후엔 먼지가 섞이고 덮혀지저분한 늪이 되었다. 먼지가 상층부를 수십cm나 덮고 있기 때문에 하부에는 먼지 섞인 진흙으로 물이 존재하긴 하고 진흙광부들은 그곳에서 진흙을 파낸 뒤 짜내고 정수하여 물을 뽑아낸다. 아주 쓰레기 같은 맛과 냄새가 나기 때문에 역겹기 그지 없는 물이지만 그런 물조차도 귀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두 그곳의 물을 사서 쓴다.

그럼에도 냄새와 맛은 어쩔 수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한번 더 정수를 거치거나 다른 향이 나는 것을 넣어서 중화하려 애쓴다. 심지어 오랫동안 먼지 섞인 녀석이고 정수 시설이 뒤떨어져서인지, 아니면 그들의 정수 능력이 뒤떨어져서인지, 그도 아니면 이 정도라도 사먹는다는 배짱 장사인지 구토, 설사, 두드러기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마시는 사람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없고 마셔도 소량으로 몇 시간~며칠에 걸쳐 나눠서 마셔야 했다.

상품의 문제는 그렇지만, 지역 사람들이 극도로 꺼리는 그들 특유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성향과 심지어는 드워프라고 조롱할 정도로 깐깐한 걸 넘어 지독한 성깔은 그들의 상품을 필요로 하면서도 그들을 꺼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다. 그 깐깐함이 정수와 탈취에도 적용되었으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들의 구역을 거쳐서 지나가는 게 가장 안전해.

-분 단위로 값을 매기려 들 걸?

-그러겠지. 별 수 있나. 목숨값이 도통 비싸야지.

뮬러는 베론과 미하일에게 총기와 탄약을 돌려주며 말했다.

-에흐.. 정비 다시 해놓게. 준비되면 이야기하고.

거래라면 모를까, 전투와 생존에 있어 이들보다 더 나을 게 없는 뮬러는 양보했다. 그리고 이 양보에는 그들이 방금 전까지 지불했던 것보다 더 큰 대가를 줘야 한다는 걸 베론은 알고 있었다. 그 값을 치르기 위해서라도 그는 살아야 했다.


***

’응?’

뒤를 돌았을 때, 가장 앞에 있던 덩치 큰 청년이 그들 무리 뒤쪽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 팔켄하인 경위는 의아함과 다소간의 불쾌함을 느껴야 했다. 의아함은 굳이 방탄 방패를 든 자가 전위를 맡지 않을 이유가 있느냐는 거고, 불쾌감은 마치 자기들이 위험 요소인 것처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판단이 틀리지만은 않았다는 점에서 아주 불편했다.

브람스는 가장 앞에 서있는 빅커스의 어깨레 손을 올렸다 놓았다. 긍정을 의미하는 신호였고, 빅커스는 천천히 전진하며 달려오는 발소리가 모퉁이에 가까워 졌을 때 상체를 꺽어 몸을 내보낸 뒤 총을 쏘았다.

타다다당! 타다다다다당! 타당! 탕! 탕!

빠르고 정확한 격발에 루스키들은 픽픽 쓰러졌다. 그러나 모든 루스키들이 죽지는 않았다.

-’시발!! 앞에 놈들이다!! 응전해!!’

루스키들 중 몇은 그대로 엎드리거나 앞사람의 등뒤에서 몸을 웅크리며 총탄을 피했다. 빅커스의 5.56mm탄은 소구경 고속탄이기에 관통상을 입히며 뒷사람을 뚫기도 했지만 서너사람을 뚫을 정도는 아니었다.

-’끄으윽..’

따다당!

일부 병력은 마약이라도 미리 했는지 총에 맞고도 쓰러지지 않은 채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탄착군은 형편 없이 전혀 다른 방향의 벽면에 형성되었고, 비틀거리면서도 광인처럼 앞으로 달려갔다.

그런 소리를 들으며 빅커스는 이번엔 앉은 채 다시 몸만 내밀어 총을 쏘았다.

따다당! 타당!

터더덩, 터더덩!

앞에서 곧 죽을 놈이 뛰어나갈 때 엎드린 채 시신에 총만 올려서 조준하던 놈이 곧바로 반응했다. 그러나 그가 예상하고 조준했던 곳은 방금 전 빅커스가 몸을 내밀었던, 즉. 서있었을 때 기준의 위치였고, 빅커스는 예상과 다르게 앉은 자세로 몸을 내밀어 쏘았기에 맞지 않을 수 있었다.

반면 빅커스의 탄은 달려오는 놈들의 무릎과 허벅지를 때렸고, 슬개골과 허벅지 근육, 대퇴골을 부수었기 때문에 그들은 고통의 유무와 별개로 쓰러져야만 했다.

-여기까지. 더 이상 공격 못해.

방금 전 루스키의 반응에 다음에 몸을 내밀 때 서로 다른 위치를 조준한 녀석들에 의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물론 볼커를 앞세운 채 방탄방패를 내밀면 가능이야 하겠지만 놈들 중 폭탄을 가진 녀석이 하나라도 있다면 위험천만해질 것이다. 빅커스는 놈들을 속이기 위해서 수신호를 보냈고, 동시에 뒤로 후퇴하는 발소리를 내려고 했다.

뻐어엉!!…

저 멀리서 강렬한 폭발음이 울렸고, 그 굉음이 막 움직이려든 그들의 발을 엉키게 만들었다. 넘어진 사람은 없었지만 모두 자세가 흐트러졌고.

-발사!!

탕! 탕! 탕!

팔켄하인 경위의 외침과 동시에 쏘아진 권총탄이 한스 일행에게 쏘아졌다. 그 뒤를 이은 경찰 대원들 소총 사격과 함께.

따다다다다다다당! 퍽! 팅, 쉬슁. 따다다닥..

그러나 그들의 공격은 충분히 준비된 시점에서 시작된 게 아니었고, 무엇보다 볼커는 이미 후방을 예의주시하고 경계하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방탄방패를 들고 후위를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피해도 없을 수는 없었다.

-시발..!!

벽쪽에 가깝게 붙어 있던 브람스는 볼커의 뒤쪽으로 이동하다 허벅지와 종아리에 맞고 무릎이 꺽이며 움직이지 못한 채 목과 옆구리에 총알이 꽂히며 즉사했고, 리하르트의 팔에 총탄이 뚫고 지나갔다. 어깨를 스쳤고 몸을 돌리는 과정에서 상박의 뒤쪽, 삼두근에 관통상을 입었다. 찢어지고 뚫린 팔에서 출혈이 발생하고 있었고, 그는 공기의 손실을 막기 위해 머리 전체를 쓰는 방독면을 개조한 마스크의 목 부분의 줄을 당겼다. 그대로 조여지며 목에 압박이 가해졌지만 공기의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수트는 수트 내부에도 공기를 순환시키기 때문이었다.

-씨발!! 헤르만!! 섬광탄!

한스는 빅커스의 의도를 읽어냈고, 헤르만이 막 꺼내어 든 섬광탄을 빼앗아들고 등 뒤로 던지듯 빅커스에게 넘겼다.

-뭐하는..!!

헤르만은 갑자기 저지르는 행동에 당황스러워했지만 놈들은 빠르게 복도를 점유하며 전진하고 있었다. 감히 몸을 꺼낼 수가 없어서 볼커의 등뒤에 최대한 딱 붙어 사선을 피하고 있었고, 그저 총만 슬쩍 꺼내 몇발씩 당기는 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루스키가 뒤에 있다는 건 아주 위험한 상황.

그리고 빅커스는 놈들이 일어나 앞으로 나오려는 소리를 듣고 곧바로 섬광탄의 핀을 꺼낸 뒤 1초가 조금 지난 뒤 뒤쪽 복도로 냅다 던졌다. 쉽게 잡아채지 못하도록 위쪽으로.

-터지면 뒤로!

-’귀막..!’

뻐엉!!

빅커스는 곧장 복도로 뛰어들었고 팔켄하인의 병력의 총질에 맞지 않기 위에 T자형 복도 오른쪽 루스키들에게 총구를 돌리며 왼쪽 모퉁이 안쪽 벽에 붙었다. 그리고 조정간을 AUTO로 맞춘 뒤 그대로 갈겼다.

따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그러나 이미 절반 정도 소모한 탄창에선 10발 남짓 나왔고, 그걸로 모두 제압했다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그가 총을 쏘고 있을 때 동료들은 그대로 복도로 들어와 왼쪽 방향으로 달렸다. 다만 빅커스가 탄창이 빈 것을 본 한스가 이어서 등을 돌린 채 총을 쏘았다. 시체 사이에 엎드린 녀석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구분하지 않고 갈겨줬다.

그리고 그 사이 볼커가 복도까지 들어오는 것에 성공했고 한스는 볼커의 어깨를 툭 친 뒤 빅커스와 함께 달렸다.

-당장 따라붙어!! 놈들을 모두 죽이란 말이야!!

상황이 급박해졌다. 이곳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통로가 어디로 이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지하 공간이란 출입자의 실종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어디론가 이어져 있기 마련이지만 어떤 공간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스 일행은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뛰어넘었고, 통로에선 볼커의 방탄방패가 매우 유효했기 때문에 상당히 안전하다는 믿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러라는 보장은 없었고, 그들은 정면에서 다른 일행을 마주했다. 그들은 이미 죽은 다른 공동체 인원들 사이에 서있었고 몇명은 죽었거나 곧 죽을 것처럼 쓰러져 있었다.

그들은 사살 대상의 물품을 노획하는 중이었고, 서있는 세명은 이곳으로 달려오는 소리를 듣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위험 요소일 거라는 생각은 안 했는지 총을 겨누고 있진 않았다.

-…

-…

리하르트는 낭패라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고, 헤르만도 철렁하는 심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들을 숨겨준 것은 그들이 쓴 마스크와 헬멧이었지만 그들의 표정은 몰라도 기색마저 감출 수는 없었다.

헤르만의 팔에서 피 한 줄기가 주륵 흘렀을 아주 짧은 무렵, 저들이 먼저 외쳤다.

-공격!!

-씨바알!!

그러나 총격은 리하르트와 헤르만이 더 빨랐다. 헤르만은 리하르트를 부축하고 있었고, 리하르트 역시 팔을 다쳤기에 즉각적인 대응에서 정확도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폭 2m도 안 되는 복도에서는 충분했다.


타다다다다당!!

하는 총성이 여럿 겹친 뒤 리하르트와 헤르만은 즉사했다. 놈들은 일곱 중 3명이 죽었고, 4명 중 2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바로 뒤에 달려온 빅커스는 막 쓰러지는 그들의 시체를 한손으로 밀러 올리듯 방패삼아 총을 쏘았다.

따다당!

바로 같이 따라온 한스 역시 총을 쏘았고, 앞을 가로막은 경찰 대원들을 모두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더 있으리라는 위기감은 그들을 정신적 공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빅커스는 두려움과 극한의 긴장 속에서 앞으로 달려나갔고, 한스는 걱정에 볼커를 한번 뒤돌아 보았다.

무거운 방탄방패를 온 힘을 다해 메고 뛰는 모습은 평소의 든든한 볼커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 역시 생명이 경각에 달한 극한의 상태에 있었다. 한스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시간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겨우 몇 발자국 내려온 볼커에게 달려가 그의 옆에 서서 총만 머리 위로 올린 채 한 탄창을 난사했다.

-움직여, 한스. 흐억.. 헉..

볼커가 그렇게 말했고, 한스 역시 동의했다. 한번 쏟아진 총탄에 누군가 다쳤는지 돌격은 지체되었고, 또 한번 거친 고함 소리 뒤에 발자국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수류탄 핀이 뽑히는 소리 역시.

한스와 볼커가 막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수류탄은 그들의 발치에 굴러 떨어졌다.

-내 뒤로!!

볼커의 외침에 한스는 곧바로 그의 등 뒤로 몸을 던졌고, 볼커는 방패를 땅에 붙힌 채 살짝 기울여 각도를 만들었다. 유선형이 아닌 직선형태의 방패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뻐엉!!

실내전에서 수류탄은 매우 위협적이지만 수류탄의 실전 위력은 의외로 강력하지 못했다. 그러나 초근접 폭발 위력은 볼커의 손가락과 팔을 잠시 마비시키는데 성공적이었고 무엇보다 파편이 위쪽으로 튀며 천장의 배관을 때렸다는 점이다. 배관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고, 여전히 잘 보관되어 있던,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가스를 뿜어냈다.

피슈우우우우우우..

-끄악!

-윽!!

갑작스레 시야를 가리는 연기에 당황하는 사이 놈들의 발자국 소리는 더더욱 빨라졌다.

둘은 정신 없는 상황에도 움직일 수 있다면 움직이라는 원칙에 따라 반대쪽으로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볼커는 자신의 의무인 후방 경계마저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의 헬멧 시야가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에 의해 내부에 수증기가 맺혀 앞을 제대로 시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볼커는 눈앞에 아른거리는 그림자가 한스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한스는 그의 거의 옆에서 한쪽 손을 벽에 댄 채 같이 뛰고 있었고,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뿜어진 가스에 섞인 수증기에 의해 헬멧의 먼지가 얼룩으로 번진 것이었다.

-그라나트!

또 한번 던져진 수류탄. 빅커스는 왼쪽으로 달려간 것을 알지만 한스는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이 T자형 복도에 막 진입했을 때 수류탄은 그들의 사이에 떨어졌고, 볼커는 왼쪽으로 이미 몸을 돌렸으며, 한스는 반대쪽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스는 오른쪽 복도의 문을 몸으로 밀고 들어갔다. 다행스럽게,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단지 들어가기 직전 폭발했다는 게 문제였을 뿐.



뻐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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