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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ome의 도서관

[SF]은하 연방 자원관리 특별법 제1조

작성자Khrome|작성시간24.05.19|조회수93 목록 댓글 1

은하 연방 자원관리 특별법 제1조(목적) 이 법은 생명의 탄생 가능성이 있는 성계의 환경을 보호하고 침해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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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웅.. 찌르르르..

4차원 생물인 카르니오프 종족의 압스카녜 융콜은 7개 성계, 33개 행성에서 사업을 진행하며 지금도 확장하는 사업체인 글룸미타스 Inc.의 전무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융콜은 입방체적 신체를 움직이며 사업 계획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 음성은 신체를 진동하여 발생시키는 것이었다.

“운이 좋았군. 어떤 생물체도 없는 행성이고 자원도 풍부하고.. 채굴하면 돈 좀 되겠소.”

“정말 운이라고 해도 좋을 일이오. 거대 블랙홀들 뒷편 사이라 가려져 있었는데 마침 개발된 항로도 딱히 없었는데 과감히 투자한 게 이리 돌아올 줄이야.”

거대 블랙홀들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멀리 돌아가는데, 뒷편에는 특별히 항성계나 자원이 많은 곳이 거의 없었고 보이드가 몇 곳이 있기 때문에 초기 몇번의 탐사 이후로는 많은 이들이 관심을 두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 환경에 블랙홀 사이의 절묘한 위치에 인간을 비롯한 대다수의 종족이 살 수 있을 법한 행성을 가진 항성계가 하나 존재했던 것이다.

“권리는 발견자에 있으니 남들이 침 바르기 전에 빨리 먹읍시다.”

은하 서부, 지구 출신의 총무 이사 리안 이의 그러한 표현에 압스카녜 융콜은 또 한번 신체를 진동했다. 웃음과는 다른 개념이지만 그들 종족 중 사회적 형식을 학습한 이들은 의도적으로, 의식적으로 웃음이나 분노, 슬픔 등의 행위를 자기네 형식으로 표현해내곤 한다.

 “침 바른다? 재밌는 표현이군.”

그들에겐 침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룸미타스사는 탐사선과 중계기를 설치 한 뒤 해당 성계에 관한 정보들을 수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계의 자원을 행성과 소행성들로 한정짓는 경향이 잇었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행성이 아니었다. 그들은 태양을 원했다.

그들이 가진 기술은 태양 채굴 기술이었다. 정확히는, 태양에 강력한 빔을 반세기 정도 쏘아대면 태양을 이루는 수소와 헬륨의 원자 상태를 흔들어 정상적인 핵융합을 유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 상태의 수소와 헬륨은 거의 양자적 상태에 가깝게 존재적 중첩 상태를 이루게 되어 모호한 상태로 존재하며, 그에 ㄸ라 점점 태양은 식게 될 것이고 이론상 액화 가능한 지점까지 온도를 낮출 수 있겠지만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실험실에서 기술 실증에서만 보여준 현상이다.

태양은 성계 내의 모든 자원 중 가장 거대한 질량을 가진 자원이기에 행성의 모든 자원을 포기하더라도 태양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소와 헬륨은 우주에서 가장 흔하지만, 흔하다고 해서 충분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건..

“대출은 사업 설명회가 끝나고 난 뒤면 될 거고, 이번 사업 설명회는 누워서 떡 먹기로군.”

융콜은 그렇게 말하며 스스로를 진동시켰다. 지구 출신 동료의 표현은 재밌는 것들이 많아 써먹는 재미가 있다고 여겼다.

“네, 준비는 완벽히 끝났습니다. 사실, 대충해도 상관 없을 정도로 성공적인 정보들이 수집되었죠.”

융콜은 신체를 한번 진동시키며 동감을 표했다.

“어렵지 않은 설명회가 될 거야. 엄청난 돈을 투자 받겠지. 우리 계좌에도 엄청난 돈이 꽂힐 거고… 그래, 투자자들도 괜찮은 배당을 받겠군.”

태양을 하나 채굴할 때마다 기업 가치가 몇십 배씩 뛰어오른다. 물론 일부 투자자들과 애널리스트들은 채굴에 투자되는 비용 역시 어마어마하고 실제 태양을 채굴하기까지 수십년에서 1세기 가까이 필요하다며 다양한 변수를 지적하는 등 지나친 거품이 끼어 있다고 비판하지만 그들이 벌고 있는 돈은 실제 였고 이미 태양 2개를 실제 채굴하여 판매하기까지 하며 이러한 비판은 초치기 정도로 받아들여 지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태양 하나만 채굴해도 채굴은 물론 경영에 필요한 모든 비용의 수백배는 우습게 뛰어 넘는 이익이 쥐어지니 그따위 비판은 들어줄 가치가 없지.”

겁쟁이들이나 투자를 겁내는 것이고, 소인배들이나 장기 투자를 못하는 것이다.

글룸미타스사의 COO로서 직접 챙기는 사업 설명회였으며, 어떤 법적 문제도, 권리 쟁점도 없는 온전한 그들의 이권이었기에 그의 임무는 100% 얻을 수 있는 성과를 200% 이상으로 부풀리는 것이었다. 즉, 쉬운 일을 거저 먹지 말고 노력해서 더 큰 성과를 만드는 것이랄까.

융콜이 신체를 열심히 진동시키며 설명회를 진행했다. 사업 설명회의 핵심은 나쁜 말은 전혀 하지 않고 꿈과 희망찬 미래를 예쁘게 그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장밋빛 미래와 수익을 기대하게 만들어야 하고 현실적인 악재나 변수를 고려하지 않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융콜은 그런 면에 있어서 매우 뻔뻔한 정도로 유능했으니 투자자들과 애널리스트, 기자들은 그의 달변에 홀린 듯 경청했다.

그러나 어딜 가든 분탕을 치는 사람 한 두명 쯤은 있기 마련이듯이, 한 여자가 벌떡 일어나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녀의 종족이 의심될 정도로 거대한 목청이었다.

“이 사업은 거대한 멸종 사업입니다!!!!!”

융콜은 순간 저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리안이 흔히 말하듯, 뇌정지가 왔다고나 할까.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발견한 성계의 모든 행성에는 어떠한 생명체도 없다는 것이 면밀히 조사되었고, 외부 조사단을 통해 검증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고지능자 특유의 빠른 상황 판단력으로 정신을 차린 융콜은 분위기를 다시 가져오기 위해 몸을 진동했다.

“…앞서 설명드렸다시피 해당 성계엔 어떤 생명체도 없으며 이는 외부 조사단을 통해 검증을 받았습니다. 그 조사단엔 은하 연방 소속까지 있었으니..”

“그런 건 의미가 없어요!!!”

무슨 개미친 소리를 하는 것일까? 모든 사람은 멍청한 사람을 논파하고 그 사람이 멍청하다는 걸 증명하여 망신을 주고, 자신의 자존감을 드높히고자 하는 욕구가 있듯이, 융콜 역시 그녀의 멍청한 소리를 들어준 뒤 왜 멍청한 지 이 자리에서 증명해주고 싶지만 이 자리를 그런 자리가 아니라는 걸 잘 알았기에 적당한 망신만 주어 입을 닥치게 하고 설명회를 마저 진행하여 성공적으로 끝마쳐야 한다는 의무감이 그러한 욕구를 제압했다.

“왜요. 거기서 사시려고요?”

하하하하…

융콜의 재치 있는, 그러나 매우 무시하는 발언은 사람들에게 적절한 유머로 받아들여 졌는데, 그들은 대부분 투자자거나 투자 의향이 있었거나, 돈을 받고 기사를 써줘야 하는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그 성계의 행성 조성을 검토해봤어요. BN-T-AA-2번과 3번 행성은 생명의 발생 가능성이 있는 행성입니다!! 절대 행성이 죽도록 놔둬선 안 된다구요!!”

지나치게 감수성 넘치는 행성의 죽음을 말하는 그 어투는 사업가로서 매우 역겹고 유치하게도 들리는 히피적 표현이었지만 그는 유지해야할 체통이 있었다.

“먼저, 사업에 불만이 있다면 법적으로 제동을 거십시오. 이렇게 사업 설명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 것이 아니라요. 더불어, 분명한 법적 명분을 가지고 비판을 가하셔야 사업에 훼방을 놓을 수 있는 거랍니다. 그런 식으로는 불쾌할 뿐이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건 없어요. 그저 난 노력했고 실패했지만 뭔가 했다는 자기 만족으로 정신승리할 거라면 세상은 그런 식으로 나아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려드리고 싶군요. 실패한 운동가와 성공한 운동가를 다룬 것들은 많으니..”

“흥! 이미 그렇게 했어요!”

그렇게 외친 여자는 그대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참으로 미친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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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최근 귀사의 탐사에 의해 발견되어 개발 중인 BN-T-AA-2, BN-T-AA-3번 행성의 물질 및 환경 조성이 생명 발생 가능성 높다는 결과를 확인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연방법 330조 생명정의법과 연방법 331조 생명보호법을 근거로 하여 해당 행성의 생명 발생 가능성을 보호해야 하는가에 대한 유권해석을 논해야할 필요가 발생하였습니다. 자치안전부는 생명보호국과 생명정의연구소의 연구 결과와 함께 은하 연방 법원에 사법해석을 요청하였고 글룸미타스 Inc.는 정해진 일자로 책임자와 변호사를 판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자치안전부 장관 크룩카스 칼 칼코스]
[은하 연방 법원장 솜니아 영]


본사로 복귀하고 융콜이 받은 메시지는 이토록 기분 나쁜 것이었다. 아마 그 미친 여자가 법원과 행정부 등 여기저기 꽂아댔겠지. 분명 완성도 떨어지는 주장이었을 것을 곧이 곧대로 받아쳐먹은 걸 보니 자치안전부 장관이라는 놈이 소수종족으로 성과 좀 내고 싶은 모양이다.

그의 몸체가 수축과 확장을 반복하며 가까이에 있는 주변 사물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드륵. 하며 테이블이 밀려나는 소리가 나자 그는 자신의 정신을 집중하여 감성을 다스렸다. 테이블은 분자 구조를 기억에 따라 원래 세팅된 형태와 위치, 높이로 변환하여 처음의 모습대로 복구되었다.

그는 말단을 첨예하고 단단하게 조직하여 버튼을 누르고 말했다.

“당장 법무팀 소집하라고 전하게. 모두 다. 비번도 상관 없이. 그리고 외부 로펌에도 연락하게.”

목적는 재판을 승소하는 것. 목표는 그 미친 여자를 어떻게든 담궈버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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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팀은 유능함을 요구 받는다. 단순히 법원이나 변호사 사무실에서의 법조인이 아니라 기업에 소속되어 있을 수록 더더욱 그렇다. 이건 그들의 신분이 공무원이나 자영업자가 아니라 돈 받고 일하는 엘리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법 같은 어려운 걸 다루면서 기업에서 일 할 정도면 그만한 연봉을 제시 받았을 것이고, 그만한 연봉을 받는다면 일반적인 변호사나 검사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거의 맞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기업에 소속되어 일하는 법조인은 일을 잘해서가 아니라 인맥 때문일 것이 적지 않은 경우이기 때문이리라는 것이다. 물론 우주시대에 수많은 종족과 개인의 두뇌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도화된 시스템은 그러한 인맥놀이만으로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고, 우주시대에 맞게 사람 몇 좀 안다고 재판에 영향을 끼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인맥의 무용함을 증명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완벽함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고 시스템을 다루는 건 결국 사람이다. 따라서, 언제나 사람이 문제였다. 이번 사례 역시 그런 경제적인 방법으로 시도해보려 했으나..

“어렵나?”

“…면목 없습니다.”

융콜은 자신의 4차원적 신체의 부피감을 세심히 조절하며 다시 물었다.

“그 여자가 뭔데? 그 여자가 뭐라고 이런저런 시도들이 다 막힌단 말이지?”

세심한 조절 덕분에 부피감은 조절 가능했지만 진동수는 조절하지 못하여 도리어 위협적인 소리가 날카롭게 음성으로 나타나자 직원들은 표정을 더욱 경직시켰다. 기계 종족의 경우 부품의 소음을 조절해야 했을 정도로.

-제 조사 결과, 집안이 대단한 아가씨라고 합니다.

일곱 쯤 있는 기계 종족 직원 중 하나가 답했다. 융콜은 무응답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직원은 말을 이었다.

-남부 크레멜 제국의 1788번째 황녀라고 합니다.

통칭 불멸의 제국. 황제 개인의 권력이 지나치게 막대하면서도 꾸준한 개조와 혁신으로 신체와 정신 모두 일반적인 생물의 범주를 뛰어 넘었다. 기계인지 생물인지 모호하면서도 그것을 초월했다는 말까지도 나올 정도로 개창된 황제는 이미 1989년이나 제국을 다스리고 있었다. 

고작 300여개의 성계를 다스리면서 황제니 제국이니를 칭하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곳에서 나오는 부와 기술력은 연방으로서도 그들을 연방 내로 종속시키는 대신 존중하게끔 만들었다. 물론 군사력으로는 어렵지 않게 밀어버릴 수 있고 제국의 부가 은하 전체의 부에 비해서 하찮기 짝이 없지만, 일개 개인의 부가 은하 전체 부의 1%를 차지한다는 건 무시할만한 사실을 아닐 것이다.

그렇게 오래 산 인간이 자신의 고환 만큼은 끔찍하게 관리하여 정력적인 성 활동을 하고 있기에 혹자는 인구의 10%는 그의 자식들이며, 직계와 방계까지 합치면 70%는 그의 자식일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물론 별 근거는 없지만 말이다.

“1700번대 황녀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러나.”

동북부에서 활동하는 그들로서는 서로 볼 일이 없는 관계이며, 폐쇄적인 제국 특성상 황자나 황녀가 제국 밖으로 나오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고, 그 위치 역시 제국 국경 근방 지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활동하는 황녀는 특이한 일이었다.

-생각보다 대단한 여자입니다.

그가 전달해준 데이터에 접속해본 융콜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많은 황녀라는 신분이 실권의 밀도를 옅게 만들었지만 특권이 없진 않았다. 제국은 황자나 황녀의 무역 특권을 통해 주변 지역이나 제국 밖의 업체와 교역을 실시하는 국가이다. 그렇게 황자와 황녀는 어떤 기업이나 공직을 받진 못하지만 실질적으로 교역과 관계된 역할을 독점하는 계층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초월적 능력의 황제는 그 모든 사례를 분석하여 어떤 것은 허가하고 어떤 것은 불허한다. 그렇게 모든 백성은 황가를 통해 교역하고 황실의 인원들은 황제의 입맛과 판단에 맞는 행동을 하기 위해 하루 종일 그것에만 몰두한다. 황제는 황가를 갑으로 만들었고, 황제는 그 중에서도 절대갑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었으며, 제국 영토 바깥에 영향력을 투사하는 방식이었다.

황녀는 그러한 활동권을 벗어난 사례인데, 그것이 황제의 판단이라는 분석이었다. 즉, 황제는 제국 근방 너머의 정보를 원했고, 누군가에겐 불편하고 주목 받을 수 있지만 경계되지는 않는 주제. 환경과 생명 존중이라는 명분으로 외부 활동을 시작하게 했다는 것이다.

“흠.. 활동을 시작하게 한 것이 아니라 황녀 본인이 처음부터 그런 포지션을 보여줬다고? 그리고 황제는 황녀를 선택한 것이고..”

황녀는 제국의 필요를 짚었고, 황제는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말을 골랐다는 것.

“활동도 다망하시군.”

인류의 아종임에도 인류의 본고장인 지구까지 가서 바다 보호 운동 달 겉보기 풍경 보호 운동을 진행한 적도 있었다.

“됐어. 재판 전략은?”

법무팀장이 대표로 답했다.

“황녀가 하는 주장이 이전에 없던 주장은 아닙니다만 실질적으로 재판까지 간 사례는 없습니다. 은하법은 다른 대다수의 법률이 그러하듯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규정하는 법률은 그다지 많지 않으니까요. 단순 발생 가능성을 염두해두고 규정된 법률은 실제 가능하거나 미약한 가능성이지만 은하 전체나 일부, 혹은 연방 차원에서 심대한 위협을 끼칠 수 있는 것에 주안점이 되어 있곤 합니다.”

가령, 대량 살상 무기부터 시작해서 정신이나 신체, 자원이나 성계 등을 오염시킬 수 있는 다양한 질병, 밈적 재해, 기술적 재해, 기생종, 현상 등을 포괄하거나 개별로 정의해두었다. 개중엔 지나치게 강력한 종족의 탄생으로 말미암은 우주전쟁이나 멸절 사태를 규정해놓은 법률과 지침도 있다.

“따라서 아직 탄생하지 않은 생물이라는 모호하고 애매한 가능성에 입각해 경제 활동에 방해를 주는 것은 위법하다는 입장으로 논리를 짜내고 있습니다.”

문제는.

“신분이 문제가 될까?”

“원칙대로라면 안 됩니다만.. 결국 시스템을 다루는 건 사람이죠.”

“재판에 유리한 인선으로 영향력을 행사해보지.”

융콜은 오랜만에 직접 ‘이런 일’을 위해 행차해야 했다. 본래 이사급은 사람 만나는 게 일이라지만 이런 걸 청탁하기 위해 직접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연방 법원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라면 융콜 급이나 그 윗선이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겐 나름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그는 연방 쪽에 아는 인맥이 몇 있는 사람이었고, 그 이유는 우주 전체로도 드문 4차원 생명체였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서 흥미를 가지곤 했기 때문이다. 생물학, 수학, 시공간학, 차원학 등은 물론 보기 드문 종족이 관심을 받는 우주 사교계에서 그는 이점을 얻으며 인맥을 넓혔으며, 그 중에는 적지만 연방 쪽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만난 자는 데이터를 먹는 종족인 비글리텍스 종의 드로타이뮨. 불법적 정보를 네트워크 단계에서부터 삭제할 권한을 가진 사무관이었고, 과거엔 경찰국에서 근무했으며 현재에는 법원 근무자였다. 데이터 생물로서 기계 종족인 대법관 비서관과 연애 중인데, 융콜과의 식사를 통해 대법관에게 메시지를 남길 수 있었다.

참고로 데이터 생물에게 오래된 데이터는 별미 중의 별미로 꼽히는데, 융콜은 고대 지구 시절의 DOS로 작성된 몇가지 텍스트 파일을 줬다. 21번밖에 복제되지 않은 거라 풍미가 크게 상하지 않았다며 고평가 했고, 메시지는 대법관에게 넘어갔으며 그 메시지를 본 대법관은 지인을 통해 융콜과의 만남을 가졌는데 의식 전환 기술을 써서 직접 만났다. 대법관은 물론 연방 인물 대부분이 쓸 수 없는 불법 기술인데도 쓸 수 있었다는 것에 융콜은 권력을 느꼈다.

은퇴 후 성계 1개를 받겠다는 약속을 한 뒤 대법관은 카오스 기술이 적용되어 조작이 불가능한 랜덤 배정에 특별 개입하여 특정한 사건을 특정 법관에게 배당했다. 그러한 필요는 랜덤 배정 후 인공지능에 따라 평가를 한 뒤 배당 적절성을 판단하지만 때때로 인간의 판단이 개입하여 재평가를 할 경우가 종종 있다. 단지 그 판단의 사유를 제출해야 하고 합당하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만.. 결국 그걸 평가하는 것도 사람이 하는 것이 연방 제도였다. 게다가 비공개 정보이기까지.

“역시 연방도 그다지 깨끗한 곳은 아니야.”

그런 말을 하며 법무팀과 고용된 로펌 변호사들과 함께 재판장에 입장하는 융콜이 가장 먼저 보게 된 것은 찬란한 금발에 신념에 경도되어 있는 얼굴을 한 그때 그 미친 여성과 그 주변을 둘러싼 몇몇 변호사 및 유명 인사들이었다. 4차원 생명체로서 3차원 생물 표면의 이면을 읽는 것에는 다소 어두운 그로선 저것이 겉으로 꾸며낸 모습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자,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공교롭게도, 3명의 판사 중 인간 종족 출신의 판사 2명이 입장하고, 황녀 주위에 있던 사람 중 재판과 무관한 이들은 방청석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원래라면 주변에 있기도 어려웠을 것임에도 그들의 특혜적 권력을 알아볼 수 있었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전무님.”

“긴장 풀지 말도록. 가치관이 우리 쪽에 유리한 사람이 배당 되었을 뿐이지 정해진 건 아니니까.”

재판은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재판장은 은하 레벨의 엘리트답게 매끄럽게 재판을 이끌었고 필요할 때 필요한 질문을, 불필요한 말은 적절할 때 끊었고, 감정에 휘둘리지도 않았고 비논리적인 주장을 어렵지 않게 구분해냈다.

그 와중, 은하 연방 생명보호국 직원 중 하나가 주장을 했다.

“재판장님. 은하 연방은 모든 생명을 보호한다는 기치 아래에서 설립되었고 제 소속인 연방 생명보호국은 그러한 과중한 임무를 일임 받은 부서입니다. 생명보호국의 규정은 모든 생명은 물론 생명이 살아가는 환경, 그리고 생명 발생 가능성 있는 환경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와 있습니다.”

넘긴 자료를 확인한 판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행을 지시했다.

“BN-T-AA-2, BN-T-AA-3번 행성이 있는 성계를 최초로 탐사한 것은 사실이며 그에 대한 권리를 무시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그것과 별개로 생명 발생 가능성은 아주 높습니다. 이대로 최소 수만년에서 최대 100만년 내에 새로운 생물종들이 탄생할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있고 저명한 생물학 연구소의 연구 결과 역시 있습니다.”

그 또한 제출되었다. 판사는 자료를 머리에 업로드한 뒤 즉시 훑어보고는 피고 측에 발언 기회를 넘기고자 했다. 반박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표정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피고 측 발언하세요.”

말이 끝나자마자 답이 나왔다.

“감사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자, 먼저. 생명보호국의 지침은 은하 연방법보다 상위에 있는 규칙이 아닙니다. 연방 내 일부 조직의 지침일 뿐 법률에서 정하는 바는 현재 존재하고 살아 있는 종족과 생명만을 지켜야 한다 규정하고 있습니다. 예외 규정으로 만들어지는 중인 기계 종족이나 개체, 생명 발생 실험이나 합성 중인 경우 등이 그러합니다.”

그는 법률 조항과 관련 사례들을 판사에게 전달했다.

“따라서 아직 존재하지 않는, 발생하지 않은 생물종이란 이유로 자원 개발과 경제 활동이 막혀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한번 허가가 된다면 앞으로의 은하 내 경제활동과 개발 활동은 아주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생명 발생 가능성이 있는 행성을 소유한 개인이나 조직에 의한 행성 개발로 인해 발생 가능성이 낮아지거나 없어진다면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해서도 논의가 필요한 일인데, 이는 사실상 낙태를 어떻게 규정하고 기준을 정할 것인가와 같은 논쟁입니다. 그리고 이 논쟁은 기술적 해법이 제시되지 않은 사회에선 우주시대인 지금까지 이어지는 문제라는 점은 잘 아실 것입니다.”

법무팀장은 논리정연하고 적절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반박을 이끌어갔다. 타당함이 느껴졌다.

“원고, 발언 더 남았습니까?”

생명보호국 파견 직원조차 자료만 뒤적이면서 표정이 어두웠고, 이내 승소가 확정되었을까 싶을 시점에서 황녀가 일어나 발언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은하 대부분의 종족들은 행성에서 자연 발생되었습니다.”

재판장은 말 없이 진행하길 바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떤 종족이든 다른 종족이 생명 탄생 이전에 행성을 개발하겠다며 환경 조성을 바꾸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가령, 인류의 아종으로서, 인류의 탄생 행성인 지구의 초기 약간의 행성 조성이 바뀌기만 했다면 인류는 지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위대한 제국과 폐하의 피를 이은 여 역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황녀의 발언에 방청석의 자세가 조금 달라졌다. 그녀와의 관계가 중요한 이들이리라.

“모든 종족이 그러한 행운을 얻어 지금까지 이어졌는데, 아직 수정조차 하지 않았다고 자궁의 가치를 절하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물론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은 사실입니다만, 사례 중엔 다른 종이 이주하여 살고 있는 행성에서도 시간이 지나 독자적인 생명이 탄생했다는 의심 사례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것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보호의 가치는 있습니다.”

황녀는 거기서 한번 더 말을 이은 후 착석했다.

끝까지 들은 재판장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1심 판결을 내렸다.


이러한 재판은 3년 3개월간 이어졌으며, 황녀의 인지도와 인맥으로 말미암은 각계 각층의 관심과 지지 선언은 재판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것은 단순히 여론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것이 현재 은하 다수의 여론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단순히많은 사람들의 주장이기 때문이 아니라 좀 더 철저한 조사와 분석이 필요했지만.

정말 많은 기업과 경제인, 그들의 입장과 함께하는 이들 역시 있었지만 확대된 논쟁에서 수많은 학자와 지식인, 오피니언 리더들의 충돌 속에서 연방 의회 역시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거대 논의가 되어 은하를 달구는 논제가 되었다. 그리고 정말 많은 약소 종족은 황녀 측 입장에 공감과 지지를 표했고, 인본주의자, 평화주의자, 생명제일주의자, 일부 종교인들 등이 이끌어낸 논쟁은 결국 3심 재판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3심 재판이 끝난 뒤, 융콜은 이때까지 보인 적 없는 감성적 반응을 보여줬고, 그러한 반응과 무관하게 그날로 이사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지나치게 유명해진 융콜은 이직을 고려하기 힘들어졌다. 은하적 논란을 일으킨 사람을 데려와 좋지 않은 이미지를 뒤집어쓰길 원할 기업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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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고맙습니다.”

우주 공간 한복판, 소행성 표면에서 겨우 빠져나온 남자는 자신을 구해준 여성을 바라보며 감사를 표했다. 부드러운 미소와 푸근한 인상의 훈훈한 청년이었다. 단지 푸른 피부와 금색 눈, 섬유질 머리카락의 이질성이 그가 지구종 인간이 아님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여성은 생명보호국 인장이 박혀 있는 우주복을 착용하고 있었고, 태양과의 거리를 고려하여 자외선 등 유해한 광선이 쉴드 바이저를 뚫지 않을 것이란 판단 하에 파장을 변경했다. 검은색 쉴드는 투명해지며 얼굴을 포함한 머리 대부분을 드러냈다. 일부만 태양 방향으로 바이저를 형성했다.

“위험할 뻔 하셨네요. 괜찮으세요?”

홀로 소행성 표면의 크레바스에 빠져 있던 것을 구해줬으니 위험한 게 맞았다.

“네, 덕분에요. 아.. 이제 보니 생명보호국분이셨네요. 우주에서 가장 일 잘한다는.”

남자의 아부 아닌 아부에 여자는 호호 웃었다. 시원한 인상의 그녀는 웃음이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그렇게 봐주시니 제가 더 고맙네요. 우주선까지 옮겨드릴게요.”

“앗,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처음 보는 종족이네요. ..이런 질문이 혹시 무례하거나 불편할까요?”

젊지만 사려깊음이 느껴지는 말씨였다.

“아뇨. 전혀요. 음.. 아실지 모르겠네요. 서부 은하 지구 출신의 인간 종족이에요. 정확히 그곳에서 태어난 건 아니지만 기원은 그렇죠.”

우주의 어느 시점에 발생한 우주적 재난에 의해 은하 연방은 은하의 각 구역의 시공간을 분할하는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 시공간의 교류는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각 은하의 시차는 적게는 수십년, 많게는 수만년 이상 차이가 나는 상황 속에서, 동북부 은하의 종족들이 서부 은하에 대해 잘 알 리는 없었다.


“그렇군요. 언제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습니다. 참, 전 베트니오프 정 행성 테라니슐 종족의 양 퀠라라고 합니다. 목숨도 구해줬는데 자기 소개를 이제야 하네요.. 하하.”

귀여운 남자였다. 그리고 퀠라를 바라보던 그녀는 눈빛이 조금 더 다정하고 아련하게 변해 있었다.

“전.. 커피 한장 사주시면 알려드릴게요. ..오래 전부터 이런 날을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퀠라는 얼굴을 조금 보랏빛으로 붉히며 슬쩍 눈을 피하며 답했다. 약간 부끄러워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 지금은 모를테지만.

“어.. 그. 아, 예. 정말 그걸로 괜찮을까요? 더 맛있는 거 시켜도 되는데.. 케이크 같은 거나..”


그녀는 한 때 자기가 몸 담은 기관이 남부 제국의 황녀와 함께 진행했던 재판에서, 지금 있는 이 남자의 종족을 지키기 위해 힘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사건은 자기가 태어나기도 아주 오래전이었고, 그녀가 살던 시간대와 족히 수만년은 차이가 나는 이 구역에서 만난 이 남자가, 바로 이 남자의 종족이 그때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그러나 아직 등장하지 않았던 그 종족이라는 것도 이제 알게 되었다.

“충분해요.”


그날, 그녀는 오래전 1심 재판 기록의 마지막 발언을 되돌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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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재판장님.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고 앞으로도 없는 존재도 만드는 것은 정의로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탄생할 수 있었던 모든 종족과 생명을 비추어보아 앞으로 탄생할 수 있는 종족과 생명을 지켜야만 합니다. 재판장님. 지금 우리의 판단이 행성 환경을 지키는 결론을 놓고 나서 먼미래,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 탄생할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가 지켜냈던 종족을 보며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며, 스승도, 제자도, 은인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들이 탄생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하며, 언젠가 인연을 맺을 그날을 기대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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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황족 | 작성시간 24.05.20 사건을 순서대로 인식하는 이들이 큰 실수를 저지를 뻔 했군요. 잘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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