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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브레이커]허공 속의 결투 - 연합군

작성자책읽는달팽|작성시간21.08.29|조회수154 목록 댓글 0

영국의 주요 암호분석 부서는 1차 세계대전 후 영국 육군과 해군에 있던 암호해독부서를 외무부에 속한 인사과 40호실로, 제1차 세계대전말에 세워졌습니다. 1939년 외무부는 이 통신과를 버킹엄셔의 블레츨리 별장으로 옮깁니다. 네, 블레츨리 파크죠. Government Code and Cypher School (GC&CS)란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여튼 GC&CS에서는 7000명의 인원들이 일하고 교육받았습니다. (1946년 이름을 GCHQ로 변경합니다)

 

전쟁이 시작된 이래, 영국 해군의 비밀통신은 OKM, 독일 해군총사령부에게 탈탈 털렸습니다. 노르웨이에서도 마찬가지로 탈탈...

 

그러다가, 히틀러가 바다사자 작전을 준비하고, 영국 본토 항공전을 하고 있었던 8월 20일, 무선침묵과 동시에 코드와 암호를 바꿔버립니다. 이제 귀머거리가 된 OKM은 영국군이 있는 위치를 알아내서 공격이나 방어를 할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바다사다 작전은 망해갔고 OKW에서는 바다사자 작전을 연기시켰고 다시 재개하지 않았죠.

 

해독된 정보는 미국으로도 보내졌지만, 영국은 자국의 암호분석 능력을 조심스레 은폐했기 때문에 암호분석에 기초한 정보를 미국에 주는데 1년 이상이 소요되었습니다. 1941년 1월, 네명의 미국 암호분석가와 영국의 암호분석가가 달려붙어 결국 PURPLE을 깨버립니다. 영국은 PURPLE을 풀지 못했지만, 미국보단 암호분석 능력에서 앞서 상부상조의 핵심을 이뤘습니다. 미국 암호 정보 부대는 PURPLE키를 매일 런던으로 보내줬죠.

 

영국 통신 정보 부서가 이룬 가장 중요한 결과는 미국에서 활동하던 여성 비밀요원에 의해서였습니다. 재미로 영국 정보국에 고용된 에이미 엘리자베스 토프, 코드명 신시아는 2가지 임무를 맡게 됩니다. 1940년 겨울부터 1941년까지 이탈리아의 해군 암호체계를 입수하라는 임무를 줬고, 그녀는 이탈리아 대사관 무관이었던 알베르토 라이스를 유혹했고, 라이스는 그녀를 바로 암호비서로 임명해버렸죠. 물론 책과 더불어 초암호화표도 사진으로 찍어 영국으로 보냈습니다.

 

이 코드는 지중해 함대 사령관인 커닝엄 제독에게 들어가게 됩니다. 그는 이걸 자신의 암호분석 부대에 건네주고 3월 25일 그리스를 원조하기 위해 파견된 영국 함대를 이탈리아 해군이 칠거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틀 뒤, 이탈리아 전함 3척이 격침되었고, 한척은 크게 파손되었습니다.

 

며칠 뒤, 라이스가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로 선언되어 집으로 향했고, 신시아에게 두번째 임무가 주어집니다. 이번엔 비시 프랑스 대사관의 암호였죠. 공보관인 샤를 브로세 대위를 또 잡아서, 대사관의 모든 송수신 전문의 평문 사본을 받아 볼 수 있었으며, 빠진 내용에 대한 자세한 보고를 매일 작성해주었죠. 물론 비시 프랑스의 해군코드까지 주문해서 손에 얻게 됩니다.

 

한편 미국의 외교 암호는 그야말로 100% 뚫린 상태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부터 2차 세계대전 중반에 이르기까지 약소국의 암호체계보다 더 한심했거든요. 대사관에 가서 코드북을 그냥 보고 온다던가 등등... 유선 통신은 확실히 들켰습니다. 1931년 마치 확증이라도 해주듯 경성 주재 미국 영사관이 밀랍 봉인이 뜯겨진 암호를 받기도 했습니다.

 

1930년대 말, 제퍼슨 디스크를 이용한 M-138-A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를 믿지 않았어요. 그래서 해군성 코드를 사용했죠,

 

1941년 12월 6일, 루스벨트 대통령은 개인적 평화 제안을 일본 제국에 발송합니다. 그는 국무부에 이렇게 전달했습니다. "친애하는 국무장관, 이 것을 그루 대사에게 전달하시오. 이것이 회색 코드로 전송된다면 시간이 절약될 것으로 생각하오. 중간에 가로챔을 당해도 상관하지 않겠소. F.D.R."

 

처칠이 루스벨트보고 'Q 제독' 이라고 이름 붙인데 대해서 암호학적 섬세함에 놀라움을 표한 문건입니다.

 

여튼, 독일은 M-138-A를 깰려고 했어요. 결국 모든 배열을 발견하고, 거의 모든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배열이 전부 바뀌어서 망했어요...

 

2차 세계대전의 특징 중 하나는 중요한 작전이나 비밀 계획을 지칭할때 코드명을 사용하는 사례가 확장되었다는 겁니다. 코드명은 보안과 간결이 중요합니다. "뢧불 작전" 이라고 말하는 것이 "미-영 연합군의 북아프리카 상륙작전"이라 말하는 것보다 쉽죠. 그리고 메시지를 해독하려는 쪽에서는 다시 코드명의 의미를 유추해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코드명은 육군 작전과에서 이뤄졌는데, 어떠한 작전이나 위치도 함축하지 않는 일상적인 명사나 형용사가 선택되었으며, 영국의 코드명과 겹치지 않게 하고 코드명의 블록을 지휘관들에게 보여줬습니다. 코드명은 이론적으로 어떠한 관계도 담지 말아야 합니다.

 

일부 코드명은 피로 얼룩지기도 했는데, 오마하, 유타, 골드, 소드, 주노 등 말이죠... 근데 이게 놀랍게도 6월 6일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십자말퍼즐에 등장했고, 기겁한 방첩장교는 독일에 대한 경고가 될수 있는지 의심했고, 조사 결과 단순한 우연의 일치였습니다.

 

소규모 작전에선 독일군도 암호명을 썼지만, 대규모에서는 '바다사자' 작전이라던가 혹은 '바르바로사' 작전처럼 그런거 신경껐죠.

 

영국의 경우엔 대문호 였던 처칠로 인해 다음과 같은 원칙으로 인해 몇가지가 제한되었습니다.

1. 대규모 병력이 '승리'와 같이 허풍떨고 드러나는 코드명 때문에 목숨을 잃을수 있으며, 역으로 의기소침한 분위기를 불러올수 있으며, 천박함을 나타내는 단어, 다른선에서 종종 사용되는 평범한 단어등도 있어서는 안되며,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도 피해야 한다.

2. 이름은 작전의 성격을 결코 드러내지 않을것이며, 부모들에게 그들의 자식이 '엉터리' 작전에서 말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3. 고유명이야말로 아주 좋은 원천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의 이름, 별자리 이름, 유명한 말의 종류, 영국과 미국의 전쟁 영웅들은 규칙을 지키면서 유용하게 사용핧 수 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다른 많은 테마도 이 용도로 제안될 수 있다.

4. 이 모든 과정은 주의 깊게 해야 한다.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행정은 큰 일 뿐 아니라 작은 일에서도 그 자신을 드러낸다.

 

여기서 처칠은 전쟁 중 최대 규모가 될 작전인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위해 최고의 단어를 아껴두었습니다. 권위와 복수와, 유럽에서의 나치 음모를 무찌른 연합군의 저항할 수 없는 힘을 상징했습니다. 직접 고른 'Overlord' 작전이었죠.

 

일단 연합군은 대규모 공격을 가하기 전에 U보트를 쓸어버릴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되니츠는 울프팩에게 가장 멋진 먹잇감을 던져주길 원했습니다. 그는 모든 대화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지만, 통신에 대한 그의 집착으로 인해 무선 통신에서 거의 완벽하게 느슨해진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U보트 동료의 치통이라던가, 지상근무 요원의 생일축하등등... U보트 사령부는 '전쟁 역사상 가장 수다스러운 군사조직'이 되었습니다.

연합군은 HF/DF(High-frequency direction finding) 네트워크를 만들었죠. 예를들어 1942년 6월 30일, U-158은 되니츠 제독에게 보고 할 것이 없다고 하고 HF/DF로 인해 일광욕을 하고 있었던 평화로운 U보트를 다시는 물밖으로 못나오게 만들었죠.

 

감청네트워크도 독일군의 메시지를 엿들었습니다. 1944년 초 다니엘 갤러리 대위는 미 해군 22.3 그룹에서 대잠 업무를 지휘하고 있었는데, U보트를 탈취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1944년 5월 31일 HF/DF는 U-505가 브레스트 기지로 가고 있다고 알렸고, 이를 추적하였습니다. 오전 11시, 함장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고 평화롭게 항해중이던 잠수함에 폭탄이 떨어졌습니다. (전후에 어찌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아 박물관선으로 만들어야지...)

 

이 작전에서 거둔 성과로 U보트의 작전 통신을 해독할 수 있었습니다. 1년전에 어려운 U보트 암호 시스템을 해독하는데 성공한데다, 최신 기초 자료를 근거로 전문을 해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튼 그렇게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기 11개월 동안, 거의 하루에 한대꼴로 U보트를 잡아댔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누출가도 있네요 ㅎㅎ;;; 당시 베를린 주재 일본 대사였던 오시마 히로시가 있네요. 연합군이 유럽을 침공할 것이 분명해지고 그에 대한 방어를 갖추기에 바빴던 1943년 10월 말까지, 서부 해안의 방어 시설과 지크프리트 방어선을 둘러보았고, PURPLE로 암호화 해서 보냈습니다. 당연히 깨졌죠 ㅎㅎ;;;

 

연합국은 또한 최고의 '내리갈굼'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거진 다 끝나는 날 발생한 M-134-C 혹은 SIGABA 혹은 ABA 분실 사고였습니다. 이 물건은 이니그마(독일), TypeX(커먼웰스)등과 같은 암호기기였습니다. 미국은 SIGABA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아서 TypeX와 교신할 수 있는 모듈이 따로 만들어졌습니다.

 

그걸 3대 실은 트럭이 훅하고 사라졌네요? 아이젠하워는 자기 휘하의 6야전군 사령관을 직접 불러 내리 갈굼을 시전했고, 6야전군 사령관은 또 자기 아래의 방첩장교에게 내리갈굼을 시전했습니다. 3주후 미국과 프랑스의 방첩요원들로 구성된 특별부대가 만들어져 SIGABA를 찾아내려 했고, 결국 찾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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