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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통일전선 이상없다 - 캐릭터 시트 및 스테이터스(5/19 16:01)

작성자E.E.샤츠슈나이더|작성시간23.04.27|조회수804 목록 댓글 29

 

[통일전선 이상없다 - 캐릭터 시트 및 스테이터스]


0.
- 이름: 현강회(玄綱會)
- 플레이어: NPC
- 성별: 남성
- 생년월일: 1915년 6월 26일
- 출신지: 일본제국령 조선 함흥부
- 모국어: 한국어
- 사용가능언어: 일본어, 영어
- 배경:
일본 열도에서는 “구로야마 민카이(玄山民解)“로 조금 더 잘 알려진 현강회(玄綱會)는 1915년 6월 26일 일본제국령 조선 함흥부에서 한 군납업체 사장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유아세례를 통해 ‘이냐시오’라는 세례명을 받기도 했죠. 경성 휘문고보를 졸업해 연희전문학교 예과에 입학한 그는 (아직 완전히 타락하지 않았던) 당시 학장 윤치호의 눈에 들어 동경제대 유학생으로 선발되었습니다. 그러나 1936년의 일본은 강회가 생각하던 모습과는 굉장히 달랐습니다. 조선보다 발전된 물산, 자유롭게 사색하는 지식인들, 선진적 문화 등을 기대했던 그는 전현직 총리가 자택에서 군인들에게 살해당하고 “천황폐하의 뜻을 드높인다”며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며 온 사회가 전쟁을 향해 달려가는 혼란한 모습만을 목격했습니다. 매우 상심한 강회는 신학교에 편입하여 종교에 귀의하려 했으나, 당대 일본 가톨릭 역시 군국주의의 마수를 피해가지는 못하는 실정이었죠. 변변한 말재주나 사람을 끌어당기는 친화력도 갖지 못한 그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동경대의 비밀 좌익서클에 들었고, 그렇게 강회의 투쟁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지하 일본공산당’에서 활동하게 된 강회는 일본어명을 ‘민해(민족해방)’로 바꾼 뒤 김원봉의 휘하에서 활동하던 재일조선인 동지들과 어울렸습니다. 당국의 수배를 당해 ’지나방면군‘으로 강제징집당할 위기를 넘긴 것이 다섯 번, 같은 당원동지와의 견해 차이로 당에서조차 고립될 뻔한 것이 세 번이었죠. 김원봉의 제안을 받아 조선의용대에 합류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 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1945년, 강회는 ‘갑자기’ 일본 땅에서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재일 조선인들이 총련이니 민단이니 하는 조직을 결성할 때, 그는 공산당 동지들이 동포들의 귀환에 도움을 주리라 생각하고 ‘합법정당’ 일본공산당 당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고위당원이라는 자들은 마오주의 투쟁사상에 물들어 산촌공작대니 뭐니를 결성해 게릴라전을 벌이다가 미군정에게 숙청당하기 일쑤였고, 총련 간부 한덕수는 김일성이라는 자의 하수인으로서 자본가 룸펜 출신인 그를 멸시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왕년의 아나키스트 동지 박열을 따라 민단에 가입한 강회는 조국에서 전쟁이 벌어지자 그대로 밀항해 고향 땅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족들은 북괴 일당들에 의해 ‘인민의 적’으로 몰려 이미 몰살당해 있었죠. 분노와 울분에 가득찬 그는 그 길로 국방군에 입대했습니다. 그래도 룸펜 생활이 완전히 시간낭비는 아니라, 일본어와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던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미군 통역관으로 복무하던 그는 다시금 부질없는 마오주의 농촌투쟁에나 골몰하던 옛 일공 동지들과 그의 가족을 몰살한 북한 정권을 생각했습니다. 역시, 자유의 나라 미국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대한 인민을 해방하기 위한 혈맹이자 동지였습니다.

1.4 후퇴 이후 국민방위군의 참상을 수습하던 현강회는 비슷하게 좌우익 모두에게 변절자 또는 용공이라고 손가락질당하던 전 농림부장관 조봉암과 가까워질 수 있었고, 비록 우익이지만 조봉암과 절친한 사이였던 장택상은 1955년 “공개적으로 공산당과 결별을 선언하는” 조건으로 강회를 민주당에 입당시켜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 길로 백지 70장 분량의 ‘용공비판론’을 작성한 그는 그렇게 김성수와 장택상의 보증으로 입당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장택상 본인은 “독재 부역자”로 몰려 민주당과 호헌동지회에서 축출되고 이범석과 별도의 정당을 꾸리는 신세가 되었지만 말입니다.

좌익이되 반공이고, 스탈린과 모택동이라는 괴물들이 창조한 북한 괴뢰정권을 기필코 무너뜨려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현강회는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온갖 무리수를 두며 영구집권을 꾀하는 동안 ‘자신의 노선을 지지해줄’ 동지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그는 바람대로 폭군들을 처치하고 한반도에 자유와 평등과 연대의 깃발이 휘날리게 할 수 있을까요?


1.
- 이름: 정원상(鄭原相)
- 플레이어: dear0904
- 성별: 남성
- 생년월일: 1924년 5월 9일
- 출신지: 일본제국령 조선 경상남도 동래군
- 모국어: 한국어
- 사용가능언어: 일본어, 영어
- 직책: 국회의원(부산 동구, 초선) 겸 국방개발위원장
- 능력치:
지휘(5)/인사(0)/장악(0) || 통제(5)/행정(0)/저술(0) || 호신(4)/의지(3)/조직(3)/관찰(4) || 경영(0)/위조(0)/화술(0)
- 트레잇: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공식적으로 승인받은, 것에 한해, 모든 연대 규모 이하 작전에 +3.
- 잔여 경험치:
통솔(0) || 지식(0) || 감각(0) || 기예(0)
- 카르마: -1
- 배경:
일제 치하에서는 쿠리하라 아이자와로 불렸던 정원상은 1924년 5월 9일 일본제국령 동래군 기장면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소학교 시절부터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결국 집안에 칩거하며 독학으로 지식을 쌓을수 밖에 없었죠. 그는 독학을 하며 생각했습니다. "왜 나는 이런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가." 그리고 그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모든건 다 일제의 탓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국 광복군에 관한 소식을 전해듣고 충칭으로 향해 광복군에 투신했습니다. 그리고 광복군이 참전하기도 전에 일본 제국은 패망했습니다. 그의 피는 일본에 대한 복수심으로 들끓었지만, 망한 국가를 공격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향땅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가족은 일본 제국의 마수에 걸려 이미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국 홀로 남아서 광복군 경력을 가지고 국방군에 입대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광복군이란 빛나는 경력은 오히려 만주군 출신, 일본군 출신 인사끼리 끼리끼리 뭉쳐서 우덜끼리 노나먹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끼워준다 해도, 더러운 일본 부역자들과는 섞이고 싶지 않았을겁니다.

그래서 아직도 그는 혼자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그를 필요로 한다면, 그는 손을 잡을것입니다. 그는 누구와 손을 잡고, 그의 원념을 풀 수 있을까요?


2.
- 이름: 김시형(金始衡)
- 플레이어: 렌지파일
- 성별: 남성
- 생년월일: 1924년 1월 14일
- 출신지: 일본제국령 조선 경상북도 선산군(구미)
- 모국어: 한국어
- 사용가능언어: 일본어, 영어
- 직책: 국회의원(경북 선산군, 3선) 겸 국토개발청 장관
- 능력치:
지휘(0)/인사(0)/장악(3) || 통제(0)/행정(5)/저술(5) || 호신(0)/의지(2)/조직(3)/관찰(0) || 경영(1)/위조(3)/화술(4)
- 트레잇:
[거짓말을 덮기 위한 거짓말] 상대를 향한 거짓 증언 및 거짓 설득에 +2.
- 잔여 경험치:
통솔(1) || 지식(0) || 감각(0) || 기예(0)
- 카르마: 0
- 배경:
경북 선산(구미) 출생, 어린 나이부터 내지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최연소로 합격한 천재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김시형은 지역적 분위기에 휘말려 좌익 활동가이자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지역 사회주의자들의 웃어른인 박상희의 제자가 된 그는 폭주하는 일본 제국의 전방위 압박을 받았고, 결국 일본이 패망하기 불과 한 달 전인 1945년 7월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경성 부민관에서 유명 친일파 '박춘금'의 찬조연설을 맡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들은 이미 행사장에 폭탄을 설치해둔 상태였고, 김시형은 폭발에 휘말려 중상을 입었습니다.

단 한 달. 그 짧은 시간을 버티지 못해 일제에 굴복했다는 충격에 김시형의 정신세계는 무너졌습니다. 해방정국의 혼란 속에서 그는 자신에게 접근하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배신"을 알고 있을 것이라 단정했고, 철저히 모두를 배척하며 칩거했습니다. 스승 박상희를 비롯해 마지막까지 그를 찾은 이관술, 그리고 정판사 위폐사건으로 궤멸된 조선공산당의 부름을 그는 끝까지 무시했습니다. 오히려 좌익의 경거망동을 비판한다는 사설을 기고하며 사회주의 세력과의 연계를 몽땅 끊어버렸죠. 생존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친일 행적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그는 민족주의 세력으로 완전히 전향해야 했습니다. 전향을 숨기기 위해 또 다른 전향을 감행하는 모순이었죠. 물론 좌익 인사를 '인간적으로' 변호하는 활동은 멈추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김시형의 민족주의자 활동은 끔찍했습니다. 보도연맹 초대 발기인 중 하나였던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총살당할 뻔 했습니다. 그의 신원을 보증해준 장택상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죽었을테죠. 북한군을 피하기 위해 정신병자 행세를 하고 서북청년단에 일부러 숨어 옛 동지들을 폭행하는 데 가담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순간 김시형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노동계급이 '폭력(권력, Gewaltsam)'적으로 권력을 쥐고 모든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해 불평등을 해결하자고 말했죠. 폭력은 권력으로만 멈출 수 있고, 권력은 폭력으로만 멈출 수 있으니, 김시형은 자신이 목표해야 할 것은 곧 권력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야 자신에게 다가오는 "부당한" 폭력을 막을 수 있고, 자신의 친일 행적을 지울 수 있을 테니까요!

51년부터 김시형은 열렬한 이승만의 지지자가 되었습니다. 그를 설득하려 했던 장택상조차 당황하게 할 정도였죠. 물론 김시형은 이승만의 잘못은 어물쩍 넘어가고 외교력과 반일 정책만 골라 찬양하는 등 최소한의 절제를 보이긴 했습니다만, 그건 이미 김시형이 자신의 올곧은 성향을 가진 운동가라서가 아니라 자신을 잘 포장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랬기에 김시형은 이승만을 버리는 것도 빨랐습니다. 사사오입 개헌 사태 이후 민주당(신파)으로 전향한 김시형은 열렬한 반독재 운동가로 변신했습니다. 민주당은 반공을 지속해야 하지만 모든 좌익을 배척할 필요는 없이 조봉암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 시기 김시형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김창룡을 암살하는 데 비밀리에 자금을 보탰습니다. 아니, 김창룡이 악질이어서 그랬던 것일지도요. 58년엔 선산에서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된 뒤, 자유당에서 사사오입 개헌을 유이하게 공개적으로 반대하다 제명된 김두한을 찾아가 그를 극찬하기도 했죠. 김시형의 정치적 스승인 한근조가 김두한을 낙선시킨 것을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모순과 뻔뻔함의 극치였지만 김시형 본인이 이를 인지하기엔 너무 늦은 뒤였습니다.

마침내 이승만 정권이 몰락한 지금 김시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목표에 가까웠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그 목표는 바로 권력입니다…. 분명, 어떠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겠죠.


3.
- 이름: 이하준(李夏準)
- 플레이어: 돈이 곧 진리
- 성별: 남성
- 생년월일: 1923년 10월 3일
- 출신지: 일본제국령 조선 평안남도 평양부
- 모국어: 한국어
- 사용가능언어: 일본어, 영어
- 직책: 국회의원(경기 광주군, 재선) 겸 경제기획원 2차관
- 능력치:
지휘(0)/인사(4)/장악(0) || 통제(0)/행정(2)/저술(0) || 호신(0)/의지(4)/조직(4)/관찰(4) || 경영(3)/위조(3)/화술(0)
- 트레잇:
[식민지 인텔리겐치아] 행정 스킬에 +2, 경영 스킬에 +1
- 잔여 경험치:
통솔(0) || 지식(0) || 감각(1) || 기예(1)
- 카르마: +3
- 배경:
보통학교 교장의 아들로 태어난 이하준의 유년기는 유복했습니다.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으니까요. 고보 졸업 후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입학하려 했던 그에게 아버지는 "대학생은 지나에 끌려가기 딱 좋으니 공무원 시험을 보라"고 권유했고, 이하준은 아버지의 말을 따랐습니다. 공무원이 된 하준은 해주부청으로 발령받아 해주로 내려갔습니다. 해주부청에서 행정 업무를 보던 이하준은 상부에서 내려온 공출 할당량을 보고 기겁해 이에 항의하는 문서를 상부에 보냈다가 6개월 감봉과 3개월 정직 처분을 받은 적도 있었으며, 평양의 본가에 들렸다가 학병으로 징집된 친구가 학병의거에 참여했다가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선 친구를 구하기 위해 석방을 위한 서명운동을 주도했다가 3주간 평양경찰서에 구류된 일도 있었습니다. 결국 그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교도소 생활 동안 이하준은 일제, 특히 총독 1인이 조선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1인 독재에 극심한 혐오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해방 직후 해주시의 관할권을 두고 미군과 소련군이 조정을 거치는 동안 임시복직된 그는 거지꼴이 되어 나타난 동생들을 마주했습니다. "빨갱이들이 인민재판으로 부모님을 모두 죽였다"는 믿을 수 없는 말과 함께요.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뒤로 하고 이하준은 남은 가족과 함께 미군정이 들어선 서울로 대피했습니다.

도착한 서울에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빨간 완장을 찬 머슴들이 지주였던 부모님을 죽이곤 땅을 빼았았다더라, 일본 앞잡이로 몰려서 온 가족이 소련군에게 처형당하지 않나, 자본가란 이유로 인민재판에 회부되었다가 겨우 탈출해 월남한 사람, 박해를 피해 월남한 기독교도등. 이들은 공산당, 그리고 소련의 앞잡이 북한 정권에 대한 극심한 증오와 분노를 가졌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혐오하기로는 뒤지지 않았던 이하준 역시 의기를 발휘해 한때 서북청년단에서 회계 일을 맡기도 했으나, 우익 활동은 일경이 하는 짓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서북청년단 일을 금방 그만둔 이하준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가까스로 피난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부산은 극빈자와 대부호가 공존하는 기묘한 공간이었죠. 관리하던 적산문서를 바쳐 일민구락부 국회의원 신광균의 비서로 들어간 그는 사실상 신 의원의 집사로 생활했습니다. 국군이 서울을 수복하면서 다시 상경, 나름의 수완으로 상가와 주택 한 채씩을 마련해 독립할 수 있었죠. 그가 출마를 노린다고 생각한 신광균 의원은 장택상에게 기별을 넣었고, 장택상은 다시 "반공 혁신주의자" 현강회를 소개시켜주었습니다. 마침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며 "한반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이 정당화된다"는 사상을 정립한 이하준은 현강회와 아주 잘 맞았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가족의 원수이자 국가와 민족의 원수인 북한을 파멸시키고 민주 공화국을 단단한 반석 위에 올리는 것입니다. 물론 공산권 전체의 파멸이 이루어진다면 더욱 좋겠지요. 이하준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4.
- 이름: 박철환(朴哲換)
- 플레이어: 로콘
- 성별: 남성
- 생년월일: 1920년 3월 12일
- 출신지: 일본제국령 조선 황해도 신천군
- 모국어: 한국어
- 사용가능언어: 일본어, 영어
- 직책: 국회의원(전국구, 초선) 겸 문화공보부 장관
- 능력치:
지휘(3)/인사(0)/장악(1) || 통제(4)/행정(3)/저술(3) || 호신(4)/의지(4)/조직(2)/관찰(1) || 경영(2)/위조(0)/화술(3)
- 트레잇:
[그것이 알고싶다] 언론 등을 동원한 프레이밍 공작에 기본 +2, 최대 +3.
- 잔여 경험치:
통솔(0) || 지식(0) || 감각(0) || 기예(0)
- 카르마: -3
- 배경:
황해도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박철환은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애국애족'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1936년 17살의 나이로 중국행 표를 산 그는 상해에 도착했으나, 임시정부는 이미 상하이 사변을 피해 내륙으로 대피한 뒤였죠. 어떻게든 묻고 물어 광주(광저우)에서 지청천의 조선혁명당에 가입한 철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충칭으로의 대장정에 합류했습니다. 임정의 세력다툼은 정말 난해했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는 참을 수 있었습니다. 1940년 창설된 광복군의 지휘관 이범석은 묵묵히 궂은 일을 해내는 철환을 눈여겨보고 그에게 중책을 맡겨보기로 했습니다. 임팔 작전 당시에는 인면전구공작대에 선발, 영국군과 협력하며 일본군에 대한 각종 공작을 담당했죠.

그를 비롯한 광복군 멤버들은 미군정의 비협조 속에 해방 이후에도 개인 자격으로 각자 귀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45년 10월, 다시 찾은 고향에서 그의 가족들은 인민위원회에게 싹 쓸려나간 뒤였습니다. 만약 조선이 약소국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열강들이 조선을 무시하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었죠. 공산주의자들을 때려잡기 위해 가입한 서북청년단은 따라서 그 대안이 될 수 없었습니다. 제주도에서 벌어진 참혹한 양민학살행위는 그러한 만행에 가담해버린 박철환에게 강한 트라우마를 안겨주었으니까요. 좌익과 우익의 좋은 점을 모두 끌어모아 제국주의자들도, 공산주의자들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특별한 선택지가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철기 이범석은 그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조선민족청년단(족청)에 가담한 박철환은 "하나의 지도자, 하나의 국민!"을 외치며 일민주의 홍보활동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나서 대통령 이승만은 족청을 토사구팽하기 바빴습니다. 경력으로만 치면 고위 장교로 현지임관시켰어야 할 철환이 고작 국민방위군 중대장으로 선발되어 죽을 고생을 하게 된 것, 그 뒤로도 온갖 사지에 투입된 것이 이를 증명했습니다. 이승만은 민족의 구원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레닌의 공산주의도,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도, 족청의 파시즘도 답이 될 수 없었습니다. 미국의 시장자유주의? 산업 자체가 없다시피한 이 땅에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철환의 생각은 "모든 국민이 십시일반으로 협력하여 강대국으로 굴기하는" 이상을 가리켰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반도 북부를 불법으로 점거한 괴뢰정권은 없어져야 했죠. 협동조합경제, 민주적 사회주의, 강력한 민족주의와 반공주의. 이러한 성향을 가진 이가 의탁할 수 있는 곳은 장택상과 조봉암이 소개시켜준 민주당 현강회 의원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잡히는 대로 일하면서 밥숟가락 떠넣기 바빴던 철환은 이제 웅대한 꿈을 품고 모험을 떠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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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터스

대한민국
Republic of Korea

# 민주주의 전통: 4(양호함) (-)

# 국민정신
[관치경제] 주요 기간산업을 손에 넣은 국가의 경제사령탑 지위는 오늘도 공고합니다.
[자유협동주의] 근로자는 사업체의 경영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받으며, 특별한 이유 없이 해고되지도 않습니다.
[토지개혁 완료] 우리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지켜냈습니다.
[할슈타인 독트린] 적의 적은 친구가 아닐 수도 있지만, 적의 친구는 확실히 적입니다.
[강화된 국가보안법] 분배와 정의를 외치려면 사상부터 검증해야 합니다.
[자유장교단] 군대는 자유혁명의 상징이며 전위입니다.
[군경합작] 군과 경찰의 관계는 회전문과 같습니다.
[고속성장] 국가경제는 순조롭게 성장중입니다.[낙후된 농촌] 농촌의 상태는 조선시대와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동맹의 균열?] 미국은 우리를 불신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 대북관계
현재 북한의 지배세력은 [권문세족]입니다.
북한의 군사력은 우리에 비해 [약간 우세]합니다.
[중공 인민지원군이 주둔 중]입니다.
우리의 대북 정보력은 [양호]합니다. 이에 따라, 북한에 대한 공작이 가능합니다.

# 대외관계
우리는 일본과 [무역-영사관계를 수립]했습니다.
우리는 [자유중국을 승인 중]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회주의 국가와도 수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핵무기를 [개발 중]입니다.

# 한미관계
미합중국의 대통령은 [리처드 닉슨(공화당)]입니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검은 양]입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유효]합니다.
주한미군이 [주둔 중]입니다.

# 국민진보당
당은 현재 단독정부를 구성했습니다. (156/299)
당의 현재 지도자는 [조봉암]입니다.

좌파의 지도자는 [서상일]입니다. (13/35)
중도파의 지도자는 [박정희]입니다. (13/35)
우파의 지도자는 [김대중]입니다. (9/35)

당의 단결도는 [원론적으로 통합된] 상태입니다. (3/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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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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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렌지파일 작성시간 23.05.14 저술을 5로 올리겠습니다
  • 작성자렌지파일 작성시간 23.05.18 화술 4로 올리겠습니다
  • 작성자돈이 곧 진리 작성시간 23.05.18 행정 2(지식 3), 의지 4(감각 4), 호신 1(감각 1), 경영 3(기예 5) 올리겠습니다.
  • 작성자로콘 작성시간 23.05.18 행정 3, 조직 2, 화술 3을 찍겠습니다.
  • 작성자dear0904 작성시간 23.05.18 관찰 4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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