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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 소비에트의 확장주의적 행보(소.확.행) - 02 : 적과 백.

작성자E.E.샤츠슈나이더|작성시간21.09.11|조회수580 목록 댓글 1,145

 

※글 본문은 지난 화 댓글에서 진행된 활동들을 간략히 알기 쉽게 정리할 목적으로 작성하는 로그의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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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로마노프 일가의 최후.

 

백군에 대한 반격 방침을 논의하는 전 러시아 공산당의 전당대회가 시작되기 이전, 또 다른 중요한 사항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이전에 체포한 로마노프 황실의 처리였죠. 작년 솔제니친 장군이 즉결처분안을 내세운 바 있지만, 토론 끝에 인민재판에 회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민재판은 1918년 2월에 치러졌습니다.

 

총 소추관 역할을 맡은 레프 트로츠키가 포문을 열었습니다.

 

"비록 실질적인 착취 업무에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황가의 직계 일원들은 프롤레타리아의 고혈을 짜낸 결과물을 향유하며 그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소. 특히 니콜라이 로마노프 피고인은 1905년 선량한 농민 무산계급의 호소를 총칼과 기병돌격으로 화답한 바 있으며, 그 가족은 이에 대해 참회하고 보상하기는커녕... 사치와 방탕을 일삼았소! 이에 본 소추관은 니콜라이 로마노프 이하 7인의 피고인 전원에게 사형을 구형하는 바요!"

 

이반 솔제니친 장군 역시 화답했습니다.

 

"트로츠키 동지의 말처럼, 구역질나는 반동주의자들이 모스크바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살려뒀다가는 어떤 후환이 닥칠 지 모릅니다. 이들에게 선처를 제공할 그 어떠한 근거도 없으며, 이들은 명백히 인민의 적입니다. 사형 구형에 동의합니다!"

 

표트르는 이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 말을 듣고 "저 녀석도 결국에는 약자의 편에 서려 노력하는 사람이구나"라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물론 5남매에게까지 가혹한 처분을 내리자는 쪽은 아니었지만, 이들이 농민들을 착취하는 걸 방조한 것도 사실이었죠.

 

비록 카튜셰프, 마르텔 파우코이 등이 "아이들에게 죄를 묻는 것은 법리에 맞지 않고 지나치게 가혹하다"며 가택연금 또는 노동교화라는 대안을 제시하긴 했지만, 당 지도부의 판단은 한결같았습니다. 이윽고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결과는... 모든 이들의 총살형이었죠.

 

로마노프 황가의 처형.

 

솔제니친은 총살형 집행에 자원해 모신나강 소총을 열심히 쏴갈겼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즐길 리는 없었지만, "황실이 무죄면 혁명이 유죄"였으니까요.

 

표트르는 시신을 운반하는 작업에 동참했습니다. 아나스타샤는 17세, 알렉세이는 13세였습니다. 만감이 교차했죠. 표트르는 누가 볼까 남몰래 그들이 다음 생에는 선량한 농민으로 태어나 약자를 위해 살아가기를 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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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적백내전 (1)

누런 이빨을 숨기고 있던 반동분자들은 독일과의 평화조약이 맺어지자 마자 마각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빌어먹을 반동들! 내전 발발 초기 당 지도부는 이반 솔제니친 위원의 의견을 받아들여 방어 위주의 전략으로 최대한 내실을 다지는 방향을 택했고, 그에 따라 백군은 많은 영역을 점령했지만 적군의 내실 역시 튼튼해졌습니다.

현재 백군은 1) 만네르하임이 이끌며 미군과 영국군의 지원을 받는 핀란드 백군, 2) 데니킨 장군이 이끄는 캅카스와 중앙아시아 지역의 백군, 3) 콜차크가 이끌며 일본의 지원을 받는 전러시아 임시정부, 4) 유데니치가 이끄는 에스토니아 백군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 외에 사회혁명당 우파와 입헌민주당 등 자유주의 정치인들은 우파(Ufa)에 나름대로의 임시정부를 차렸지만, 무시해도 무방합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안토노프가 이끄는 녹군이 일단 내전에서 중립을 선언하며 자신들을 지킬 민병대를 모집한 상황입니다. 또한 마흐노는 무정부주의와 자발적인 상호부조에 입각한 '우크라이나 자유지대'를 만들어 관리하는 중입니다. 마흐노의 흑군과 소비에트는 '일단' 협력관계이나, 여러 군데에서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전당대회의 첫 안건은 우크라이나의 두 자치세력, 녹군과 흑군에 관한 안건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대의원들은 이들을 굳이 적대할 필요가 없다는 상식적인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논의 끝에 카튜셰프가 녹군을, 바레츠노프가 흑군을 설득해 이쪽 편으로 끌어오는 역할을 맡게 되었죠. 우스트랼로프의 중재로, 오데사 출신의 사회혁명당원 블룸킨이 카튜셰프와, 그리고 전설적인 아나키스트 혁명가 크로포트킨이 노구를 이끌고 바레츠노프와 합류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설득은 성공했습니다. 두 조직 모두 볼셰비키가 전시공산주의를 명목으로 지나치게 수탈하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이었지, 아예 반혁명전선에 동참할 작정은 아니었습니다. 공출은 협의 하에, 그리고 관련 사안들을 민주적으로 논의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이들은 협력을 이끌어냈습니다. 두 특사는 노력훈장을 수훈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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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체코 군단에 대한 처우 문제도 하나의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이들은 어떻게든 동맹국과 싸우러 가고자 하는데, 문제는 수송로가 막혔다는 점이었죠. 흑해를 통한 수송 역시 오데사 항이 데니킨 백군에 의해 점거된 상황에서 어려웠습니다. 레닌은 크림 및 오데사 공략에 체코 군단의 협조를 구하되 목표가 완료되면 배편으로 이들을 수송해 트란스코카시아 반군과 합류시키자는 제안을 꺼냈고, 이는 사실상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습니다. 체코군단은 일단 제안을 수락했으나, 그들은 공산주의자이자 기회주의자(?) 볼셰비키의 말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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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안건으로, 백군에 대항한 군사 대전략을 입안하는 안건이 상정되었습니다. 솔제니친은 남부에 병력을 집중해 데니킨 반군부터 끝내고, 체코 군단의 일을 마무리짓는 겸 해서 전선을 단일화하자는 안을 제출했습니다. "남쪽의 농민들을 지키자"는 표트르의 절절한 설득에 힘입어, 해당 안건은 과반의 찬성으로 통과되었습니다.

 

내전 과정에서, 솔제니친은 남부전선의 사실상 지휘관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전선 총 정치장교인 스탈린과 합을 맞췄죠. 바레츠노프는 이왕 흑군과 연을 맺은 거, 솔제니친에게 흑군과 연계된 부대에 대한 지휘권을 요청했습니다. 보급 우선권 역시 요청했지만, 사령부는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죠. 표트르 역시 체코군단과 종군하며 전선에 참전했습니다. 트로츠키에게 그들을 감시하라는 비밀 명령을 받은 채로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남부전선은 대성공으로 끝났습니다. 솔제니친은 적기훈장을 수훈받고 사실상의 군 사령관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표트르는 자신의 무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체코군단을 겁에 질리게 만들었고, 덕분에 체코 군단은 무탈하게 이송되었습니다. 바레츠노프가 이끄는 흑군-적군 연합부대 역시 나름의 전공을 세웠지만, 바레츠노프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솔제니친과 바레츠노프 둘 다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파벌이 필요했고, 바레츠노프가 소수민족 위원회 위원장 서리직을 맡게 되며 아귀가 맞아 소수민족 출신 군부 인사 및 정치인들을 포섭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름은 "체스 동호회"로, 중앙의 의심도 받지 않았습니다.

 

우스트랼로프는 동부의 정치장교로 종군하고 싶었으나, 당 중앙은 그를 대신 핀란드로 보냈습니다. 남부에의 집중 때문인지 해당 전선에서 핀란드 적군은 페트로그라드까지 후퇴하며 핀란드 내 교두보를 잃었습니다. 만네르하임은 평화협상을 제안했고, 과반수 당원들의 동의로 이는 "공산당원에 대한 사면"을 추가조건으로 하여 수락되었습니다. 나름의 부채감을 느끼던 차에, 우스트랼로프는 체카로부터 비밀 임무를 받았습니다. 핀란드 사민당에서 우익을 약화시키고 정치지형을 좌경화시키라는 임무였죠.

 

결론적으로, 임무는 완수했습니다. 우스트랼로프는 오히려 사민당 내에서 온건파가 목소리를 내도록 유도한 뒤, 스톨베리 등 자유주의자들과 손을 잡도록 만들었습니다. 스톨베리는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만네르하임-스빈후부드가 이끄는 보수주의자들은 권력기반이 약화되었죠. 결국 스톨베리가 사민당 친소파를 사면하는 조치를 발표하며 사민당 역시 우경화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언짢아했던 당 중앙이었지만, 어쨌든 결과가 좋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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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텔은 체카의 고위 요원으로서 폴란드-리투아니아에 유대인으로 위장잠입해 좌익세력을 육성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어려운 임무였지만, 마르텔은 체카의 2인자로서의 책임감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콧수염을 길러 폴란드 내 유대인으로 위장했고, 유대교 예배에도 꼬박꼬박 참석하며, 비싼 토라를 사비로 장만했습니다. 뜻밖의 지출에 피눈물을 흘리며 마르텔은 임무에 나섰습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내의 유대인 공동체는 아달베르트 1세의 통치를 매우 달갑잖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적절한 공작으로, 유대인 공동체를 중심으로 "바르샤바 사회주의 전선"이 결성되어 호엔촐레른 왕가에 대한 투쟁의식을 불태웁니다. 물론 반정부단체 중 가장 강한 것은 피우수트스키가 이끄는 민족주의 세력입니다만, 좌익 세력 역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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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인민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서 카튜셰프는 교과서와 사전 편찬에 매진했습니다. 교육위원회가 추진 중인 키릴문자 간소화 작업과 시너지를 발휘해, 카튜셰프가 주도하는 교과서 및 사전 재편 작업은 탄력을 받았습니다. 러시아어는 더럽게 어려운 언어지만,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쉽게 글을 배울 수 있게 된 것은 소기의 성과입니다.

카튜셰프는 이미 역임중인 부위원장에 더하여,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의 사범대학 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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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표트르는 동시에 두 가지 직책을 제안받았습니다. 하나는 고향 크라스노다르의 지역 소비에트 위원장직이었고, 하나는 그의 무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체카 휘하 특수부대의 야전 지휘관직이었습니다. 고민하던 표트르에게 폴란드에서 귀환한 마르텔이 다가왔습니다.

 

"표트르 동지, 비록 나부터가 체카에 속해 더러운 걸 잔뜩 만지던 사람이지만... 한가지만 조언하겠소. 제르진스키 위원장은 동지에게 깨끗한 일만 시키지는 않을 거요. 황실 총살형 때 동지의 표정을 보건대, 동지는 제르진스키가 원하는 '도살자'가 절대 될 수 없소. 동지의 마음만 다칠 뿐이지. 반려하는 게 어떻겠소?"

 

표트르는 이 말을 듣고 한참 생각하더니, 카츄셰프에게 부탁해 당 중앙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야전사령관 얘기는 고맙수다. 내가 배운게 없어서 거칠게 말하는거 미안허요. 내가 농삿일 하면서 배운게 있다면, 씨뿌리는데 때가 있고 거두는데 때가 있다는 거요. 그러니 여기선 이 말을 받아야 할테지. 지금 아니면 못할테니까! ...하지만 그건 내 천성에 안맞수다. 나는 사람들에게 사회주의가 얼마나 좋은지 알려주고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은거지 그걸 모르는 사람들을 없애버리려는게 아니거든. 난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소. 지역위원장으로 만족하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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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대전쟁은 요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협상국은 루덴도르프 공세에 대한 반격으로 5월부터 야심찬 '100일 공세'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어째선지 작전은 무참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독일군의 보급사정도 좋지 않았지만 프랑스군은 더욱 한심한 졸전을 펼쳤고, 영국군과 미군의 협조에도 불구하고 패배했습니다.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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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반 데니소비치 솔제니친
플레이어: 931117
생년월일: 1889년 11월 17일
성별: 남성
민족: 폴란드인
능력치:
- 통솔 16
- 체력 10
- 지능 10
- 지혜 11
- 매력 11
트레잇: 
- 지적 유희
그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학문을 좋아하는 딜레당트입니다. 이는 토론과 논쟁에서 도움이 됩니다. 
학술적이거나 이론적인 논쟁 및 토의에서 +1의 모디파이어.
- 불도저
그는 자신이 계획한 일은 반드시 완수해야만 직성이 풀립니다. 하급자 또는 동지에 대한 압박에 +2, 상급자에 대한 설득에 -1의 모디파이어.
배경:
이반 데니소비치 솔제니친은 폴란드 남작 가문의 후계자로 태어나 매우 유복한 권력자의 삶을 누렸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사관학교에 진학했으나, 그곳에서 마르크스와 레닌의 서적을 읽고 정체성에 극심한
혼란을 겪었습니다. 대전쟁에서 겪은 참상은 그의 의문을 확실시해주는 것이었고, 급기야 1917년 2월 병사들의
항명 사태가 벌어지자 오히려 부패하고 무능한 장교들을 처단해 차르정의 붕괴에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모난 데
없는 건실한 청년으로서 혁명의 소용돌이에 이제 막 진입한 참입니다.

-

이름: 마르텔 파우코이
플레이어: dear0904
생년월일: 1878년 12월 16일
성별: 남성
민족: 프랑스인
능력치:
- 통솔 8
- 체력 8
- 지능 13
- 지혜 18
- 매력 10
트레잇:
- 거짓의 윤무곡
그는 거짓으로 무언가를 꾸며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짓 증거를 조작하거나, 허위 정보를 유포하는데 +2의 버프를 받습니다.
배경:
페트로첸코는, 프랑스 출신의 이론가로, 파리코뮌의 패배를 역사로 읽으며, 공산주의에 전념 하였습니다. 
1896년, 19살 여름 그는 레닌을 만났고, 그와의 논쟁에서 겪은 경험은, 책만이 아닌, 
주변을 돌아보는 통찰과 기만을 기르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문서 조작과 화술을 배우게 되었고, 
이는 신생 소비에트 공화국의 큰 자산이 되어줄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받쳐주고 이끌어줄 사람이 필요해 보입니다...

-

이름: 뾰뜨르 뾰뜨로비치 (성 없음)
플레이어: 통장
생년월일: 1894년 9월 4일
성별: 남성
민족: 러시아인
능력치:
- 통솔 13
- 체력 18
- 지능 8
- 지혜 7
- 매력 12
트레잇: 
- 사회주의적 인간형
그는 누구보다 남의 말을 귀담아듣고, 가장 낮은 잘에 있는 자의 입장에서 진솔한 언행을 추구하는 인물입니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무언가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낍니다. 대중에 대한 설득과 선동에 +3의 모디파이어.
- 준문맹
그는 글을 쓰거나 읽는 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약자들을 돕고 싶을 뿐입니다. 
학술적, 이론적 논쟁 및 성과에 -2의 모디파이어.
배경:
뾰뜨르는 미르에 속한 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건장한 체구로 골목대장 노릇을 도맡고 공동체의 해결사 노릇을 하면서 지냈으나, 
성장할수록 부농에게 호밀을 헌납하고나면 오히려 굶주리는 일이 더 많은 현실에 분함을 느꼈습니다. 
어느날 여느때와 같이 부농에게 화를 낸 뒤 몰매를 맞고 나올 때 '가난한 농민에게 고함'을 들고다니며 미르마다 각성을 촉구하는 사람을 알게 됐고, 
그의 말이 자신이 생각하는 그것이라는 생각에 고향을 뒤로 하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물론 혁명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그곳에서 뾰뜨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으나, 몸을 사용하는 일이라면 자신 있었습니다. 
주먹 쓰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었죠.(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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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카튜셰프
플레이어: 카라멜 마끼아또
생년월일: 1890년 10월 29일
성별: 남성
민족: 발트인(에스토니아)
능력치:
- 통솔: 9
- 체력: 9
- 지능: 12
- 지혜: 12
- 매력: 12
트레잇:
- 교육 행정가
그는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 교육자로 자랐으며, 사람들의 배경과 상황을 감안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능력을 타고났습니다. 
전반적인 행정 관련 행동 일반에 +1의 모디파이어. 그 중 교육 관련 행동에는 +2의 모디파이어.
배경:
알렉산드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평범한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나 별 굴곡 없는 평범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초중고를 졸업한 뒤 교사이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교사가 되기 위해 사범학교에 입학했고. 
졸업 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받았습니다.
졸업 직후에 대전쟁이 발발하자 그도 군대에 입대해야 할 뻔 했으나, 다행히도 전문직 종사자라는 이점 덕분에 면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치며 평범한 하루를 지내던 그에게 2월 혁명은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허나 2월 혁명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7월 혁명이 일어났고 7월 혁명의 돌풍 속에서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볼셰비키에 입당했습니다.
교사라는 직업적 특수성 덕분에 그는 사상교육 담당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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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일리야 바실리예비치 우스트랼로프
플레이어: 렌지파일
생년월일: 1891년 5월 23일
성별: 남성
민족: 유대계 러시아인
능력치:
- 통솔: 10
- 체력: 8
- 지능: 15
- 지혜: 11
- 매력: 10
트레잇:
- 철없는 이상주의자
비정한 20세기가 시작되었으나, 그의 사고는 아직 ‘좋은 시절’에 머무릅니다. 
그는 반대파에게도 화합과 화해의 손길을 내밀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볼셰비키 이외의 국내 반대파를 상대로 한 설득과 소통에 +2 모디파이어.
- 참견꾼
그의 이상주의적인 면모는 동지들의 신뢰를 깎아먹는 주범입니다. 볼셰비키 지도부를 상대로 한 설득과 소통에 -1 모디파이어.
배경:
일리야 우스트랼로프는 페트로그라드 제국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중 마르크스주의에 빠져들었습니다. 
러시아 제국 내의 최대의 마르크스주의 정당이었던 사회민주노동당에 볼셰비키로 입당한 그는 당의 조직을 도와주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12년 사회민주노동당은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로 분당하였고 우스트랼로프는 그 와중에 오흐라나의 추적을 받게 되었습니다. 
스페인으로 도주했던 우스트랼로프가 페트로그라드로 돌아온 것은 5년 뒤, 혁명이 일어나고 볼셰비키가 집권한 뒤였습니다.
다른 수많은 망명자들과 함께 볼셰비키당으로 돌아온 우스트랼로프는 가슴 한 구석에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그는 레닌이 1912년 당의 창립자인 플레하노프와 마르토프를 분파가 다르다고 비난하고 추방하려 하며 당을 둘로 쪼개버리고 
노동자의 당과 볼셰비키는 무오류라 믿던 자신 또한 추방될 뻔했다는 것을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이름: 알렉세이 콘스탄티노비치 바레츠노프
플레이어: 하일레 셀라시에
생년월일:1894년 10월 1일
성별:남성
민족:러시아인
능력치:
- 통솔 7
- 체력 9
- 지능 9
- 지혜 15
- 매력 14
트레잇:
-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
그는 은근슬쩍 정보를 빼내는 데 탁월한 모습을 보입니다. 상대방으로부터 정보를 얻어내는 데 +3의 모디파이어.
- 샌님
누군가에게는 귀티나는 행동으로 보이더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재수없는 샌님의 행동인 법입니다. 
대중을 상대로 한 선동, 선전 등 행위에 -2의 모디파이어.
배경: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유럽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닌 알렉세이는 어느날 런던 빈민가의 참혹한 모습을 보게 되고 노동자들을 돕겠노라 결심합니다. 
이후 프랑스에 있을때 배운 법적 지식을 살려 노동자들의 변호일을 은밀히 해왔으나 이내 아버지 콘스탄틴에게 들키게 되고,
집에서 쫓겨나게 되서 방황하다가 러시아 혁명 소식을 접하게 되고 러시아로 귀환할 결심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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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931117 | 작성시간 21.09.13 여긴 인종주의가 약하지 거긴...
  • 답댓글 작성자카라멜 마끼아또 | 작성시간 21.09.13 그 안에서 어떻게든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드려 노력하는 이들 VS 권력에 순응하고 돈과 권력을 탐닉해가며 흑화해가는 이들 구도로 가면 재미있지 않겠어요?
  • 답댓글 작성자하일레 셀라시예 | 작성시간 21.09.13 전 아예 골수 인종주의자 컨셉으로 해보고 싶네요
  • 답댓글 작성자E.E.샤츠슈나이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9.13 ㅗㅜㅑ…
  • 답댓글 작성자931117 | 작성시간 21.09.13 전자는 히틀러가 다 죽일거고 후자는 뭐 이미 최측근이 그럴듯.흑화 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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