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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소망문]Re: 제로부터 시작하는 러시아 혁명 - 4

작성자E.E.샤츠슈나이더|작성시간22.11.20|조회수290 목록 댓글 47




10. 민족주의라는 이름의 열병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에 가지 않을테고
대포도 안 만들테고
탱크도 안 만들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테고

(중략)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 권정생, <애국자가 없는 세상>


1991년 12월 17일,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의 8개 공화국 지도자들은 러시아 카잔 시에 모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해체를 공식화하는 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이로써 냉전의 한 축을 담당했던 사회주의 초강대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으며, 그 빈자리는 유라시아 독립국가연합(СЕНН/CEIN, Содружество Евразийских Независимых Наций/Commonwealth of Eurasian Independent Nations)이라는 기구가 채웠습니다. 이미 문안이 작성되어 각국 정부의 비준만을 기다리고 있던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내용을 참고하여, CEIN은 연합의회와 집행위원회, 고위급상설회의 등을 갖춘 국가연합으로 출범했습니다. 단일통화와 단일외교안보정책이 채택되었고, NATO의 구조와 유사한 육해공 약 20만명 규모의 CEIN 통합군 및 통합군사령부가 창설되었습니다. 러시아 공군원수 예브게니 샤포슈니코프를 초대 사령관으로 하는 통합군사령부는 구 연방이 소유했던 모든 핵무기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게 되었죠.

러시아 공화국의 초대 국무총리로 임명된 예브게니는 전국적 소요사태로 인해 혼란스러운 국가를 안정시키고 다시금 서방 및 동구권과의 외교무대에 나서려 했습니다. 그러나 신설 대외협력부 장관으로 임명된 알렉세이의 보고에 따르면 미국, 서유럽, 일본 등은 러시아를 매우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민주 러시아가 탄생한 것은 기꺼운 일이나, 러시아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집단은 지리노프스키를 필두로 한 극우 민족주의자들이었기 때문이죠.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총선거를 실시할 경우 이들이 집권할 것은 명약관화했고, 그 결과는 서방에게 결코 이롭지 않을 터였습니다. 온갖 이념과 분쟁을 똑똑히 지켜보았던 에너지부 장관 아미나트 역시 우려섞인 눈길로 작금의 상황을 바라보았습니다.

일정대로라면, 러시아 공화국은 1992년 1월 21일에 초대 국가두마 총선거를 치를 예정이었습니다. 공산당의 공백을 빠르게 채우고 있는 정교회는 KGB와 협력했던 가락을 살려 지리노프스키와 결탁하기 시작했습니다. 람스도르프 서클의 일원들은 어렵게 얻은 민주주의가 곧바로 교권 파시즘으로 타락할 것이라는 현실에 절망감을 감추지 못했죠.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주CEIN대사로 현지임용된 안드레이 역시 본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걱정하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흑-황-백의 깃발을 휘날리며 위풍당당하게 행진하는 유라시아 청년단원들의 모습이 창문 밖으로 선명하게 보입니다. 이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 마치 1917년 10월의 적위대가 케렌스키 임시정부에게 그러했듯 - 람스도르프 임시내각과 한 줌의 지지자들을 끌어낼 작전인 것처럼 보였죠. 이대로 민주 러시아를 태어나자마자 쓰레기통에 쳐박을 것인가, 아니면 ’뭐라도‘ 해볼 것인가. 그들은 이제 결정해야 했습니다…



11. 컨틴전시 플랜

1991년 12월 20일, 모스크바 모처

예브게니 람스도르프:
“친구들,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한 상황입니다. 우리는 6월 혁명을 통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쟁취해냈지만, 정부가 수립된 지 반 년도 되지 않아 파시스트들에게 권력을 넘겨줄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일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알렉세이 메스너: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같은 마음일 거라 보네, 예브게니. 외교상황이 아주 안 좋아. 그 어느 나라도 우리를 상대해주지 않고 있네. 영국과의 실무 후속협상도 계속 지연되고 있고.. 이대로라면 대내적으로도 영향이 심각할 것 같다네.“

람스도르프:
”그럴테지. 안드레이, 우크라이나 정부에서는 따로 훈령이 내려왔나?“

안드레이 사사노프:
”크라우추크 대통령은 지리노프스키 정권과 상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려가 현실화된다면 우크라이나는 CEIN을 탈퇴할 가능성이 높겠죠.“

나탈리야 마그나트:
”미리 축하드립니다, 사사노프 대사님.“

사사노프:
”바로 한방 먹일 준비부터 하는 모습, 아주 보기 좋습니다. 깔끔하게 탈퇴한다면 오히려 다행일 겁니다. 아예 CEIN이 하는 모든 일을 사보타주하며 연합을 와해시킨다면 결과가 훨씬 재앙적이겠죠.“

메스너:
”남의 일처럼 이야기하는군. 독단적으로 독립을 인준한 것은 당신 아닌가?“

람스도르프:
”그쯤 해두지, 알료샤. 그때 우리에게 다른 방법이 있었던가? 음… 어떻든간에 극우 민족주의 세력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결론까지 나오는군. 아미나트, 우리의 승산은 어떻게 되지?”

아미나트 나가이:
“언론사에서 실시한 공식 여론조사, 제가 개인적으로 조사한 사설 여론정보수집 결과 등을 종합했을 때.. ‘선거로는’ 승산이 없습니다. 우리가 유리하게 이용할 실적 같은 것도 전무하고요. 유라시아주의라는 알기 쉬운 슬로건이 있는 저쪽과 달리 우리는 당론조차 못 정했지 않습니까?“

발레리 사블린:
”잠깐- 선거’로는‘이라니, 그럼 선거를 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택하자는 뜻인가?“

나가이:
”…러시아를 파시스트들의 손에 넘겨주기 싫다면, 그렇습니다.“

메스너:
”선거를 취소하거나 연기했다가는 저 밖에 있는 유라시아단 호모 새ㄲ… 아, 실례. 파시스트 청년들이 당장 우리의 목을 장대 위에 걸려고 할걸. 현실적으로 생각하자고.”

사사노프:
“메스너 장관의 말에 동의합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를 파괴한다고요? 그럼 저 파시스트들이나 공산당과 다를 게 뭐란 말입니까.”

나가이:
“저들은 러시아를 더 깊은 수렁에 빠뜨릴 겁니다. 체첸 뉴스를 다들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정교회 교권 파시스트의 집권은 곧 이슬람 세력의 급진주의화, 그리고 내전을 불러일으킬 겁니다. 고립된 러시아는 재기불능으로 망가질 거고요.“

(일동 침묵)

람스도르프:
”…나는 반평생을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살아왔노라고 자부하네. 지금도 그 신념은 전혀 변하지 않았어. 이 말을 먼저 전제로 하고 내 의견을 밝히도록 하지.“

메스너:
”잠깐-“

람스도르프:
”배리 골드워터는 이런 말을 했네.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극단주의는 악이 아니다. 정의를 추구하는 데 있어 절제는 미덕이 아니다.‘ 발레리,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얼마나 됩니까.“

사사노프:
”예브게니..!“

사블린:
“…샤포슈니코프의 통합군과 러시아 공군은 우리를 지지하고 있네. 레베드의 공수군 역시 내 요청이라면 응할 가능성이 높겠지. 그보다… 예브게니, 자네는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가? 전 인민과 싸워야 할 수도 있어.”

람스도르프: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요.”

알렉산데르 타라소프:
“젠장, 예브게니! 이 사태가 뭐 때문에 벌어졌는지 잊으셨습니까? 옐친이 무슨 일을 꾸몄었는지 까맣게 잊으셨냐는 말입니다!”

람스도르프: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이 우리를 이곳까지 인도했네, 사샤. 모두에게 약속하지. 이상을 위해 현실에 굴복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고…”




12. 모든 것은 인민의 자유를 위해서

“자유는 도덕 없이 달성될 수 없고, 도덕은 믿음 없이 달성될 수 없다.“
- 알렉시스 드 토크빌


살을 에는 추위와 세찬 바람, 눈보라가 휘날리는 1월 6일. 이 날은 성탄 축일(스뱌트카)의 마지막 날이자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그리고 전국의 모든 TV와 라디오에서는 “구 공산당 저항세력 및 일부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의 소요사태로 인해 선거를 무기한 연기한다”는 성명이 흘러나왔죠.

반응은 당연히 폭발적이었습니다. ‘유라시아 국민당 러시아 지부(YNPR)’ 당수 지리노프스키는 즉각 유라시아 제민족의 단결을 사보타주하는 임시내각을 ’심판‘하라고 주문했고, 유라시아 청년단과 지지자들이 제각기 무기를 들고 (국가두마 건물로 활용할)구 소비에트 연방 최고회의 건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예브게니를 비롯한 임시내각 일원들은 없었죠. 이들은 모스크바 근교의 한 공군기지 지휘통제실 벙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전선을 시찰하는 장군처럼 지프차에 올라타 시위대를 ’지도‘하던 지리노프스키는 모든 언론사의 카메라 앞에서 크게 발언했습니다.

“이로써 예브게니 람스도르프와 임시내각 각료들은 전러시아와 유라시아 제민족의 반역자임이 확실해졌습니다. 인민 의지의 대변자로서 나는 군에게 요구합니다. 은거를 끝내고 당신들이 민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십시오. 이것은 시대의 준엄한 명령입니다!“


이 발언을 신호로, CEIN 통합군의 육상 병력과 러시아 공군 및 공수군이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다른 사단과 여단들이 상황판단에 시간을 보내는 사이, Su-27 전투기 편대 여럿이 맹렬한 폭음을 내며 모스크바 상공을 저공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등에 소총을 멘 채 진압방패를 든 통합군 병력 역시 속속들이 도착해 시위대가 모인 모든 곳에 도열했죠. “당신들은 국가의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즉각 해산하고 귀가하라!”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지리노프스키 등 시위 지도부는 최고회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 농성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진압봉과 방패로 과격 시위자를 ‘정리’하며 길을 뚫은 육군 병력은 대부분의 시위대를 뿔뿔이 흩어놓고 있었죠. 지리노프스키는 최고회의 건물 안에서도 쉬지 않고 입을 놀리며 수많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타만 전차여단과 스페츠나츠가 모스크바에 진입해 상황을 반전시켜야 한다는 연설이 이어지고 있는 동안, 모스크바 상공을 위협비행하던 Su-27 두 대가 편대를 이탈했습니다.

그리고 전투기에서 발사된 Kh-25 공대지미사일이 굉음과 함께 최고회의 건물에 내리꽂혔습니다.

그렇게, 역사에 “크리스마스 헌정위기”로 기록될 사태가 종결되었습니다. 지리노프스키, 알렉산데르 바르카쇼프, 세르게이 바부린, 드미트리 로고진 등 민족주의 세력 지도부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자신의 흰 셔츠며 속옷을 막대기에 매달아 흔들며 건물 정문으로 달려나왔습니다. 건물에 남은 자들 역시 레펠을 타고 강하한 공수군 병력에 의해 전원 사살 또는 체포되었습니다. 이들은 전원 기소되어 제각기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99년에 달라는 징역형을 구형받았으며, 아마 판결 역시 구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예브게니 람스도르프는 언론 및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혼란을 조속히 수습하고 민주 러시아를 정상화시키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물론 총선이 언제 치러지게 될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었죠. 혹시 잊어버린 사람을 위해 부연하자면, 이 모든 것은 인민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 행해졌습니다.

.
.
.

그렇죠, 총리 각하?






- 네… 본격적인 개판의 시작입니다! 즐기시죠(?)

- 공산당과 극우 민족주의자들을 진압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이후 이야기에서 계속됩니다.

- 여담으로, 이걸 쓰다보니 왜 본편에서는 이런 꿀잼 전개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고작 법안으로 딜레마를 주려 했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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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E.E.샤츠슈나이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11.21 dear0904 그리고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에게 발리는 건 고증이니...(?)

    미쳐버린 사사노프는 모스크바를 함락시키고 키예프 루스국 재건을 선언하는데...
  • 답댓글 작성자931117 | 작성시간 22.11.21 E.E.샤츠슈나이더 ㅋㅋㅋㅋㅋ
  • 답댓글 작성자dear0904 | 작성시간 22.11.21 E.E.샤츠슈나이더 쏘련군 : 2차 대전을 승전으로 이끎 / 러시아군 : 일본에도 지고, 1차대전에도 지고, 암튼 열강에게 털리고 다님... 러시아 군이 털리는건 이미 증명된 것이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931117 | 작성시간 22.11.21 dear0904 러시아 제국군도 진사례가 꽤 있지만 하다못해 나폴레옹을 이기기라도 했지...
  • 답댓글 작성자렌지파일 | 작성시간 22.11.21 E.E.샤츠슈나이더 그것도 있었죠 전부 실패로 돌아갔을때를 위한 계획이었으니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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