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덕꾸러기 종이책의 신세

작성자녹림처사|작성시간23.04.05|조회수390 목록 댓글 0

🔸 천덕꾸러기 종이책의 신세 🔸

 

책을 많이 읽는다고 장서가가 되는 것은 아니지요

누를 수 없는 소유욕이 있어야 진짜 장서가 이지요

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생전에 살던 집은 작은 도서관을 방불케 했어요

사람들이 “이 많은 책을 다 읽으셨냐?”고 물으면

“다 읽은 책을 뭣 하려고 집에 두나? 여기 있는 책은 지금부터 읽을 것들”

이란 말로 기를 죽였지요

소설가 김영하는 “책이란 읽으려고 사는 게 아니라

사 놓은 것 중에 읽는 것”이란 말로 장서가들의 책 욕심을 표현했어요

 

종이가 없던 시절, 양피지로 300쪽짜리 책 한 권 만들려면 양 100마리가 필요했지요

필경사의 작업도 더뎌서 1년에 2권 정도 필사했어요

15세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장서가 겨우 122권이었지요

중세 직업 중엔 필사할 책을 찾아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는 책 사냥꾼도 있었어요

 

구텐베르크 이전엔 책값도 터무니없이 비쌌지요

독일 바이에른에선 포도밭을 팔아야 책 한 권 샀다는 기록이 있어요

책 한 권이 품은 가치도 오늘날과 비교할 수 없었지요

동로마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15세기 오스만튀르크에 함락당하자

그곳 학자들이 애지중지하던 장서를 들고 서유럽으로 피신했어요

그중엔 1000년간 잊혔던 플라톤과 소포클레스 등이 포함돼 있었지요

그 때 넘어간 책은 고작 230여 권이었지만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데 일조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평생 책을 읽고 수집한 이들이 책을 기증하려 해도

받아주는 도서관이 없어 애태운다는 기사가 실렸지요

실제 그런가 싶어 인근 도서관에 기증 절차를 물었더니

‘우리 도서관 취지에 맞는 전문 도서로 최근 5년 이내 출판된 것’ 같은

까다로운 조건이 붙었어요

10여 년 전만 해도 책을 기증받으면 감사장을 주던 도서관들이

이처럼 태도를 바꾼 것은 책이 넘쳐나기 때문이지요

한국에서만 해마다 약 8000만권이 책이 쏟아져 나오지요

그러다 보니 가정에서도 책장을 차지하는 종이책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어요

 

영화 ‘매트릭스’에선 주인공이 부피도 무게도 없는 전자책으로 가득한

가상 서가에 접속해 지식을 얻는 장면이 나오지요

그러나 전자책은 단점도 뚜렷하지요

자체 발광 디스플레이가 끊임없이 뇌를 교란해 독서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있어요

전자책을 읽을 때 뇌는 대강 훑어보거나 핵심만 추린다는 연구도 있지요

미국에서 전자책의 경쟁 대상은 가벼운 읽을 거리를 담은 문고본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이지요

그간의 기술 발전 속도로 볼 때, 전자책의 한계도 곧 극복 되겠지요

이젠 무엇이든 간단 명료하고 쉬운것을 선호하는 세상이 되었어요

그렇지만 도서관 장서가 어떻게 바뀌든

지식 축적의 보고라는 본연의 기능만은 바뀌지 말아야 하지요

 

모처럼 전국에 촉촉한 단비가 내리고 있어요

하늘의 주는 보배로운 선물이지요

이 봄비가 그치면 새봄이 성큼 다가올것 같아요

우리네 마음도 봄 향기처럼 향기로워 졌으면 좋겠어요

 

-* 언제나 변함없는 녹림처사(一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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