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과 워커힐

작성자녹림처사|작성시간23.06.25|조회수358 목록 댓글 0

♣ 6.25 전쟁과 워커힐 ♣

 

SK그룹은 대한민국의 5대 재벌기업중 하나이지요

주요사업 분야는 에너지, 정보통신, 기타 서비스 업종으로 크게 나눌수 있으며

창업모체는 적산기업인 '선경직물'이지요

이후 유공·한국이동통신을 잇달아 불하받으며서 에너지와 정보통신 중심으로

그룹을 형성하였어요

 

SK그룹은 1929년 창업자 최학배가 대성상회(大成商會)를 설립하면서 시작되었지요

그뒤 1944년 최학배의 장남 최종건이 경성직업학교 기계과를 졸업하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선경직물에 입사하였는데

8.15 광복후 미군정이 선경직물을 적산기업(敵產; 일본인 재산)으로 지정해

관리인을 최종건에게 맡기면서 선경그룹 설립의 기초가 되었어요

한마디로 돈 한푼 안 드리고 적산기업을 인수한 것이지요

 

그런데 1973년 최종건 회장이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동생 최종현이 승계하여

1975년 제2창업을 선언하며 석유 산업뿐만 아니라 건설(선경종합건설), 목재(선경목재)

금속(선경금속), 기계(선경기계), 화학(선경화학), 관광업(워커힐호텔) 등에 진출하였지요

그러나 최종현 또한 형처럼 폐질환으로 70세에 사망하자

그의 아들 최태원이 2004년(당시 44세)에 그룹회장을 승계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어요

 

그런데 특이할점은 현 최태원 회장의 부친인 최종현의 행적이지요

최종현은 일찌기 기업가로서는 드물게 처세술이 좋아 방위산업에 뛰어 듬으로해서

정치권의 두터운 신임을 쌓았으며 그로인해 선경화학이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지요

또 최종현의 조카 '최예정'은 당시 실세였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3남 이동욱과 결혼을 하여

사돈관계을 맺었으며 더 나아가 자신의 맏아들 최태원을 노태우 대통령의 딸(노소영)과

결혼을 시킴으로해서 살아있는 정권과의 끈끈한 인연을 맺어 왔어요

 

특히 1973년 워커힐이 계속되는 적자을 감당하기 어려워 민간에 이양하기로 결정하였는데

당시 여행이나 운송에 앞장섰던 한진그룹이 1순위 였으나

이때 최종현의 사돈인 이후락의 입김으로 SK그룹(당시 선경)이 불하를 받게 되었지요

그외에도 SK그룹은 힘있는 정권으로 부터 수많은 혜택을 입어 왔어요

그 대표적인 것은 1972년 석유산업(유공),1973년 관광산업(워커힐 불하), 1996년 이동통신 등 이지요

한마디로 처세술 하나로 힘 안들이고 황금알을 그냥 주었지요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점은

서울 광진구 광장동 언덕위에 위치한 18만평의 어마어마한 '워커힐(Walker Hill)'호텔이지요

이 호텔은 단순한 호텔이 아니라 김일성의 남침으로 인해 자유를 지키고자 참전한

유엔군 장병들의 휴양소로 만든것이라는 점이지요

 

피 비린내 나는 6.25의 3년 전쟁이 휴전협정으로 끝을 맺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강압으로 많은 주한미군과 유엔군은 철수를 못하고 계속 남아있게 되었는데

폐허가된 남한 땅에는 이들이 잠시 휴가를 받아 편히 쉴만한 휴양시설이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가까운 일본이나 동남아 지역으로 휴가를 떠나야 하는 불편을 느꼈지요

그래서 당시 정부는 미국의 협조를 받아 이곳에 주한미군과 유엔군의 휴양시설를

만들게 되었는데 3년여의 공사끝에 지금의 워커힐이 완공되어 개장하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오직하나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세계16개국의 연인원 180만명이

참전하였으며 이중 10여만명이 우리 조국수호를 위하여 장열히 산화 하였지요

 

그뒤 휴전협정이 조인되어 전쟁은 끝났지만 이중 5만여명은

우리 대한민국을 위하여 자신의 나라로 철수하지 못하고 휴전선을 지키고 있었지요

그래서 유엔군 사령부와 우리 정부는 이들이 편히 쉴수 있는

주한 유엔군 장병들의 전용 휴양시설을 만들게 된 것이지요

 

당시 박정희 정권은 주한 유엔군에 대한 보은책의 일환으로

이들이 편히 쉴수있는 공간인 만큼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최대한 심혈을 기울여

건설하였는데 한국 최초로 극장식 나이트 클럽이 개설되었고

패션쇼가 열릴수 있도록 고급시설로 지어 졌으며 실내 수영장 까지 마련되었지요

훗날 이 실내수영장은 우리나라 수영선수들이 훈련장으로 쓰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 유서깊은 곳의 이름을

워커 장군의 이름을 따서 "워커의 언덕(워커힐)"이라 명명 하였지요

 

워커라는 이름은 미8군 초대 사랑관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했다가 전사한

월턴 워커(Walton H.Walker)장군의 이름인데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이지요

 

또한 워커 장군의 이름을 붙인 것은 `전쟁영웅'을 추모한다는 뜻도 있지만

주로 미군이 주축이 된 유엔군 휴가장병 유치시설인 만큼 그들이 존경하는 인물의 이름을

붙임으로 존경심과 친근감을 느낄수 있도록 배려한 조치라 하지요

 

워커 장군은 1889년 12월 3일 텍사스주 벨튼에서 출생하였으며

1912년 미국 웨스트포인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제1,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지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3기갑사단장으로 참전해 승리를 거듭했으며

특히 북아프리카 전투에서 독일군의 롬멜 부대와 맞서 공훈을 세우고 중장으로 승진했어요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인 조지 패튼 장군이 가장 아꼈던 부하로 평가받았으며

‘패튼 장군의 불독’이란 별명을 이때 얻었지요

그는 이후 48년 맥아더 장군의 부름을 받아 일본에 본부를 둔 미 8군 초대사령관으로 부임하였어요

 

그러다 50년 6.25전쟁이 터지자 7월 13일 낙동강 지역에 파견돼

“버티느냐 죽느냐(Stand or Die)”라며 낙동강 방어선 사수에서 크나큰 공적을 세웠지요

그는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

철수건 전선 조정이건 어떤 것이든 단 한발짝도 뒤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총탄이 빗발치는 전선에서 생명을 걸고 진두지휘 하였어요

포항·영천·대구·창녕·마산·통영을 연결하는

이른바 ‘워커라인’의 방어작전은 국군과 연합군간 최초의 연합작전 이었으며

이것이 한·미 군사동맹의 시초가 되었지요

 

그는 초대 주한 미8군사령관으로 부임해 맥아더 장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고

낙동강전선을 사수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워 6.25전쟁의 `영웅'으로 칭송 받았으나

북진작전 지휘 중 짚차가 전복돼 전사 하게 되었어요

1950년 12월23일. 성탄절을 이틀 앞두고 중국군의 공세를 막아내는데 수훈을 세운

자신의 외 아들 워커대위에게 이승만대통령이 수여하는 은성무공훈장을 전달하기 위해

이동중 의정부 북방 축석령 부근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향년 61세의 삶을 마쳤지요

 

국방부는 2016년 한미동맹상을 제정하고 초대 수상자로 워커 장군을 선정했는데

“워커 장군이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 방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대한민국을 지켜낸 점이 높게 평가됐다”며 한미동맹상 첫 수상자 이유를 밝혔어요

“특히 낙동강 전투에서 우리나라를 지켜내는 등 혁혁한 전공과 함께

우리 군과 미군의 칭송을 받고 있는 인물이어서 초대 수상자로 적임자”라고 설명했지요

▲ 지금도 워커힐에 있는 워커장군 기념비

워커장군 후손들이 워커힐 기념비를 찾아와 참배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어요 ...

 

지금도 워커힐에는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는데

다음과 같은 비문이 적혀 있어요

 

"오늘 우리가 장군을 특별히 추모하는 것은 한국전쟁 초기

유엔군의 전면 철수를 주장했던 미국조야의 지배적인 분위기 속에서

유독장군만이 홀로 한반도 고수를 주장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공산화를 방지하여 우리의 오늘을 가능케한 그 공덕을 잊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워커힐 호텔 본관 정문 산자락에 세워진 비문을 읽어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지요

6.25 전쟁영웅 미 육군중장 월튼 워커 장군은 한국인에게 이런 말을 남겼어요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요?

그는 그 말을 지키기 위하여 장열히 산화한 것이지요

 

그래서 그 분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워커힐 호텔 언덕위에

기념비를 세우고 그분의 숭고뜻을 기리고 있어요

 

그런데 이 유서깊은 곳에 2018년 동계올림픽을 빙자하여 초청한

6.25 남침의 원흉 김일성의 손녀딸 김여정을 서울의 많은 호텔을 제치고

이곳에 투숙시킴으로해서 워커장군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켰으며

유서깊은 워커힐 이라는 이름을 철저히 유린 하였어요

 

또한 이곳에는 초호화 "애스톤 하우스(Aston House)"라는 것이

호텔과 떨어진 언덕위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은 국내에서 가장 비싼가격으로 소문이 나 있지요

배용준과 박수진 커플이 1억원이 넘는 비용으로 결혼식을 올렸던 장소 이기도 하지요

 

이 ‘애스톤 하우스’는 워커힐 내에서는 초호화 별관 객실인데

5,280㎡의 대지 위에 연면적 1,413㎡짜리 2층 건물로 돼 있는 빌라이지요

1층은 3개의 연회장으로 쓸수 있는 접객 공간이 마련돼 있고 2층은 침실 등으로 꾸며져 있으며

유리는 방탄처리가 됐다는 소문도 있어요

당시 하루밤 이용료가 1500만원에 부가세 10%와 봉사료 10%를 포함하면 1815만원을 내야 하지요

이곳을 북한 김여정이 18명의 일행과 함께 사용했다고 하는데

2박3일간 이용료가 무려 1억3천만원이라 하는군요

그 외에도 천안함 폭침 주범 김영철을 비롯하여 많은 북한인사들의 단골호텔이 되면서

워커힐의 본래 의미를 무참히 짖밟았어요

 

오늘 6.25전쟁 73주년을 맞아

워커힐 호텔의 이름을 재조명해 보았어요

아버지 회종현처럼 최태원 회장도 처세술이 좋아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여

떼돈을 버는지는 몰라도 워커힐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장사를 하든지

아니면 그 이름을 바꾸던지 하는것이 좋을듯 하네요

더 이상 워커장군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언제나 변함없는 녹림처사(一松) *-

 

▲ 용산에 있던 워커장군 동상

주한 미군 사령관과 백선엽 장군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어요

2017년 주한 미군이 평택으로 이전 됨에 따라 한미동맹의 상징인

워커장군의 동상도 평택으로 이전 되었어요

▲ 한국전쟁에서 혁혁한 공훈을 세운 워커장군...

▲ 이승만 대통령과 워커 장군 ...

▲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원수 ...

▲ 그의 외아들 샘 S. 워커 역시 대위로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최전방에서 용감히 싸웠고

미군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에 대장으로 진급하였으며 또한 미국 역사상 최초로

부자(父子)가 대장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지요

참고로 한국전쟁에서 미군 장군의 아들 200명도 참전 하였으며 그중 100여명이

전사 했어요 ...

▲ 워커힐 호텔 ...

 

▲ 전쟁의 원흉 김일성의 손녀 김여정이 숙소로 이용한 워커힐 애스톤 하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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