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꿈 화성

작성자녹림처사|작성시간23.12.10|조회수394 목록 댓글 2

◈ 정조의 꿈 화성 (華城) ◈

 

경기도 화성(華城)의 이름은 조선 정조가 작명했어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수원으로 옮겨 현륭원을 조성했지요

정조는 능을 보호할 성곽 터를 둘러보면서

장자의 화인축성(華人祝聖)이란 고사를 떠올렸어요

화(華) 지방 제후가 요 임금에게 부귀, 장수, 다산을 기원했다는 내용이지요

그래서 정조는 ‘백성은 왕실의 안녕을, 임금은 백성의 번영을 기원하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의미로 ‘화성’이라 이름 지었어요

풍요의 고을이 되라는 염원을 담은 셈이지요

 

사실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아버지의 능명을

세자의 예에 따라 영우원(永祐園)이라 했어요.

이후 정조는 아버지의 능원을 현재 화성 화산으로 옮겨 

현륭원(顯隆園)이라 했지요

 

원래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왕이 제례를 올리고 하루 안에 도성으로 돌아올수 있도록 거리를 계산

궁궐을 중심으로 반경 10리밖(4㎞), 100리(40㎞) 안으로 정하도록 되어 있었어요

그러나 현륭원은 도성 10리밖, 100리 안 원칙을 무시하고 조성한 사례였지요

정조 자신이 최고의 길지를 추천받아 신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택한 택지였어요

100리 안 원칙이 나오자 키 큰 장정들만 모아 걸음을 크게 잡은 뒤

화성은 100리 이내라고 억지 주장을 했지요

옛날에는 거리측정을 보통사람의 발걸음으로 측정하였는데

정조는 키 큰 사람들을 시켜 큰 보폭으로 거리를 측정하여

100리 안이라 우겼어요

현륭원은 이후 고종때 사도세자를 장조로 추존하면서

능호도 융릉(隆陵)으로 바꾸었지요

 

그러나 정조의 바람과 달리 현대사에서 화성은 ‘오욕’에 시달렸어요

1986~1991년 사이 화성군 태안읍 일대에서

10건의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했지요

잔혹하게 살해된 여인들 사체가 농수로, 논바닥 등에서 잇따라 발견돼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어요

2003년 ‘살인의 추억’이란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지요

또 화성 매향리 일대는 1951년부터 54년간 주한 미군 사격장으로 쓰였어요

운동권 학생들이 몰려와 “미군 철수”를 외쳤던 곳이지요

 

그렇지만 2000년대 들어 환골탈태의 싹이 텄어요

삼성전자가 화성에 반도체 공장을 지었지요

반도체 초호황으로 기흥 공장(용인) 생산 능력이 한계에 이르자,

기흥 공장 인근의 화성 땅 17만 평을 매입, 반도체 공장을 지었어요

2002년부터 화성공장에서 300㎜ 웨이퍼를 양산,

생산 원가를 획기적으로 낮췄지요

현재 삼성전자 본사는 수원에 있지만 반도체 사업 본진은 화성이지요

작년 6월 EUV(극자외선) 공정으로 3나노 파운드리 제품을

세계 최초로 출시한 곳도 화성 공장이었어요

 

2003년 화성 남양만 매립지 106만 평에

현대차의 연구개발(R&D)센터인 남양연구소가 들어섰지요

현대차가 세계 5대 자동차 메이커로 거듭난 힘은

8000명의 연구원들이 불철주야 연구하는 남양연구소에서 나왔어요

현대차는 최근 24조원을 투자하는 전기차 공장 신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화성시를 생산 기지로 낙점했지요

그래서 화성시는 반도체와 자동차,

우리나라 양대 산업을 모두 가진 유일한 도시가 됐어요

화성시의 역사는 산업화 시대 최대 공업 도시로 부상한

울산의 진화 과정과 비슷하지요

 

2001년 시 승격 당시 21만 명에 불과했던 화성시 인구는

올해 100만 명을 돌파했어요

양만이 아니라 질도 특A급 도시이지요

재정자립도 전국 1위(61%), 지역내총생산(GRDP) 전국 1위(82조원),

아동 인구 비중 전국 1위(20%).

화성 시민의 평균연령은 38.8세로 전국에서 가장 젊어요

정조의 작명이 230년 만에 현실이 됐지요

풍요를 바라면서 작명한 화성이라는 이름의 선견지명은 탁월했지요

풍요의 꿈을 실현한 힘은 결국 시장경제 체재의 기업에서 나왔어요

 

-* 언제나 변함없는 녹림처사(일송) *-

 수원화성 

 수원 화성 융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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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박서연(수필 작가) | 작성시간 23.12.10
    요즘
    제가 너무 좋아한 역사극에
    (이산, 허준,동이,대장금,
    해품달, 화정,왕과비,동이,
    인수대비,대조영 등등)
    푸~욱 빠져서
    짬나는대로 보고 있었던 찬라에
    역사의 한장면을 제 복습하는
    기분입니다.
    요즘은 태조 왕건을 보고 있습니다.

    정조(이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어이없는 죽음으로 인해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을까요(;;~

    드라마 이산을 통해 그리고
    얼마 전에 끝낸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을
    통하여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녹림처사 님 덕분에 다시 한번
    복습하게 되어 진짜 고맙습니다.

    다방면으로 지식이 풍부하신
    녹림처사 님 덕분에 정말 많이
    배웁니다.
    감사드립니다.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녹림처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2.12 그래요 고마워요
    이제서야 정조의 꿈이 실현되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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