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조금 줄이고 보시는게 좋아요~)
예프넨 진네만: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바로 어제의 일과 같이 선명하게, 나는 그 날의 일들을 반추한다.
그 끝 없는 악몽 속에서, 나는 보았다. 빛을… 찬란한 그 빛을… 나는 보았다.
하지만 정말 긴 이야기였다. 쉼표 하나 없는 긴 이야기…. 롱소드: ……………………. …그리고 그 아이들은 탑 최상부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 아이들은 아주 지쳐 있었어요. 하긴, 당연한 일이죠…? 강철로 된 검날조차 무뎌질 만큼, 길고 힘겨운 싸움이 오래 반복되고 있었으니까, 숨 돌릴 새도 없이 달리고 또 베어 왔으니까. 지지 않고 달려가서, 그들은 드디어 발견하게 됐지요….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흑의검사…. 그들이 여러 번 검을 마주 하였던 바로 그 사람이었지요. …아니, 흑의검사들이라고 해야 할까요? 흑의검사…. 검은 옷을 걸친 유령. 죽고자 하여도 죽을 수 없는 자. 목숨조차 자기 몫이 아닌 자의… 서글픈 분신들. 이윽고 그들이 온 시야를 가득 메웠습니다. 하늘 따위는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새카맣게… 비구름같이. 후후… 싸워도 싸워도 끝이 없었습니다. 일생동안 싸워온 것처럼 오래, 힘겹게, 그 아이들은 정신을 집중했지만 너무 힘에 부친 일이었지요. 코어…. 글쎄요, 코어에 관한 것은 제 입으로 말한다는 게 무척 낯간지럽고… 또 어색한 일이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탄생석이 실은 유출된 코어의 결정이라는 것 정도는 당신도 이미 알고 있을 테지요? 그것은 이 세계의 정수이자 요체. 이 세계의 피. 결여…. 이 테시스의 분열된 틈에서 새어 나온 코어의 서글픈 현현. 세계의 균열… 세계의 상흔…. 상처가 쏟아 놓는 썩은 핏덩어리 같은 것….
더 이상 검을 들 힘이 남아 있지 않아서, 자주 두 다리에서 힘이 빠져 나갔답니다. 인간이란 생각보다 강하지만, 그래도 무적은 아니거든요. 부서지지 않는 건 세상에 없죠. 죽지 않는 인간이 없는 것처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조금만 더 힘을 내면… 조금만 더 검을 휘두르면…." 하지만… 무리였어요. 인간의 체력과 정신력에는 한계라는 게 있으니까요. … 그때.
흑의검사: "… 이 정도인가…?" 롱소드: 그렇게 말하며, 또 한 명의 흑의검사가 나타났습니다. 그 동안 달려들었던 다른 흑의검사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지요. 아아… 뭐랄까요, 그거야말로 진짜의 기백이라고 할까요…? 후후후. 인간이란 참으로 신비합니다. 뼈와 살과 가죽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빛과 같고 아련한 향기와 같은 무언가가, 틀림없이 존재하거든요. … 그 아이들은 혼란스러운 것 같았습니다. "대체 흑의검사의 정체는 뭘까? 대체 왜 이 사람은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적인가 싶으면 돕고… 돕는가 싶으면 수 많은 존재로 불어나 공격해 오고…." "죄를 지으면서도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손에 잡힐 듯 하면서 물처럼 흩어져 사라지는… 이 사람은 누굴까?" 그리고…. 보리스: "…!" "…당, 당신…은?" 롱소드: …그가 바로 예프넨 진네만…. 몇 년 동안이나 보리스가 찾아 헤맸던, 바로 그 사람. 보리스: "…형?" 롱소드: 흑의검사… 한때 예프넨 진네만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갔던 그 사람은, 방금 전 까지 검을 맞댔던 동생을 향해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예프넨 진네만: "아직 멀었구나… 보리스." 롱소드: 그리고 그는… 예프넨 진네만은, 비로소 그가 준비해 온 죽음을 행할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롱소드: 그는 탄생석과 아티펙트의 힘에 의해 변이된 자로, 비정상적인 각성을 통해 인간이 아닌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유출된 코어를 결정화 하여 탄생석을 만들 수 있는 대신… 그는 죽을 수 없었습니다. 망가지지 않고, 사라질 수 없는 육체를 지닌 존재였지요. 검은 예언자들의 일에 협조하는 대신 더 위험한 수준의 변이를 간신히 막고 있었다지만, 임시방편만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요. 세상은 점점 그의 육체처럼 망가져가고… 시간과 공간조차 일그러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세계의 위기를 눈치챘습니다. …그래도 그는 무언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해 왔던 것입니다. 무엇이든, 도움이 되고 죽기 위해…. ……………………………………………. 예프넨 진네만은, 자신이 죽는 것 말고는 이 모든 비극을 멈출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자의와는 관계없이 자꾸만 분열하는 또 다른 자신들을, 끝없이 죽이고 또 죽이는 것에 지친지 오래였거든요. 탄생석과 코어, 아티펙트의 힘에 의해 변이된 그의 몸은 당장이라도 자아를 잃고 폭주해 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테일즈위버의 힘이 아니면 그는 죽을 수 없었기 때문에, 지금껏 버텨 왔던 거지요. 이왕 죽음으로밖에는 멈출 수 없는 운명이라면… 그 죽음으로 그 아이들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다…. 그런 생각만으로. 예프넨 진네만: "살아 남아라… 내 몫까지." "하아아아아아아!"
보리스: "…형?" 롱소드: 폭음이 울렸습니다. 지축이 꺼지고, 온 세상이 일시에 폭풍에 휘감겨 사라질 것처럼 울부짖었습니다. 보리스: "…형!!!" 롱소드: 예프넨 진네만이라는 한 인간의, 그 동안의 모든 행위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한 것. 그는 모든 것을 바쳐 그의 뜻대로, 그 아이들을 살아 나가게 할 수 있었습니다. …축하한다…고, 말해야 할까요? 웃으며 폭죽을 터뜨리고 유쾌한 박수를 보내야 할까요? 드디어 당신의 소망이 이루어졌다고… 이제야 당신 몫의 모든 이야기가 순조롭게 막을 내리게 됐다고…. 이제야…. ……………………………………………. 그리고 빛의 길이, 드디어 그 빛의 층계가, 모두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롱소드: 잃어버린 섬. 천공의 정원. 에델의 기억. …세계의 문. 그 아이들은, 한 사람이 죽음으로써 만들어 준 길을 걸어 갔습니다. 그 빛의 층층계를 천천히, 더없이 자유롭게, 또한 아름답게… 걸었습니다. 그 문을 열기 위해.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모든 것을, 끝냄으로써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다시 고통스러운 나날이 반복된다 하더라도 기회를 되찾기 위해서. 모든 것을 죽게 하지 않기 위해서. …물론, 이 모든 사명도 숭고한 가치도 그들은 알지 못했겠지만요. 후후후. 자,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다시 시작될 수 있는 겁니다. 세상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곳에서 세상 누구도 모르지 않는 이 이야기가, 이렇게 새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났으니 나라는 이야기꾼은 물러나는 게 온당한 일이겠죠?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예요. 내가 좋아하는 해피 엔딩으로.
랑켄: 흠… 그런 이야기를 이렇게 자세히 해도 괜찮은 건가? 세계의 이면은 아무에게나 전해져서는 안 되는, 아주 비밀스러운 일인 줄 알았는데 말일세. 롱소드: 그야~ 과학자 친구는 입이 아주 무거운 사람이니까 말이죠~ 후후후. …그리고, 어차피 당신은… 당신들은… 모든 것을 잊을 테니까요. 아주 옛날, 테시스를 만든 사람들이 세월의 흐름에 묻혀 잊혀져 버렸던 것처럼, 인간들은 결코 빛을 향해 싸워 나간 사람들을 기억하지 않는 법이랍니다. 그들도… 잊혀질 거예요. 한 점 남김 없이, 마치 없었던 사람처럼….
롱소드: 그러니까 끝나는 게 아쉬워도 이제는 이 책장을 덮어야만 해요. 끝나지 않는 이야기는 이야기가 아니니까, 잠들 수 없는 이야기는 깨어날 수도 없으니까, 이야기꾼은 그리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거죠. 아무리 마음 아파도 당신들은 이 슬프고, 아름답고, 가슴 아프면서도 아련한 이야기를 떠나 새로운 이야기가 되어 주지 않으면 안 돼요.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는 잊혀지고, 그리하여 누군가 다시 발견해 읽어줄 때까지 길고 긴 잠에 빠지는 거랍니다. 괴롭고 쓸쓸하지만 감미로운… 잠에….
- EP 1. epilogue -
|
첨부파일첨부된 파일이 1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