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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카린]]-피의 노래- Two Night. 붉은 장미의 도시, 크로스

작성자은빛카린|작성시간08.07.25|조회수108 목록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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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 Night. 붉은 장미의 도시, 크로스



◈◈◈


  

 짙게 하늘을 수놓은 검푸른 빛. 그리고 검푸른 빛의 하늘 위 뜬 이질적인 은빛.

 길고 긴, 인간이라는 다른 종족이 보기엔 더없이 영원할 것만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그들을 비추는 차갑고 아름다운 달빛마저 그 빛이 바랠 정도로 아름답지만 신이 그들에게 부여한 족쇄 때문에 영원한 ‘밤’의 노예인, 밤의 일족인 그들.

 그들이 질리도록 봐오고 또 봐오는 하나뿐인 광경. 신이 밤의 일족인 그들에게 단 하나 허락한 세계.

 더없이 아름답고 매혹적이지만, 그것에 빠져든 순간 그들을 끝없는 고독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과거를 생각나게 하고, 괴롭게 하고, 아픔을, 상처를 주는 광경.

 그리고 그런 광경 아래,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아침이 오지 않는 영원한 밤의 왕국 수도.

 ‘기록하는 자’는 그곳의 한 켠에 있었다. 도시의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그 곳에서 그녀는 시선을 어중간하게 둔 채로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고 멍하게 있었다.

 「새로운 막이 시작되는가?」

 의미를 알 수 없는 한 마디 말을 내뱉고는 ‘기록하는 자’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그녀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엔 저 멀리 밤의 도시의 방향으로 달려오는 마차가 비치고 있었다.


 

 더없이 차갑지만, 한없는 따스함을 품은 손. 하지만 잡아서는, 잡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손. 그러나 그의 미소에 깃든 슬픔이, 아픔이 너무나도 뼈저리게 스며들었기에.

 그래서 노엘은 마침내 그 손을 잡고 말았다. 그것이 그와 같은 밤의 동족들을 죽이며 손을 피로 물들이던 헌터로서 죄를 짓는 것이라 해도.

 노엘은 카인의 손을 잡고 비틀거리며 겨우 일어섰다. 그러자 카인은 불안한 듯 자신 쪽으로 노엘의 몸을 잡아 끌었다. 그리고 둘은 굳은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카인 폰 크로스? 간부님!”

 “크로스라면, 그! 뱀파이어들의…….”

 “불……가능해! 크로스를 어떻게?”

 앞에 여전히 대치하고 있는 수십 명의 헌터들. 노엘을 처형하려는 그들은 카인의 이름을 듣고 당황하며 수군대고 있었지만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간부에게 조언을 구하며 총을 겨눈 것을 치우지 않았다.

 ‘성가셔.’

 확실히 카인에게는 성가신 상대였다. 아직 미숙한 헌터들은 겁을 주어 도망가게 할 수 있지만, 그들은 많은, 숙련한 훈련을 받아오고 많은 동족을 죽인 헌터들이었다. 하지만 노엘의 소중한 동료이자, 아버지를 카인은 죽일 수 없었다. 만약 그들을 죽인다면 그녀가 상처입고 괴로워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카인은 짙게 물든 붉은 눈동자로 그들을 노려보며 노엘을 감싸지 않은 다른 손의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얽혀있는 피처럼 붉은 색의 쇠사슬이 ‘차릉’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당황하지마라. 모두 총을 거두어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린 협회의 명령을 지켜야한다.”

 거의 모든 헌터가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 중에서 간부인 그녀의 아버지 크리스 카를리아는 흔들리는 대열을 바로잡으며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잠시의 흔들림이 느껴졌던 나머지 헌터들은 감정을 감춘 태연한 표정과 태도로 돌아왔다.

 “카인……아버지와 동료들은…….”

 그들의 그런 태도에 노엘은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며 카인의 팔을 꽉 잡았다.

 어제까지, 무뚝뚝하긴 했지만 다정하고 자신을 걱정해주던 눈앞의 사람들. 그런 그 사람들이 갑자기 어제와는 다른 모습을 한 채 자신에게 총을 겨눴다.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들었다.

 그들의 무뚝뚝하지만 상냥한 표정이, 감정 하나 없는 인형 같은, 가면을 쓴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사람이 이렇게 차갑게 냉정하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에 노엘은 큰 공포를 느꼈다.

 “괜찮아. 아버지와 동료들은 상처 입히지 않을 거야.”

 하지만 공포를 느끼면서도 그들이 다치는 것을,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한 구석에서 생겼다. 그리고 카인은 그런 그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진정하라는 듯이 손을 잡아주었다.

 “부탁해.”

 고개를 숙인 채 노엘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이 믿어왔던 모든 사람들. 자신에게 많은 것을 주었던 사람들. 헌터로서 손을 피로 물들이는 것도, 그들과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랬기에 그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기억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만 같았다.

 ‘믿었는데……. 이런 날들이 계속될 줄…….’

 매일 반복되는 따분하고 비슷한 일상. 그래서 언제까지나 그것이 반복될 줄 믿고 그 소중함을 잠시 잊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일상이 이토록 무참하게 깨져버린 순간, 깨달았다. 그것은 자신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노엘 카를리아를 놓쳐선 안 된다. 어떻게 해도 좋으니 죽여라.”

 모든 기억도, 감정도 이제는 없다는 듯이, 총을 겨눈 아버지의 모습을 노엘은 보지 않았다. 아니, 보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더 맞는 것일 것이다.

 그렇게 고개를 푹 숙인 채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슬픈 표정을 한 노엘을 보고는 카인은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카인은 눈앞의 총을 든 헌터들을 향해 시선을 옮기고 싸늘한 표정이 되었다.

 ‘노엘. 널 절대 잃을 수 없어. 넌 길고 긴 고독과 어둠속에서 날 향해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준 존재니까……. 하지만 네가 날 원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난 저들을 다치게 해서라도 널 지킬 거야.’

 카인은 손을 움직여 입가로 가져갔다. 그리고 송곳니로 손가락을 물었다. 바닥에 약하게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피로 그는 무언가를 하려는 듯이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고는 허공에 대고 손을 뻗었다.

 무언가를 하려는 그의 행동에 헌터들은 인상을 잠시 찌푸리고는 총을 더 세게 꽉 잡고 전열을 다졌다. 그것은 뱀파이어의, 그것도 순수혈통의 뱀파이어인 그에게 섣부른 공격은 금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엘. 잠시 여기에…….”

 카인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고개를 여전히 숙이고 있는 노엘을 향해 말한 후 허공을 향해 뻗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땅바닥에 떨어졌던 피들이 카인의 손 주위로 몰려들었다. 마치 카인의 힘에 이끌러가듯이. 그리고 모여든 피들은 카인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모여 결정을 이룬 후, 주위로 퍼져나가 연한 붉은 빛의 얇은 막을 형성했다. 그렇게 얇은, 붉은 빛을 띤 막은 노엘을 보호하려는 듯이 노엘의 주변을 에워싸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무슨……짓을!”

 카인의 그런 행동에 헌터 중 한 명이 흥분한 듯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그는 은색의 달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카인의 무서울 만치 싸늘한 두 선명한 붉은 빛 눈동자에 말문을 잊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돌처럼 굳어버린 것같이 움직이지 못했다.

 “저 결계를 파괴해라!”

 헌터들의 제일 후방에서 노엘을 향해 손짓을 하며 헌터 크리스 카를리아는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그의 곁에서 그를 지키고선 노엘의 직속상관이었던 클라드 또한 총을 들고는 만약에 있을 상황을 대비해 그를 다치지 않게 하기위해 총을 들었다.

 이윽고 크리스 카를리아와 클라드를 제외한 나머지 헌터들은 전부 카인 저편의 노엘을 감싸고 있는 결계를 향해 일제히 정확하게 조준하고는 총을 쏘았다.

 “정말, 단념할 줄을 모르는 군.”

 가볍게 손을 감싸고 있는 붉은 쇠사슬을 움직여 카인은 사방에서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총알을 튕겨냈다. 그런 그 모습을 보고도 헌터들은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 듯이 계속 하여 총을 장전하고는 쏘아나갔다.

 그러나 계속되는 공격에도 카인은 쇠사슬을 춤추는 것과 같이 움직이며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어둠 속, 특히 밤이라는 시간은 어둠에 익숙해진 눈을 가진 카인에게 모든 물체를 훤히 보이게 할 뿐인 것이다.

 “더 이상은 이렇게 시간을 허비할 수 없겠어.”

 주위에 흩어진 총알들을 바라보고 노엘의 상태를 지켜보고는 카인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고개를 숙이다가 겨우 고개를 들었지만 넋이 나간 거 마냥 기운이 없이 멍하게 있는 노엘. 당장이라도 쓰러지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겨우 버티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망가진 인형마냥 노엘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주저앉아 있었다.

 “이제 봐주지 않겠다. 비켜라.”

 총알을 튕겨내고는 그 자리에서 미동이 없던 카인이 그들을 향해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이윽고 헌터들은 카인을 행동을 주시하며 계속되는 공격에 지쳐 거친 숨을 내쉬면서도 총을 다시 들었다.

 “비키라는 말이 들리지 않는 건가?”

 계속되는 공격태도에 짜증이 난 카인은 그들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를 경계하던 헌터 여러 명이 그와 눈이 마주쳤다.

 “읏! 왜…….”

 달빛에 선명하게 빛나는 루비와 같은 눈동자를 본 순간. 그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총을 든 팔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인데도 자신의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마비된 것 마냥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 녀석! 무슨 짓을…….”

 옆에 있는 동료들이 아무런 행동도 못한 채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총을 거둔 사실을 알고는 그 옆의 헌터들이 자신 쪽을 주시하고 있는 카인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살짝 손을 움직인 카인의 쇠사슬이 그들을 정확하게 명중했다.

 “정말……. 비키라고 했을 텐데!”

 복부를 명중당하고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헌터들과 서로 충동해 땅바닥에 내동댕이친 그들을 보고는 나머지 멀쩡한 헌터들을 매섭게 노려보고는 카인은 큰 소리로 외쳤다.

 어떻게든 그를 공격해보려 움직이려한 그들이었지만, 총을 쏘기 전 그들은 카인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 든 순간, 그의 눈길과 눈이 마주친 순간, 무거운 공기가 자신을 짓누르는 것과 함께 그들은 앞의 헌터들과 같이 그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크리스 간부님. 괜찮으십니까?”

 카인이 행동하기 전, 무언가를 느낀 헌터협회의 간부인 크리스는 자신과 함께 징후를 느끼고 뒤로 물러서 자신을 부축하는 클라드의 손길을 뿌리쳤다. 그리고 끝끝내 손에서 놓지 않았던 총을 카인에게로 겨누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정말 잔혹하군. 무언가를 위해서 이렇듯 피를 이어받은 존재조차 해할 수 있다니…….”

 일순간, 불어온 냉기 가득한 바람이 카인의 검은 머리카락을 일렁이게 했다. 그리고 카인은 그 순간 그는 잠시 동안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허리장식으로 매달린 붉은 장미의, 펜던트를 바라보며 과거를 떠올리기라도 하듯이 무언가를 생각하며 슬픈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강하게 불어온 바람에 의해 감춰졌다.

 “정말 신물이 나. 그런 잔혹함.”

 바람이 멈추고, 드러난 카인의 표정. 그것은 아까와는 다른 강한 살기가 어린, 분노 가득한 표정이었다. 당장이라도 그를 잔인하게 죽여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표정.

 아까의 냉정하면서도 싸늘하게 감정을 감추던 카인은 감정을 드러내면서까지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간……간부님…….”

 그렇게 카인의 분노와 힘에 크리스 카를리아를 부축하고 있던 클라드는 맥없이 그에게서 떨어져 한 구석에 부딪혔다. 클라드는 분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몸을 움직이려했지만 아까의 다른 헌터들과 같이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피를 마시는 괴물 주제에…….”

 카인의 그런 행동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크리스 카를리아는 카인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손이 떨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억지로 손을 움직여, 손가락을 움직여 총을 쥐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탕―.

 이윽고 정적에 잠시 휩싸였던, 잠시 시간이 정지한 것 마냥 아무런 일없이 조용했던 밤의 거리에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만해!”

 숨소리조차 거의 나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고 있던 노엘이 총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큰 소리로 절규하며 결계를 뛰쳐나왔다. 그녀의 눈에 비친 광경, 그것은―.

 작동을 멈춘 태엽인형처럼 그가, 크리스 카를리아가 붉은 피를 쏟으며 쓰러지는 광경이었다.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이 카인에게 쏜 총알을 카인이 쇠사슬로 튕겨내는 바람에 어깨에 맞은 그는 깊숙이 박힌 총알로 인해 어깨를 감싸 쥐고는 고통을 참는 표정을 한 채 쓰러졌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이었다. 그는 다시 일어나 어깨로 한 손을 감싸 쥔 채로 노엘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노엘?”

 놀란 표정으로 결계 밖으로 뛰쳐나온 노엘을 쳐다본 카인은 그 즉시 크리스 카를리아가 총을 든 것을 확인하고 노엘에게로 이동했다. 그러나 총이 먼저였다.

 카인이 이동하기 전, 잠시 동안의 빈틈, 망설임. 그것이 그의 움직임을 더디게 했기에. 카인은 총이 노엘을 향하는 순간보다 늦어버렸다.

 ‘아버지.’

 자신을 향하는 총부리에 노엘은 반사적으로 두려움에 눈을 감고 말았다. 그 두려움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향하는 총알을 상상하며, 그동안의 기억을 떠올렸다.

 무뚝뚝하지만 자신이 조르고 조른 물건은 언제나 몰래 방의 침대 머리맡에 두고 갔던 아버지, 헌터로서 냉정했지만 뱀파이어를 사냥하는 법과 총을 연습하는 날 보며 무엇이 잘못 되었나 가차 없이 알려주었던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가 잠깐 잠깐 보이던 진심어린 미소.

 모든 기억이, 추억이 지난날처럼, 영사기에 돌아가는 필름처럼 쭉 내열되어갔다.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시간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노엘. 피해!”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 목소리에 노엘은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노엘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총알을 보고야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동안의 아버지와의 추억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그 무엇 때문이었을까?

 “어째서? 그 거리에서라면 얼마든지 명중할 수 있었을 텐데―.”

 움직일 수 없었던 자신. 그리고 그 감정을 계산했을 터인 아버지. 하지만 총알은 그것을 계산하지 않은 것 마냥 살짝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노엘. 다행이야.”

 총알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카인은 그 자리에 굳은 채로 있었던 노엘을 끌어안았다. 노엘은 그제야 정신이 들어 자신이 카인의 품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카인의 품 안 사이로 저 건너편에 출혈로 정신을 놓은 아버지를 발견했다.

 “아버지한테……. 아버지한테 가야해.”

 자신을 놓아주지 않으려는 카인에게서 노엘은 몸부림치며 아버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카인은 끝끝내 아버지로 향하려는 노엘을 저지했다.

 “미안……. 노엘.”

 카인은 몸부림치는 노엘의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그러자 노엘은 조금씩 힘이 빠진 듯 몸부림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가게 할 순 없어. 만약에 네가 가게 되면 두 번 다시 널 볼 수 없을 테니까…….”

 카인의 목소리에 노엘은 눈앞이 희미해져 감을 느꼈다. 마치 눈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처럼.

 ‘뭐……지……?’

 갑작스럽게 흐려지는 시야와 쏟아지는 잠에 노엘은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노엘은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노엘은 깊은 어둠이 존재하는 망각의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잠시―. 잠시 동안만이라도 편안히 쉬어, 노엘.”

 잠에 빠져들은 노엘을 자신의 품에 안고서 카인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윽고 그는 그렇게 잠이 든 그녀의 모습을 다정하게 잠깐 바라보고는 그 자리를 빠져나가기 위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녀를 잃지 않기 위해서―.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




◈◈◈

 



 대지를 비치던 심연의 달의 빛이 모습을 감추고 다가온, 인간들이 활동하고 인간들이 살아가는 시간. 하늘은 푸름을 머금고 대지는 환한 빛으로 감싸이는 시간.

 어둠이 아닌, 빛의 태양이 존재하는 낮의 시간. 그리고 햇살이 따스하게 비치는 화창한 날씨의 도시.

 때마침 도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편안하게 일을 끝마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휴일이 겹쳐 시끌벅적했다.

 시장에 나와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꼬마 아이, 그 밖의 여러 사람들.

 언제나 반복되고, 되풀이되는 ‘낮’이라는 일상의 한 조각. 그리고 그 조각의 파편 중, 하나의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그들, 인간들은 있었다.



  따스하게 몸을 감싸던 태양의 빛. 하지만 이제는 생명을 위협하는, 심장을 겨눈 칼날과 같은 것.

 조금만 손을 뻗으면 닿았던 것. 하지만 이제는 손을 뻗을 수조차, 아니 손을 뻗어서는 안 되는 것.

 밤의 일족인 그들에게 신이 내린 대가. 그것은 햇살이 비치는 태양의 광경 아래 서는 것조차, 햇살을 바라보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저주.


 인간과는 다른,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된 후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 노엘은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것이 어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인지―.


 태양의 빛을 피해, 태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완전히 흰 커튼으로 가려진 창문. 그리고 그 때문인지 낮인데도 마치 낮같지 않은 어둡고 으슥한 분위기.

 “하아.”

 바깥의 시끌벅적한 소리, 아니면 오랫동안의 숙면 때문에 반사적으로 눈이 떠진 것인지, 노엘은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잠에서 덜 깨서인지 흐릿한 시야에 노엘은 눈을 비비고는 한 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시야가 밝아지자 그녀는 주변을 대충 훑어보았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낮인데도 어두운 분위기. 그리고 난생 처음 보는 낯익은 방과 낯익은 가구들. 자신이 늘 익숙하게 지내던 자신의 집의, 자신의 방이 아닌 다른 곳.

 “아. 그랬었지.”

 지난번 밤, 너무나도 짧았지만 모든 것을,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밤. 아버지와의 일, 그리고 카인과의 일.

 그 모든 것을, 잠에서 깨어난 노엘은 기억해내고는 약간은 서글프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윽고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뻗은 두 손을 바라보았다.

 헌터들로부터 사형명령을 듣고 위기에 처한 순간 나타난 카인. 그리고 그 손을 잡은 자신.

 “나 이제…… 인간이 아니야.”

 송곳니가 목을 꿰뚫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삶은 끝났다. 그리고 그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한 것은 자신의 의지.

 하지만 왠지 모르게 어둠속에, 인간이었으면 보이지 않았을, 느끼지 않았을 무언가에 노엘은 약간 주춤했다.

 “결심했으면서…….”

 그 망설임과 두려움을 이겨내려는 듯 노엘은 뻗은 두 손을 꽉 쥐었다.

 함께 하기로 결심했기에. 언제나 자신 앞에서 슬픈 표정을 짓다가도 자신이 의식하면 언제니 쓸쓸하게 미소지어보이던, 지독한 고독과 어둠속에 살아온 그를 위해.

 인간임을 포기하면서까지 그의 아픔과 고통을 달래주고 싶었기에.

 두 손을 꽉 쥐어 아픔을 느끼며 노엘은 눈을 감았다. 자신의 약한 마음을 다 잡기라도 하려는 듯이.

 “이건 내가 스스로 선택한 거야.”

 눈을 뜨고 침대 옆에 놓은 펜던트를 보고는 노엘은 미소 지었다. 어둠 속에서도 아름답게 빛나는 붉은 장미를 보고, 노엘은 펜던트를 따스하게 손으로 감싸고 끌어안았다.

 “윽.”

 하지만 별안간, 노엘은 손에서 펜던트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무언가 스위치가 켜진 것처럼 고통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깨져버릴 것만 같이 아파오는 머리, 타는 듯이 계속 되는 갈증, 심하게 고동치는 심장.

 멈출 줄 모르는 고통에 노엘은 고통스러워하며 침대에 쓰러졌다. 그녀는 머리를 감싸 쥐고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고통을 이겨내려는 듯이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하지만 고통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질 뿐이었다.

 “으윽.”

 고통에 노엘은 몸부림쳤다. 그렇게 극한의 한계까지 이른 몸을 이끌고 노엘은 억지로 타는 듯 한 목마름에, 놓인 물 컵의 물을 마시려고 했다.

 하지만 컵은 힘이 전혀 없는 노엘의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렇게 컵은 바닥에 떨어진 충격으로 분해되어 깨져버렸다.

 “아!”

 힘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컵을 향해 몸을 움직인 탓에 노엘은 시야가 흐릿해져가며 몸이 비틀거림을 느꼈다.

 그렇게 앞으로 몸이 쏠리며 쓰러지려는 순간, 노엘은 겨우 마지막 남은 힘으로 쓰려지려는 몸을 침대를 붙잡고 바닥에 손을 짚어 몸을 지탱했다. 하지만 몸이 쏠리는 순간, 처음 바닥에 닿았던 손은 컵이 깨진 파편에 닿고 말았다.

 피부 깊숙이 박힌 날카로운 파편. 그리고 파편이 박혀 바닥을 적시는 붉은 빛.

 “읏!”

 파편이 박힌 아픔에 노엘은 신음소리를 내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파편이 박힌 손을 보고 노엘은 상처를 어떻게 해보려 손을 들었다.

 유리 파편은 피부를 관통해 깊숙이 박혀있었다. 그걸 빼려면 꽤나 상반된 고통이 따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헌터로서 뱀파이어에게 당한 다친 동료들을 치료한 경험이 제법 있었기에 노엘은 이걸 그대로 두면 상처가 덧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노엘은 결국 파편을 빼내기로 하고 쭈그리고 앉아있는 상태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윽고 그렇게 그녀는 눈을 꼭 감은 채 파편을 한 손으로 쥔 채 서서히 힘을 주어서 파편을 빼나갔다.

 “헉……헉…….”

 파편을 빼면서 느낀 고통에 노엘은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고, 안 그래도 안 좋은 몸 상태로 인해 무리한 탓에 심하게 거친 숨을 내쉬었다.

 ‘이제 치료를…….’

 식은땀이 잦아들고 숨도 정상으로 돌아와 편히 쉬게 되고 노엘은 이제 치료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친 손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또다시 흐려지는 시야에 노엘은 머리를 감싸 쥐어야만 했다.

 “아, 정말 왜 이러는 거야?”

 계속 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에 노엘은 조금 짜증이 난 듯 투덜거렸다.

 거의 어릴 적을 제외하고는 아픈 적이 손을 꼽을 정도로 작았던 자신. 헌터로서 고된 훈련과정을 처음 겪고 나서 조금 아프고 난 후, 점점 몸이 훈련에 적응되어가고 그만큼 체력이 강해져서 아픈 적이 없었던 자신.

 ‘아, 좋은 향기.’

 머리를 감싸 쥐고 있다가 풍겨오는 향기로운 냄새에 노엘은 기분이 좋은 듯 미소를 지었다. 그 향기를 맡고나서 이상하리만치 흐려졌던 시야와 고통이 덜 해졌기 때문이었다.

 시야에 비치는 붉은 빛. 특유의 비릿한 냄새. 헌터라면 누구라도 항상 익숙한 냄새.

 ‘정신이 혼미해져가는 거 같아. 저항할 수가 없어.’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들지 않고 멍해져가는 정신에 노엘은 자신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심지어 바닥의 피로 몸을 움직이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노엘. 무슨 일……?”

 때마침 몽롱해져있는 노엘의 방에 카인이 피 냄새를 느끼고 들이닥쳤다. 하지만 카인은 노엘을 본 순간, 말문을 잊지 못했다.

 눈동자가 붉은 빛으로 서서히 짙게 변해가며 피로 물든 손바닥을 입가로 가져가고 있는 노엘. 그리고 입술 사이로 살짝 보이는 그것.

 “노엘. 정신 차려. 이성을 잃으면 안 돼.”

 이윽고 노엘에게로 다가가 몸을 숙이고는 카인은 노엘과 눈을 마주친 채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한동안 노엘은 여전히 손바닥을 입가로 가져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자 카인은 좀 힘을 주어 노엘의 손을 낚아챘다. 그리고 노엘을 달래려는 듯 자신에게로 손을 잡아끌어 안았다.

 “아? 카인? 네가 왜 여기에……?”

 겨우 정신이 든 노엘은 갑자기 자신을 안고 있는 카인에 놀랐다. 그렇게 시야가 뚜렷해지고 정신이 들자 노엘의 시야에 무언가가 보였다.

 “아악. 저……저건…… 나?”

 거울에 비친, 붉은 눈동자의―. 짙은 붉은 눈동자의, 헌터로서 사냥을 하던 때 봐오던 이성을 잃은 그들. 그것은 피를 탐하는, 밤의 일족의 모습.

 “진정해. 노엘.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도 잠시일 뿐일 테니까―.”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보이지 않게 몸으로 가리고는 카인은 노엘을 품에서 떼어놓았다. 그리고 담담한 표정으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혼혈, 상급의 뱀파이어가 인간을 물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고 있겠지?”

 “그 인간은……. 뱀파이어가 되고 말아. 그리고 결국 나중에는 이성을 잃고 피를 빠는 존재가…….”

 차분하게 자신을 진정시키고는 무언가를 말해주려는 카인의 눈길에 노엘은 자신이 아는 것을 대답했다. 자신을 언제나 바라보던 그 눈빛, 그 쓸쓸한 눈빛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난 그들과는 달라. 인간의 피가 섞인 그들과는 달리, 난 완전한 뱀파이어야. 그렇기 때문에 네가 피를 마신 인간은 이성을 상실하지도 않고, 뱀파이어가 되고 말지. 아마도 충돌하고 있을 거야. 인간의 피와 나로 인해 생긴 뱀파이어의 그 무엇이…….”

 “아…….”

 약간은 한숨 섞인 소리를 내고는 노엘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카인이 다시 얘기를 계속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지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언제나 자신을 봐오던 연한 붉은 빛의 아름다운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괜찮으니까……. 각오했잖아.”

 자연스럽게 미소를 짓도록 노력해서 미소를 짓고 아무렇지도 않은 채 노엘은 카인을 바라보았지만 카인은 여전히 슬픈 표정을, 쓸쓸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정말……너는……. 언제나 사실은 약해면서 네가 걱정하는 눈을 하면 웃어 보여. 조금은 솔직히 감정을 드러내도 좋을 텐데 말이야.”

 그런 노엘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 짓고는 카인은 다시 굳어진 표정으로 돌아가 말문을 열었다.

 “뱀파이어가 인간의 피를 마셨다 해도 바로 그 인간이 뱀파이어가 되진 않아. 아주 잠시 동안은 예전처럼 인간이랑 다를 바가 없어. 하지만 점점 충돌이 일어나면서 완전히 뱀파이어가 되어버리지. 그러는 시간동안은 몹시 극심한 고통과 갈증이 일어나. 인간이었던 모든 것을 뱀파이어의 무언가가 다 바꾸어 버리기 때문이야.”

 카인의 얘기에 노엘은 모든 것이 납득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모르던 사실. 자신이 전혀 뱀파이어에 대해 모르고 있던 사실의 일면을 본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말문을 이어가던 카인이 갑작스럽게 화제를 돌린 순간, 카인이 자신의 귀에 속삭이는 것에 노엘은 살짝 놀라고 말았다. 그대로 그녀는 표정이 굳어져버리고 말았다.

 「내 피를 마셔.」

 “괜찮으니까……. 그 갈증을 없애려면 방법은 이것밖에 없어.”

 정말로 괜찮다고 웃어 보이는 카인의 모습에 노엘은 진심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피를 마시라고 말하며 손톱으로 목에 상처를 깊게 내는 카인의 손을 붙잡았다.

 붉게 목을 타고 흐르는 피. 밤의 일족이라면 누구나 탐내는 최상급의 피.

 카인의 손을 붙잡은 노엘은 망설이지 않았다. 붉은 빛이 자신의 짙게 변해가는 붉은 눈동자에 비친 순간, 그녀는 카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약간은 망설이듯이 뜸을 들였다가 카인의 목덜미에 자신의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함께 하자. 길고 긴 어둠 속에서…….”

 자신의 피를 마시는 노엘을 안고는 카인은 말했다. 그러자 노엘은 그에 응답하기라도 하듯이 입가에 묻은 피를 손으로 훔치고는 카인의 손을 붙잡았다.

 ‘언제까지나 함께…….’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다고 해도 둘은 서로 지탱해가면서 함께 하기로 했다. 어린 시절, 붉은 장미 펜던트에 건 맹세를 다시 되새기며―.




◈◈◈




 영원히 아침이 오지 않는 곳. 영원한 어둠만이, 달빛만이 허락된 곳.

 모든 뱀파이어들의 ‘왕’이 다스리는 중심, 밤의 왕국의 수도 크로스.

 

 원래대로라면 햇볕이 내리쬐고 있을 태양의 시간. 하지만 그 곳, 크로스는 특유의 힘으로 모든 햇볕이 차단된 채 아직도 달빛만이 존재하는 밤보다는 어둡지는 않지만, 어둠만이 존재하는 흔히 그들이 얘기하는, 인간들이 사는 ‘밖’으로 일컬으면 저녁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크로스의 대로 한 복판, 한 눈에 보기에도 밤의 일족의 상층부인 존재가 타고 다닐 것만 같은 마차가 마부의 손놀림에 의해 말로 인해 거세게 달리고 있었다.

 보통 이 시간이면 어느 누구라도 바깥출입을 하지 않은 채 숙면을 취하는, 인간으로 따지면 밤과 같은 시간이었지만 마차는 다른 곳에서 성 쪽으로 신속히 향하고 있었다.

 “…….”

 하지만 밖에 마부의 손놀림으로 거세게 마차가 시끄럽게 달리는 와중에, 마차의 안은 유난히 침묵에 휩싸여있었다.

 마치 기분이 아주 불쾌한 듯 차갑고 싸늘한 표정을 한 채로 팔짱을 낀 카인. 그리고 그런 말없는 카인의 분위기에 짓눌린 듯 카인을 쳐다보고 있지만 말을 꺼내지 못하는 노엘.

 「노엘. 너도 알고 있겠지? 헌터들은 곧 우리가 있는 곳을 눈치 챌 거야. 난 몰라도, 그들 입장으로선 뱀파이어가 된 너를 이성을 상실했다는 명목을 붙여 살해하면 그만일 거야.

 그러니까―. 인간의 영역은 위험해. 조만간 이곳을 떠나 내가 있던 곳으로 가야돼.」

 겨우 몸을 추슬러서 거동을 불편함 없이 맘대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회복되었을 때, 조금은 망설이듯이 한 카인의 말.

 ‘하지만……. 카인이 있던 곳이 도대체 어디고, 여긴 어디지?’

 그러나 목적지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카인의 태도에 노엘은 심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상급 뱀파이어, 즉 헌터들이 그 이름을 듣고서 놀랄 정도의 뱀파이어 중에서도 상층부에 속한 것이 분명한 카인. 그리고 보통 상급 뱀파이어라 불리는 혼혈의 귀족이 아닌, 인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완전한 뱀파이어인 카인.

 하지만 이제 막 뱀파이어가 된 탓에다가, 헌터로서 뱀파이어 사회에 대한 깊은 지식이 필요 없었던 헌터였던 노엘은 ‘크로스’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카인.”

 어떻게든 분위기가 안 좋은 카인에게 말을 걸어보려고 노엘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미안, 노엘. 조금 후 도착하면 모든 것을 말해줄게.”

 팔짱을 끼었던 손으로 턱을 괴고는 카인은 싸늘한 태도로 노엘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그에 노엘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카인은 묘하게 신경이 날카로워있었다. 그토록 긴장하고 왠지 모르게 무언가를 걱정하는 느낌. 그런 느낌에 노엘은 긴장하고 말았다.

 “그곳은 말이지. 무서운 곳이야. 그러니까 절대 나한테서 떨어지지 마.”

 자신을 늘 바라보던 그 눈길이 아닌, 날카로운 얼음과 같이 차가운, 무서운 눈길. 그 어떤 감정도, 마음도 보이지 않는 눈길.

 ‘무서워. 평소와의 카인이 이토록 달라지면서까지 경계하는 곳. 분명히 좋은 곳은 아니야. 그토록 그곳에서 괴로워하면서 긴긴 어둠속에서 넌 무슨 생각을 하면서 버텨왔던 거야?’

 자신을 바라보면서도 간간히 보이던 쓸쓸한 표정과 그의 마음 속 상처, 그리고 고독이 가득한 모습. 그곳에서 카인이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일을 해왔는지 모르지만 노엘은 그의 차가운 눈길에서 왠지 모를 아픔이 전해져오는 것만 같아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더 이상 혼자 두지 않을게. 긴 어둠속에서 너와 함께 하기로 결심했으니까―.’

 자신이 한 결심을 다시 되새기며 노엘은 다시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마부의 도착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열린 마차 밖으로 나서는 카인을 따라 그녀, 노엘은 옷차림을 단정하게 한 후 따라나섰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채.




 ◈◈◈



 아직은 옅은 푸른빛이 자리 잡은 저녁의 하늘. 그리고 아직은 완전히 깔리지 않는 어둠덕분에 역시 흐릿하게 보이는 은빛의 보름달.

 더없이 아름답고 감탄을 자아내지만 아무런 인적도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정적만이 감도는 분위기. 완전한 어둠이 깔리지 않은 초저녁인데도 싸늘할 정도로 소름끼치는 냉기가 흐르는, 음습한 성.

 순백의 빛깔로 압도적으로 커다랗고 웅장한, 자세히 바라보면 아주 정교한 세공으로 지어진 것임을 알 수 있는 성.

 “카인 왕자님. 도착했습니다.”

 ‘끼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마차의 문을 열리며 마부 석에 앉아 말들을 다루며 이곳에 온 마부가 ‘복종’의 예로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예를 갖추고, 마차에서 내린 ‘주인’을 맞이했다.

 “수고했다.”

 감사의 의미가 담긴 말이었지만, 그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는 답례의 목소리. 낮고 깊은 그 목소리가 마차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뒤에 내릴 상대를 에스코트하기위해 손을 내민 순간.

 “돌아오심을 경하 드립니다.”

 일제히 옆으로 비켜 마부와 같은 ‘복종’의 예를 취하며, ‘주인’인 카인보다는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는 자들이 나섰다.

 카인은 그들을 감정 없는 눈길로 한 번 훑어본 후, 마차의 문에서 약간의 주춤거리며 나서는 노엘의 손을 잡아 안전하게 마차에서 내리도록 해주었다.

 “아.”

 마차에서 내리고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노엘은 무진장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리고 카인을 향한 그들의 모습을 보고 노엘은 조금 그들이 무서운 지 뒷걸음쳤다.

 “그만 예를 거두세요.”

 심장마저 얼어붙게 하는 목소리로 카인이 일어나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일제히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서 카인을 응시했다.

 이윽고 카인을 바라보던 그들은 카인의 옆에 있는 노엘을 보고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 특유의 무겁고 매서운 눈길로 의식하지 않는 척 말없이 바라보았다.

 “갑자기 성을 떠나셔서 얼마나 염려했는지 모릅니다. 다시 한 번 경하의 말씀 올리겠습니다.”

 노엘을 바라보던 그들은 선두에 선 한 남자가 카인에게 말을 건네자 일제히 시선을 카인에게로 집중했다.

 “크리티아경, 오랜만입니다. 이렇게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고맙다는 말을 전해겠습니다.”

 노엘이 전혀 보지 못한, 여전히 감정 없는 표정을 한 채로 카인은 말을 건넸다. 그리고 그런 카인의 뒤에서 노엘은 그런 분위기에 주춤한 채로 물끄러미 서있었다.

 “헌데, 뒤에 계신 여자 분은 어느 귀족의 영애인지요? 보아하니 저희와 같은 계급은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만…….”

 뭔가를 생각하며 경멸하는 눈으로 노엘을 살짝 쳐다보고는 귀족 크리티아가 카인을 향해 약간은 비꼬는 말투로 한 채 말하자, 카인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지며 찡그려졌다.

 “크리티아경. 조금은 무례하군요. 내 일행에 대해 함부로 짐작하고 말하다니―.”

 심기를 상했음을 바로 알 수 있는 카인의 표정에 그들과 카인 사이에 긴장감이 감도는 싸늘한 분위기가 돌았다. 카인은 바로 그를 어떻게 하려는 듯 미묘하게 손을 움직였다.

 “아, 난……, 아니 전 괜찮아요.”

 분위기에 존댓말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아 노엘은 평소에 하던 말투에서 어색하게 존댓말을 해버렸다. 그런 노엘을 카인은 약간 쓸쓸한 표정을 한 채 바라보고는 그들을 향해 다시 매서운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그렇게 그는 노엘의 손을 움켜쥐었다.

 “이번만큼은 처음이니 용납하도록 하겠다. 크리티아경. 그녀에 대한 모욕은 나에 대한 모욕임을 명심하도록. 그럼 난 이만 아버님을 알현하도록 하지.”

 노엘의 손을 잡아끌어 발걸음을 재촉하고는 카인은 그들을 향해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로 눈앞의 성으로 향했다. 노엘은 그런 그들이 조금 신경 쓰이는 듯 카인이 손을 잡아끌어 걷고 있는 상태에서도 그들을 주시했다.

 “카인왕자님의 앞날에 가호가 있기를…….”

 카인이 자리를 떠나 뒤돌아선 후, 크리티아를 비롯한 모든 귀족들은 다시 한 번 예를 갖춘 채 카인이 저 멀리 갈 때까지 예를 풀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카인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을 무렵. 각자 자신의 마차로 성을 떠나는 귀족들 사이로 단 한 명, 크리티아는 그 자리에서 카인이 떠난 자리를 향해 눈길을 준 채 바라보고 있었다.

 “꽤나 신경 쓰이는군. 그 계집.”

 품안의 파이프를 꺼내들고 뱀파이어가 가진 능력 중 하나로 손가락을 튕겨 불을 붙이고는 그는 파이프를 입가로 가져갔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크리티아는 노엘을 떠올리고는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자신의 일족 중에서도 가장 위, 가장 정점에 자리 잡은, 그것도 왕가인 왕자의 곁에 계급으로 따지면 결코 곁에 있을 수 없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피가 섞인, 귀족인 것 같았지만 뭔가 좀 더 기운이 미묘하게 다르더군. 그렇군, 그 계집은…….’

 노엘이 어떤 존재인지 그는 눈치 챈 듯 보였다. 아까의, 카인의 심기를 거스르면서까지 한 말도, 모든 것은 정확한 사실을 알기위해. 

 바람을 타고 흰 담배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성을 떠나는 귀족들 틈으로 크리티아는 자신의 마차로 걸음을 옮겼다.




◈◈◈



 

 미로같이 얽혀 똑같은 모양의, 눈에 착시가 일어날 정도로 똑같은 모양의 문이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아니, 눈에 착시가 일어나 비슷한 모양의 문을 똑같은 모양이라 착각하고 있는 줄도 모른다.

 누군가가 사라진다 해도, 그 어둠속으로 끌려들어간다 해도, 아무도 알 지 못한다.

 그리고, 과거 저편에 그렇게 여럿이 어둠속으로 사라지기도 했던 곳, ‘주군’을 암살하려고 했던 자라면 누구나 거쳐들었던 곳.

 이곳은 밤의 일족의 왕인 ‘주군’의 사적 공간, 밤의 미궁 속이다.

 


 

 보통 복도라면 밖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창문이 있기 마련, 하지만 이 미궁 속엔 창문도 아무 곳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어둠과, 끝없이 얽힌 미로와 착시를 일으킬 만한 비슷한 문들의 연속.

 과거 뱀파이어사회가 혼란할 무렵, ‘주군’이 손쉽게 암살되고 교체되어가던 시절. ‘주군’에 오른 누군가가 목숨을 부지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든 미궁.

 그리고 카인은 자칫 하나라도 발걸음을 잘 못하면 끝도 없이 계속되는 미로 속을, 미궁 속을 걷고 있었다.

 “정말 이 곳은 여전하군.”

 정말 깊은 어둠 속이지만, 밤의 일족인 그에게는 훤히 보이는 풍경들. 우습다는 듯이 희미하게 웃으며 혼잣말을 하고는 카인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정확히 일치되어가는 광경을 기억해나가며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이 미궁 속을 걸어 나갔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비슷비슷하게 얽혀있는 여러 갈래의 길들. 자신이 살아온 이 성의 추악한 어둠의 역사 중 하나가 있는 곳.

 비릿하면서도 어딘가에서 불쾌한 냄새가 나는 듯 하기도 했다. 자신의 착각인지, 아니면 그 특유의 소름끼치는 분위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멈칫―.

 걸음을 멈추지 않던 카인이 어느 문을 본 순간, 걸음을 멈춘 채 움찔했다. 그러자 그 바람에 그의 허리춤에 매달린 붉은 장미의 펜던트가 흔들렸다.

 그동안의 문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압도적으로 다른 크기의 문. 손잡이도 장식도 공을 들인 듯 정교하게 다듬어져있었다. 그리고 맨 끝에 자리 잡은 위치가 카인이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수도 ‘크로스’의 왕가의 성의 주인이자, 모든 밤의 일족의 주인이자 왕. 현 ‘주군’, 카르인 폰 크로스―.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그의 사적 공간.

 떨리는 두 손이 알 수 있듯이 카인은 그 손잡이를 당기기를 원치 않는 듯 보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는 손을 뻗어 손잡이를 잡았다.

 주인과 이 주위 풍경이 말해주듯이 손잡이는 무척 차가웠다. 허락되지 않는 자의 방문은 용납하지 않는 것 마냥.

 “오랜만에 뵙는 군요.”

 손잡이를 당기자마자 보이는 익숙한 존재의 모습에 카인은 간단하게 손을 가슴팍으로 뻗어 세우고는 약식 예를 갖추었다.

 “아버님.”

 좀 뜸을 들이고는 그는 예를 마치고 눈앞의 존재를 차가움과 경멸의 감정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6년만이로구나, 카인.”

 방안의 장식으로 있던 초의 촛불이 흔들리며, 낮고도 깊은 위엄을 드러내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둠 그 자체인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붉은 눈동자. 오랜 시간을 살아가는 밤의 일족의 수장 특유의 기백과 위압감. 카인을 닮은, 아니 카인이 닮은 존재.

 모든 뱀파이어들의 왕이자, 지배자. 누구도 그를 거스를 수는 없고 그의 명령 앞에선 그 누구도 무력해진다.

 ‘주군’ 카르인은 방 안에 붙인 소파에 앉고는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아들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그에 응답하듯이 카인은 아버지의 근처 소파에 앉아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얘기는 들었다. 네가 인간출신계집을 데리고 왔다고?”

 엄청난 기백의, 상대를 압도할 만큼 불쾌하다는 감정이 깊게 담긴 목소리가 카인에게 들려왔다. 하지만 그의 그런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했듯 카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계속 매섭게 경멸하는 눈을 한 채 그와 눈을 맞추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 계집 노엘 카를리아라고 했던가? 보고를 듣자하니 그 계집은 헌터라더군. 그런데 헌터 계집을 물고 피까지 나누어주었다고 하더군.”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헌터, 즉 인간을 하찮게 여기는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카인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꼈다. 자신도 의식할 수 있듯이 모욕의 감정에 짙게 물들어가는 붉은 눈동자를 아버지를 향해 향하고는 그는 겉으로 감정을 내보이지 않은 채로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버님께서 알고 계시다면야 제 권한으로 귀족의 지위를 내려도 되겠군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짧은 대화를 뒤로 하고 카인은 더 이상 용무는 남아있지 않듯이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문 쪽으로 향했다.

 “그렇다면 이곳으로 돌아온 의미는 알고 있겠군. 곧 연회가 있을 예정이다. 후계자가 될 준비와 함께 약혼 준비도 하도록 해라.”

 카인의 의견은 안중에도 없이 통보하는 식의, 아버지의 말에 카인은 발걸음을 멈춘 채 뒤돌아섰다. 그리고 아버지의 앞에서 비릿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더 이상 전 아버님의 뜻대로 하는 인형이 아닙니다. 후계자는 제가 필요로 하기에 받아들이겠지만 약혼은 아닙니다. 저에게 참견하지 말아주십시오. 어머님과 동생을 죽게 만든 그 더러운 손으로 그 아이에게 마저 손대면 용납하지 않습니다.”

 카인의 대답에 그는 조금은 놀란 듯 인상을 찡그리고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세게 닫혀져 가는 문 틈 사이로, 카인을 바라보며 그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알고 있었던 건가?”

 만족한다는 듯이 기쁨의 웃음을 띤 채 카르인은 창밖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나서 그렇게 그는 바라보았다. 하늘에 뜬 하나뿐인 빛인 은빛의 달을.





 탁―.

 

 탁자 위 펼쳐진 흰 색과 검은 색의 나열. 검은 색의 말과 흰 색의 말. 흰 색의 킹을 들어 앞에 놓인 검은 색의 비숍을 해치운 채 흰 색의 킹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체스(chess)―. 놓인 말들이 서로를 잡고 잡아먹히고 가 반복되는 게임. 게임은 상대방의 킹이 잡히기 전까지 끝나지 않는다.

 상대편에 아무도 없이 혼자 상대방의 몫까지 하면서 그는, 천사와 같이 흰 머리카락의 그는 체스판위를 바라보았다. 잔뜩 재미있다는 듯이 흥미 있다는 표정으로.

 “게임 스타트인가?”

 천진난만한 표정을 하다가 그는 체스 판의, 자기가 앉아있는 자리의 반대편, 즉 상대방 쪽을 바라보았다.

 검은 색의 우두머리, 킹―.

 “기분 나빠.”

 순간, 그의 표정이 종이를 뒤집듯이 찔러도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매서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한 순간,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불어왔는지 불어온 바람에 건너편의 검은 킹이 박살이 났다.

 “감사할게. 그 점에 대해서는―. 하지만 말이지. 내 것을 빼앗는 것은 용납하지 못 해.”

 박살나 가루만이 맴돌고 있는 검은 킹의 자리를 바라보며 그는 천진난만하면서 어딘가 무서움이 담긴 미소를 지어보이며 큰 소리로 웃어보였다.

 이윽고 그는 다시 한 번 손을 뻗어 상대편의, 검은 퀸을 자신에게로 가져왔다. 그러고 나서 그는 검은 퀸을 소중히 다루듯이 손으로 잡고는 장난을 치며 빙글빙글 돌렸다.

 “잠시만 거기 있어. 곧 원래자리로 되돌려 줄 테니까. 나의 퀸.”

 사랑스럽다는 듯이 퀸을 돌리는 것을 멈추고 그는 퀸에 입을 맞추었다.

 이윽고 다시 한 번 불어온 바람에,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그의 허리춤에 펜던트가 흔들렸다. 살아있는 것처럼 빛나는 붉은 장미의 펜던트가―.

 그의 시선은 하늘에 뜬 은색의 달로 향하고 있었다.



 「괜찮으니까……. 불안해할 거 없어.」


 그 한 마디가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얼마나 큰 용기를 주었는지―. 나의 손을 꼭 잡은 채 놓지 않는 그 두 손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카인.”

 처음 오는 곳, 낯선 방. 작은 목소리로 노엘은 카인을 나지막하게 불러보았다.

 들리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마도 큰 목소리로 외쳐도 그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곳은 그가 있는 곳과는 큰 거리를 두고 있는 곳이기에.

 그래도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처음 보는 낯선,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자신의 목을 물어뜯으려고 했던 상급 뱀파이어들이 존재하는 곳에 있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서.

 그녀는, 노엘은 무의식적으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성 안에서 바라본 광경, 그것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무척이나 자신과는 거리가 있는 풍경과 같았다.

 마치 다른 사람의 시야를 통해서 빌려 보는 듯한, 자신이 보는 것 같지 않는 풍경.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펼쳐지는 광경은, 자신이 인간이던 때 바라보던 도시의 풍경과 조금 다를 뿐인데. 그저 건물들이 조금 옛날과 같고, 그때와는 다른 존재들이 한산할 밤에 북적일 뿐인데.

 “나도 같은데―. 뭘 그리 겁내지?”

 창밖으로 보이는 그들과 같은 일족. 그런데 순간, 거리감을 느끼며 겁내는 자신.

 자신이 우습다는 듯 노엘은 순간, ‘피식’하며 웃고 말았다.

 “으음.”

 시선을 위로 향해 보이는 하늘. 밤이 되어 어두워진, 늘 바라보던 어두운 푸른빛의 하늘. 그리고 하늘에 뜬 은색의, 달.

 달은 변하지 않았다. 변할 수가 없는 게 당연할 것이다. 어느 곳에 떠있어도 달은 같으니까. 가끔씩 모양이 변해갈 뿐이다.

 “아름답다.”

 그런 은빛이, 신비할 정도로 묘하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노엘은 넋을 잃은 채 달을 계속 바라보았다.

 손에 쥔 붉은 장미 펜던트가 달빛을 받아 아름답게 반짝거리며 빛나는 줄도 모른 채.



◈◈◈




 

 ‘기록하는 자’, 그녀는 그 곳에 있었다. 여러 존재들의 생각이 교차하고 마음이 교차하는 그곳에. 그곳의 중심이 되는 축인, 수도 크로스의 성에.

 그녀는 뭔가 허무하다는 표정으로 달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냥 멍하게.

 “엇갈리는 생각, 교차하는 마음.”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눈을 감고는, ‘기록하는 자’는 중얼거렸다. 무언가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혼잣말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말을.

 “그들이 말하는 체스 판의 말은 전부 모였어. 그래, 그가 말한 대로 게임은 시작되었어.”

 앉아있었던 성의 지붕에서 일어나, 위태롭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녀는 진지하게 심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얕은 옷가지 하나를 입어 이가 덜덜덜 떨릴만한 바람을 맞으면서도.

 그녀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추위를 느끼지 못해서인지도 모른다. 아니, 아니면 이곳에 존재하면서도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라서 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단지 한 손에 낡은 노트 같은 것과 펜을 들고서 성의 지붕에 일어서서 주변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체스. 어느 쪽의 킹이 체크 메이트 당하지 않는 한 끝나지 않는 게임.”

 어느 마술사가 트릭을 사용해서 없던 물건을 감쪽같이 나타나게 만드는 것처럼 그녀의 아무것도 없던 손에서 체스 말이 하나 나타났다. 정확히는 검은 색의 퀸이.

 그녀는 여전히 멍한 듯, 아무런 느낌이 없는 눈동자로 검은 색의 퀸 말을 만지작만지작 거렸다.

 “서서히 움직여가던 수레바퀴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어. 이제 두 번 다시 멈출 수 없어. 운명의 끝에 이르기 전에는―.”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 그녀의 뇌리 속에만 들려오는 그 시작의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지다가 점점 큰 소리로 바뀌어갔다.

 “그래, 운명의 수레바퀴는 움직이기 시작했어.”

 계속해서 들려오는 소리. 급격하게 운명이 변화해감을 알리는 그 소리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그녀의, 만지작만지작 체스 말을 움직이던 손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응시하던 달을 뒤로 하고, 그녀는 체스 말로 시선을 옮겼다.

 짙게 칠해진 검은 색. 자신의 머리색과 같은 색. 저 밑의 어둠과도 같은 색.

 ‘기록하는 자’는 그것을 응시했다. 그렇게 그녀는 그것을 오랫동안 응시하다가 쥐고 있던 손을 폈다.

 아득히 먼 지면으로 검은 빛이 추락하고 있었다. 하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게 탓에 금세 시야에서 사라져 저 밑, 지면 속 어둠으로 사라져갔다. 그녀는 사라진 그것에 금방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지상에 뜬 달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자신과 같은 은색의 빛깔을 한 달빛의 빛을 받아 은색 눈을 빛내며.


 

Two Night 총 완결편입니다.

 

분량은 한글 20페이지분량입니다.

 

정말 이번 Two Night는 최단기간으로 완결났습니다.-_-

 

일명 그분, Feel께서 오셔서 그런지...

 

다음 편은 Three Night.움직이는 운명의 수레바퀴 ~가면 속 숨겨진 진의~ 입니다.

 

좀 제목이 많이 길죠...? 예고한대로 위기과정이고 새로운 인물도 한 4명은 등장할 겁니다.

 

카인과는 다른 타입의 완소남들 3분 대기하고 있으니 카인말고 다른 쪽으로 가셔도 좋아요.[...]

 

ps. 그럼 Three Night 들고 2~3주후에 찾아뵐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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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레코]은빛카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7.26 쿨럭...글씨는... 피의 노래라서 빨간 색...-_-;; 그런 이유도 있지만 빨간 색을 안 쓰면 Feel이 안 옵니다...<-응?
  • 작성자[부지기]네드발백작 | 작성시간 08.07.25 왠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작품이더라지요. 읽으면서 반사적으로 일어로 바꿔보는데 은근히 어울리기도 하네요. 요거 일어버전으로 녹음이나 해볼까. 건필하시와요~. 3번째 밤은 좀 더 빨리. (...)
  • 답댓글 작성자[레코]은빛카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7.26 저도 제 소설이 애니로 제작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하곤 했습니다. 사실 게임쪽도 괜찮을 거 같기도... 일어버전으로 녹음해주시면 감사해요...ㅠ
  • 작성자[산스]風〃엘 | 작성시간 08.07.25 휘유, 완소남들? 성격 보고 판단해야지. 후후후훗. 카린언니 소설은 묘사가 진짜진짜 마음에 듬 +_+ 언니가 몽환적인 소설 쓰면 정말 멋지겠다 +ㅁ+. Three Night 기대할게!
  • 답댓글 작성자[레코]은빛카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7.26 성격이라... 뭐, 각자의 취향이 있으니까... 몽환적인 소설은 나 잘 못 써...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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