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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oa]]눈(雪) - 1

작성자J.Roa|작성시간08.07.31|조회수54 목록 댓글 7

 1화부터 급조, 30분인가 40분 들였군요.

 지칩니다.

 여러모로 말이죠. 

 

 

 

 

 

 

 눈(雪)

- 1 -

국화

 

 

 

 

 

 마치 먹구름과 같은 칙칙한 회색의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상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복도의 끝에서 반대쪽 끝을 바라보면 마치 지평선을 바라보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 2층 복도에는 이 조각상 외에도 수많은 조각상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종류도 다양하다. 맹수, 식물, 인간, 극히 소수이기는 하지만 무구의 형을 가진 조각상도 존재한다.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아직 졸음이 가시지 않은 눈으로 앞에 서 있는 조각상을 바라보던 나는 이 조각상이 누군가를 본 떠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 인물이 누구인지를 밤마다 잠을 설치며 상상해 보았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남성의 모습을 한 조각상, 어릴 적에는 그 인물의 이름조차 몰랐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알고 있다. 아버지의 완고한 주장으로 어쩔 수 없이 받게 된 역사 수업에서 사진을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계二界에만 존재한다는 희귀한 성씨인 수(水)를 가진 남자,  수태진.

 일계一界에서도 상당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지만 그의 직업은 상위 계층의 것이 아닌 하위 계층의 것. 심지어 그의 직업은 간호사였고, 직업이 알려지자마자 그의 인지도는 단번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간간이 욕설이 담긴 우편물도 그의 집에 배송되기까지 할 정도였으니 그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충분히 생각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또 다시 역사 수업 때의 기억이 떠 올라 머리가 아파오는 것만 같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서둘러 1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깐깐한 노처녀의 노성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아무리 못해도 3옥타브는 충분히 넘겠지.

 "윽, 머리 아파……."

 다시금 지끈거리는 머리를 달래기 위해 이번에는 엄지로 관자놀이 쪽을 누르는 내 발걸음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ㅡ어머, 실례ㅡ 두통은 한 번 시작하면 도저히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가까스로 문 앞에 도착한 지금에 이르러서는 한 치의 거짓도 없이 기절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기절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 덕분에 나는 휘청거리는 몸을 가까스로 제어하면서 문고리를 돌려야하는 수고로운 절차를 거쳐야만 했다.

 "정말이지, 서비스 정신은 하나도 없다니까!"
 바로 문 너머에서 흔들의자에 앉은 채 비가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 '실컷 때려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어느 몹쓸 인간'의 모습을 떠 올리던 나는 문을 염과 동시에 왠지 모르게 주변이 어두워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실제로도 그랬다. 내 앞에 그 '실컷 때려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몹쓸 인간'이 서 있었으니 말이다.

 "……어라?"
 천천히 고개를 들어 상대의 얼굴이 있을 위치를 바라보니, 마치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 같은 청년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주 만약의 경우지만, 방금 전에 문을 열면서 했던 말을 이 청년이 들었다면 상당히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될 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그 곤란한 상황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난 오히려 그런 상황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이뤄지던 시선 교환의 끝은 청년의 한 마디로 인해서 끝나게 되었다.

 "앞으로는 불편하시지 않게 제가 직접 모시러 가도록 하죠."

 청년의 말에 왠지 모르게 더 불편해 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든 것은 순전히 내 착각일까.

 

 

 조심스럽게 엄지와 검지를 맞대어 잡은 뒤, 자그마한 입술을 열어 그 사이로 쿠키를 집어넣는다. 크지도, 그렇다고 너무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여서인지 딱히 먹는 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 포도가 들어간 쿠키인지 잡았던 두 손가락에서 은은한 포도향이 났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게 혀를 살짝 내밀어 손가락에 묻은 부스러기를 핥은 뒤,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또 다시 쿠키를 집었다.

 새로 집은 쿠키에 뭔가 불그스름한 물체가 있는 것이 보여 눈을 찌푸려 바라보니, 체리인지 석류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쿠키 곳곳에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상관 없겠지, 라고 생각하며 그 쿠키를 막 입에 넣으려던 찰나, 내 행동은 누군가에 의해 손목을 잡히는 것으로 간단히 제지당하고 말았다. 나는 움직임을 제지당하는 것과 동시에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 진짜! 나는 내 마음대로 쿠키도 못 먹어?"
 당연히 고개를 돌린 쪽에는 방금 전에 나를 맞이한ㅡ맞이했다기 보단 단순히 서 있었던 거지만ㅡ청년이 서 있었다. 청년은 엄청나게 불만을 표시하고 있을 내 얼굴을 보더니 순간 흠칫하는 듯 했지만, 그는 이내 작게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다 봤습니다, 아가씨. 쿠키를 집었던 손가락을 혀로 핥으시다니, 위생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잊으신 겁니까?"

 매 번 생각하는 거지만, 내 옆에 서 있는 이 청년은 아무래도 '위생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어떠한 환경에서 생기는 지 알고 있는 것인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하루 세 번, 아니 네 다섯 번씩 목욕재계를 하는 내 손이 그렇게 더러울 거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당사자의 기초 지식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내 손이 그렇게 더럽다는 거야? 응?"
 왠지 모르게 이 청년을 대할 때마다 절로 짜증이 솟구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필연일 것이다. 정성을 다해 나를 보필하려고 하는 것은 칭찬하다 못해 상이라도 주고 싶을 정도지만, 어째서인지 이런 때에는 기초 지식을 어느 상점에다가 내다 팔고 사탕과 바꿔먹은 것인지 보통 사람이라면 입 밖에 내지도 않을 터무니 없는 말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심지어 그렇게 하고도 자신이 잘못 됐다는 것은 전혀 생각치도 않으니 청년의 고용주라고 할 수 있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 아니고 무엇일까.

 이번에도 청년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혹시 모르죠."

 지금 이 '실컷 때려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몹쓸 인간'은 내 이마에 혈관 마크가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모르고 있을까?

 "아, 그러고보니 내일이 아가씨의 여……."

 아무래도 그런 사실을 모르는 것인지 청년은 갑자기 뭔가 생각 났다는 듯한 투로 말하기 시작했고, 아무 생각 없이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순간적으로 그의 손목을 반대쪽 손으로 낚아채며 외쳤다.

 "잠깐, 스톱! 멈춰!"
 "왜 그러시죠?"
 청년의 물음에도 나는 쉽사리 그의 물음에 대답 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말했다가는 '아, 그렇군요'라고 말한 뒤에, '그럼 곧장 상담을 시작하죠'라고 말할 것이 뻔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상담도 모자라 부모님에게까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아가씨께서……'라는 말을 시작으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꺼낼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럴싸한 대답을 찾아 그에게 말해야만 하는 의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이 나이 때의 소녀들이 가질 법한 심각한 고민을 네 입으로 직접 듣고 싶지는 않아."
 나를 바라보던 청년의 표정이 의미심장하게 변해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왠지 모르게 쿠키의 포도향이 그리워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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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하칸]미나에 | 작성시간 08.08.01 저 아가씨가 수신연 양 아닌가 추리해보긴 하지만;;
  • 작성자[부지기]네드발백작 | 작성시간 08.08.01 뭘까요, 저 고민은. 여…, 여…. 기대되는 내용이군요. 잘 봤습니다~.
  • 작성자エメロ-ド♡ | 작성시간 08.08.01 쿠, 쿠키를 집은 손을 핥으면 안되는거였습니까![도망]
  • 답댓글 작성자[하칸]미나에 | 작성시간 08.08.01 저 청년이 특이하다고밖에 생각이 안 되는… 특이하진 않지만, 결벽증이 있는지 의심이 들긴 하네요[어이]
  • 답댓글 작성자[부지기]네드발백작 | 작성시간 08.08.01 결벽증이 빙고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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