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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oa]]눈(雪) - 2

작성자J.Roa|작성시간08.08.08|조회수24 목록 댓글 4

짧막해서 문제, 돌아오니 오히려 더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다시 돌아가는 것이 좋을지도.

 

 

 

 

 

 내심 잘 얼버무렸다고 생각했던 말에 이 '몹쓸 청년'ㅡ너무 길어서 이렇게 부르기로 결정했다ㅡ의 호기심인지 무언지 모를 이상한 것이 상당히 자극을 받은 것인지 장장 한 시간 이십 분 동안 '자고로 아가씨 때의 소녀들은…'이라는 말을 서두로 시작 된 고민 상담을 받게 되었던 나는 지금에 이르러서야 그 지옥 같았던 상담에서 해방되어 꿀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갈증이 나실 터이니 차를 준비하죠'라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갔던 그가 차 대신 커피가 담긴 유리병을 들고 나타나서는 차가 다 떨어졌다느니 하는 말을 듣고 내가 왼손에 들고 있던 역사 교과서를 그의 이마를 향해 던졌던 일을 빼면 정말 꿀 같은 휴식일 것이다.

 설교를 들을 때의 기억을 떠 올리는 것과 동시에 인상을 찌푸리며 청년이 가져 온 쿠키들 중 한 개를 막 입에 넣으려던 나는 문득 설교 전에 그가 꺼내려던 말이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고, 적절히 데워진 것처럼 보이는 찻주전자를 찻잔 가까이 가져가던 청년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까 하려던 말이 뭐야?"

 내 질문에 막 찻잔에 주전자를 대려던 청년은 내 말에 잠깐 멈칫했지만, 이내 아무런 대답 없이 묵묵히 차를 따르기 시작했다.

 쪼르르륵…

 찻주전자의 주둥이에서 연녹색을 띈 액체가 찻잔에 따라지는 것과 함께 상쾌한 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얼마 전에 아버지께 간절히 부탁ㅡ오히려 떼쓰기에 가까웠다ㅡ해서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상품(上品)의 녹차, 이계(二界)에서 상당한 고급 식품이자 희귀품으로 분류되는 푸딩과 비슷한 가격의 물품이니만큼 구하는 것은 그리 순탄치는 않았지만 끈기를 가지고 무려 한 달 동안 기다린 끝에 저 녹차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여하튼 이러저러한 일들을 겪으며 얻어 낸 녹차의 향을 느끼며 쿠키를 입에 넣고 천천히 녹여 먹다 보니 연꽃이 그려진 찻잔에 내가 선호하는 양만큼의 녹차가 채워져 있었다. 자고로 녹차는 커피처럼 찻잔의 대부분을 채우는 것이 아닌 다색주(多色酒)처럼 적은 양을 잔에 따라 마시는 것이 녹차를 제대로 음미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잔에 따라진 녹차의 양은 정말 '홀짝'이기만 해도 전부 마셔버릴 정도의 양이었다.

 잔의 손잡이를 잡기 위해 쿠키 가루가 묻은 검지를 살짝 핥다가 문득 청년이 서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예상대로 미간을 살풋 찌푸리고 있는 청년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내 시선이 닿자마자 청년은 주저앉듯이 무릎을 꿇으며 애원했다.

 "아가씨, 쿠키를 집은 손을 핥으시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씀 드렸잖습니까!"

 테이블 위에 올려진 큰 꽃잎을 가진 흰색 꽃을 보며 녹차를 '음미'하는 것도 그른 것 같았다. 무언가 대답을 해 주지 않으면 절대 일어서지 않을 것 같은 예감에 어쩔 수 없이 왼손을 들어올렸다.
 "정중히 거절할게."
 "어째서!"

 방금 했던 행동을 한 번만 더 했다간 정말 쓰러질 것만 같은 청년의 창백한 얼굴색과 그의 이마에 난 진한 타격(?)의 흔적을 보자니 잠깐 불쌍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쿠키를 집었던 손을 핥으면 안 된다'라는 논리를 가지고 있는 이에게 따스하게 대해 줄 수 있을 만큼의 성자가 아니며, 그런 연유로 지금 내 표정은 지나가던 사람이 봐도 '저 사람 화났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찌푸려지고 있었다. 청년은 이런 내 표정을 못 본 건지, 아니면 보고도 모른 척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계속해서 '왜?'라고 묻는 듯한 표정을 하며 나를 바라봤다.

 그 모습에 한 숨이 새어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한창 아침 햇살이 들어오고 있는 테라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일 년 중 무려 반 년 넘게 해가 뜨는 지역이기 때문인지 어린 시절에 보았던 우중충한 먹구름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 올라 무심코 중얼거렸다.

 "역시 정원에 가서 검진부터 받고 오는 게 좋겠어."

 그 말을 들은 것인지ㅡ못 들을 리도 없지만ㅡ청년이 바닥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고, 뒤이어 당황한 듯한 그의 목소리가 가세했다.

 "편찮은 데라도 있으신 겁니까? 지금 의사를……."

 정말이지 충성심 하나는 전 세계를 찾아봐도 견 줄 이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다. 다만 그 충성심이 너무 과한 것이 문제라고 해야 할까.

 "아니, 너."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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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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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하칸]미나에 | 작성시간 08.08.08 잘 읽었습니다. 이제서야 읽었네요; 흐음. 저 청년도 그렇고 1인칭 시점의 저 소녀도 그렇고 실제로 저와 보면 정말 재밌을 듯.
  • 작성자[산스]風〃엘 | 작성시간 08.08.09 청년이 불쌍하군요.
  • 작성자エメロ-ド♡ | 작성시간 08.08.09 왜자꾸 쿠키를 집은 손을 핥으면 안된데 ㅠ.ㅠ...
  • 작성자[부지기]네드발백작 | 작성시간 08.08.13 풉. 저 청년 왠지 동네북 내지 장난감이 될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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