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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oa]]눈(雪) - 4

작성자J.Roa|작성시간08.08.18|조회수38 목록 댓글 4

 1) 초반부 매듭 풀기에 성공. 자축.

 2) 나흘 간 남부 순회. 피로.

 3) 어쨌든 복귀.

 

 

 

 잠에서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 온 것은 등에 커다란 날개가 돋아나 있는 사람이 날갯짓을 하고 있는 그림이었다. 회색 파스텔로 칠한 것 같은 방 천장에 그려진 그 그림은 아버지의 작품이다. 잔상이 다수 그려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아버지께선 그림 실력이 그리 뛰어나시지는 않지만, 색감 하나는 홀릴 것만 같이 아름다워서 나는 자주 그림을 그려 달라는 부탁을 드리곤 한다.

 이 작품도 아버지께서 그려 주신 것이다. 무슨 연유인지 아버지께선 이 작품을 구태여 침대 바로 위의 천장에 그리셨다. 그 이유가 궁금해 한 주에 두 번씩은 아버지께 여쭤 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심심해서'가 전부였다.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며 그림을 바라보고 있을 즈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일어나셨어요?"

 목소리가 평범한 것으로 보아 무조건 세익 언니는 아니다. 내가 아는 사람과 약간 비슷한 감도 있었지만 미묘하게 어긋나 그 사람도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 사람은 내게 '일어나셨어요?'라는 말을 할 정도로 선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문이 있을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예상대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여성이 찻잔과 찻주전자가 들어있을 갈색 바구니ㅡ다른 곳에서는 카트(Cart)나 쟁반을 쓰지만 우리 집은 조금 특이하다ㅡ를 든 채 문 앞에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성은 신입이어선지, 아니면 고용주의 딸 앞이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긴장한 표정이었다. 뭐랄까, 왠지 모르게 불쌍하게 보인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 같았다.

 그 때문인지, 내 입에서는 여성이 예상하고 있을 질문ㅡ'신입?'이라던가ㅡ이 아닌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사람들이랑 자주 안 만나죠?"

 "네?"
 상대가 예상 외의 질문을 해 오자 여성은 아주 잠깐동안 멍하게 있다 반문했다. 이 여자, 단순하다.

 "아니 그게, 저기……."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손을 움직여 하는 버릇이 있는 것인지 여성의 팔이 움찔거렸다. 평소 버릇대로 행동하고는 싶지만 그렇게 했다간 자신이 들고 있는 바구니가 떨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에 대한 평가가 나빠진다ㅡ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구해줘야 할까.

 "음, 으음……."

 이제는 온 몸을 움찔거리고 있다. 다행히도 어디 소년 만화나 그런 것들에서 나오는 여성들처럼 눈망울이 촉촉해져 사뭇 남성들의 애간장을 녹일 것 같은 상황은 연출하지 않았다. 뭐, 그렇다 하더라도 어차피 나는 여성이기 때문에 별로 상관 없지만.

 분명 찻주전자 안에 들어있을 내 녹차는 차갑게 식어 있을 것이다. 가끔씩 녹차를 차갑게 해서 마시기도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마시게 되는 것은 절대 사양이다. 자연적으로 식게 되면 차갑기는커녕 미지근해진다. 그런 온도라면 마실 바에야 차라리 다시 데우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다.

 무엇보다 차와 곁들일 쿠키도 없는 상황이니 전력을 다해 거절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보다,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대로 쓰러질 것 같은 여성을 진정시켜야 할 것만 같았다. 몸을 일으키자 사르륵하는 소리가 나면서 하늘색 이불이 흘러내렸다. 아직 졸음이 채 가시지 않은 왼쪽 눈을 비비자 마치 포도알을 만지는 것 같은 기분 좋은 감촉이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하면 종종 나를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바라본다. 자기 눈에 대한 감상평이 어째서 정신병 환자로 취급 당해야 할 이유가 되는 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약간 고개를 흔들어 잡생각을 떨쳐내고, 아직도 움찔거리고 있는 여성을 불렀다.

 "저기요."

 "네?"
 부름과 동시에 여성은 움찔거리는 것을 멈췄다. 그것이 꽤나 신기해서 '장난 좀 쳐 볼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장난보다 우선 되는 건이 있기 때문에 아쉽게도 생각을 접어야 했다.

 "세익 언니를 불러 주세요. 할 말이 있어요."

 내 말에 여성의 시선이 바구니를 향했다.
 "녹차는……."

 "식은 건 필요 없어요."

 "그래도 한 잔 정도는 드셔야……."

 계속해서 내게 식은 녹차를 마시게 하려는 여성의 태도에 어이가 없어졌다. 

 이곳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식은 음식이나 음료는 절대 입에 대지 않는다. 최고 온도가 10도를 넘지 못하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항상 몸을 따뜻하게 해야만 서리병ㅡ희귀 질병 중 하나, 걸리게 되면 온 몸에 서리가 생기면서 일주일을 주기로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병이다ㅡ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건강 관리를 위해서 어쩌다 한 번씩은 찬 것을 섭취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극히 드문 경우다. 그 때문에 이곳에서는 상대에게 찬 음식이나 찬 음료를 주는 것은 상대를 적대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상당히 격한 인식이지만 멀쩡하던 사람이 얼음 하나를 먹은 다음 날에 서리병에 걸린 사례도 있으니, 나는 어찌보면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어제 자서 오늘 일어난 사람에게 기어이 찬 음식을 먹이려고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아프지도 않은 사람한테 찬 음식을 먹이는 게 상당히 무례한 행동인 건 아시겠죠. 녹차는 도로 가져가시고, 세익 언니를 부르세요."
 "하지만, 아가씨……."

 정말이지, 끈질긴 사람이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이쯤에서 약간의 협박을 가해야 할 것 같았다.

 "더 이상 말하면 집에서 내 쫓겠어요. 돌아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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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부지기]네드발백작 | 작성시간 08.08.18 불쌍한 신입. 주인을 잘못 만나다니.
  • 작성자エメロ-ド♡ | 작성시간 08.08.19 뭐, 뭥미 식은음식(.............)
  • 작성자[하칸]미나에 | 작성시간 08.08.19 이야. 신입이라더니 다른 곳에서 오기라도 한 걸까나.
  • 작성자[산스]風〃엘 | 작성시간 08.08.19 뭐, 저 녹차에는 독이라도 타 있나? 억지로 먹이려고 하게.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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