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에메로드]]나르실리온-태양과달의노래#117

작성자エメロ-ド♡|작성시간08.09.23|조회수101 목록 댓글 12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무튼, 카인의 관을 이곳에 둘 순 없어. 저놈들이 또 공격해올 수도 있다고."


이안의 말에 나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의 말이 맞다. 특히 아이린, 그녀는 반드시 다시 올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신… 라곤도 원한다고 했어. 물론 지금 상황에서 라곤이 직접 올 확률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파앗]


"로실리아님, 루이엘님."


그런데 그 때 우리 앞에 워프의 빛이 생기더니 웬 녹색의 로브를 걸친 남자가 나타나 나와 루이엘에게 고개를 숙였고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구세요?"

"공작각하께서 두 분을 모셔오라 명령하셨습니다. 아, 동료 분들께서도 오셔도 된다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지금 성에 계시나요?"

"예."


남자의 말에 나는 모두의 의사를 묻기 위해 고개를 돌렸고 모두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카인의 관을 슬쩍 바라보던 루이엘이 손바닥을 마주치며 나에게 말했다.


"언니, 카인님의 관을 가져가요. 거기라면 핵심부일 테니 제일 안전할 거 에요."

"오, 그거 좋은 생각이야! 여기에 이렇게 두고 갈 순 없으니까."

"그럼, 저의 주변으로 모여 주십시오. 워프를 사용하겠습니다."

"…… 이렇게 많은 인원은 인간의 몸으론 무리가 갈 겁니다. 도와드리지요. 마력증폭."


그러자 그 남자에게 다가간 아리스는 그 남자의 마력을 증폭시켜주었고 그는 기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 전공이 워프 마법이긴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인원수론 무리가 가긴 가죠. 감사합니다! 워프!"


[파앗]


이젠 많이 익숙해져버린 흰 워프의 빛이 모두를 휘감고, 우리는 순식간에 아버지가 계신 성으로 이동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성 안의 대 회의실 문 앞으로 이동되었다. 여기 예전에 아이린에게 안내 받은 적이 있던 것 같다. 큰 여닫이문으로 고풍스런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는데다 테두리와 문고리가 금장식으로 되어 있어 무척 고급스럽고 뭔가 웅장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똑똑


"명령하신 분들을 모시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이동된 직후 워프를 사용한 남자는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 있던, 윈더프의 문양이 새겨진 흰 전신갑주를 입은 아스트반 정예 병사가 문을 열어준 뒤 우리에게 목례했고 나는 뭔가 떨리는 마음으로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회의실 안은 꽤나 널찍한 공간으로 가운데에 원탁의 큰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방의 모서리마다 아까 우리에게 문을 열어줬던 자와 같은 갑옷을 입은 아스트반 정예병이 은으로 만들어진 창을 들고 호위하듯, 마치 조각상처럼 서 있었다. 그런데 나는 원탁의 테이블 가운데에 앉은, 마치 보좌와 흡사한 큰 의자에 앉아 있던 익숙한 금발머리의 남자가 보이자 눈을 휘둥그레 떴고 그 역시 나를 보더니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오오, 로실리아양~ 오랜만이야! 와, 자네들도 있었구먼! 다들 오랜만이라고~!"

"아, 아벨시아씨? 아, 아니, 오랜만에 뵙습니다, 폐하!"


갑작스런 재회에 반가움과 당혹스러움이 교차했다.


"오, 저희 부족한 자녀와 아시는 사이셨습니까? 영광입니다."

"저 아이들에겐 신세를 많이 졌지요. 아마 저 아이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르오."


아벨시아와 나의 인사말을 듣던, 그 왼쪽의- 아벨시아의 것보단 작지만 어쨌든 훌륭한 의자에 앉아 있던 아버지가 아벨시아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원탁을 둘러싸고 앉아 있는 건 은발의 카멜라 공작, 단정한 붉은 머리카락의- 회의실 안의 병사들의 것 보다 훨씬 화려한 갑주를 입고 있는 디가르트 공작, 예전에 세뉴렌과 만났었던 금발의 폰 드리엘 공작- 즉 아스트반에서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고 있는 4대 공작이었다. 게다가 가운데엔 큰 대륙 지도가 펼쳐져 있다. 그렇다는 건 역시 키메라 대책 회의를 하고 있었던 중이었을까.

아무튼 나를 포함한 모두는 공작들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여보였다.


"로실리아 드 윈더프입니다."

"루이엘 드 윈더프입니다."

"케인 블랙입니다."

"레아 쉬엔느입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전 서열 4위 「화신의 계승자 이안」이라고 한다!"

"전 서열 3위 「저주의 미소자 아리스」입니다."


조금 껄렁껄렁한 이안은 제외하고- 랄까? 그리고 공작들의 시선은 아직 소개를 하지 않은 세릴에게로 쏠렸다. 말은 안 하지만 굉장히 경계하는 눈빛이다. 아마 그녀의 등 뒤에 달린 커다란 흑색의 날개 때문이겠지. 세릴은 잠시 머뭇거리는 듯 했으나 곧 또렷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마스터, 세릴입니다."

"마스터?!"


예상했던 대로 우리와 아벨시아를 제외한 모두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당연한 것이다. 그녀 이전의 마스터는 악명이 높았으니까. 나는 앞으로 나서서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릴은 아군입니다. 전대 마스터와는 다릅니다."

"그렇소. 세릴 양은 내가 보장하지."


나의 말에 아벨시아까지 세릴을 두둔하며 말했다. 그러자 공작들은 아직 불안하단 표정이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세릴은 자신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옛날 인간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절대 인간에게 해가 되진 않을 겁니다."

"마스터께서 같은 편이라니, 상당히 든든하군요. 자, 모두 어서 자리에 앉으십시오. 계속 아군을 세워둘 순 없는 일이니."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나 멋진 아버지다. 아버지의 말에 공작들은 모두 수긍하듯 굳혔던 얼굴을 펴며 고개를 끄덕였고 세릴 역시 마음이 놓였는지 밝은 미소를 지으며 정중히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러자 나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아리스의 피에로 인형이 들고 있던 카인의 관을 보이며 말했다.


"카인님의 관이에요. 이곳에서 보호할 수 있을까요?"

"무슨 일이 있었어?"

"네. 아이린이 그를 키메라로 만들려고 왔었어요. 간신히 지켰지만… 분명 다시 올 거 에요. 뭐 이곳에 있다면 안 올 수도 있지만. 만약 그 여자가 카인님의 시신으로 키메라를 만든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거 에요."

"음, 알았다. 맡겨 두거라."

"감사합니다!"


다행이다. 지금 이곳은 키메라에게 방어하기 위해 대신전에서 강력한 결계를 치고 있기 때문에 아이린은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신성력의 수준은 대신관의 신성력이다. 아무튼 우리는 각자 빈자리에 앉았다. 옛날 페릴 때가 기억난다. 전쟁 회의를 위해 이런 비스무리한 곳에서 자주 회의를 열었었는데. 그런데 왜 여왕이 보이질 않는 거지? 보통 이럴 땐 여왕이 있는 게 아닌가? 오히려 분위기상 아버지가 왕 같은데? 그런데 잠자코 있던 케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퓨어스의 폐하께서 왜 이곳에……?"


잠자코 있던 케인의 물음에 아벨시아는 웃으며 말했다.


"아스트반에 지원을 병력을 데리고 왔지. 모두 건강해 보이니 다행이구나."


아벨시아도 예전 그대로다. 나는 옛날로 돌아온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슈렌도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그는 아이린이 데려갔었지… 지금 잘 있을까? 너무 걱정된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을 누르고 회의에 임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지금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키메라의 수가 100마리 정도지만 그 한 마리, 한 마리의 힘이 너무나도 강해서 엄청 애를 먹고 있지. '마법사의 탑'의 마법사 역시 동원되고 있다."


나의 말에 아버지가 팔짱을 끼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럼 아까 키메라에 대항하던 그 마력이 마법사의 탑 마법사였던 걸까? 하긴 우리를 워프로 데려온 자도 아마 마법사의 탑의 마법사였을 것이다. 그 만큼 마법사의 탑에 가입하기 위한 조건은 까다로우니까. 아무튼 막막하군, 키메라 한 마리, 한 마리의 힘이 너무나도 강한데 100마리 정도나 된다니.


"대체 그 키메라가 어디에서 나오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대륙의 북동쪽이란 건 알겠는데. 근원지를 막아버릴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대장군, 디가르트 공작이 팔짱을 끼며 한숨을 내 쉬었다. 그러자 나는 일어서 내 앞에 놓여있던 얇고 긴 봉을 들고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실례합니다만, 한 말씀 올려도 괜찮겠습니까?"

"예, 말씀하십시오."

"키메라를 만든 라곤의 본거지는 여기, 라밀의 필리오네 산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부터 직접 키메라를 내어 퓨어스와 아스트반을 공격했더라면 분명 퓨어스엔 세스트빌의 병력이, 아스트반엔 프벨린의 병력이, 그리고 그 북쪽에 있는 브루누는 퓨어스와 아스트반 둘 다에 지원병을 보냈을 겁니다. 본거지가 라밀이란 것이 드러나는 건 순식간, 라밀은 바로 고립될 겁니다. 그렇기에 라곤은 아마 워프 게이트를 사용하여 북동쪽에서부터 차례대로 공격하는 것을 선택했을 겁니다. 그렇게 한다면 모두가 근원지를 알아채지 못해서 당황해 할 테니까요. 애초에, 인간 모습의 키메라는 그 모습 자체가 당황스럽지만."

"호오……."

"그리고 굳이 북서쪽, 남서쪽, 남동쪽이 아닌 북동쪽부터 움직인 것은 병력이 가장 우수하다는 프벨린과 브루누를 먼저 무너뜨리기 위해서 일겁니다. 그들이 무너진다면 아스트반이나 퓨어스, 세스트빌은 솔직히 오래 버티기 힘들 테니. 그리고 북동쪽에서부터 나오던 키메라가 지금 아스트반에 100마리 정도나 와 있다는 것은 프벨린을 고립시키기 위해서일 겁니다. 아스트반에도 병력이 간다면 분명 아스트반은 퓨어스나 세스트빌의 도움을 받긴 하겠지만 프벨린으로 가는 길이 막혀버리죠. 프벨린이 무너지면 다음은 아스트반과 퓨어스입니다. 서둘러서 라곤이 있는 이곳, 필리오네 산을 공격해야 합니다."

"영애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아스트반은 키메라의 공격을 막는 것도 겨우 인지라 필리오네 산, 적의 근거지로 병력을 보내는 것은 무리입니다."


폰 드리엘 공작의 예상했던 말에 나는 전혀 당황함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수 정예가 가면 될 겁니다."

"누가……?"

"저와 루이엘, 케인이 가겠습니다."

"여, 영애들께서 직접 말씀이십니까?!"


아버지, 아벨시아를 포함한 모두의 눈이 커졌다. 그러자 나는 일어선 채로 가만히 룬-크리스를 봉인해둔 목걸이에 손을 올려 마력을 주입하여 검으로 바꾸었다. 희고 가는 긴 검, 룬-크리스. 너무나도 흰 몸통이라 직접 빛이 나는 건 아니지만 그 검을 뽑고 있는 것만으로도 주위가 밝아지는 기분이다.


"그 검은……?"

"신검 룬-크리스입니다. 과거 페릴은, 아니, 저는 이 검을 들고 악마족을 몰아내고 인간족을 구원했습니다. 페릴은 저의 전생입니다. 환생한 제게 이 검이 또다시 주워졌습니다. 루이엘, 너도 그 무기를 보여."

"네."


나의 말에 루이엘 역시 흑수정으로 변해있던 룬-세피라를 무기로 바꾸었고 순식간에 룬-크리스의 흰 몸통과 상반되는 검은 몸통을 가진, 핏빛의 날카로운 초승달 모양의 창날을 의 룬-세피라가 루이엘의 손에 들리자 공작들은 서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신창 룬-세피라입니다. 과거 바바라가 사용했던 무기죠. 저희는 이 무기를 저희가 다시 갖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저희가 필리오네 산으로 가서 직접 라곤을 베겠습니다."

"하, 하지만 라곤을 너희끼리만 상대하는 것은 무리 아닐까?"


과거 라곤에게 지배당했던 적이 있던 아벨시아가 조심스레 묻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요. 머지않아 라곤이 키메라의 수를 더욱 증가시킬 겁니다. 그랬다간 끝장이죠. 게다가 소수의 사람만 움직인다면 라곤이 눈치를 못 채도록 조용히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룬-크리스와 룬-세피라는 각자 빛의 신 샤이로렌스, 어둠의 신 아르케렌스가 만든 신물 중에서도 최고의 레벨을 자랑하는 무기입니다. 게다가- 케인이 갖고 있는 이스피리아는 겨울의 여신 나닷신리님과 최강의 악마왕 카엔트가 만든 무기고요. 분명히 라곤을 물리칠 수 있을 겁니다."

"흠, 그렇구나……."


나의 말에 아벨시아는 걱정스러워 보였으나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갑자기 이안이 벌떡 일어나더니 나에게 소리쳤다.


"로실리아! 너 지금 나를 두고 가겠단 거야~? 이 이안님의 실력을 뭐로 보고! 아, 물론 라곤을 상대하진 못하겠지만 거기 가기까지의 호위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알았어? 나를 데려가야지!"

"어, 어라, 이안님. 하지만 거기가면 위험하잖아요."

"아따, 위험은 무슨 위험! 나는 라크스족의 긍지 높은 전사라고! 싸우는 게 내 평생의 낙인데 그 정도의 위험은 기본이지. 자아, 그럼 데려 가는 거지?"

"네, 네."


이안의 강경한 말에 나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의 옆에 서 있던 레아 역시 벌떡 일어서며 미소를 지었다.


"로아는 싸워야 하니까 회복은 전부 내 담당이지? 로아나 루이엘씨, 케인씨가 다치면 내가 바로 다 치료해줄게! 맡겨만 둬!"

"어억, 레아도? 하, 하지만 위험하다니까……."

"위험하니깐 내가 가야지! 내가 다 치료해준다니까?"

"그, 그래."


정말, 못 말리는 커플이라니까.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가는 사람은 나, 루이엘, 케인, 이안, 레아―.


"못 말리는 분들이군요. 그럼, 로실리아씨. 제 말은 당연히 아시겠죠."

"에엑, 아리스씨도?!"

"절대 짐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아리스가 예의 그 소름끼칠 정도로 오싹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마치 '안 데려가면 후회할 겁니다.' 라고 강하게 말하고 있는 듯한 아리스의 표정을 보며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네, 잘 부탁해요…. 아, 세릴, 세릴!"

"응? 아, 나도 갈 거야! 케인 오빠도, 모두도 가잖아?"

"아니, 아니! 세릴, 이렇게 다 몰려가면 안 돼. 세릴이 제-일 늦게 말했으니깐 선착순으로 세릴은 여기 남아 줘~!"

"에엑?!"


나의 말에 세릴이 당황스럽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물론, 가능하다면 세릴도 데려가고 싶다. 하지만 세릴이 여기 남아서 키메라 소탕을 돕는다면 그게 훨씬 더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여기에 있는 다면 아무리 아이린이라도 함부로 공격해 오진 못할 것이다.


"세릴은 여기에 남아서 키메라를 물리치는 걸 도와줘. 아벨시아씨가 오셨으니 든든하긴 하지만 그래도 세릴이 남는 편이 나을 것 같아. 그리고… 카인님을 잘 부탁해."

"아…. 응, 알았어. 모두가 돌아오기 전까지 키메라들을 모두 쓸어낼게. 꼭 지킬게."

"응, 고마워!"


나의 마음을 알아차린 세릴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나는 세릴의 마음에 감사하며 미소를 지었다. 가지 못하게 잡아서 미안한 감정도 없잖아 있지만 이곳에 남을 적임자로서 그녀가 가장 최상일 것 같다.


[똑똑]


그런데 잠시 후, 노크 소리가 들려오자 문 쪽에 서 있던 병사가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문을 열어주었고 들어온 사람을 보고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우아하고 기품 있는 밝은 커피색 머리카락, 깊고도 잔잔한 에메랄드 눈동자- 세뉴렌이었다. 에, 지금 에카는 아마테라스에서 키메라의 습격을 막고 있을 텐데? 그렇다는 건 세뉴렌은 에카가 아니란 건가?


"?"


순간, 아주 눈 깜짝할 새였지만, 그가 나를 보고 피식 웃은 것 같았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데… 내가 잘못 본 걸까? 뭔가 기분이 찜찜한데.


"오랜만에 뵙습니다, 영애님."

"…… 오랜만이에요, 백작님."


세뉴렌이 정중히 고개를 숙여보이자 나 역시 일어선 채로 얼른 고개를 숙였다. 뭔가 복잡한 심정이다. 에이, 기분 탓이겠지. 잘못 본 걸 거야. 그가 에카로 보여서, 내 의심이 착각을 한 걸 거야.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공작들과 아벨시아에게도 고개를 숙이며 서찰을 아버지에게 건네며 말했다.


"세스트빌에서 승병들이 지원을 왔습니다. 브루누에도 도달한 모양입니다. 남은 건 프벨린인데 퓨어스나 세스트빌에서 병력을 지원 받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지라 가장 위험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염려한 대로다. 아스트반에 병력이 새어나오지만 않았더라면 프벨린에 지원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라곤, 옛날 4천년이나 산 대악마답게 머리가 보통 좋은 게 아니다. 사실 이렇게 공격을 받으면 다른 나라들은 라밀 같은 약소국은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당황하고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는 없지.

프벨린. 카인과 케인이 태어나고, 그 추억이 간직되어 있는 곳이다.

―언젠가부터 바라왔던 일이 있다. 카인과 둘이, 그가 과거에 살았던, 내가 케인의 기억 속에서 봤었던 그곳을 가보는 것. 지금은 이제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래도 꼭 그곳을 지키고 싶다. 그렇기 위해선 빨리 필리오네 산으로 가서, 라곤을 쓰러뜨려야 해.


"그렇겠군. 프벨린의 병력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홀로 키메라들을 막아내는 것은 무리일 터. …… 로실리아, 루이엘. 그리고 그대들이여. 그대들에게 맡기는 수밖엔 없겠구나."


세뉴렌이 건넨 서찰을 읽고, 그의 보고를 들은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며 나지막이 말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위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겠는가. 나는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세요, 아버지. 저 반드시 모두와 무사히 돌아올 거니까요."

"그래……."

"걱정 말라고. 이 이안이 지키고 있는 한 절대로 뭔 일 없을 테니까."

"당신 몸 간수나 잘 하는 게 신상에 좋지 않을까요, 이안."

"뭐, 뭐? 이 레르칼족의 꼬마가?! 한판 붙어보잔 거냐!"

"못 붙을 것도 없습니다만,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대체 언제나 철이 들 겁니까. 게다가, 꼬마라니. 당신보다 200살이 더 많습니다만."

"생긴 건 일곱 살 정도 먹은 어린애구먼 뭐!"

"으아, 두 분 다 진정하세요!"


서로 티격태격한 이안과 아리스를 진정시키는 건 순전히 그 둘의 가운데에 있는 레아의 몫이었다.


"흐음, 레아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여기서 참도록 하지. 하지만, 아리스! 다음 서열 지정식 때는 절대 안 봐준다?!"

"언제는 봐주셨나요. 저 역시 이제 봐 드릴 생각은 없습니다만."

"뭐어-?! 그래, 그래. 제대로 해 보자고! 폐하께선 아직 쌩쌩하시니 천년 만 더 살아라, 꼬맹이!!"

"누누이 말씀드렸습니다만, 당신 몸 간수나 잘하세요."


흐아- 정말 못 말리는 사람들이라니까. 둘이 간신히 자리에 다시 앉자 나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고 그 모습을 보던 아벨시아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절대 안심할 수 있겠구먼."

"로실리아님. 라곤에게 가시는 겁니까?"


아무튼 상황을 파악한 세뉴렌이 살짝 표정을 굳히며 나에게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위험하시지 않을까요? 그 탑엔- 키메라들이 우글거릴 텐데요."

"네? 세뉴렌님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뭐, 뭐야. 아니, 필리오네 산 까진 아는 건 괜찮다고 쳐도 루미르 탑에 대해서까지 알고 있는 건가?


"저는 역사학자입니다. 그곳에 대해선 이미 전부터 알고 있었죠."

"아……."


뭔가 납득하기 힘든 이유지만… 나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전에 그가 말했잖아- 자신은 나의 편이라고. 나는 그 말에 절대 거짓이 없을 거라고 믿어. 그러니까 그를 믿자. 그는 절대 나의 적이 아닐 테니까.

나는 의문증을 털어버리고 아버지, 아벨시아, 공작들에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한시가 급하니 지금 당장 떠나겠습니다. 아, 그리고 아버지. 카인님을 지켜주세요. 부탁드려요."

"그래, 꼭 지키마. 걱정하지 말고 다녀 오거라. 아, 프란로드 백작. 왕실 창고에 라밀로 가는 스크롤이 있을 것이오. 6개를 꺼내 가져다주지 않겠소?"

"네."


아버지의 말에 세뉴렌은 바로 자리를 떴고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너무나도 떨렸다. 드디어, 드디어 모든 것을 정리할 최종 결전이다. 내가 라곤을 쓰러뜨릴 수 있을까? 얼마 전에 만났을 땐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렸는데…. 지금은 루이엘도 있고 이스피리아도 있으니까 가능할 거야. 아니, 꼭 가능해야만 해.


"못 뵌 사이에 영애께서 늠름해 지셨군요."

"오, 공작께서도 그리 느끼셨군요. 저는 이렇게 직접 대면하는 것은 처음입니다만, 과연 윈더프 공작의 따님입니다."


그리고 세뉴렌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잠깐의 사이 세레니카의 아버지인 폰 드리엘 공작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그 말에 디가르트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기분이 좋으신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누구 딸인데."

"따님 두 분께서 전생에 페릴, 바바라셨다니. 페릴과 바바라는 각자 인간족, 악마족의 영웅이었죠. 전생이라지만, 두 영웅을 따님으로 두셔서 좋으시겠습니다."


카멜라 공작의 말에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핫. 주신 엘리아나님께 감사 드려야겠습니다. 이런 어려운 때 영웅을 두 명이나 아스트반에 보내주셨으니 말이오."

"과연 훌륭한 따님을 두셨소, 윈더프 공작. 로실리야 앙 같은 여인을 왕비를 맞이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하하핫."

"오, 폐하께서 저희 따님이 마음에 드셨다니. 맘에 드신다면 주선을……."

"에엑, 아, 아버지!!"

"하하, 로실리아 양. 원래 이런 대화 속엔 이 정도의 농담은 필요하다네."

"……."

"후후, 우리 딸은 아직도 어린 소녀였구나."


나는 아버지와 아벨시아에게 놀림 받는 기분이 들어 왠지 부끄러워져 고개를 푹 숙였다. 루이엘은 웃음을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쳇, 그래도 그런 농담을 나누면 발끈하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냐고-.

엄청 암울했던 분위기의 회의실에 갑자기 화색이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세뉴렌이 들어왔고 나는 분위기를 수습하려는 듯 얼른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나에게 워프 스크롤을 건네주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부디, 조심히 다녀오시길."

"…… 네, 감사합니다, 세뉴렌님."


오늘 세뉴렌, 뭔가, 뭔가 이상하다. 내 기분 탓일 가능성이 짙겠지만, 뭔가… 평소 때와 분위기가 다르다랄까. 아무튼 나는 루이엘, 케인, 아리스, 이안, 레아에게 각각 워프 스크롤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벨시아, 공작들을 보며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고 애써 밝게 미소를 지으며 큰 소리로 소리쳤다.


"다녀오겠습니다!"


누가 보면 소풍 가는 사람인 줄 알 정도로 내 표정은 밝았다- 내가 볼 때엔.


"로실리아, 꼭 무사히 돌아와야 한다!"

"갔다 오면 멋지게 연회나 열자고!"

"다녀오십시오!"


나의 말에 아버지와 아벨시아, 공작들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그래, 다시 꼭 돌아와서 모두와 다시 만나야지. 나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 뒤 스크롤을 든 모두를 돌아봤다. 그러자 모두는 준비가 됐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고 우리는 내가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힘껏 스크롤을 뜯었다. 


[파앗-]


워프의 빛이 모두를 감싸기 시작했다. 나는 이동되기 전, 카인의 관을 바라봤다.


'다녀올게요, 카인. 모든 것을 끝내러…….'

 

 

 

 

 

첨부파일 성.MP3

 

패닉이 지나갔습니다 !

하아, 기분이 상당히 상쾌해졌어요. 우후후.

밀리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로 이번주는 나르실리온으로 결정~! / 퀸님 죄송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エメロ-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9.23 와아, 감사합니다!!
  • 작성자두르]산새 | 작성시간 08.09.23 아악 이게 얼마많인가요 !! 정말정말 기대했답니다 다음화도벌써부터 +_+ 후 .. 항상 재밌는 소설올려주셔서 정말정말 감사드려요♡ 부디 세뉴렌과는 적이되지않길바라며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 /
  • 답댓글 작성자エメロ-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9.24 내일은 정상적으로 올리겠습니다 ♡ 감사해요>ㅁ< (부족한 소설, 감사해주시다니, 오히려 제가 너무 감사합니다..)
  • 작성자[트라]비상、 | 작성시간 08.09.24 이 검이 또다시 주워졌습니다 -> 주어졌습니다. 사소한 것이긴 하지만. 잘 읽었습니다. 빨리 다음화, 다음화.
  • 답댓글 작성자エメロ-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9.24 으악; 사소한 오타가 엄청많군요!!! 고쳤습니다~. (원고상에선..)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