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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드래건]]프레이, 펜드래건의 보물. Intro, Prologue

작성자펜드래건|작성시간08.11.16|조회수54 목록 댓글 7

[Int.]

절대자 펜드래건.

꼭 지금처럼 비 오는 밤에 있었던 이별 이야기이다.

그건 정말 옛날이야기인데 지금과는 달리 특별한 지팡이도 없던 때였다. 그래, 바로 세계의 이름이 ‘펜드래건’으로 정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누추한 작은 집 가운데는 하나의 테이블과 두 개의 의자, 그리고 두 사람이 있었다. 기둥에 걸려 있는 램프불이 미약하게 실내를 비추었다. 테이블 위에는 두 잔의 차가 뜨거운 김을 뿌리고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잔에 손을 가져가지는 않았다.

한 사람은 윤기 흐르는 검은 머리카락의 잘생긴 청년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허리가 구부정하고 머리가 희게 센 작은 노인이었다.

청년은 테이블을 짚고 서 있었고 노인은 의자 하나를 차지해 앉아있었다. 둘은 아버지와 아들도 아니었고 할아버지와 손자는 더욱 아니었다. 노인도, 청년도 서로를 존대하거나 하대하지 않았고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둘은 아주 절친한 친구였다. 두 남자의 눈빛은 묘하게 비슷한 빛을 띄고 있었다.

노인이 입을 열었다.

“절대자도 실수를 하는군.”

“실수라면 벌써 수도 없이 했어.”

청년은 담담했다. 아니, 담담해 보이려 노력했다. 모든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기를 원했다. 적어도 눈앞의 친구에게만은. 그러나 바로 이 친구가 자신이 유일하게 감정을 감출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청년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이런 말장난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아, 아서! 중요한 문제는 반드시 서로에게 말해주기로 약속했잖아. 왜 나와 함께 결정하지 않은 거야!”

“이럴 것 같아서!”

청년이 소리질렀다.

“말을 해봤자 너는 날 감싸려고만 할 테니까. 그럼 난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없게 돼!”

“아서, 제발……. 네가 죽는다고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너도 잘 알잖아. ‘그들’의 약속이 그저 듣기 좋은 허황된 것들뿐이라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너잖아. 아니, 오히려 너의 죽음은 ‘그들’이 ‘너희’를 공격하기 위해 무너뜨려야 했던 가장 큰 벽이라고 생각해, 나는. 네가 스스로 죽음을 맞는 건 오히려 사람들을 ‘그들’에게 바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야. 다시 생각해봐, 제발.”

“빌.”

빗줄기가 창을 때리고, 또 때렸다. 수많은 빗방울이 창에 비친 두 사람을 수차례 찢었다. 창에 비친 아서의 얼굴에 빗방울이 맺혔다. 창문 속의 아서는 울고 있었다.

아서는 곧 의연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그들은 약속을 지켜.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내가 그렇게 만들어.”

“주민들은? 너희 주민들은?” “그들은 더 이상 살아 있는 절대자를 원하지 않아. 모르겠어? 그들은 이만 내가 전설이 되기를 원해. 자신들을 위해 희생하기를 원해. 살아있는 존재를 전설로 만들 수는 없을 테니까. 그들은 내가 희생함으로써, 나를 죽이는 것으로서 나를 영웅으로 만들 생각인거야. 그래…… ‘숭고한 희생’이라는 명목 하에 한 위대했던 인간을 매장시키는 거지. 그 후에 그들은 그 희생자를 숭배하며 살아가는 일만 남는 거야.”

“도대체…….”

노인은 가래가 끓는지, 말을 멈췄다.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는 그의 세계를 거머쥔 사람이었다. 그러나 노인의 세계에서는 평범한 주민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는 인간으로서의 그만을 이해했을 뿐, 절대자인 친구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그의 친구가 소속된 세계의 인간들의 사고방식들, 생각들 따위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너희 마법사들을 도저히…….”

“그래, 이해할 수 없겠지. 그렇겠지! ‘그들’은 너희와 달라. 절대로, 빌, 너는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래, 그래야 해. 너는 이해해서는 안 돼. 그건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야. 마법사들은 다름 아닌 마법 때문에 황폐해지고, 무너져 간 거야. 제발, 빌…….”

“…….”

비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빗줄기가 둘의 마음을, 그 심정을, 운명을 대변하듯 구슬픈 곡조를 연주했다.

이제는 창에 비친 분신이 아니었다. 아서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갔다.

“미안해, 하지만…… 제발, 나를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어. 나를 믿어줘, 빌.”

친구를 바라보는 노인이 힘겨운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부터 잘 움직이지 않게 된 몸이 노인의 생각대로 친구를 후려쳐 줄 수 없었다. 다만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을 뿐이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아서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피부가 하얗게 질리고 동공이 열렸다. 마치 죽음과 조우한 사람 같았다…….

“좋아, 약속하자. 나는 죽지 않겠어. 내가 누군지 알잖아. 난 살아남을 수 있어. 하지만 지금 당장 나는 죽어야만 하는 상황이야. 그러니까 난 나를 숨길거야. 그들에게 내가 죽은 것 마냥 속이고 떠나겠어. 그리고 세상이 나를 잊었을 때 돌아올게, 빌. 그래, 그렇게 할게……. 그러니까.”

아서가 소매에서 작은 꾸러미를 꺼냈다. 두 찻잔의 사이에 놓인 꾸러미를 집어든 빌이 손을 집어넣었다. 고급스러운 가죽이 만져졌다. 안에 들어있는 것은 두꺼운 책 한 권이었다.

“이건 너무나 중요한 거야, 빌. 내가 돌아오면 내게 돌려줘. 그 전까지는 네가 가지고 있어줘. 믿을 사람은 너뿐이니까. 알고 있지?”

목이 매인 빌이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무슨 책인가?”

“내 보물이야.”

아서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의 슬픈 옆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빌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니면 또 누가 자네를 믿겠나, 아서.”

빌이 책을 무릎 위에 올렸다. 책은 두꺼운 만큼 무거웠다. 그러나 책의 무게 따위는 친구의 기약 없는 부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갈 시간이야, 빌. 오두막으로 돌아가. 그리고…….”

아서는 테이블에 기대놓은 길고 굵은, 검은색 지팡이를 들었다. 힘겨운 눈물을 흘리는 노인의 모습이 점점 헝클어지고 희미해졌다.

“다시…… 만났으면…….”

노인이 앉아있던 의자의 등받이가 노인을 통해 비쳐 보였다.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는 빌의 모습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

이제 방에 남은 것은 아서뿐이었다. 그는 지팡이를 고쳐 잡았다.

완전히 식어버린 차를 단숨에 마시고 커튼을 쳤다. 램프도 불어서 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자, 빗소리와 아서의 발자국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그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또 다른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 발자국의 주인공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상하군. 내가 문을 잠궈 놓지 않고 나갔었던가?”

그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마침내 아서가 서 있는 테이블 있는 방으로 다가왔다.

끄트머리에서 불이 타는 지팡이를 쥔 손이 다가왔다. 지팡이에서 나온 불빛이 아서의 구두를 비췄다. 때마침 친 번개가 창가에 서 있던 아서의 실루엣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지팡이를 쥔 손이 크게 떨리면서, 마찬가지로 떨리는 음성이 말을 걸어왔다.

“당신 누구요? 왜 남의 집에 있소?”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남자의 손에서 지팡이가 핑글핑글 돌며 튕겨져 나갔다. 지팡이는 나무 마루를 데구르르 굴렀다. 유감스럽게도 지팡이에는 아직 불이 붙어있었다. 크게 타오르는 마루가 그 가늘고 짧은 막대를 단숨에 태웠다. 그러고도 화가 가시지 않은 불길이 아직 치우지 않은 두 개의 찻잔이 올려진 테이블을 집어삼키고 기둥을 타고 올랐다.

두 사람 다 미동조차 않았지만 그 이유는 다른 것이었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빛 때문에 남자의 얼굴이 더욱 더 기괴해보였다. 아서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아서의 오른손이, 지팡이를 쥔 손이 쭉 뻗어나갔다.

우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천둥이 울렸다. 그리고 또 번개가 친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건 번개가 아니었다. 그건 인간의 영혼마저 가를 수 있는 푸른 섬광이었다…….

“으악! 사람 살려…….”

/

그 후에 남은 것은, 바닥에 엎드려 있는 초로의 남자와, 불길을 등지고 선 아서. 그의 표정은 짐작하기 힘들었다. 천둥의 여운이 남아 있을 뿐, 비마저 내리는 것을 잊은 듯, 불길 마저 타오르는 것을 쉬는 것 마냥 아주 잠시 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불길은, 이제 천장을 갉아먹고 있었다. 비도 이 불을 제압하지는 못했다. 다만 조금씩 약해지는 것이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잠시동안 우두커니 서 있던 청년이 아직 타지 않은 바닥을 밟고 지나갔다. 서두르지 않았다. 문이 벌컥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났다.

이제 집에 살아 있는 사람은 남지 않게 되었다.

아서는 빛도 없이 걸었다. 그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아니,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조금 전의 친구와의 이별로 눈물을 흘리던 그는 지금의 그와는 본질적으로 나누어진, 전혀 다른 존재같았다. 그런데 눈물이 났다. 그래서 아서는, 이 눈물을 지우기 위해 웃었다. 이 젊은 마법사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입꼬리에 걸렸다. 나직하게 웃고 있었다.

“몇년이 걸린다 한들, 너를 되살릴 수만 있다면…….”

[Int.] 끝.

[Pro.]

F. 파커 친전

서재의 모든 창문에는 검은 휘장이 쳐져 있어서 내부가 어두웠다.

불을 붙일만한 것이라곤 책상 위의 초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 초에 막 불을 밝힌 남자가 성냥을 흔들어 끄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명패를 손으로 가볍게 훑었다. 명패에는 그의 이름이 멋진 글씨체로 조각되어 있었다.

G. T. 유니프 남작

검지 손가락으로 이름을 쓸었다. 유니프 경은 잠시 뭔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곧, 묘한 어색함에 그는 몸서리쳤다. 가볍게 고개를 흔들고는 책상을 돌아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서랍에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열어서 종이를 꺼냈다. 편지지였다. 그는 잠시 인사말을 고르는 듯하더니 곧 펜을 들었다. 잉크 뚜껑을 들자 특유의 중독적인 향이 코끝을 간질여왔다. 그는 아주 천천히 펜을 잉크에 담갔다가 꺼냈다. 그리고 역시 천천히, 그러나 쉬는 일 없이 무언가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무척 조심스러웠다. 길지 않은 글을 다 쓰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는 편지에 서명하는 것을 끝으로-서명조차도 천천히 했다- 편지를 두 번 접어서 편지봉투에 넣었다. 후텁지근한 공기 때문인지 그의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편지봉투를 닫고 봉인을 찍은 뒤 그는 편지봉투에 다시 수발신인을 적었다. 그리고는 창문 쪽으로 다가가 휘장을 열어 젖혔다.

창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주룩주룩, 그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비가 오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창문에는 문손잡이가 없었지만 그가 짚고 있던 지팡이를 창문에 대고 중얼거리자 벌컥하며 열렸다.

유니프 경은 창밖을 향해 누군가를 불렀다.

/

[Pro.]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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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산스]風〃엘 | 작성시간 08.11.17 실수를 많이 하는 절대자 .. 흥미롭네요.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Ark、 | 작성시간 08.11.17 잘읽었어요. 팬드래건'군'이 주인공이 되는건가요
  • 작성자[하칸]미나에 | 작성시간 08.11.18 잘 읽었…흐음. 절대자가 죽어 사라져 전설로 되길 바란다라…
  • 답댓글 작성자펜드래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11.18 아.. 다시 써야겠네. 인트로의 내용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 한명도 없으니..
  • 작성자로벨리안 | 작성시간 08.11.26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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