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은빛카린]]-피의 노래- Three Night. 움직이는 운명의 수레바퀴 ~가면 속 숨겨진 진의~[9]

작성자은빛카린|작성시간08.12.12|조회수83 목록 댓글 17

 

 

-피의 노래- 전체 목록 보기

 

 

 

 

◈◈◈



 딱딱―.

 선명할 정도로 붉게 칠해진 입술. 그리고 그 입술 사이로 보이는 인간에게는 없는 그것, 날카로운 송곳니. 그녀는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로 붉게 칠해진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단단한 손톱과 이가 맞물려 소리가 났다.

 거센 바람 때문인지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왔다. 아니, 거센 바람 때문이 아니라 극도의 초조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젠장.”

 바람에 아름답게 물결치는 붉은 긴 머리카락, 창백할 정도로 혈색이 돌지 않는 투명한 피부, 이 자리 모든 자들에게 공통된 붉은 눈동자, 그리고 선명하게 붉은 립스틱으로 칠해진 입술과 그런 그녀의 외모를 뒷받침하듯이 진한, 거의 붉은 색에 가까운 화려한 와인 빛 드레스.

 한 눈에 봐도 그녀는 귀족 중에서도 높은 상위층이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 요염한 그녀는 거친 말을 내뱉고 있었다.

 꽈직―.

 산산조각이 난 와인 잔의 파편이 바닥에 떨어져 흩어졌다. 이윽고 짜증이 극도에 달한 그녀의 화려한 무늬가 장식된 흰 장갑이 손에 쥐고 있던 와인 잔을 부수면서 와인의 빛깔로 물들었다. 날카로운 파편이 장갑을 뚫고 그녀의 맨살에 파고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찢어져버린 장갑을 포함한 양쪽 장갑을 벗어 신경질적으로 땅에 내던졌다.

 “왜 가질 수 없는 거지? 왜!”

 모든 것은 자신의 손에 떨어졌고 그녀 본인이 바라는 것이라면 뭐든지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최고로 갖고 싶어 하는 ‘그것’은 결코 그녀의 소유가 되지 않았다.

 하늘거리는 검은 머리카락, 붉은 눈동자의 고결한 ‘그것’, 카인 폰 크로스.

 「처음 뵙는군요. 크리티아양. 」

 처음으로 본 소문으로만 듣던 유일한 ‘주군’폐하의 후계자.

 감정이 담겨있지 않는 차갑고 붉은 투명한 눈동자, 설사 피에 물든 다해도 그 피에 먹히지 않고 영원히 감미로운 빛을 내뿜는 고결한 왕자님.

 「왕자님께 처음으로 인사드립니다.」

 무서웠다. 자신을 향해 검을 겨눈 것도 아닌, 조용한 목소리와 차분한 태도로 자신을 대하는 데도 무서웠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자신의 핏속 무언가가 이 눈앞의 존재는 밤의 일족 상위층에 자리 잡은 자신보다 훨씬 우위에 선 정점에 군림해 모든 이를 다스리는 존재라는 걸 느끼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떨리는 몸으로 그에게 예를 갖추고 나서 정면으로 바라보았을 때 깨달았다.  

 설사 말은 자신을 향해 건네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아무것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자신을 대하면서도 그저 예의일 뿐, 그 선을 넘지도 자신을 진정으로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의 태도는 자신만이 아닌 모든 이에게도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를 본 순간, 그 옆자리는 귀족들의 정점에 선, 크리티아가 당주의 직계영애인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여겨왔다.

 너무나도 고귀한 밤의, 어둠의 세계의 왕자님.

 그런데 그런 그의 붉은 눈동자가 오늘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귀족들은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 레아 폰 크리티아는 알 수 있었다.

 천한 인간 계집, 그저 호의로 내려진 껍데기뿐인 귀족 지위, 거기다가 인간이던 시절 그녀의 신분은 헌터. 관대한 마음으로, 그저 예의로 이곳에 데려온 것이라 여겼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귀한 밤의 왕자님, 아니 밤의 왕세자 전하의 그 눈동자가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바라본 곳엔 그녀가 있었고 그녀를 향한 눈길은 모든 이들을 향한 눈길과는 달랐다. 그 눈길에선 차가움이 아닌, 따뜻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왜 그런 계집을…….”

 자신이 결코 닿을 수 없었던 자리, 껍데기라도 얻고 싶었던 자리를 자신이 아닌 다른 자가 이미 차지하고 있었다.

 자신이 결코 넘어설 수 없었던 왕자님의 두꺼운 마음의 벽. 그것은 본능적인 피에 관한 것.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노엘 카를리아, 그 계집은 두꺼운 벽을 넘어 자신은 결코 닳을 수 없는 왕자님의 뭔가에 닳아있었다.

 자신이 볼 수 없었던 저편의 그것. 닿을 수 없었던 저편의 그것.

 “왜 난 닳을 수도, 뻗을 수도 없는 거지?”

 그토록 원하고 바라는데 왜 자신은 되고 그 계집은 되는 것일까? 레아는 은빛의 빛을 지상에 비추고 있는 달을 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눈을 감고 떠오르는 그 모습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환상에서조차 그 손길은 닿지 않았다. 단지 허공을 저을 뿐이었다.

 “모든 것을 다 가졌으면서도, 그 단 하나의 보석을 갖고 싶나?”

 자신의 지금 마음을 꿰뚫어본 듯 저편에서 들려온 낮은 음성의 목소리.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레아는 놀란 채 급히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바람이 불어온다. 그녀의 흔들리는 마음을 반영이라도 하는 듯이. 그리고 그 바람에 붉은 장미 꽃잎들이 흩날린다. 하지만 그 바람에 흩날려 그 그림자에 닿기만 해도 장미는 그 붉은 생명력이 상실하며 가루가 되어 바스라진다.

 바람에 휘날리는 순백의 머리카락. 창백할 정도로 투명한 빛깔의 피부와 얼음 그 자체와도 같은 감정이 실리지 않는 홍옥의 눈동자. 피를 머금은 것같이 붉은 입술과 그 입술 사이로 보이는 하얀 송곳니.

 ‘당……당신은…….’

 입술을 달싹여보았지만 목소리는 말이 되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몸이 굳어져가는 것을 느낀다. 몸속의 피가 솟구쳐 오르면서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자신보다 높은 신분의, 우위에 선 자.

 “레아 폰 크리티아, 예를 올립니다.”

 억지로 갈라진 목소리로 말을 하고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흔들리는 그녀에 비해 상대방의 태도는 차갑도록 변화가 없었다.

 “그렇게 떨 것 없어. 아니, 네 안의 피가 본능적으로 요동치는 걸까나. 아무리 인간의 피가 섞이지 않았더라도 귀족은 상대가 되지 않으니까.”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편하게 웃는 그를 레아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몸을 숙여 그녀의 눈과 자신의 눈을 맞추었다.

 “자, 그만 일어나. 이래 봐도 너에게 용건이 있어서 왔는데 이러면 제대로 대화도 못 하잖아. 안 그래?”

 레아의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 레아를 향해 여전히 미소를 띤 채 그는 레아를 향해 말을 건넸다. 그러자 레아도 조금은 안심이 된 듯 안정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저에게 무슨 용건입니까? 왕자님.”

 제 1왕자, 루인 폰 크로스, 제 2왕자이자 오늘 이 자리에서 왕세자의 직위를 임명받은 카인 폰 크로스와 어머니가 다른 배다른 형이기도 한, 어딘가 카인과 닮은 그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올려다보며 레아는 그의 말에 대꾸했다.

 “쿡. 하긴 왕자인 내가 갑자기 용무가 있다고 하면 뭔지 궁금할 만도 하지. 거래를 하지 않겠어?”

 “거래? 무슨 거래를 말씀입니까?”

 ‘거래’라는 말에 레아는 표정과 눈빛이 달라졌다. 왕족이 귀족에게 뭔가를 제시한다는 것은 때때로 집안의 생사를 건 위험한 일인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과거 몇 차례, ‘주군’의 재목을 잘못 판단하고 그 모든 것을 건 귀족들은 그 가문과 자신의 목숨 자체를 잃고 사라져갔다.

 “지금 너는 나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돼. 하지만 그 ‘조건’을 달성 시, 넌 나에게 대가를 치러 줘야해.”

 레아는 일단 지금은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조금은 흥미가 생긴 듯싶었다. 지금 현재, 자신의 가문인 크리티아가는 현 ‘주군’의 치하 아래 순수혈통 귀족들 중 가장 으뜸가는 가문이었기 때문에 위험한 거래를 할 필요가 없었다. 즉, 위험을 무릅쓰고 권력을 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제 2왕자인 카인이 왕세자가 된 이상, 왕세자가 되지 못한 왕자의 거래를 꼭 해야 할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

 “그럼 ‘조건’은 무엇인가요?”

 거래를 할 가치가 있는 ‘조건’인지 냉철하게 레아의 눈동자가 빛났다. 그녀의 그런 태도에도 불구하고 루인은 여전히 한 치의 조급함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지금 네가 가장 바라는 ‘그것’을 주지. 단 하나 손에 넣지 못한 고귀한 홍옥의 보석을……. 하지만 그러려면 그 보석에 조그만 흠집이 생길 수도 있어. 너도 알고 있겠지? 그것은 순순히 나에게 승복할 만큼 약하지 않다는 걸.”

 자신이 가장 현재 바라고 있는 ‘그것’을 주겠다는 루인의 말에 레아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신의 품에 빛을 잃어 망가진 그를 떠올렸다.

 비록 감정을 잃고 망가졌다 해도 갖고 싶은 그것. 그 감정이 이젠 어떤 것인지 모른다. 그것이 사랑인지, 단지 집착뿐인 애증의 감정인지―. 하지만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마음, 그것은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

 “쿡, 너와 난 어떤 식으로 보면 비슷해. 네가 해줘야할 대가를 말하지. 그건…….”

 아무런 기척이 없는 외곽의 장미들이 자리 잡은 이곳에 다시 한 번 조용히 바람이 불어 닥쳤다. 그와 동시에 ‘쏴아아―’하는 바람 소리와 함께 그가 거래조건에 따른 대가를 말했다. 하지만 그 조용한 속삭임은 바람 소리에 휩쓸려 그녀의 귓가에만 살짝 들렸다.

 훗.

 그녀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녀의 붉게 칠해진 입술이 조소를 띠었다. 그리고 그의 제안에 그녀는 붉은 입술을 달싹여 대답했다.

이윽고 거래는 성립되었다―. 운명을 가늠 지을 체크판 위의 말은 서서히 모여가고 있었다.

 

 

화요일에 올려서 무려 그 주 금요일날 또 찾아뵙네요'ㅅ'!

 

오늘부로 시험 무사히 치뤘습니다.

 

이제 써 둔 분량은 1화정도 남았네요.

 

이번 화에는 새로운 이름의 두 분이 등장했습니다'ㅅ'!

 

사실 한 분은 전에 등장했지만, 이름이 안 나온 고로...

 

레아 폰 크리티아, 루인 폰 크로스입니다.

 

카인과 노엘에게 이들이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같이 카인의 프로필도 올리고 가니 그쪽도 봐두시면 좋습니다.

 

ps. 즐겁게 감상해주시고 오타나 지적사항, 감상평 남겨주시면 감사드립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레코]은빛카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12.16 그러게요... 제 소설치고 안 험난한 인생 사는 사람이 없는 듯...-ㄱ-
  • 작성자[아노마라드]진일진문자 | 작성시간 08.12.16 카엘과 노엘 그리고 그 뒤를 노리는 2사람 ㅎㅎ 흥미진진해지네요. 과연 카엘은 '주군'의 자리에 올라갈건가 아니면 못올라갈까 ㅋ;; 2왕자와 레아의 거래조건이 뭔지 궁상중인 2人 ㅎㅎ 힘내세요오~
  • 답댓글 작성자[레코]은빛카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12.16 오타났어요. 카인이에요. 훗. 그리고 제 1왕자와 레아의 거래에요...훗.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성자[하칸]미나에 | 작성시간 08.12.16 잘 읽었습니다. 흐음... 루인 폰 크로스가 노엘을 초대한 장본인일거라 추측되네요.
  • 답댓글 작성자[레코]은빛카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12.16 카인은 츤데레로 좋아하는 여성 앞에서만 데레데레해지는 타입, 루인같은 경우는 무서울 정도로 치밀하고 냉철한 나쁜 남자타입이죠...-_-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